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자의 기세 >
대구 레이더스의 선발이자 이번 시즌 선발투수 NO.1 후보인 카디스 맥.
메이저리그의 관심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이번 시즌 유일한 라이벌인 유형근보다는 살짝 낮은, 좋을 땐 메이저리그 4선발급, 평균적으로는 5선발과 롱릴리프 자원이라고 평가받는 투수였다.
150km 근처에서 구사되는 포심 패스트볼과 메이저리그에서도 결정구로 손색없다고 평가받은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하는 투수.
하지만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능력, 컨트롤은 뛰어나지만, ‘좋은 스트라이크와 좋은 볼을 던지는 능력’인 커맨드가 부족해 정타가 종종 나오고 무브먼트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오프스피드 피치가 없고, 써드 피치가 하필이면 완성도가 낮을 때 가장 불안한 구종 중 하나인 커브이기에 메이저리그에선 한계가 명확했던 투수이기도 했다.
‘Y-Do... 나도 좀 알지.’
올해 나이 어느덧 만으로 30세.
AAAA급 선수로 산 것도 어느덧 수년.
메이저리그 기회를 적게 받은 것도 아니었고,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었다.
이미 메이저리그 레벨에서 검증이 끝났고, 한계도 뚜렷한 데다가 앞으로 성장할 확률보다는 노쇠화가 찾아올 확률이 훨씬 더 큰 선수.
냉정한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절대 큰돈을 안겨줄 리 없는 선수가 바로 카디스 맥이었다.
그에 대한 관심은 어디까지나 ‘가성비가 좋을 것 같아서’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아마 아시아 야구 역사에 손꼽히는 성적을 기록하고 넌 메이저리그로 가겠지. 여기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야구계도 난리일 거야.’
이 얼마나 빛나는 재능이란 말인가.
유망주 랭킹 전체 1위가 당연시되었던 재능...
유망주 시절 전체 랭킹 진입은 꿈도 못 꾸고 팀 내 유망주 랭킹에서도 한 자릿수 대에 들어가지 못했던 카디스 맥 입장에선 영도의 재능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좋은 일 한다 치고 한 번만 조용히 들어가라. 어차피 난 돌아갈 생각 없으니.’
서른이 넘은 나이.
카디스 맥도 이제 은퇴 후를 조금씩 준비할 나이였다.
현실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선 장기 계약도, 거액의 연봉도 받아내기 힘든 그의 마지막 목표는 바로 NPB 진출.
달러로 환산했을 때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실제로는 각종 지원과 세금 대납 등으로 인해 메이저리그 기준 천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거머쥘 수 있는 NPB 무대.
카디스 맥은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 밖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인 영도를 잡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으로 일본행 티켓을 손에 넣고 싶었다.
‘역시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써드피치 부족한 투수한테 선발 자리 안 주는 건 다 이유가 있어.’
하지만 영도는 카디스 맥에게 생각보다 큰 부담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이번 시즌 카디스 맥의 유일한 라이벌이라면 수원 매지션즈의 유형근 정도였다.
우완과 좌완, 만 30세와 만 24세, 미국인과 한국인...
하지만 150km에 가까운 평균 구속과 150km 후반대의 최고 구속, 메이저리그 기준으로도 충분히 결정구로 쓸 수 있는 슬라이더, 컨트롤에 비해 떨어지는 커맨드까지.
두 투수 사이에는 닮은 점이 꽤 많았다.
유형근은 딱 써드피치까지만 있지만, 써드피치인 체인지업도 메이저리그에서 평균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카디스 맥은 네 개의 구종을 구사함에도 써드 피치가 커브라 조합상의 문제가 있고, 네 번째 구종인 체인지업은 일정 수준 이상의 타자들에겐 써먹기 어려웠다.
‘커브는 완성도가 높지 않을 때 가장 때리기 쉬운 구종이니... 이지선다와 크게 다를 게 없어.’
세 개의 구종으로 좋은 선발투수가 되는 가장 바람직한 구성은 거의 공식처럼 정해져 있었다.
하나는 당연히 패스트볼이었고, 다른 하나는 변화폭을 크게 가져가 타자를 속이는 구종이었다.
여기에 더해 변화폭보다는 구속, 투구폼, 디셉션 등으로 패스트볼과의 착각을 불러일으켜 타이밍을 빼앗는 오프스피드 피치가 마지막.
