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준비 >
[(단독) 서울 제츠 3루수 윤무열, 혈중 알콜 농도 0.108로 음주운전 적발!]
“아...”
신초희는 제츠 공식방송의 마스코트이자 리포터, PD로서 제츠의 목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녀가 인터넷 방송의 스탠스를 지키며 비교적 팬 친화적인 시선에서 구단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필요할 경우 구단을 대신해 입장을 발표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어쨌거나 구단에서 월급을 받는 입장이었다.
100% 윤무열의 잘못이지만, 구단 내부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이상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음... 갑자기 골치가 아파지네요.”
이는 영도도 마찬가지.
솔직히 말하면 이 사건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다.
그냥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고, 이후에도 의식적으로 멀리했던 한 명의 트러블 메이커가 대형 트러블을 일으킨 사건일 뿐.
이 사건이 팀에 미칠 영향과 그로 인해 더 강해질 견제가 걱정되긴 했지만, 그저 그것뿐.
그러나 그런 영도 역시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아니, 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말이 많은 선수도,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비치는 선수도 아니었고...
- 아니, 윤무열 이 개... 하아, 이 개새끼가...
- 다들 그 새끼 개새끼인 거 알고 있었잖음? 큰 사건이 없어서 그렇지, 강남 유흥가 죽돌이인 거 모르는 사람 있었나?
- 아니, 유흥가 죽돌이는 씨X, 이 새끼 X나 방탕하네, 하고 넘길 일이지만, 음주운전은 다르지...
- 언젠가 사고 칠 줄 알았다, 그 새끼
- 인성이 그따위니까 성장이 멈췄지
- 그러니까 재능 있다고 오냐오냐해주면 안 된다니까? 그러니까 인성 쓰레기들이 자꾸 나오는 거 아냐
- 쓰레기 같은 새끼... 아오, 그냥 죽어버리지
- 음주운전하다가 사고 나서 그냥 죽어버릴 것이지, 그딴 놈이 왜 살아있냐? 산소 아깝다.
- 그런 새끼 부모님도 애 낳고 좋아했겠지? 부모님이 불쌍하다
- 아니, 씨바... 오늘 상상도 못 했던 유영도 유쾌한 모습도 보고 다 좋았는데, 쓰레기 같은 새끼가 기분 다 잡치네
- 야... 23년 만의 우승이 코앞인데, 뭐 그딴 새끼 하나 때문에... 아, X나 빡치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내 유쾌하고 즐거웠던 채팅창 분위기는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었다.
자신의 사적인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영도와 제츠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신초희, 그리고 그 둘이 학창시절부터 절친이었음을 밝히며 20대 중반다운 통통 튀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신초희가 시즌 개막 전부터 영도를 달달 볶으며 기대했을 만큼 완벽했던 컨텐츠에 누군가 거하게 똥을 뿌려버렸다.
“여러분! 여러분! 조금만 진정해주세요. 조금만! 마음은 이해하지만, 너무 원색적인 비난을 여기서 하진 말아주세요. 여기서 그렇게 욕하시면 저희 채팅 규정상 그냥 넘길 수가 없어요.”
분위기가 망가진 건 신초희와 영도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영도야 대충 넘긴다지만, 신초희는 단순히 오늘 방송 망했구나, 하고 넘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으니까.
“어휴... 미안해. 내가 그렇게 졸라서 힘들게 나와준 건데...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네.”
“네가 미안할 게 뭐 있어. 윤무열 그 인간이 다 잘못한 거지. 그 인간이 쓰레기인 거야. 네가 신경 쓸 거 없어.”
결국, 방송은 흐지부지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윤무열에 대한 생각은 팬들이나 신초희나 TV스피릿 직원들이나 다르지 않았다.
더 까놓고 말하면 이들은 윤무열이 친 대형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만약 눈앞에 윤무열이 있었다면 채팅창에 올라오던 원색적인 욕설을 면전에서 내뱉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마. 난 정말로 아무렇지 않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적당히 처리해. 이제 곧 우리 선수 아니게 될 텐데, 뭘.”
여전히 KBO는 부족한 부분도 많았고, 더욱 발전해야 할 부분도 많았지만, 그래도 2040년은 2040년.
팬들은 더 이상 음주운전 범죄자를 용서해주지도, 대충 받아들여 주지도 않았다.
아마 윤무열의 선수 커리어는 이대로 끝날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처리하면 그만인 일이니 제츠도, TV스피릿도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하아... 그래도... 너랑 재미있게 영상 하나 찍고 싶었는데... 그 새... 아니, 그 인간이 사고만 안 쳤어도 레전드 하나 뽑는 거였는데...”
