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드라마 > (72/200)

< 드라마 >

[1루!! 1루에서!!]

“세이프!! 세이프!!”

“살았지! 완전 살았지!!”

“영훈이 형 완전 치타네, 치타야!”

“그렇지, 치타! 플래쉬! 막 빨라!!”

"영훈 선배가 원래 저렇게 빨랐나!? 갑자기 이게 웬일이야? 경준이나 원상 선배인 줄 알았다니까!?"

덕아웃에 앉아있던 제츠 선수들은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다 못해 덕아웃 밖까지 뛰쳐나간 선수들도 많았다.

배트가 허공을 가른 순간 좌절할 뻔하다가 극적인 반전에 놀라 자기도 모르게 몸을 날려버린 것.

그만큼 이 상황에 몰입한 상황이었고, 그만큼 중요한 순간이었다.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세이프를 선언하는 1루심!]

[자, 일단 송구와 포구에 문제는 없었고, 바로 3루 주자를 견제하면서 기습적인 홈 돌진도 막아냈어요.]

[당연히 판독을 요청하는 서울 타이탄스. 당연하죠. 어차피 9회 말이고 이거 세이프로 확정되면 1사 만루에서 유영도 선수를 만나야 합니다.]

[그렇죠. 그러면 진짜 난리 나는 거예요. 만루에서 유영도 선수를 거른 팀이 몇 팀 있지만, 지금은 안 되죠. 2사도 아니고, 점수 차이도 너무 적고... 무엇보다 김근수 감독과 타이탄스의 팀 컬러상 이런 상황에선 절대 안 거를 겁니다.]

여전히 아웃-세이프 판독을 위해 영상을 확인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설치 카메라 추가 덕분에 과거보다 판정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굉장히 짧았다.

이번에는 순식간에 판독을 끝내고 그라운드로 돌아오는 구심에게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으로 출루하는 한영훈! 제츠가 1사 만루, 절호의 찬스를 잡았습니다!]

[1사 만루에서 유영도가 나온다? 이거 진짜 대형 사고거든요? 대형 사고가 벌어졌어요!]

[한영훈 선수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을 때까지만 해도 타이탄스 팬분들은 만세를 부르면서 기뻐하셨을 텐데, 그 공을 못 잡은 것, 그거 하나 때문에 대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중요할 때 낫아웃이... 그만큼 지금 타이탄스 선수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거죠. 근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야수들도 힘이 쭉 빠지거든요? 안 그래도 1사 만루면 야수들의 집중력이 중요한데, 과연 이게 어떤 변수로 이어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기대감 어쩔 거냐...’

다들 영도가 엄청난 긴장감을 느낄 거라 지레짐작했다. 

자기들 딴에는 부담 주지 않겠다고 특별한 말없이 어깨나 등을 두드려주었다.

팀의 승리 때문에 긴장하고 부담 갖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지, 만약 그런 선수였다면 당연히 이런 게 훨씬 더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안타 한 방이면 동점, 장타로 베이스를 싹쓸이, 청소해버리면 역전 끝내기, 홈런이면 역전 끝내기와 아시아 홈런 신기록까지 동시에 기록하게 됩니다.]

[유영도 선수라면 왠지... 여기서 홈런이 나오지 않을까요? 왠지 그런 극적인 마무리가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강하게 들어요.]

[야구인생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한 선수이긴 합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느낌이 그래요.]

난타전으로 인해 소모된 불펜, 이미 줄줄이 나온 필승조, 1사 만루 위기를 초래한 당사자...

이 중요한 순간 스트라이크 낫아웃이라는 황당한 결과로 1사 만루 위기를 맞은 투수임에도 타이탄스는 윤하운을 마운드에서 내릴 수 없었다.

투수코치가 아닌 수석코치가 올라와 다독인 게 타이탄스 벤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처.

당연히 한영훈을 상대할 때부터 초조함이 역력했던 윤하운의 표정은 더욱 심각해졌다.

‘... 보는 내가 다 초조해질 것 같네.’

왠지 호흡도 좀 가빠지는 것 같고, 눈앞도 좀 멍해지는 것 같고...

마운드 위의 투수가 저 모양이니 당연히 자신감은 생기지만, 호흡도 이상하고 표정도 저러니 오히려 이쪽도 힘겨워지는 느낌이었다.

[구속은 살아있는데... 도저히 타자가 칠 수 없는 곳으로 자꾸 공이 향합니다. 2구 연속 볼...]

[지금은 절대 거를 수 없어요. 볼넷 내주는 순간 정말 대참사거든요? 1점 주고 내보내겠다? 다음 타자가 희생 플라이만 쳐도 동점이고, 안타면 어차피 끝이라니까요?]

[사실, 만루지만, 거르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역전될 확률 자체는 유영도 선수를 거르는 게 더 낮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기서 타자를 거르는 게 일반적인 판단은 당연히 아닙니다. 최근 한국 야구계의 분위기는 유영도 선수에게 일반적이지 않은 볼넷을 내주면 큰일 난다는 분위기죠.]

