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인내와 인내 > (73/200)

< 인내와 인내 >

[후반기 들어 1, 2위 팀, 매지션즈와 제츠의 승률이 정말 엄청납니다. 매지션즈가 46경기에서 32승 14패로 7할에 가까운 승률을 기록 중이고, 제츠도 45경기 28승 17패로 6할 승률을 넘겼습니다.]

[물론, 제츠의 시즌 승률이 딱 1리 정도 더 높아요. 그러니까 특별한 성적은 아니라는 건데, 이게 ‘여름 제츠’라는 게 더 중요한 거죠.]

[‘여름 제츠’가 5할을 넘기는 것도 신기한데, 6할을 넘기다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유영도 선수의 아시아 홈런 신기록 도전이 결정적이었죠. 보통 이런 신기록 때문에 정신이 분산되고 관심이 과도하게 몰리면 흔들리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제츠에겐, 특히 여름마다 안 그래도 산만하고 경기에 집중 못 하는 데 그게 더 심해지는 제츠에겐 오히려 약이 된 느낌이에요. 오랜만에 제츠가 똘똘 뭉쳐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봤네요.]

시즌 승률 0.623, 후반기 승률 0.622.

제츠는 연례행사인 ‘여름 제츠’ 시기를 겪었음에도 시즌 전체 승률과 큰 차이 없는 후반기를 보내고 있었다.

기어이 아시아 홈런 역사를 새로 써버린 영도의 미친 듯한 질주로 어려운 시기를 버텼고, 그 덕인지는 몰라도 예년보다 조금이나마 일찍 부활한 나머지 선수들이 그 이후를 책임졌다.

하지만 매지션즈의 성적이 한 수 위.

후반기 승률 0.696으로 7할에 육박하는 승률을 기록하면서 제츠가 좋은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한 게임 차 1위를 지켰다.

[이번 마지막 2연전이 끝나면 시즌 종료까지 겨우 네 경기가 남습니다. 물론, 한 게임 차이기 때문에 매지션즈가 이번 시리즈를 스윕하지 않는 이상 마지막 경기까지 지켜봐야 합니다.]

[제츠가 스윕해도 한 게임 차... 일단 제츠는 무조건 이번 시리즈를 스윕하고 싶을 거예요. 1승 1패로 나눠 먹어도 네 경기 남겨두고 한 게임 차 2위거든요?]

[매지션즈 입장에선 스윕하고 끝내고 싶겠죠. 한두 경기라도 포스트시즌 대비 모드로 돌리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더욱 한국시리즈 직행이 두 팀에게 중요해요. 시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총력전을 돌려야 하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합니다.]

차라리 한국시리즈 직행보다 플레이오프 직행이 낫다는 의견도 있었다.

준플레이오프를 거치며 지쳐있는 상대를 맞이해 긴 휴식으로 떨어진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고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게 승률이 더 높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여전히 한국시리즈 직행을 더 가치 있게 보는 편이었다.

여전히 정식으로 세거나 기록하진 않지만, 정규리그 우승의 가치가 예전보단 조금이나마 더 높아진 것도 있었고.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정규리그 1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두 팀, 매지션즈와 제츠의 경기는 엄청난 긴장감을 내뿜으며 리그 전체의 관심 속에 있었다.

[어차피 3위 에이스와 2위 제츠의 격차도 열 경기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중요한 경기를 맞아 양 팀 모두 지난 한두 경기 동안 대체 선발과 벌떼 마운드를 가동하면서 에이스 등판 일정을 맞췄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두 팀 다 이 맞대결에 사활을 걸었거든요? 타일러 로즈와 유형근, 리그를 지배하는 에이스들이죠.]

[그렇지만, 아무래도 제츠 쪽이 더 부담스럽긴 할 겁니다. 한 게임 차 뒤진 2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후반기 매지션즈와의 대결 성적도 좋지 않아요.]

[전반기에는 유형근 선수가 딱 한 번 등판했는데, 후반기에는 벌써 세 번째죠? 유영도 선수가 활약한 두 경기에선 승리했는데, 가장 최근 맞대결에선 유영도 선수를 철저히 피하면서 완봉승을 거뒀어요.]

멀티 홈런을 내준 이후 영도를 상대할 때 만큼은 완전히 자존심을 포기한 유형근.

다음 맞대결에선 다른 투수들처럼 영도와의 대결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볼넷 두 개만 내주고 나머지 타자들을 공략, 완봉승을 거뒀다.

바로 그 경기 때문에 제츠 입장에선 이번 시리즈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좋은 기억이 있어도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가 유형근인데, 바로 전 맞대결에서 탈탈 털렸으니...

‘확실히 단기전으로 가면 살아난 타이탄스보다도 훨씬 위협적이겠어.’

시즌 전에도 정규리그 우승후보 1순위는 타이탄스였지만, 한국시리즈 우승후보 1순위는 매지션즈였다.