“갑자기 웬 필터? 네가 내 앞에서 언제 바르고 고운 말만 썼다고...”
“... 야... 에휴... 됐다. 그래, 그 개새끼...”
신초희가 기죽은 모습은 정말 처음 보는 듯했다.
물론, 친하게 지내긴 했지만, 서로 얼굴 보고 지낸 시간은 1년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동안 알아 온 신초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유쾌함을 잃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였다.
“알았어, 알았어. 너무 그렇게 아쉬워하지 말고... 나중에 시간 되면 같이 방송 한 번 더 하면 되지. 오늘도 방송 끊기기 전까진 좋았잖아.”
“... 역시 그렇지?”
“...? 너 표정...”
“내 표정이 왜... 에휴... 그래도 신경 써줘서 고마워. 일단 나중에 좋은 기획 있으면 연락할게.”
“... 그, 그래. 뭔가 좀 찝찝하긴 한데... 그러지, 뭐. 이대로 끝나면 나도 애매하니까.”
“하하하, 그래. 너밖에 없다니까?”
뭔가 당한 것 같긴 하지만, 영도도 이대로 끝나는 건 좀 찝찝했기에 일단 다음 출연을 약속했다.
친구의 부탁이 이대로 끝났으니 더더욱 찝찝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저나 팀 분위기 또 난리났겠는데... 성호 선배는 또 어떡하냐. 이번 시즌 기대 엄청 크셨는데.’
영도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확실히 이전과 다른 반응이었다.
신초희야 옛날부터 친했던 친구니 그럴 수 있다지만, 손성호를 신경 쓰는 건 분명한 변화였다.
물론, 여전히 개인주의적인 선수이고, 무엇보다 개인 스탯을 우선시하는 편이었지만...
변화는 원래 작은 것부터 시작되는 법이었다.
***
[윤무열, 서울 제츠에서 전격 방출!! 제츠, “소속 선수 관리 소홀에 책임 느낀다.”]
[서울 제츠의 심장 손성호, “음주운전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 남은 선수들끼리 똘똘 뭉쳐 팬 여러분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고 싶다”]
[윤무열의 음주운전이 유영도의 역사적인 시즌에 미칠 영향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범죄자는 처벌을 받고, 나는 야구를 할 뿐”]
서울 제츠는 윤무열의 음주운전이 기사화되고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방출을 결정했다.
2040년에도 빠른 편이긴 했지만, 어쨌든 평범한 대처였다.
임의탈퇴 제도도 이미 사라졌고, 구단도 이런 범죄를 임의탈퇴 같은 솜방망이 처벌로 끝내지 않았다.
언론과 인터뷰하는 손성호의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이는 한창 잘 나가던 팀 분위기와 성적이 걱정되어 그런 것일 뿐.
범죄의 책임을 구단과 선수들에 묻는 분위기는 꽤 사라졌다.
당연히 아직 적잖이 남아있긴 했지만, 예전과는 분명 달랐다.
그렇기에 영도의 저런 인터뷰도 호평을 받을 수 있었고.
[유일한 3루수 백업의 이탈... 더욱 더 무거워진 유영도의 어깨]
[사실상 제츠 1군의 유일한 3루수. 유영도는 제츠의 고질적 약점인 무더운 여름을 버텨줄 수 있을까]
[본격적인 여름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시작된 제츠의 여름 잔혹사... 제츠와 손성호의 염원은 과연?]
- 아... 영도가 아무리 피지컬 괴물이라지만, 어떻게 백업 없이 남은 시즌을 다 보내냐...
- 심지어 전반기 93경기 중 출장정지 2경기 빠진 거 빼면 딱 한 경기 쉬었음. 90경기 출전인데 후반기까지 혼자 달린다고?
- 왜? 이경모 있잖아. 2루, 유격이 주 포지션이지만, 3루도 가능하지 않아?
- 가능하지. 가능이야 하지...
- 이경모 커리어 평균 OPS 5할 중반이다... 6할 초중반따리에 체력 소모 큰 조규영 백업으론 괜찮고, 수비, 주루 다 괜찮지만, 유영도 백업으로 이경모를 쓰라고?
- 이경모가 3루수 주전으로 나오는 순간 그날 타선에 식물 두 명 됨. 조우엉보다도 더 심한 식물이...
