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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한 흐름 > (57/200)

< 당연한 흐름 >

[서울 제츠가 부진에 빠진 사이, 2위 수원 매지션즈가 기세를 끌어올리면서 어느새 반 게임 차까지 추격에 성공했습니다.]

[후반기 들어 12경기에서 6승 6패예요. 전반기 6할을 훌쩍 뛰어넘는 승률을 기록했던 걸 생각하면 많이 아쉽죠. 같은 기간 매지션즈는 8승 4패였나요?]

[사실, 제츠도 부진하다, 부진하다, 하지만, 후반기에도 5할 승률은 지켜주고 있습니다. 매지션즈의 기세가 지나치게 대단한 거고, 그런 만큼 1, 2위와 3위의 격차도 벌어지는 모습입니다.]

[유영도 선수를 필두로 한 몇몇 핵심선수들의 힘이 대단해요. 5할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어떻게든 꾸역꾸역 지키고 있죠. 매지션즈야 뭐... 안 터진 포지션을 찾기가 어렵고요.]

전반기가 끝나고 올스타전 브레이크에 들어갔을 때, 제츠는 93경기를 치르는 동안 매지션즈에 2.5게임 차 앞선 선두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다.

전반기 93경기 동안 벌어들인 2.5게임의 우위는 후반기 12경기 만에 0.5게임으로 줄어들었다.

절대적 에이스 유형근, 외국인 원투 펀치 제이드 벤슨과 리카르도 카스티요, 국내 최고의 클로저 반성훈, 마찬가지로 최고의 야수 중 한 명인 나정준과 30-30을 노리는 고든 레녹스 등등...

제츠에서 아쉬운 선수를 꼽는 게 어려운 만큼 매지션즈에서 특별히 잘하는 선수를 꼽기도 어려웠다.

그런 만큼 당연히 따라오는 게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성적이었다.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내달린 매지션즈는 12경기에서 9승 3패를 거뒀고, 한동안 질주가 멈추지 않을 듯했다.

멈추는 걸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재 매지션즈의 기세는 엄청났다.

전반기 중반 제츠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오늘 제츠가 상대할 홈팀 대구 레이더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제츠의 이번 시즌도 기대 이상이지만, 이번 시즌 기대 이상의 팀, 돌풍의 팀을 이야기할 때 레이더스를 절대 빼놓을 수 없잖습니까?]

[3위와도 꽤 차이가 있는 4위까지 떨어진 타이탄스와 함께 이번 시즌 이변의 주인공이죠.]

[3강 5중 2약 중 2약으로 꼽히면서 꼴찌 후보라고 평가받았던 대구 레이더스. 하지만 시즌의 70%를 소화한 지금, 레이더스의 순위는 포스트시즌 진출 마지노선인 5위입니다.]

[사실, 외국인 선수를 너무 잘 뽑았어요. 그동안 최고의 외국인 에이스였던 조지 스넬보다도 한 수 위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카디스 맥, 그에 못지않은 호아킨 에르난데스, 메이저리거급 수비의 5툴 플레이어 유격수 이안 킴브렐...]

돌풍의 팀, 대구 레이더스.

사실, 국내 선수들의 활약은 시즌 전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능성은 보이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선수들이 많은 젊은 팀. 국내 선수들의 역량만 따졌을 땐 하위권이 분명한 팀.

일단, 운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1, 2점 차 승리가 많았다.

외국인 원투 펀치가 엄청났고, 3선발 최창민도 계산은 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급격히 성장한 26세의 좌완 클로저 심창규.

이상할 정도로 1, 2점 차 승리가 많은 경제적인 야구, 운빨이 기가 막히는 야구에 클로저가 약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불안불안했던 젊은 수호신 심창규는 이번 시즌 급격히 성장하며 리그 탑클래스를 노렸다.

“야, 솔직히 제츠한테 우승은 어차피 무리 아니냐?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오랜만에 포스트시즌 가게 한 번 봐줘라. 너만 봐주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 밥 잘 먹고 왜 헛소리야. 에너지 아까우니까 조용히 몸이나 풀어.”

심창규는 영도와 동갑으로 중학 시절 안성흠, 강주열과 함께 TOP 4, 아마 야구 감성으로 4천왕이라 불리던 선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더더욱 좁은 바닥이었기에 당연히 서로 친분도 있었고.

“제츠 같은 기복 심하고 분위기 심하게 타는 팀은 장기전보다 단기전이지. 한국시리즈 생각하면서 정규시즌은 천천히 해. 우린 진짜 급하다고.”

“야... 에너지 아깝다. 좀 가라.”