유형근-제이드 벤슨-리카르도 카스티요로 이어지는 1, 2, 3선발.

단기전으로 갈수록 중요해지는 선발진이 완벽하다는 점에서 매지션즈의 강력함이 드러났다.

제츠는 매지션즈와 우승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이었기에 매 시리즈 매지션즈와 단기전을 치르는 느낌이었고...

그들의 강력함을 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몸쪽 깊게! 이야! 이거죠! 이겁니다! 이게 바로 투수의 결정구라는 겁니다. 완벽한 몸쪽 패스트볼로 연속 삼진을 잡아내는 유형근 선수!]

[손성호-한영훈이 이렇게 무기력해 보일 수가 있을까요? 이번 시즌의 손성호는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고, 한영훈 선수도 부활했는데... 참...]

‘역시 이미 KBO 수준은 넘어섰어. 저 어린 나이에...’

옛날에는 2군에서 질투 섞인 눈으로 바라만 봐야 했던 KBO의 에이스, 유형근.

과거의 이 시기엔 영도 역시 좌완투수로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던 타이밍이었기에 더더욱 유형근에 대한 감정이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참 다행이지. 지금의 내가 타자이고... 네 수준을 뛰어넘어서.’

영도는 유형근에게 자신감이 있었다.

유형근에게 뽑아낸 홈런이 몇 개고, 상대 타율, 장타율이 얼마인데 자신이 없을 리가.

다른 한편으로는 유형근의 재능과 기량이 KBO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고, 메이저리그에서도 하위 선발은 될 거라고 인정했기에...

자연스럽게 본인에 대한 객관적인 고평가 역시 이뤄졌다.

[그래도 주자 없는 투 아웃에서까지 피할 생각은 없을 겁니다. 유형근 선수의 마지막 자존심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또 다른 선수들을 상대할 때처럼 과감하게 들어가진 않아요. 참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유영도 선수의 위엄이 느껴지네요.]

‘... 이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그냥 나갔을 때 나 말고 유형근을 공략할 선수가 있을까.’

물론, 유형근도 절대 무적은 아니었고, 영도가 없던 지난 시즌에도 제츠가 유형근에게 반항 한 번 못한 것까진 아니었다.

하지만 영도의 걱정도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렇다 할 천적이 없었던 지난 몇 시즌과 달리 제대로 된 천적을 만나 자극받은 유형근도 이번 시즌 적잖은 성장을 이뤄냈기 때문.

아직 한국 나이 25세의 젊은 선수답게 리그 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도 성장 속도가 전혀 떨어지지 않은 유형근은 제츠 타선은 물론 KBO의 모든 타자가 무서워하는 투수였다.

‘그래도... 이런 생각으로 막 휘두르다가 무너지는 게 에이스와 여덟 난쟁이 타선의 정석이니까... 무리하면 안 되지.’

[볼넷, 볼넷입니다. 볼넷 골라 나가는 유영도 선수. 사실상 유형근 선수가 어느 정도 볼넷까지 감수한 듯한 피칭을 보여줬습니다.]

[투 아웃이니까 피하지 않아도 되지만, 반대로 투 아웃이니까 1루 정도는 내보내도 되는 거죠. 1점, 1점이 중요한 경기니까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

다른 타자들을 믿지 못하고 너무 강한 책임감 때문에 무리하다가 타격감이 흔들리는 에이스는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당장의 1승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내 타격감을 유지하는 게 장기적으로 훨씬 나은 결과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확신하고 움찔대는 배트를 참아냈다.

[삼진! 유영도 선수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다음 타자 박윤형 선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1회를 끝내는 유형근!]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아 보이죠? 유형근 선수가 저렇게 컨디션이 좋은데도 유영도 선수를 거르는 걸 보면 유영도 선수의 대단함도 새삼 느껴지고... 흥미롭네요. 오늘 경기의 중요성에 어울리는 피칭이었습니다.]

[1회 말 등판할 타일러 로즈의 컨디션도 기대됩니다. 두 에이스가 맞붙을 때마다 명품 투수전이 펼쳐지지 않았습니까?]

‘타일러를 믿고... 딱 한 번의 기회만 기다린다.’

타일러 로즈라는 뛰어난 에이스가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유형근을 상대로도 팽팽하게 이어가 줄 수 있는 투수이기에 답답해도 참으면서 마지막 한 번의 기회를 기다리는 게 가능했다.

‘2점까지는 괜찮으니까. 2점 정도는 한 번 기회로 따라잡을 수 있어.’

61호 홈런 이후 워낙 심한 견제를 마주했기 때문에 이젠 뭐 이상할 것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1회에 제대로 된 타격 기회를 받았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

이번 시즌을 치르면서 인내심이라는 걸 배워가는 영도에게 이 정도 기다림은 이제 일도 아니었다.