- 아, 헬게이트 열리네. 오랜만에 전반기 1위로 잘 끝냈는데,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 윤무열 진짜 내 앞에 있었으면 한 대 제대로 쳤다
ㄴ 방구석 여포... 182cm에 110kg 근육돼지를 한 대 치시겠다고? 말로는 뭔들 못해
ㄴ 그래도 한 대 치고 열 대 얻어맞아도 치고 맞는다
ㄴ 윤무열 인성이면 한 대 치고 넌 사망이야...
윤무열은 28세, 이제 만년 유망주라는 수식어도 어울리지 않는 나이에 평균 OPS 6할 중후반대.
그냥저냥 평범한 백업이었지만, 최악의 인성과 워크에씩을 가지고도 제츠 1군에서 버틴 이유가 있었다.
그런 윤무열을 밀어낼 만한 백업 3루수가 제츠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
아무리 20홈런 중장거리 히터의 포텐셜이 있는 선수라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28세 타자가 1군에서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만큼 제츠 3루에 구멍이 크게 뚫려있었기 때문이었고, 영도가 영입되기 전까지 팀의 사활을 걸고 3루수 영입에 나섰던 이유이기도 했다.
“형, 형 또 뭐해? 뭘 또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먹어대는데?”
“아무래도 체중을 좀 더 불려놔야겠어. 한 2kg 정도만.”
23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는 팀 사정상 제츠는 시즌 막판으로 가면 갈수록 영도에게 더 큰 짐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영도 역시 더 많은 경기에 출전할 기회를 받아들일 생각이었고.
체력 안배를 위해 백업을 쓰겠다고 한다면 이에 반발할 근거가 없지만, 지금은 팀이 영도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하는 상황.
영도는 조금 더 많은 출전, 조금 더 많은 짐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 시즌 전에 충분히 준비한 거 아니었어?”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후반기에는 거의 쉬지 못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 스탯 까먹으면 안 되지. 더욱 압도적인 스탯으로 메이저에 갈 거니까.”
"... 형은 애초에 그런 거 없이도 지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잖아? 체력 하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1, 2등 할 정도로 타고난 괴물이면서..."
"선수들은 원래 올스타 브레이크 때 다들 이렇게 하잖아? 겨울에 불려놨던 몸무게가 전반기 동안 꽤 빠지니까. 다시 달리려면 다시 채워넣어야지."
"그건 그렇지만... 지금까지 그런 거 안 하던 인간이니까 그렇지. 요즘 운동도 쉬고 있지? 그것도 남들 다 그러는 거 형만 안 그랬잖아."
"어차피 후반기 힘들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한 번 쉬어보려고."
"잘 생각했어!!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조언해도 안 들어 처먹더니 드디어 쉬어보기로 했구나!!"
"안 들어... 뭘 먹어? 이 자식이 또 기어오르네??"
전반기 37홈런.
아무리 자신에게 냉정해도 신기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기록이었다.
영도 역시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더 많은 기회를 받으면서도 스탯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시즌 전처럼 체중을 불려놓아야 했다.
야구선수는 시즌이 매우 길고 경기가 거의 매일 펼쳐지는 만큼 아무리 철저하게 관리해도 체중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비시즌 중 체중을 불리는 건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으윽... 어쨌든... 잘 생각했어. 쉴 땐 쉬어주는 게 시즌 치르는데도 좋다잖아.”
“그래. A부터 Y까지 다 바꿨는데, 마지막 Z 바꾸는 거 망설여봐야 의미도 없겠지.”
당연히 일부 팬들이 조롱하는 살크업은 아니었다.
운동량은 전혀 건드리지 않고 체중을 불리는 일.
이는 절대 쉽지 않은 과정이었고, 먹는 게 괴롭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절실히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안 그래도 뛰어난 피지컬과 엄청난 운동량 때문에 기초대사량과 소모 칼로리 모두 상상을 초월하는데 이를 이겨내고 체중까지 불리려면...
말 그대로 전투적으로, 사력을 다해 먹어대야만 했다.
“하여튼... 야구만 좀 잘해 봐. 나머진 다 내가 알아서 해줄 테니까. 형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는 동생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이게 너한테도 도움이 되는 거 아니었냐? 힘들면 에이전트 바꿔주고."
"... 어휴, 또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시끄럽고. 어쨌든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네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지? 팀이랑 이야기해서 내가 굴려지면서 얻을 것, 시즌 후에 얻어낼 것들, 그 후의 협상까지... 최대한 뜯어내라. 그건 네 몫이니까.”
더 많은 기회는 영도도 원하는 바였지만, 그렇다고 공짜로 해줄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그 분야는 영도의 분야가 아니었을 뿐.
영도는 그저 언제나 그래 왔듯 최선을 다해 야구를 잘하려 노력할 뿐이었다.
< 다시 준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