선수와 에이전트를 이간질하고, 선수 몸값을 깎기 위해 직접 루머까지 퍼뜨렸던, 상상을 초월한 이전 프런트진.

그들의 삽질로 인해 다수의 A+급, A급 선수를 잃은 레이더스이기에 이번 시즌이 더더욱 중요했다.

외국인 선수 세 명이 전부 대성공을 거뒀다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다음 시즌이 더욱 걱정이었다.

메이저리그와 NPB의 관심 속에서 이들을 지켜내기 어려워졌기 때문.

그래서 더더욱 이번 시즌에 운명을 걸고 포스트시즌 경험을 통해 젊은 선수들에게 경험치를 먹여야 했다.

“야! 그래도 생각은 좀 해봐! 알았지!? 그렇게 하기로 한 거다! 야!”

‘비싼 밥 먹고 칼로리만 날아갔네.’

당연히 영도에겐 헛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레이더스가 몰락했다고는 해도 기껏해야 6, 7년이었다.

프런트가 싹 다 갈려 나간 이후로 계산하면 3, 4년.

23년 동안 쌓인 서울 제츠의 숙원, 17년 동안 쌓인 손성호의 갈망은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간절했다.

***

“아니, 스카우팅이야 나한테 맡겨두면 알아서 잘할 겁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니까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합니까? 지금 여기 누가 와 있는지 아십니까?”

서울 제츠와 대구 레이더스의 경기가 펼쳐지는 대구 레이더스의 홈구장, 달구 스타디움.

언제나처럼 구름처럼 많은 관중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중간중간에는 뭔가 다른 사람들, 외국인들도 꽤 많이 보였다.

물론, 한국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사는 만큼 일반 야구팬들도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수십 명은 일반 팬이라 보기엔 야구를 지켜보는 자세도, 가진 장비도 많이 달랐다.

모두가 예상하는 것처럼 이들은 25인 로스터를 채우기 위해 카디스 맥과 에디 렉스를, 40인 로스터를 채우기 위해 타일러 로즈와 호아킨 에르난데스, 이안 킴브렐을 관찰하러 온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팀의 클린업을 채우기 위해 유영도를 관찰하러 온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기도 했다.

“양키스, 레드삭스 같은 깡패들은 물론이거니와 동아시아 쪽에 강한 컵스, 다저스, 그냥 돈이 많은 메츠, 내셔널스, 에인절스, 타이거즈 등등... 우리가 서두르지 않으면 이기기 힘든 구단들로 가득하다니까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동아시아 스카우트 팀장, 재미교포 3세 빈센트 리는 마음이 급했다.

동아시아 담당이다 보니 영도에게도 관심이 있었던 그는 영도의 지명할당 소식을 먼저 접하고 팀에 재고를 요청했을 정도로 그를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지금, 영도를 밀어냈던 에이스의 주전 3루수 유넬 페레즈는 0.270의 타율에 0.800의 OPS, 20홈런 정도를 때려내는 수비 좋은 3루수라고 평가받았다.

갈수록 1루수, 코너 외야수급의 공격력을 요구받는 3루수로서 월드시리즈 우승 도전을 천명한 팀의 주전이라기엔 아주 조금은 아쉬운 성적.

그런 에이스의 시야에 자신들이 내보낸 영도가 들어왔다.

문제는 영도를 시야에 둔 팀이 상당하다는 것.

“에라이... S-Do한테라도 먼저 접근해서 의사를 전해야 뭐가 되도 될 텐데 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왜 그러십니까? 이번에도 관찰만 하라고 합니까?”

“그래. 아직 내부 결정까진 시간이 좀 걸린단다. 에휴... 빌리 때가 좋았지...”

‘머니 볼 신화’, ‘트레이드의 사기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상징’, 62년생 빌리 빈도 나이가 들었고, 현장에서 물러난 지 수년이 지났다.

신 구장 개장 이후 영입 기조가 완전히 바뀐 에이스는 과거의 총명함을 잃었다.

의사결정의 속도도, 확고한 영입 기준도, 그렇게 신중히 결정해서 영입한 선수의 활약도...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여전히 평균 혹은 그 이상이긴 하지만, 더 이상 에이스는 ‘시장의 사기꾼’이 아니었다.

대신 얻은 자본력도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기존 부자 구단들과 경쟁할 수준은 아니었으니...

“에이, 모르겠다. 일단 우린 우리 할 일이나 하자고. 영입은 잘난 분들이 알아서 하겠지.”

“오! 이게 누구야? 빈센트 아냐? 카디스 보러 온 건가?”

그때, 누군가 빈센트의 이름을 불렀다.

“로드니...”

“이야... 여기서 에이스 스카우트를 다 보네? 에이스도 Y-Do한테 관심을 보이는 건가? 이제 와서?”