[무엇보다 김근수 감독의 스타일이 그래요. 올드스쿨한 만큼 겉으로 보여지는 멋, 폼, 이런 거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만루에서 타자를 거른다? 어유... 너무 모양 빠지죠.]

150km에 가까운 강속구가 탄착군도 없이 흩날렸다.

잘 던지던 스트라이크조차 못 던질 만큼 긴장한 것.

하지만 리그의 분위기도, 팀의 분위기도, 상황 자체도 볼넷을 내줄 순 없었고...

‘그래도 한 팀의 클로저 정도면 여기서 스트라이크는 던지겠지.’

그 스트라이크가 얼마나 위력적일 것이냐는 다음 문제.

일단 스트라이크가 무조건 들어와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볼이어도 쳐야 되고.’

존에서 빠져나간 공도 상황에 따라 배트를 휘두르기 시작하고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만약 여기서 3-0 카운트가 된다면 분위기고 상황이고 자존심이고 뭐고 그냥 볼넷으로 내보낼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즉, 볼넷이 싫다면 여기서 스트라이크든 볼이든 노려봐야 했다.

‘그렇지! 슬라이더!’

클로저 보직을 맡은 윤하운이라면... 여기서 스트라이크보다는 유인구를 던질 거라 판단했다.

승부하고 싶었는데 타자가 속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볼넷을 내준 거다, 라고 변명하기 위한 소극적인 선택.

하지만 투수 분석에 수많은 시간을 쏟은 영도에게 완전히 읽히고 말았다.

[떨어지는 볼에... 노리고 스윙! 존 아래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힘껏 퍼 올렸습니다! 높게!! 높게 떠서 날아가는 타구!! 제츠 선수들은 이미 덕아웃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원래 넘어가기 힘든 타구예요! 그런데 유영도 선수니까! 유영도 선수니까-----!!!!]

[넘어갑니다! 홈런! 홈런!! 만루 홈런!! 61호 홈런!! 끝내기 만루 홈런!! 수많은 수식어가 붙을 홈런!! 유영도 선수가 오늘 경기도 끝내고 기존 아시아 홈런 신기록의 시대도 끝냅니다!!]

[제 느낌이 맞았죠? 제 감이 나쁘지 않다니까요? 유영도 선수라면 여기서 드라마를 쓸 것이다! 맞잖아요!?]

57호 홈런도 제츠의 홈구장인 잠실 올림픽 파크에서 나왔기에 신기록을 기념하는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60호 홈런이 나왔던 3회에도 불꽃놀이까지는 아니지만, 화려한 폭죽이 터졌다.

61호 홈런이 터진 지금... 57호 홈런보다, 60호 홈런보다 훨씬 더 화려한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심지어 경기를 끝내는 끝내기 만루 홈런까지 터지면서 덕아웃의 팀 동료들이 전부 뛰쳐나와 격하게 자축하는 상황이었기에 감동이 두 배였다.

이보다 불꽃놀이가, 폭죽이 잘 어울리는 순간은 23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 정도가 아니면 찾기 힘들 정도.

[37년 만에 KBO 한 시즌 홈런 신기록을 갈아치운 유영도 선수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27년 만에 아시아 홈런 신기록까지 갈아치웠습니다!]

[그리고 17경기가 더 남았어요. 34경기 동안 24개의 홈런을 때려낸 유영도 선수가 남은 17경기에서 몇 개의 홈런을 더 때릴 수 있을지... 과연 아시아 홈런 신기록이 몇 개까지 늘어날지 궁금하네요. 저만 궁금한 건 아닐걸요?]

[후반기 페이스 그대로 계산하면 12개의 홈런을 더 때릴 수 있는 페이스입니다. 그러면... 73홈런...]

[아... 배리 본즈의 기록인데... 18경기를 덜 치르는 KBO에서 타이 기록이...? 설마...?]

끝내기 홈런과 61호 홈런.

하나만 터져도 난리가 났을 텐데, 두 개가 동시에 터지니 이미 제츠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쏟아져나와 영도를 덮치고 던지고 두들기고 난리였다.

수만 제츠 팬들도 그라운드로 쏟아져나오려 하는 걸 막느라 안전요원들만 죽어 나가는 상황.

워낙 폭죽을 많이 터뜨리다 보니 뻥 뚫린, 넓은 야구장에서 터뜨렸음에도 매캐한 화약 냄새가 솔솔 퍼져나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

‘저 미친... 참나... 미친놈...’

오늘 김진형은 최선을 다했고,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6타석 5타수 4안타 2홈런 7타점.

한 명의 타자가 이 정도 활약을 해줬으면 그 경기에서 더 할 것도, 할 수 있었던 것도 없었다.

6타석 5타수 3안타 3홈런으로 7타점을 기록한 타자가 반대편에도 있었다는 게 유일한 불운이었을 뿐.

