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모두의 예상대로 > (53/200)

< 모두의 예상대로 >

[‘절대영도’ 유영도, 올스타전 전체 득표 압도적 1위! 2위 박우용, 3위 유형근]

[유영도의 홈런 레이스, 기대감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야구팬들]

[제츠 팬은 기본, 국내 야구팬들이 유영도에게 열광하는 이유]

영도가 올스타전 득표 전체 1위를 차지한 건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제츠의 에이스로 부산 세일러스와 함께 KBO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 제츠 팬덤이 뒤를 받쳐주니 일단 그것만으로도 올스타전 투표에서는 굉장히 유리한 위치였다.

팀 성적만 좋으면 소속 선수들로 올스타전 투표를 도배할 수 있는, 세일러스와 함께 유이한 팀이 바로 제츠였다.

세일러스가 ‘구도’ 부산의 절대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면 제츠는 타이탄스, 드래곤스와 연고지를 나눠 먹었지만, 세일러스에 비해 전국적인 인기가 높았다.

세일러스가 현실에서의 물리적인 행동력을 앞세운다면 제츠는 인터넷에서의 행동력이 압도적.

언제나 올스타전 투표에서 제츠 선수들의 득표는 예상보다 많았다.

“... 타이탄스 유니폼이네요?”

“... 예...”

그런 상황에서 영도는 성적마저 압도적, 그 누구도 비견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제츠 팬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제츠를 증오하는 타이탄스 팬마저도 김진형의 부진까지 겹치며 3루수 부문에 영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는 올스타전 직전 열린 사인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주세요. 어디에다 해드리면 되나요?”

“하아... 제가 진짜 이걸...”

타이탄스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 한 팬은 미묘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더니 쇼핑백에서 유니폼 한 벌을 꺼내 들었다.

“와... 제츠 유니폼이네요?”

“...... 에이씨...”

보통 최악의 라이벌 관계에서 상대 팀 선수에게 사인을 받는 경우도 흔치 않았지만, 사인을 받겠다고 응원팀 유니폼에 상대 선수의 이름과 등번호를 박아 가져오는 무례한 팬들도 간혹 있었다.

팀 사이의 관계를 감안하면 팬덤 사이의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정말 무례한 행동이었다.

“제가 웬만하면 야구공이나 배트 같은 거에 받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수집품에서 유니폼이 차지하는 위치라는 게...”

“하하하... 감사합니다. 마음고생 좀 하셨겠네요.”

“다른 선수도 아니고 유영도 선수인데... 컬렉터라고 하면 유니폼 정도는 있어야죠.”

“멋있으시네요.”

전반기에만 37홈런. 전반기 최다 홈런 신기록.

리그 흐름에 따른 스트라이크 존 조정과 기계식 스트라이크 판정으로 2020년대 이후 극단적인 타고투저와 투고타저는 사라졌다.

당연히 대부분의 개인 기록은 기계식 스트라이크존 도입 이전에 멈춰 있었고, 당연히 당시의 기록을 경신하는 선수들은 절대적인 재능과 기량을 갖췄다고 인정받으며 슈퍼스타가 되었다.

수십 년 동안 깨지지 않은 KBO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56개,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 60개.

지금 영도의 위상은 타이탄스 골수팬이 사인 유니폼을 수집하기 위해 직접 제츠 유니폼을 구매하는 수준이었다.

“감사합니다.”

“저... 한마디만 해도 되나요?”

“얼마든지 하세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예...”

타이탄스 골수팬은 영도의 사인이 새겨진 ‘제츠’ 유니폼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내년 시즌엔 메이저리그에서 보고 싶습니다.”

“......”

“이 정도 성적 내셨으면 다시 메이저리그 도전하셔야죠.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메이저리그에 한 방 먹여주세요.”

“제가 일단은 미국 국적이기는 한데...”

“유영도 선수의 미국 국적은 우리도 다 이해합니다. 솔직히 저도 61호 홈런 보고 싶은데, 지금은 대놓고 응원하기엔 개인적으로도, 남들 눈치에도 좀 찔려서... 저도 제츠 팬들처럼 그 통쾌함, 신뢰감 이런 걸 느껴보고 싶습니다. 메이저리그에 가시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하... 알겠습니다. 혹시 제가 메이저리그에 간다면 그때는 마음 놓고 신나게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반짝반짝 빛나던 재능과 불운한 사건, 쫓겨나듯 떠났다가 미국에서의 화려한 등장, 이어진 시련과 귀환, 그리고 완벽한 부활로 이어지는 드라마 같은 스토리.

