소설리스트

< 숨통을 끊어라 > (80/200)

< 숨통을 끊어라 >

[역시 요한 도밍게즈의 구속 하나만큼은 대단합니다. 시즌을 마무리하는 한국시리즈인데도 초구 구속이 153km가 나옵니다.]

[도밍게즈의 장점이죠. 비록 아쉬운 부분이 꽤 많은 투수지만, 확실히 공이 빠른 건 장점이에요.]

서울 타이탄스의 2선발, 요한 도밍게즈는 기존 2선발 호르헤 루고의 부진으로 시즌 중반 영입된 외국인 선발이었다.

요한 도밍게즈가 호르헤 루고보다는 당연히 나아야 하고, 실제로도 그나마 낫지만...

17번의 선발 등판에서 6승 4패, 평균 자책점 3.77

FIP 4.11, WAR 1.7로 그나마 괜찮지만, 2선발로는 많이 아쉬운 성적...

그나마 평균 구속 151km의 빠른 볼이 괜찮지만, 빠른 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수준의 투수가 2선발이자 외국인 투수로 로스터를 차지한다는 게 클로저 불안과 함께 시즌 내내 이어진 서울 타이탄스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였다.

[타이탄스는 도밍게즈와 장진규 선수가 모두 3선발로는 훌륭한 투수고, 5선발급 후보들도 타 팀 4선발에 밀리지 않는 선수들입니다. 이런 부분들 덕분에 하위 선발에서 승리를 따내며 정규시즌의 강팀으로 군림하지만... 포스트시즌에 들어오면 항상 정규시즌의 포스까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이번 시즌은 타이탄스의 전력이 다소 약해지고 매지션즈의 전력이 정점을 찍으면서 정규시즌과 마찬가지로 제츠와 매지션즈가 한국시리즈에서 경쟁할 거라 평가됐죠.]

[타이탄스 입장에선 다행히도 부진에서 돌아온 김진형 선수가 훨씬 더 성장한 모습을 보이며 팀을 여기까지 끌고 왔습니다만, 유영도 선수가 있는 제츠와의 시리즈에서도 그 모습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이 많았어요.]

[자, 유영도 선수의 한국시리즈 첫 타석입니다. 김진형 선수의 활약에 대답하는 타석이 될 수 있을까요?]

영도의 한국시리즈 첫 타석.

하지만 1번 타자 손성호 역시 한국시리즈 첫 타석이었고, 2번 타자 한영훈도 주전으로 나선 첫 번째 한국시리즈 경기였다.

손성호는 중전 안타, 한영훈은 우전 안타.

영도에게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틈을 타 두 베테랑이 오래 묵은 한을 풀겠다 선언했다.

그렇게 무사 1, 2루의 찬스가 영도 앞에 만들어졌다.

‘어차피 하위 선발끼리의 맞대결에서 강점이 나오는 팀인데... 2선발을 타일러한테 붙이다니.’

피하지 않는 게 남자다운 건지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감독이 취할 자세는 아니었다.

훌륭한 감독들을 보면 모든 경기에 100%를 투입하지 않았으니까.

어떤 경기는 80%만 더 중요한 경기에 쓰기도 해야 하고, 이런 식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게 아닐까?

어쩌면 타이탄스에겐 요한 도밍게즈의 승리 가능성이 보인 것인지도 몰랐다.

그들에겐 보이지만, 영도에겐 보이지 않은 이유는...

‘내가 요한을 너무 쉽게 보는 건가?’

들어오는 공들을 보면 쉬워 보이는 걸 어떻게 하라고.

한국에서야 이 강속구가 강속구 자체로 위력을 보이니 나름 통했다지만, 풀타임 메이저리거로만 3시즌을 보낸 영도에겐 무브먼트도 부족하고 딱히 무겁지도 않은, 빠르기만 한 패스트볼일 뿐이었다.

패스트볼은 언제나 투수의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되어주지만, 타자 입장에선 가장 먹어치우기 좋은 식사거리가 되어주기도 하는 법.

[높은 패스트볼을 찍었습니다! 무사 1, 2루에서 제대로 찍힌 타구! 멀리, 멀리! 첫 타석, 첫 타석에서!! 홈런입니다! 쓰리런 홈런! 한국시리즈 첫 타석을 쓰리런 홈런으로 장식하는 유영도 선수! 전문가와 팬들의 질문에 완벽한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이건 뭐... 1회 말부터 무사 1, 2루에서 쓰리런 홈런. 한국시리즈 1차전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너무 일찍 김이 빠지는 거 아닐까요?]

계속 언급했듯 영도에게 그나마 패스트볼로 승부하려면 끝이 더럽거나 컨트롤을 넘어 커맨드가 뛰어나야 했다.