‘내가 이 정도 해도 안 되나? 진짜 유영도 저 자식은 미친놈이구나. 사는 세계가 다른 건가.’

전반기까지만 해도 아슬아슬했는데 후반기 들어 미치더니 기어이 61홈런을 찍어버린 괴물.

누구는 그 전반기 활약 때문에 심한 슬럼프까지 겪었는데, 그것도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후반기 들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성장해 돌아온 치트 캐릭터.

김진형은 이 순간 자신과 영도의 비교를 포기했다.

유영도는 그냥 유영도고, 사는 세계가 다른 괴물임을 인정한 것이었다.

이후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져 한 번 더 성장하는 데 성공, 전생과 달리 메이저리그 진출까지 성공하지만...

이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조금 더 나중에 다룰 이야기...

***

[드디어 터졌다!! 절대영도의 아시아 홈런 신기록 도전, 시즌 종료를 무려 17경기나 남겨두고 성공 축포 터뜨려]

[일본 야구팬들, “NPB 수준 옛날 같지 않아... 오 사다하루 기록 경신한 블라디미르 발렌틴도 맘에 안 들지만, 한국 선수한테 기록 빼앗긴 건 더 싫다”며 열폭 중]

[메이저리그 구단과 팬들... “그래서 Y-Do는 대체 언제 돌아오는 건데?” 시즌 초와 확연한 온도 차 보여]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미국 등 야구가 인기 스포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국가에서 영도의 홈런 신기록 달성 소식은 꽤나 비중 있게 다뤄졌다.

한 리그를 넘어 대륙에서 신기록을 세운다는 것, 특히 다른 것도 아니고 홈런 신기록을 세운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괜히 마크 맥과이어가 영웅 취급을 받았던 게 아니니까.

홈런을 뻥뻥 날려대며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는 건 쇠퇴하던 리그의 인기를 단번에 돌려놓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다.

[“드디어 한숨 돌린” KBO 투수들, 아시아 홈런 신기록 직후부터 기다렸다는 듯 볼넷 연발...]

[바로 복수 성공한 김진형과 서울 타이탄스. 2연전 두 번째 경기에서 또 한 번 멀티 홈런 기록한 김진형 앞세워 8-3 완승으로 설욕]

[“타격감은 좋은데...” 좋은 타격감 보여줄 기회조차 없는 유영도. 61호 홈런 이후 11경기 41타석 동안 1홈런 18볼넷... 볼넷 확률 무려 50%에 육박!!]

[팀 타선의 아이러니... 팀이 부진한 동안 무서운 기세로 홈런 쌓아온 유영도, 팀이 부활해 기회 많아지자 출루율만 지붕 뚫어]

[유영도는 볼넷으로 출루만... 그래도 무섭게 승수 쌓아나가는 서울 제츠, 매지션즈와 반 게임차 우승 경쟁 이어가...]

[유영도의 본의 아닌 휴식. 서울 제츠의 포스트시즌, 그리고 숙원인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움 될까?]

61호 홈런 이후 영도에게 좋은 공을 던져주는 투수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게 정상이었다.

물론, 볼넷은 이상할 정도로 많고, 포스트시즌이 되면 이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승부를 피하는 것 자체는 이상할 게 없었다.

61호 홈런이 나오면서 기록에 대한 부담감도 사라진 투수들은 영도와 좀처럼 정면 승부를 펼치려하지 않았고, 이미 완벽히 부활한 제츠 타자들은 이 기회를 살려 신나게 타점을 쌓아갔다.

발이 상당히 느린 편이라 주자로서 위협적인 주자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홈으로 들어오는 데 문제가 있는 수준까진 아니기 때문.

덕분에 영도는 본의 아니게 한창 시즌이 펼쳐지는 와중에, 우승 경쟁으로 치열한 나날이 계속되는 와중에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포스트시즌도 포스트시즌이지만, 반 게임차로 여전히 치열하게 경쟁하는 매지션즈와의 마지막 우승 쟁탈전에 대비해 마지막 숨을 고른 것.

[우천 순연된 타이탄스전 승리로 드디어 제츠와의 격차를 한 게임까지 채운 매지션즈. 시즌 종료까지 여섯 경기 남겨두고 제츠와 마지막 맞대결 펼쳐...]

[‘운명의 시즌 마지막 맞대결!!’ 일루션 스타디움에서 펼쳐질 매지션즈와 제츠의 마지막 총력전!!]

매지션즈에 한 게임 차 뒤진 상황에서 일루션 스타디움으로 원정을 떠나게 된 제츠.

정규리그 우승을 위해 절대로 패배해선 안 되는 2연전이었다.

원정 경기라는 것이 부담스럽고, 치열한 우승 경쟁 때문에 훨씬 어렵고 일방적인 원정 경기가 되겠지만...

기세가 오른 제츠라면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일루션 스타디움 직관을 허락받은 한줌의 제츠 팬들은 그런 바람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수원으로 향했다.

< 드라마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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