2040시즌 올스타전 시점에서 영도는 제츠를 넘어 KBO 최고의 인기 선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국 국적이 아니고 KBO 출신이 아닌 선수임에도 KBO를 지배했던 다른 선수들처럼 KBO, 나아가 한국을 대표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해달라는 기대를 받았다.

“오빠, 오빠! 오빠아아아!!!”

“... 제가 오빠인가요?”

남녀노소, 응원하는 팀마저도 가리지 않는 인기.

영도 본인도 한국에서 이 정도의 응원을 받을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다.

기대하지 않던 이득이 생기면 당연히 두 배로 기쁜 법.

영도 역시 원래부터 한국 야구계 윗대가리들을 싫어했을 뿐, 한국과 한국 팬에 대한 애정은 다른 선수들과 다를 게 없었지만, 이번 시즌을 치러내면서 점점 더 깊어짐을 느꼈다.

***

[오일도 선수, 그러니까 전 선수죠? 오일도 전 창원 와이번스 투수와 함께 홈런 레이스에 참가한 유영도 선수. 예선에서는 10아웃 동안 무려 18개의 홈런을 때려내면서 예선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 무조건 참가해야 할 선수를 단 한 명만 꼽으면 영도였다.

누구에게 물어도 유영도였다.

전반기 37홈런으로 리그 2위 박우용보다 약 1.5배 많은 홈런을 때려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영도는 사실 누가 봐도 올스타전은 몰라도 홈런 레이스 같은 행사에 참가하는 걸 좋아하지 않을 성격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올스타전과 홈런 레이스의 흥행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나서서 설득했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만 고집할 수 없었다.

KBO 진출 첫해, 영도는 리그를 이끄는 최고의 선수, 전설적인 선수의 의무와 역할을 알아가고 있었다.

[유영도 선수가 홈런 레이스에 참가한 순간 다들 확신했죠.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가 모든 기록을 다 갈아치울 거라는 걸.]

[그렇죠, 아무래도. 그리고 배팅볼 투수도 정말 잘 선택했어요. 오일도 선수는 영리한 머리와 철저한 자기관리를 앞세운 정교한 투수로 유명했지 않습니까? 은퇴한 지 꽤 되었고, 나이도 불혹에 가까운데 여전히 탄탄한 몸과 정교한 제구력으로 완벽한 배팅볼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예선부터 아주 눈에 띄죠. 예선 2위 나정준 선수는 12개였거든요? 저는 여기에 유영도 선수의 능력이 당연히 가장 크지만, 배팅볼 투수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봐요.]

‘여전하시네. 나이 들고 힘 떨어진 것까지 딱 좋아.’

오일도는 마운드 위에서 숨까지 조절해가며 최선을 다해 던져주고 있었다.

영도의 부탁은 제구가 조금 흔들리더라도 어느 정도의 속도와 파워를 실어달라는 것이었고, 은퇴하고 5년이 지난 39세 투수의 7, 8할 피칭은 이에 완벽히 부합했다.

[3아웃인데 벌써 9번째 홈런이 나왔습니다. 산술적으로 30홈런 페이스죠?]

[사실, 리그에서 93경기에 37홈런을 터뜨린 선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그렇긴 한데... 유영도 선수의 프리배팅은 메이저리그 시절에도 리그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받았어요. 이런 거 저런 거 다 빼고 장타력만 생각하면 세계에서 1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홈런 레이스 출전이 확정된 순간 팬 여러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홈런 레이스 우승자는 안 궁금하다. 유영도가 몇 개로 우승할지가 궁금하다, 라고. 말씀드리는 순간 10번째 홈런이 나왔습니다.]

[으하하하,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해요. 다른 선수들도 대단한 선수지만, 다른 거 없이 단순한 장타력으로 승부하는 홈런 레이스에서의 유영도. 듣기만 해도 기대가 되죠.]

프리배팅에서는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 홈런왕, 47홈런을 기록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야니스 헤링과 비교해도 밀릴 이유가 없다고 평가받았던 영도였다.

물론, 이런 선수는 꽤 많았고, KBO에 흘러들어온 외국인 타자 대부분이 비슷한 평가를 받았지만, 그런 그룹에서 영도는 정점에 있었다.

‘많이 좁긴 해, 여기가.’

