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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6시 30분부터 잠실 올림픽 파크에서 펼쳐진 서울 제츠와 서울 드래곤즈의 경기에서 드디어 새로운 역사가 탄생했습니다. 서울 제츠 소속의 유영도 선수는 5회 말 홈런 한 개를 추가하며 57호 홈런으로 KBO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37년 만에 새로 썼습니다. ......]
[“예! 지금 저는 잠실 올림픽 파크 앞에 나와 있습니다. 유영도 선수의 57호 홈런을 현장에서 지켜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로 가득한 이곳. 그 역사적인 홈런볼을 잡아보기 위해 거의 대부분의 팬들이 글러브를 손에 들고 이곳을 찾았습니다. 심지어는 잠자리채와 뜰채 등 야구장에서 보기 힘든 물건들까지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이 물건들의 용도는 당연히 유영도 선수의 홈런볼을 잡기 위한...”]
[유영도 선수의 신기록에 주목하는 건 국내 언론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시아 신기록을 보유한 일본과 대만은 물론, 유영도 선수가 이전에 활약하던 미국에서도 유명 스포츠 방송사에서 촬영팀을 보내 뉴스로 소식을 전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ESPN, FOX SPORTS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메이저 언론사에서...]
드래곤즈와의 시리즈 3차전.
모든 야구팬들,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가 주목하던 영도의 시즌 57호 홈런이 드디어 터졌다.
50호 홈런이 넘어가면서부터 메인 뉴스에서 다뤄지기 시작했으니 57호 홈런 소식 역시 메인 뉴스에서 다뤄졌다.
이번엔 아예 메인 뉴스를 넘어 보도 순서 자체가 뉴스 시작 후 세 번째 꼭지였을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뉴스가 어느 정도 권위를 내려놨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스포츠 뉴스가 메인 뉴스에서 세 번째 꼭지로 다뤄진다는 건 쉽지 않은 일.
그만큼 영도의 홈런 신기록 도전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인터뷰? 아니, 이제 이쯤 되면 네가 알아서 거절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뭘 그렇게 하나하나 다 물어봐? 적당히 알아서 거절 좀 해.”
[아니, 그래도... 이번엔 ESPN인데...]
“ESPN? 좋지. 좋은데, 정 거절하기 힘든 건 시즌 종료 후로 미뤄달라고 했지, 내가? 내가 그런 중요한 인터뷰까지 안 하겠다는 건 아니잖아. 지금은 야구에 집중하고 싶다고.”
[에휴... 이 타이밍에 ESPN 인터뷰 한 번 해주면 내년에 메이저리그 갈 때 도움 크게 될 텐데...]
“내가 그런 거 안 좋아하기도 하고 어색해 하기도 하니까 그런 거 없이 최대한 좋은 조건 받아달라고 에이전시에 돈 주는 거다. 야구만 잘하라며? 난 야구 잘했으니까 이제 니네가 돈 받아먹은 값 해야지. 남은 경기 멋지게 끝내고, 포스트시즌에 강하다는 것까지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어?”
대한민국 전체가 영도에게 주목하고 전 세계 야구계가 영도의 성적과 행보, 앞으로의 거취에 집중하는 이 시기.
이 시기에도 영도는 여전히 집과 야구장, 훈련장만을 오가는 정적이고 계획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원래 언론과 항상 거리를 두고 거리감을 느끼는 편이었고, 특히나 시즌 중에는 야구만 생각해도 과부하가 걸릴 만큼 머릿속이 야구 하나로 꽉 차서 다른 건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한 고비를 넘었지만, 아직 다음 고비도 남아서 조금 더 집중해야 할 타이밍이기도 했다.
[그래... 에휴... 어차피 형한테 팬한테 팬 페이보릿이 되어라, 미국의 연인이 되어라, 이런 건 부탁하지도 않아. 그냥 형은 야구 잘해서 슈퍼스타나 해라.]