“... 글쎄. 오늘 나온 선수들 중 25인 로스터급으로 평가되는 게 Y-Do만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지금 카디스랑 에디를 보러 왔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에이... 설마...”

이번 시즌 선발투수 중 NO.1을 다투는 카디스 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제츠의 에이스 타일러 로즈가 아닌 2선발 에디 렉스가 25인 로스터급으로 평가되는 건 의외였다.

다만, 알아두어야 할 것은 에디 렉스가 선발투수로 평가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타일러 로즈의 경우 준수한 선발이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필살기로 통할 만한 장점이 안 보인다는 평가와 함께 40인 로스터급, 6선발 혹은 롱릴리프급으로 평가받았다.

에디 렉스는 전체적으로 그보다 조금씩 부족하지만, 최고 구속 99마일이라는 확고한 무기가 있기에 25인 로스터급 불펜으로 관심을 보이는 팀들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고, 우리. 카디스 맥? 이번 시즌 좀 잘하고 있지만, 지난 시즌 트리플A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아주 크게 달라지거나 성장한 건 없지 않나? 에디 렉스? 대체 어떤 구단이 클로저도 아니고 심지어 필승조도 아닌 불펜투수를 보려고 한국까지 직원을 보내?”

“......”

“동아시아에 잔뼈가 굵은 우리 다저스나 컵스도 아니면서 말이지. 우리 서로 Y-Do를 원한다는 것 정도는 까놓고 시작하자고.”

“... 젠장. 이래서 진작 움직였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LA 다저스 동아시아 스카우트 팀장, 로드니 맥켄지.

자본력도,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인기와 인지도, 선호도와 정보력도...

에이스와 비교해 단 한 가지도 밀리는 게 없기에 영도에 대한 관심을 대놓고 드러냈다.

“저기 양키스 놈들도 있고, 레드삭스, 컵스, 자이언츠, 메츠... 돈 있는 팀들은 다 달려들었네. 절반은 3루수 자리에 걱정도 없는 팀들이면서.”

“다저스도 3루수에 문제는 없지 않나? 잭 헤링이면 내셔널리그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것 같은데.”

“에이... OPS 0.850에 25홈런, 내셔널리그 TOP 10이 우리 다저스에 어울리진 않지. 그리고 우린 지금 우익수에 구멍이 뚫려서 말이야.”

“우익수라... Y-Do가 우익수도 곧잘 하긴 하지.”

여기서 빈센트는 희망을 가졌다.

만약 영도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이 말이 나오면 다저스는 경쟁에서 한 걸음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3루를 향한 영도의 집념은 에이스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로드니! 로드니 이 자식은 대체 어딜 가서...”

“아!! 조던! 저 여기 있어요! 지금 갑니다!!”

“...? 조던? 조던이라면 설마... 조던 베르나트?”

“맞아. 조던 베르나트. 그럼 난 간다! 조던이 찾으면 후딱 달려가야지. 남은 시즌 동안 자주 볼 것 같은데, 앞으로 만나면 정보 공유도 좀 하자고! 그럼 이만!”

생겨났던 희망이 사그라지는 걸 느낀 빈센트 리.

희망을 사그라뜨린 조던 베르나트는 누구인가.

LA 다저스의 스카우트 팀장이자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65세의 노장 스카우트, 조던 베르나트.

안 그래도 모든 부분에서 앞서는 게 없는데, 에이스가 우물쭈물하는 동안 오히려 다저스가 벌써 총책임자까지 한국행 비행기에 태우다니...

스카우트팀의 중요성을 따지자면 당연히 미국 본토가 최우선이고 거리상으로 가까운 캐나다, 멕시코나 유망주 풀이 뛰어난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이 먼저였다.

유망주보다는 자국 리그에서 성공하고 넘어온 선수들의 성적이 더 뛰어난, 무엇보다 거리상으로 너무 멀리 떨어진 동아시아는 그 다음이라고 봐야 했다.

덕분에 비교적 젊은 스카우트들끼리 경쟁하는 바닥인데 여기에 총책임자가 오다니...

“빌어먹을... 여기저기서 확률 떨어지는 소리만 팍팍 들리는구만, 이거.”

“... 어떡하죠, 팀장님? 프런트에 다시 한 번 연락을...”

“뭐라고 이야기할까? 벌써 10분이나 지났는데 아직 회의 안 끝났느냐고 물어봐? 전화해서 할 말이 뭐가 있어? 빨리 가서 영상이나 찍어, 자식아!!”

에이스의 동아시아 스카우트 책임자 빈센트 리는 시작부터 패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당연한 흐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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