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록 달성과 견제 >
현재 리그 선두인 제츠와 6.5게임 차, 2위 매지션즈와 3.5게임 차.
절대 적지 않은, 과격하게 말하면 아직 전반기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이미 정규시즌 우승은 힘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격차가 벌어졌지만, 그래도 대전 에이스는 리그 3위였다.
시즌 전 예상에서 3강으로 꼽힌 팀 중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타이탄스의 추락을 제외하면 나머지 두 팀은 예상대로 잘 나가는 중.
김유선에 이어 2선발로 데려온 외국인 투수 잭슨 렌테리아가 기대에 못 미치는 기량으로 교체되고 다른 한 명 개리 소델리도 마찬가지로 기량이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긴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15승 우완 듀오 김유선-이종만을 앞세워 KBO 3강 자리를 차지하며 이번 시즌 역시 3위를 달리는 탄탄한 팀.
대전 에이스는 KBO에서 유일하게 토종 선발 두 명이 원투 펀치를 이루는 팀이었다.
[잠실 : 서울 제츠(타일러 로즈) vs 대전 에이스(채성명)]
- 그래도 1차전은 잡고 가겠네. 내가 다른 투수는 몰라도 타일러는 믿고 가지.
- 솔직히 말해서 타일러가 최고지. 최근 몇 시즌 동안 제일 안정적인 선발 로테이션이긴 한데... 그래도 타일러 말고는 아직 좀 불안함.
- 에디 렉스 괜찮고, 종인이, 한태도 최근 10년 중 제일 기특한 토종 선발들. 그래도 타일러랑은 수준이 달라.
- 에디는 그냥 좋은 2선발이고, 한류커플은 평균 나이 22세를 감안했을 때 대단한 거지, 솔리드한 3, 4선발.
- 유일하게 안심하고 보는 선발투수
‘역시 이렇게 나오나.’
타일러 로즈는 제츠의 에이스이자 리그 내 TOP 5를 꼽아도 가끔 언급되는 에이스.
채성명은 아무리 선발진이 탄탄한 대전 에이스라지만, 어쨌든 5선발.
누가 봐도 제츠가 유리한 경기고, 실제로도 에이스의 초 공격과 제츠의 말 공격 분위기 자체가 다른, 승부의 추가 상당히 많이 기운 경기.
그러나 영도 개인을 보자면 그래서 더욱 까다로운 부분이 있었다.
[채성명 선수는 유영도 선수와 제대로 상대할 생각이 아예 없습니다. 첫 타석에 이어 두 번째 타석에서도 그냥 내보내지만 않았을 뿐, 계속해서 어려운 승부를 이어갑니다.]
[하아, 그러니까요. 이게 타선의 무게감이 한 명에게 확 쏠린 팀의 숙명 같은 거거든요? 자! 일단 이건 분명히 하고 갈게요. 손성호-한영훈은 대단한 타자예요.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어유, 당연한 겁니다. 그 둘을 무시하는 건 절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제 말은 손성호-한영훈이 기복이 심한 선수는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시즌 내내 꾸준한 선수도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이 두 선수라 해도 유영도 선수와의 무게감 차이는 분명히 있고, 두 선수 외에는 차이가 커요.]
[다른 선수들이 부족한 게 아니라 유영도 선수가 너무 대단한 겁니다.]
[그렇죠. 그런데 손성호-한영훈 중 한 명이라도 나가서 1루를 밟고 있지 않으면, 아니면 아예 장타가 나와서 1루가 비어있다면. 대체 어떤 선수가 유영도 선수와 제대로 붙어주겠습니까?]
영도의 느린 발과 10+홈런이 한계인 손성호-한영훈의 아쉬운 장타력.
그런데도 계속해서 둘을 영도의 앞뒤로 배치해야 한다는 말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였다.
영도의 우산효과로 앞뒤 타자가 효과를 보는 경우도 많지만, 그 효과를 보지 못해서 영도가 고전하는 경우 역시 많았다.
테이블세터의 장타력 부족과 노쇠화, 4번 타자의 정교함 부족과 포수 포지션은 이제 막 시작된 여름을 더욱 불안하게 했다.
‘에이...’