심지어 올해 올스타전이 치러지는 경기장은 대구 레이더스의 홈구장, 달구 스타디움.

KBO에서 가장 노후한 구장이자 가장 좁은 구장으로 홈런이 가장 많이 나오는 구장이기까지 했다.

[어우... 이거 또 장외로 나간 거 아닙니까? 예선부터 시작해 벌써 두 개째 장외 홈런입니다.]

[유영도 선수에게 달구 스타디움은 정말 너무 좁네요. 돔구장에서 천장을 맞추는 홈런을 때려낸 유일한 선수이자 두 번이나 그런 홈런을 기록한 선수인데, 확실히 달구 스타디움은...]

[안 그래도 노후한 구장들이 하나둘 리모델링, 혹은 재건축이 되면서 이젠 달구 스타디움의 차례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슬슬 할 때가 되긴 했죠. 레이더스도 여러 사건을 일으키면서 결과적으로 FA 엑소더스로 주축 선수들을 다 떠나보낸 전임 프런트가 떠나고 새로운 프런트가 구성된 지 2년 정도 지났잖아요? 반전이 필요한데, 구장 리모델링, 재건축이면 아주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죠.]

‘이제... 8아웃? 9아웃? 팬 서비스로 한 번 휘둘러 봐?’

홈런 레이스, 홈런 더비의 문제점 중 하나는 ‘홈런만을 위한’ 이벤트다 보니 참가선수들이 홈런만 의식하다가 밸런스, 폼이 무너져 리그 재개 후 컨디션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영도는 기본적으로 그럴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정규시즌과 똑같이 비교적 작은 타격폼으로 홈런 레이스에 임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까지의 유영도는 누구 한 명 죽일 듯한 어마어마한 풀스윙을 자랑하던 선수.

지금의 폼과는 아예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폼이라 폼이 섞일 위험도 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달구 스타디움의 작은 크기까지.

팬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한 번 작정하고 휘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타격 폼을 바뀌었습니다! 이야... 정말 까마득하게 날아갑니다. 이건 대체 어디까지 날아가는 걸까요?]

[저 방향이 아마... 서울 방향일 텐데, 잠실돔 관중석에 떨어지는 거 아닐까요? 개폐형 돔이라 천장이 열려있을 거거든요?]

[아... 그러니까 천장이 열린 잠실돔 관중석까지, 거의 한 250km 정도 날아갔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지금 날아가는 것만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오히려 지금 걱정은 저 공을 찾아야 할 텐데, 못 찾을까 봐 걱정되네요.]

[아! 또 한 번 장외! 연속으로 장외 홈런이 나옵니다. 타격폼 정말 시원하네요.]

[저런 거 없이도 37홈런인데... 이야... 시원시원하죠?]

예상대로 타격폼을 바꾸자마자 비거리가 확 늘어났다.

이전 타격폼으로도 18개의 아웃 카운트 중 장외 홈런이 두 번 나왔는데, 변경 이후에는 2개의 아웃 카운트 중 똑같이 두 개가 장외로 넘어갔다.

‘앗...’

[하하하, 아주 크게 헛치면서 중심을 잃어버린 유영도 선수. 마지막 10번째 아웃 카운트를 기록하면서 홈런 레이스를 마무리합니다.]

[너무 많이 쳐서 일부러 좀 재미있게 한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유영도 선수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죠?]

[아무래도 그건 좀...]

[하하하, 타격폼이 너무 큰 건 사실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고전한 이유는 다 저 타격폼 때문이에요.]

[마지막에 좀 재미있게 끝나긴 했지만, 홈런 레이스 우승, 압도적인 우승자는 유영도 선수입니다. 23개의 홈런을 기록하면서 13개의 나정준 선수와 큰 차이로, 15개로 이전 최다 홈런 기록자였던 박우용 선수 앞에서 홈런 레이스 우승을 차지합니다.]

[파워, 홈런, 장타... 이런 모든 부분에서 한국 출신 선수 중 압도적인 1위죠. 유영도 선수는 그냥 한 단계 위에 있어요.]

“감사합니다, 선배. 고마워요.”

“내가 고맙지. 이야... 네 덕분에 오랜만에 마운드 서니까 뭉클하네.”

“여전하시던데요?”

“... 너 때문이잖아, 이 새... 네가 열심히 던져달라고 해서 나름 열심히 던졌는데, 그게 뻥뻥 날아가니까 뭉클하던 감정도 사라지더라!!”

< 모두의 예상대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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