카디스 맥에게는 이 오프스피드 피치가 없었다.
심지어 써드 피치마저 그리 완성도가 높지 않은 커브였으니...
그 커브가 통할 만한 수준의 리그에선 절대적인 에이스로 군림하지만, 커브가 통하지 않는 상위 리그에선 퍼포먼스가 급격히 떨어지는 투수.
카디스 맥은 다른 AAAA급 선수들에 비해 AAAA급에 그친 이유가 비교적 명확한 투수였다.
‘이거 봐. 생각 안 해도 다 보이잖아.’
본인도 이런 단점을 잘 알기에 주 무기 없이 스트라이크 하나라도 잡고 가기 위해 초구부터 커브를 던져왔다.
수 싸움, 타이밍을 빼앗기 위한 선택이었을 테고, 실제로도 영도는 커브를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는 카디스 맥의 커브 정도는 보고 대응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잘 던졌으면 어쩔 수 없고, 빠졌으면 골라냈겠지만...’
대응이라는 게 별거 없었다.
스트라이크 존에 절묘하게 들어오면 스트라이크 하나 내주는 거고, 빠지면 골라내는 거고, 치기 좋게 들어오면 휘두른다.
그 과정을 수월하게 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상대 투수와의 수준 차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이 순간, 영도는 명확히 ‘카디스 맥의 커브’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선수였다.
[역시 조금의 실수도 놓치지 않는 유영도! 이 타구는 담장을 향해 멀리! 멀리 날아갑니다! 시즌 42호 홈런! 시즌 104번째 경기에서 지난 시즌 홈런 1위의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아... 리그 내 최정상급 타자들을 상대할 때 종종 커브에서 사고가 났는데 오늘도 마찬가지네요. 카디스 맥은 커리어 초창기의 클레이튼 커쇼가 아니었어요. 유영도 선수가 애매한 커브를 놓칠 리도 없고요.]
[결국, 투 피치의 한계에 발목 잡히고 마는 카디스 맥! 선발투수에게 크게 의존하는 레이더스 입장에선 상당히 아쉬운 선제 실점입니다.]
[최근 제츠의 상태를 보면 카디스 맥이나 유영도 선수나 어깨에 멘 짐의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유영도 선수는 해냈고, 카디스 맥은 에이스 대결에서 먼저 한 대 얻어맞은 거죠.]
“또 솔로 홈런이네.”
“뭐... 어쩌겠습니까. 그냥 상황이 그런 거지.”
“내가 못 나가면 답이 없긴 해. 원래 우리 하위 타선이 출루보다는 다른 장점들을 가진 애들이라.”
“그래도 조금만 더 나가주면 고마울 텐데 말이죠.”
전반기 마지막 3경기 동안 홈런 5개, 후반기 11경기에서 또 홈런 5개.
제츠가 본격적으로 부진에 빠진 이후 14경기에서 홈런이 무려 10개였다.
그러니 최근 영도의 홈런은 대부분 솔로 홈런일 수밖에 없었다.
손성호가 출루해주면 투런 홈런이었고.
“그래도 대구 레이더스라 다행이지 않습니까. 투수들은 잘 버텨주고 있으니.”
“레이더스도 말도 안 되게 운이 좋은 거지, 기록만 보면 순위에 비해 부족하긴 하니까.”
중계진의 말대로 레이더스와 제츠의 3연전은 레이더스 선발투수들과 영도의 대결이라 볼 수 있었다.
레이더스는 1, 2, 3선발 등판 경기의 높은 승률을 바탕으로 여기까지 온 팀이었고, 지금의 제츠는 영도의 타점 생산 능력에 의지하며 버티는 중이었으니까.
어차피 시즌 내내 그랬듯 이번 3연전에서도 레이더스의 평균 득점이 늘어나진 않을 터.
영도와 레이더스 상위 선발들은 각각 꽤 무거운 짐을 어깨에 올려놓고 있었다.
[3-유간 날카로운 타구! 빠르게 반응한 3루수 유영도가 중간에 끊어내고 빙글 돌면서 1루에! 레이저 같이 뻗어 나가는 송구! 이안 킴브렐을 1루에서 잡아냅니다!]
타격과 수비, 주루 등을 따로 평가하긴 하지만, 같은 사람인 이상 연관이 없을 수가 없었다.