“푸하하하, 슈퍼스타... 야구만 잘해서 슈퍼스타가 되려면 대체 얼만큼을 해야 하는 건데?”
[몰라. 그거야 다른 선수들 하는 것까지 다 봐야겠지만... 일단, 이번 시즌에 아시아 신기록은 세워야 하지 않을까? ESPN 인터뷰까지 미룰 거면?]
“그래. 난 그거 할 테니까 넌 뒤에서 노력 좀 해봐. 60홈런 넘기면 1,500만 달러. 나 기억한다?”
2020년에도 더딘 세계화와 팬 연령층의 상승 등으로 위기를 겪었던 메이저리그.
다행히 한 번 높아진 팬들의 연령층을 지난 20년 동안 더 이상은 올라가지 않게 버텨내고 있었지만, 거기까지.
문제는 메이저리그가 힘겹게 제 자리에서 버텨내는 동안 다른 종목들이 성장했다는 것.
그나마 또 다행인 건 중국에 심각하게 의존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NBA가 2, 3년에 한 번씩 흥행과 부침을 반복한 덕분에 미국 4대 스포츠 중 2, 3순위는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발전 없이 유지만 되다 보면 언제가 되었든 추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메이저리그는 여전히 스타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고, 미국 선수 외에도 히스패닉, 유럽, 오세아니아 등 타 대륙까지 야구 인기를 전파해줄 스타들을 만들어내려 노력했다.
당연히 미국 밖에서 가장 큰 야구 시장을 가졌고, 경제 규모도 상당한 동아시아 출신 스타는 미국과 히스패닉계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였다.
[하아... 진짜 형이 매스컴이랑 조금만 더 친하게 지내주면...]
“승도야. 슬슬 말이 길어지는 것 같은데?”
[... 그렇지? 나도 슬슬 그런 것 같더라고.]
승도와 에이전시의 아쉬움은 그래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일본인 선수가 4, 5명 정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었고, 한국 선수도 세 명이 진출해 있었는데, 뭔가 다들 아시아계를 대표하는 메이저리그의 스타가 되기엔 2%씩 아쉬움이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여기서 팬들에게 가장 어필하기 쉬운, 아시아계에서 또 나오기 힘든 홈런타자가 조금만 더 언론과 친하게 지내면 리그 차원의 푸쉬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승도와 에이전시는 그 부분을 아쉬워하는 것이었다.
[... 제발 61홈런... 꼭 쳐라... 그거 하나는 해야지...]
“그래, 미안한데, 나는 진짜 기자들 힘들어. 대신 야구 열심히 할 테니까 좀 봐줘라.”
영도도 그런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 영도는 언론의 주목을 받고 팬들의 관심을 끄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타고난 관심종자였고, 화려한 걸 좋아해서 외모도 꾸미고 최대한 튀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
제츠 팬들이 아마추어 시절부터 영도를 자기 팀 선수라고 생각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많은 게 바뀐 청소년 대표팀 당시 그 사건은 영도와 언론의 관계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부상과 수술, 드래프트 실패 후 대학 진학, 졸업 후 드래프트 하위 지명까지.
언론들은 기삿거리가 없다, 싶으면 ‘비운의 유망주’, ‘망한 유망주’, ‘추억의 이름’ 같은 이름을 붙여대며 기사를 써댔고, 영도는 그럴 때마다 상처를 받아야만 했다.
그것도 놀기 좋아하던 과거를 언급하며 성실하지 않은 선수는 성공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차라리 야구를 일찍 그만뒀다면 상처받을 것도 없었겠지만, 차마 꿈을 놓지 못하고 부여잡았던 당시의 영도는 처절하게 버티면서 잊을 만할 때마다 한 번씩 상처를 받았고...
거기서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에는 아예 잊혀져서 언론을 대할 기회도 없었고.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언론을 대하는 게 뭔가 껄끄럽고 어색할 수밖에.