그래도 어려우니 날카로운 브레이킹볼을 연마하는 편이 훨씬 나았고, 그것도 볼넷을 내줘도 된다고 존 테두리를 노려야 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어설픈 패스트볼은 뻥뻥 넘겨대던 게 영도인데 거기서 살아남지도 못한 패스트볼 원툴의 투수라니.

“으아아아!! 좋아!! 완벽한 시작이라고!!”

“이대로만 가자, 이대로만!!”

먼저 홈으로 들어온 손성호와 한영훈은 영도를 향해 거칠게 몸을 부딪쳐왔다.

1회 말부터 아웃 카운트 하나 없이 장작을 쌓아놓다가 터져야만 했던 곳에서, 터뜨려줘야 하는 선수가 정확하게 터뜨려준 대형 홈런.

제츠 입장에선 이보다 더 완벽한 1회가 있을 수 없었다.

아니, 1회가 아니더라도, 아예 경기 종반인 9회에 나왔다 하더라도 완벽하다고 말했을 흐름이었다.

해줘야 할 선수가 해주는 것만큼 팀의 계산을 편하게 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제가 절대 실망은 안 시켜드린다고, 자신 있다고 계속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상위타선에서 연속 안타와 홈런으로 아웃 없이 3점을 뽑아줬다?

제츠의 한국시리즈를 이보다 더 편하게 해줄 순 없었다.

그것도 1차전, 거기서도 1회부터.

[김진형 선수에게 2루타를 허용하긴 했지만, 타일러 로즈의 무실점 행진은 2회에도 이어집니다. 역시나 안정적인 피칭. 뜨겁게 달아올랐던 타이탄스 타선이지만, 역시 타일러 로즈를 공략하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 어떤 팀도 타일러 로즈를 쉽게 상대할 순 없죠. 한 대 정도 정타를 먹이는 건 어렵지 않아도, KO 시키긴 어려운 투수. 그런 종료의 투수 중 정점에 오른 투수가 타일러 로즈거든요.]

기대했던 대로 타일러 로즈는 언제나처럼 계산이 서는 에이스의 피칭을 보여주었다.

더 이상 뜨거울 수 없을 만큼 달아오른 김진형의 배트는 꺾지 못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홈런만 내주지 않고 버티면 다른 타자들을 잡아내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으니까.

[어!! 잠깐만요!! 이거 넘어갑니까? 넘어가나요!! 이 중요한 무대에서!! 홈런! 홈런입니다! 조규영의 이번 시즌 첫 홈런! 매 시즌 적어도 2, 3개의 홈런은 때려주었는데, 이번 시즌 들어 홈런이 없었던 조규영 선수! 이번 시즌 첫 홈런을 한국시리즈에서 때려냅니다!]

[와... 여기서 조규영 선수가 홈런을 때려줄 줄은 몰랐네요. 김원상의 기습 번트와 이재준의 희생 번트로 1사 2루. 조규영 선수가 적시타를 때려주면 좋겠지만, 그의 공격력을 생각했을 때 쉽진 않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투런 홈런? 이야...]

그리고 마지막 화룡점정.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마지막 퍼즐.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미쳐버린 한 선수.

아직 확신할 순 없지만, 조규영이 그 가능성을 보였다.

원래 해줘야 하는 선수들이 기대에 부응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가 단기전에 맞춰 미쳐버린 상황.

이 상황에서는 그 어떤 팀도 쉽게 패배를 상상할 수 없었다.

***

[서울 제츠,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숙명의 라이벌 타이탄스 상대로 11-2 대승!!]

[모두가 기다려온 제츠와 타이탄스의 KBO 최고 흥행시리즈... 하지만 순식간에 끝나는 시리즈 될까?]

[KBO판 ‘서브웨이 시리즈’의 유일한 옥의 티는 타이탄스의 체력 소모]

[4타수 3안타 1홈런 6타점. 언제나처럼 상대 마운드 폭파시킨 ‘절대영도’]

[‘역시 에이스는 에이스!’ 5이닝 무실점 호투 이후 72구 만에 마운드 내려간 타일러 로즈. 언제든 다시 등판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으로 마무리]

[4타수 4안타 1홈런 3타점... “차라리 우엉 들고 타격하라”며 조롱받던 조규영의 환골탈태]

서울 제츠와 서울 타이탄스.

KBO 제일의 라이벌리를 자랑하는 두 팀이 시즌의 주인공 자리를 두고 한국시리즈에서 만난다?

안 그래도 영도의 활약 덕분에 시즌 내내 KBO에 대한 관심이 하늘을 찔렀는데, 한국시리즈 대진이 이렇게 나오면서 시리즈가 끝나기도 전에 2040시즌 KBO의 역대급 대성공을 모두가 확신했다.