공격이 잘 풀리면 수비도 잘 풀리는 게 당연한 이치.
장점이었던 공격에서도 급격하게 성장했는데, 성장할 여지도 많았던 수비가 정체될 리 없었다.
[유영도 선수의 수비는 정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네요. 성장 속도가 어마어마합니다.]
[메이저리그 커리어도 길고 데뷔도 워낙 빨랐기 때문에 우리가 가끔 잊어버리긴 합니다만... 이 선수, 이제 한국 나이로 고작 26세의 여전히 젊은 선수입니다.]
[나이가 어느 정도 차긴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유망주라 불릴 수 있는 나이고, 한창 성장할 수 있는 나이죠.]
[원래부터 메이저리거급 기량을 갖춘 선수였는데 거기서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어지간한 특급 유망주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하니 이건 뭐... 특정 선수, 구단이 아니라 리그 자체가 감당을 못하는 느낌입니다.]
시즌의 70%를 소화한 지금, 영도의 3루 수비는 KBO 정상급에 가까워졌다고, 혹은 이미 올라섰다고 평가받았다.
수비 범위나 여전히 부족한 경험으로 인한 아쉬운 판단 등 여전히 단점이 남아 있었지만, 타석에서의 성장 속도를 훌쩍 뛰어넘는 속도로 단점을 메우는 중이었다.
[다시 한 번 3-유간! 아! 유영도의 슬라이딩 캐치! 몸을 날리면서 걷어내고 벌떡 일어나서 1루!! 완벽한 수비! 그림 같은 수비로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이젠 수비에서도 메이저리그급 플레이가 쏟아지네요. 혼자서 그냥 이닝을 끝내버렸어요.]
딱 필요한 점수만 내고 나머지는 선발투수와 클로저에게 맡기는 레이더스의 승리 공식.
손성호와 마찬가지로 팀의 부활을 위해 마지막 힘을 불사르는 레전드 양한일과 레이더스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S급 선수 고영운, 외국인 타자 이안 킴브렐은 레이더스 타선의 시작임과 동시에 끝이기도 했다.
고영운이 포수, 킴브렐이 유격수고 양한일이 36세의 노장이라 체력적으로 매우 불안하기 때문에 좋을 때 최대한 승수를 쌓아둬야 하는 상황.
게다가 꼭 이겨야만 하는 에이스 카디스 맥 등판 경기 날.
영도는 카디스 맥에게는 홈런을 때려냈고, 이안 킴브렐과 고영운의 안타를 훔쳐냈다.
***
[또 한 번 멀티 홈런!! 유영도 또 터졌다. 시즌 43호 홈런으로 압도적 독주 이어가...]
[타석에선 4타수 2안타 2홈런 3타점, 수비에선 레이더스 3인방에게 빼앗은 안타만 3개... 혼자서 레이더스의 모든 걸 무너뜨린 ‘절대영도’]
[압도적인 전반기 보낸 유영도, 그런데 후반기... 시작부터 또 심상치 않다?]
- 솔직히 전반기 93경기 37홈런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후반기는 51경기인데, 51경기 동안 홈런 37개 더 때릴 수 있을 것 같다... 나 미친 건가?
- 그게 미친 거면... 우리 다들 미쳐가고 있는 건가
- 38경기 남았는데 43홈런... KBO 신기록은 우습게 넘기겠네
- KBO 신기록이 문제가 아니지. 아시아 신기록도 고작 17개 남았는데, 지금 페이스면 뭐...
- 38경기에 17홈런이면 말도 안 되는 페이스고, 한 시즌 환산으로 대략 64홈런인데... 왜 당연히 될 것 같냐? 우리 다 같이 미쳐가는 거야!?
- 에이씨... 대체 어떤 X끼들이 애들 노는 무대에 괴물을 풀어놓은 거냐?
- 빨리 메이저로 꺼...져...라... 나도 60홈런 타자 응원하는 뽕맛 좀 느껴보자...
- 에이, 씨X. 다른 X끼들이 좀만 받쳐주면 진작 50홈런도 넘겼을 텐데, 다른 새X들이 병X이니까 X신들 잡는다고 상대를 안 해주잖아!! 유영도 60홈런 못 넘기면 제츠 새끼들 다 반성문 쓰고 연봉 절반 넘겨라. X발...
-- ... 필터링이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 각자의 기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