***

[매지션즈 0 : 0 제츠]

[6회 말, 매지션즈 공격]

<1번 타자 진종훈(2루수)>

- 아오... 제츠랑만 붙으면 진짜 심장이 몇 번씩 땅에 떨어지네...

- 제츠도 제츠지만, 매지션즈도 한국시리즈 우승에 목매단 상황이니... 붙을 때마다 에이스끼리 붙는데 이럴 수밖에 없지

- 보는 입장에선 재미있는데, 두 팀 팬들은 진짜 개쫄리겠다. 목숨 걸고 야구하네...

- 제츠는 23년 동안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고, 매지션즈도 한 10년 넘게 없지 않나? 그러니까 절대 못 놓치지. 타이탄스가 이렇게 부진한 게 얼마 만인데.

- 다 필요 없고 유영도 홈런이나 좀 보자!! 유영도가 제대로 스윙하는 걸 마지막으로 본 게 대체 언제냐고!!

ㄴ 홈런 62개 쳤으면 이제 그만 만족해라...

ㄴㄴ 다른 팀들도 살아야지, 니네만 재미 보면 다냐? 62홈런 만들어줬으면 만족하고 살아. 그리고 포스트시즌 가면 또 달라지겠지.

- 그나마 다행인 게 유영도 맨날 볼넷으로만 나가는데 다른 타자들이 이번엔 좀 도와줘서 다행이지... 만약 유영도 볼넷으로만 나가고 점수는 못 냈으면 X될 뻔했어. 포스트시즌에서도 똑같이 상대했을 거 아냐.

- 근데... 유영도 걸러도 점수 많이 냈다고는 하지만, 내가 상대 팀 감독이었으면 포스트시즌 가도 유영도는 거를 듯. 어차피 줄 점수면 홈런 말고 안타로 주는 게 낫지.

명품 투수전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유형근과 타일러 로즈의 맞대결은 절대 놓칠 수 없는 경기였다.

모든 에이스 대결이 마찬가지지만, 이번 시즌 매지션즈와 제츠의 상황상 이 둘의 맞대결이 자주 펼쳐지기에 맞대결마다 누적 시청자 수가 상당했다.

특히 제이드 벤슨과 에디 렉스의 맞대결로 이어지기 때문에 시리즈 전체가 투수전 팬들에겐 꼭 챙겨봐야 할 시리즈였다.

[Magicians 0 : 0 Jets]

- 요즘 Y-Do가 난리라기에 얼마나 잘하나 보러 왔는데 도저히 볼 수가 없네...

- 요즘 계속 그럼. Y-Do가 너무 잘해서 이제 투수들이 Y-Do랑 상대를 안 해줘... 슬슬 지칠 정도야

- 그럼 Y-Do 하는 거 보려면 내년 메이저리그를 볼 수밖에 없는 건가?

- 근데 저 하얀 유니폼 입은 팀 투수는 누구야? 잘 던지는 것 같은데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없나?

- 아쉽게도 한참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이제 3년 차라 최소 두 시즌은 더 기다려야 포스팅으로 데려올 수 있고, FA로 데려오려면 4년 더 기다려야 해.

- 아쉽네... 그럼 검은 유니폼의 저 투수는 한국인 아닌 것 같은데 데려올 수 있을까? 적어도 선발 후보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2020년 바이러스 대유행 때 다른 리그보다 훨씬 먼저 개막하면서 미국 진출에 성공했던 KBO.

당시 쇠퇴하던 메이저리그의 많은 단점들과 반대되는 장점들을 가졌던 KBO는 적지 않은 마니아층을 만들었고, 덕분에 지금까지도 녹화 중계, 나아가 일부 경기는 생중계로 중계되고 있었다.

이젠 메이저리그도 부흥을 위해 KBO의 장점들을 많이 받아들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KBO가 가진 장점들이 있었다.

또한, 일부 마니아들은 메이저리거로 성장할만한 선수들을 초창기부터 지켜보는 걸 즐겼다.

이번 시즌 해외 KBO 팬들의 최대 관심사는 당연히 유영도였고, 그들의 관점은 한국 야구팬들과 조금 달랐다.

- 어?! 갔다! 뭐지? 저 타자는 누구야!?

- 오? 투수는 잘 던진 것 같은데 저걸 받아치네? 저 타자 누구야? 메이저리그 못 와?

- 작년 FA 신청해서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검토했는데, 본인이 KBO에 남았어. 아무래도 KBO가 제시한 조건이 메이저리그보다 나았나 봐.

- 아쉽네... 아까 보니까 수비도 꽤 하고 발도 빠른 것 같던데. 다음 FA는 언제지?

- 0-1이라... 이러면 Y-Do 타격하는 거 더 보기 힘들어지는 거 아닐까?

< 인내와 인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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