당연히 한국 야구팬 모두가 미쳤고, 역대 최고의 흥행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한국시리즈 1차전 시청률은 지난 시즌보다 두 배 이상 뛰었고, 입장 티켓은 판매가 시작되고 2분도 지나지 않아 매진되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불안함을 말하는 사람들이 적진 않았다.

정규시즌 4위에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온 타이탄스의 질주는 대단했지만, 체력소모를 무시할 수 없었다.

영도 한 명의 합류로 단숨에 단점을 없애버린 제츠의 전력도 만만치 않았고, 조지 스넬이 1차전에 나올 수 없는 상황도 타이탄스 입장에선 골치가 아팠다.

그리고 1차전.

조지 스넬의 공백은 사람들의 불안함보다도 훨씬 치명적이었다.

제츠는 완벽한 경기를 치렀고, 시리즈 승리를 위한 준비물을 완벽하게 갖춰버렸다.

11-2의 대승으로 제츠에게 가장 필요한 흐름과 기세, 분위기까지 가져갔으니...

[한국시리즈 2차전마저 가져간 서울 제츠. 13-4 대승 거두며 두 경기 연속 9점 차 대승!]

[‘너무 원사이드한 한국시리즈 아닐까?’ 슬슬 시작되는 우려. 서울 제츠가 이렇게 강력했나?]

[잠실 올림픽 파크 떠나 고척 티타노마키아로 향하는 서울 타이탄스. 티탄의 반격은 시작될 수 있을까]

[티타노마키아에서의 첫 경기, 드디어 출격하는 타이탄스의 절대적 에이스 조지 스넬]

[‘타이탄스를 구해라’, 절대적 에이스에게 맡겨진 무거운 짐. 스넬의 어깨에 얹혀진 에이스의 무게]

그런 의미에서 한국시리즈 3차전, 고척 티타노마키아에서 벌어지는 한국시리즈 첫 경기가 너무나도 중요했다.

심지어 타이탄스 팬들이 그토록 기다려온 에이스 조지 스넬이 드디어 등판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했다.

여기서 타이탄스가 반격을 시작할 수 있다면 팬들의 기대만큼 팽팽한 명 시리즈를 기대해볼 수 있겠지만, 만약 이 경기마저 패배한다면...

타이탄스의 반격을 위한 동력을 모두 잃게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열흘 넘게 자기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다니... 마지막까지 형 좀 편하게 야구하라고 신이 도와주는 것 같네.”

“그러게. 확실히 편하긴 해. 대체 메이저리그에선 어떻게 야구했을까...”

“그렇다고 너무 익숙해지진 말고. 다음 시즌부턴 여기서 제일 먼 원정 거리가 가장 가까운 원정 거리로 바뀔 테니까.”

“서울-부산 원정이 가장 먼 거리라니... KBO랑 메이저리그의 수준 차가 조금만 더 적었어도 한국에서 계속 야구하고 싶었을 것 같은데.”

“엄살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원정거리 같은 거 제일 신경 안 쓰는 선수였으면서. 내가 볼 때 형의 최대 장점은 파워가 아니야. 체력이지.”

“하하하, 그건 그래. 그래도 멀쩡하다고 안 힘든 건 아니다. 남들보다 타격이 적을 뿐이지.”

잠실과 고척, 서울을 연고로 하는 두 팀의 한국시리즈.

팬들도 편하지만, 선수들에겐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어디 살든 자기 집에서 지하철, 자가용을 타고 한 시간이면 경기장에 도착할 수 있는 상황.

이동 거리가 선수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생각해보면 서브웨이 시리즈가 선수들에게 주는 이점은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오늘 조지 스넬만 꺾으면 내일 바로 끝낼 수 있지?”

“당연하지. 4-0으로 끝내면 울면서 소주 때려넣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런 것까지 우리가 생각할 필요 없잖아?”

선수는 리그의 흥행 같은 걸 생각해줄 필요가 없었다.

선수가 할 일은 언제나 같았고, 아주 쉬웠다.

그냥 최선을 다해 경기를 준비하고, 경기를 치르는 것.

항상 팬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이외의 다른 것들은 선수가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그럼 알아서 잘하고 와. 나도 알아서 잘 준비하고 있으니까.”

“오케이. 간다.”

4차전이 홈구장, 잠실 올림픽 파크가 아닌 티타노마키아에서 펼쳐진다는 건 아쉬웠다.

하지만 4-0으로 간단히, 팬들 마음 졸이지 않게 끝내버리는 게 팬들을 위한 일이었다.

잠실 올림픽 파크가 아니어서 아쉽다면... 거기서 셀러브레이션, 세리모니를 하는 게 맞지, 억지로 두 경기를 내줄 순 없는 일이니까.

서울 타이탄스의 마지막 희망, 에이스 조지 스넬.

영도는 그 희망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척 티타노마키아로 향했다.

< 숨통을 끊어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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