“ESPN? 크으... 우리 영도 후배님, ESPN이 인터뷰하자고 달려드는 거물이 되신 건가?”
“부끄럽긴 하지만, 그 정도 성적은 되는 것 같네요.”
“크으... 크으... 이런 거물이 내 후배라니. 이거 오래 살고 볼 일이네.”
“... 여기 오기 전에도 ESPN이랑 인터뷰 몇 번 한 적 있는데... 합류할 땐 그런 인식 없으셨습니까?”
아무리 언론을 꺼려도 동 세대 최고 재능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특급 유망주 출신이다 보니 그래도 언론과 접촉이 적었던 편은 아니었다.
근데 그걸 이제야 느끼다니...
“그러게? 그때도 오히려 메이저리거였는데, 왜 이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지?”
듣고 보니 뭔가 이상해서 손성호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22홈런과 57홈런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메이저리그에서의 22홈런이고 KBO에서의 57홈런이지만, 그래도 숫자가 주는 위압감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조금 더 대놓고 말하면 아무리 메이저리그 기록이라지만, 영도의 지난 시즌 기록과 이번 시즌 기록은 너무 큰 차이가 있기도 했다.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 기록은 어쨌든 ‘메이저리그에서 쫓겨나 한국에 오는 선수 중 역대 최고’ 정도였고, 이번 시즌 KBO 기록은 ‘KBO의 모든 기록을 새로 쓰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그동안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 중에서도 최고였으니까.
그러니 손성호도 팀에 합류할 때보다 지금의 영도를 더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전부터 느낀 건데 인터뷰 정말 안 좋아하는구나? 요즘 애들은 인터뷰 못 해서 난리인데, 참... 배부른 고민이네.”
“61홈런도 쳐야 하고... 무엇보다 선배님 소원 들어드려야죠. 그동안 팀 분위기 많이 해쳤으니 더 힘내서 우승반지 끼워드려야지.”
“하아, 이 친구 자꾸 왜 이러지? 점점 사람되는데? 이제야 조금씩 사람 냄새 난다”
“... 사람한테 사람 냄새가 나지, 그럼... 그냥 조금 여유가 생긴 거죠. 내 걱정을 이제 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목표했던 것보다도 훨씬 대단한 개인 성적.
이미 2040시즌 목표는 초과 달성된 지 오래였고, 이대로 끝나도 대성공이었다.
그렇다 보니 슬슬 팀 성적이란 것에 관심이 가기 시작, 특히 손성호의 분전과 헌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성적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시기에도 선수생활 황혼기에 훨씬 젊은 선수들보다 훨씬 더 열정적으로, 정열적으로 모든 것을 불태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지금은 더욱 시선에 들어왔다.
“시작부터 도움도 많이 받았고, 지금도 홈런 기록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셨는데... 도의상 마지막 부탁 정도는 들어드려야죠.”
“크으... 좋다, 아주 좋아! 진짜 형이 부탁 좀 하자. 내 선수 생활도 앞으로 길어야 2, 3년인데 좀 편하게, 부담 놓고 좀 살아보자. 그만두기 전에는 오랜만에 즐겁게 좀 야구하고 싶네.”
“프로 선수가 직업을 즐겁게만 생각해도 되는 건지, 그게 가능이나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우승만 시켜주면 진짜 평생 은인으로라도 모시지.”
아낌없이 주는 드래곤즈 덕분에 영도의 57홈런은 물론, 서울 제츠 타선의 부활까지 이뤄졌으니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아직 1위는 매지션즈의 차지였지만, 분위기 탄 제츠라면 한두 경기 차 뒤집는 건 일도 아니었다.
여름 내내 괴롭히던 부진도, 시즌 막판으로 접어들면서 영도는 물론 팀까지 짓누르던 신기록에 대한 과중한 관심의 무게도 어느 정도 덜어낸 채 시작된 2040시즌의 9월.
영도와 손성호, 서울 제츠는 우승을 향한 마지막 스퍼트를 시작했다.
***
[신기록은 세웠지만, 멈추지 않는 유영도의 홈런 퍼레이드. 신기록 경신 이후 네 경기 만에 다시 홈런포 가동하며 아시아 홈런 신기록까지 두 개 차 접근]
[숙명의 라이벌, 타이탄스를 잠실 올림픽 파크로 불러들인 제츠. 타이탄스 상대로 아시아 홈런 신기록 노린다]
[시즌 종료까지 어느덧 남은 경기는 18경기... 아시아 홈런 신기록 타이까지 2개, 경신까지는 3개. 경신은 시간 문제, 관건은 타이밍?]
‘하여튼 대단한 놈이야...’
잠깐 멈춘 듯했던 영도의 홈런 행진이 네 경기 만에 재개된 이후, 제츠는 타이탄스를 홈으로 불러들여 2040시즌 127번째 경기를 준비했다.
사실, 18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58개의 홈런을 때려냈기에 아시아 홈런 신기록 경신은 다들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게 언제가 되느냐,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이뤄지느냐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가장 드라마틱한 상황이 연출될 상대 팀은 서울 타이탄스였다.
시즌 막판으로 접어들면서 3연전이 아닌 2연전으로 치러지게 되었지만, 영도의 폭발력과 몰아치기 능력이면 2연전에 홈런 3개?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번 시즌의 영도는 몰아치지 않을 때도 다른 선수들이 몰아치는 것만큼 뻥뻥 날려댔고.
‘내가 이런 괴물이랑 경쟁을 하려고 했단 말이지?’
하지만 타이탄스도 시즌 막판으로 접어들면서 슬슬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타이밍이었다.
아직 지난 시즌에 비하면 손색이 많지만, 뉴컴이 전반기 막판부터 제 몫을 해주기 시작하면서 지난 시즌까지 보여줬던 강력함을 어느 정도 회복한 것.
무엇보다도 김진형의 부활이 결정적이었다.
영도에 대한 경쟁심 때문에 무너졌던 만큼 영도가 더 이상 손에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치고 올라간 후반기 이후 마음을 비운 덕분이었다.
마음의 짐을 덜어낸 김진형은 MVP 출신다운 모습을, 아니, 어쩌면 더욱 성장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뒤늦게라도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사실, 3위 에이스와도 승차가 꽤 나는 상황이라 준플레이오프행이 매우 유력했지만...
‘내가 시즌 내내 맞대결에서 너무 추했던 것 같으니... 마지막에 깊은 인상 정도는 남겨주고 싶네. 나중에 혹시 메이저리그에서 만나게 되면 날 좀 더 좋은 선수로 기억하도록.’
경쟁심은 버렸고, 마음도 어느 정도 비웠지만...
그게 포기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수도 없이 실패할 만큼 멘탈이 완성되지 않은 김진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MVP까지 수상했을 정도로 끈질기고 포기를 모르는 선수이기도 했다.
지금은 졌고, 앞으로도 커리어 내내 단 한 시즌도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보이긴 싫다.
어쩌면 저쪽에선 날 전혀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 자기만족을 위해, 불쌍하게도 주제도 모르게 덤비다가 한 시즌을 통으로 날려버린 불쌍한 나를 위해...
‘한 시즌은 못 이겨도 한 시리즈 정도는 이길 수도 있는 거잖아?’
그리고 수원 매지션즈와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여기서 한 방 먹여준다면 간접적으로 유영도에게도 한 방 먹일 수 있는 게 아닐까?
심각한 부진으로 시즌 내내 고생하며 자존심에 상처를 크게 입은 2038시즌 MVP, 김진형.
상처 입은 또 한 명의 괴물이 칼을 갈며 기다리고 있었다.
< 다음 목표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