결국, 영도는 두 타석 연속 볼넷으로 1루를 밟았다.
특히 에이스급 투수들은 조금 다르지만, 중하위 선발 아래로는 거리낌 없이 영도를 걸러버렸다.
이런 식으로 투수들의 집중 견제와 동료들의 2% 아쉬운 활약에 억지로 배트를 휘두르다 부진에 빠진 선수는 잠깐 생각해도 열 손가락은 훌쩍 넘어갔다.
‘안 그래도 전통적으로 여름에 약한 팀인데...’
왜 덥기로 유명한 대구를 홈으로 쓰는 레이더스가 아니라 제츠가 ‘여름 고자’라는 별명을 얻은 건지 이해는 안 되지만, 어쨌든 그게 현실이었다.
영도가 응원할 때도,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제츠는 여름에 약했다.
1루를 자주 밟게 되어 출루율과 OPS를 끌어올리면서도 영도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자! 이번엔 다릅니다. 세 번째 타석 만에 처음으로 유영도 선수 앞에 1루가 채워졌습니다.]
[타일러 로즈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늘 제츠 타선도 좋지는 않아요. 5회말 1아웃 현재 1-0이고, 의외의 투수전이 펼쳐지고 있거든요? 제츠 입장에선 아주 기분이 나쁘죠.]
[이럴 때 흐름을 딱 바꿔주는 선수가 유영도 선수 같은 장타자들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유영도 선수라 해도 공짜로 2루를 줄 순 없는 겁니다!]
[이번엔 무조건 승부해야죠. 유영도 선수도 10번 중 6, 7번은 범타로 물러나는데, 괜히 쫄아서 공짜로 스코어링 포지션을 준다? 말도 안 되는 거죠.]
세 번째 타석에서야 영도에게 제대로 된 첫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이기고 있어도 기분 나쁘고, 추가 득점이 절실한 상황.
‘지금 내 위치에서는 어쩌다 찾아온 한 번의 기회도 절대로 놓치면 안 돼.’
클러치히터 개념은 이미 허상으로 결론 난 지 오래였다.
하지만. 하지만 클러치히터라는 건 결국 이미지였다.
그래서 해결사는 지금의 영도처럼 기회 자체가 없다가 겨우 한 번 찾아온 기회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됐다.
그 한 번이 쌓여 이미지가 되고, 이미지는 그 전후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으니까.
‘아무리 2040년이고 구단 결정권자들이 쥐고 있는 자료들이 철저히 수치화되어있다고는 하지만... 그 사람들도 사람. 이럴 때 해내야만 하겠지.’
장담컨대 이미 영도에겐 수많은 메이저리그 구단의 시선이 몰려 있었다.
기량, 그 기량과 나이, 피지컬 등을 고려했을 때 보이는 잠재력, 현재 성적 등은 이대로 가면 그들의 기준치를 넘어설 게 사실상 분명해진 상황.
이제 영도는 그다음 과제를 수행하려 했다.
[근데 정말 불안하긴 불안할 것 같습니다. 채성명 선수는 130km대 후반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커터를 던지는 선수인데, 핵심은 사실 제구력입니다.]
[그리고 유영도 선수는 140km 이하의 패스트볼을 정말 귀신처럼 때려내는 선수죠.]
[변화구가 장점인 선수는 그래도, 정말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제구를 앞세운 140km 근처의 패스트볼은 절대 안 됩니다. 거의 타율 5할, OPS 13할에 가까워요.]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런 패스트볼을 볼 때마다 놀라게 되네.’
80마일 후반대의 패스트볼을 가진 선발투수가 메이저리그에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선수들은 매우 소수였고, 어쩌다 올라오는 땜빵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서 살아남은 선수는 패스트볼 외의 매우 뛰어난 결정구를 가진 선수들이었고.
구속이 절대 전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구속이 투수의 기본이자 제대로 된 피칭을 선보이기 위한 첫 번째 조건임을 부정할 순 없었다.
‘이 타이밍에 너무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한 번 더 준비하고 휘둘러도 늦지 않는 130km대 패스트볼.
처음 경험했을 땐 놀라서 3루 측 파울 홈런을 양산했지만, 이젠 익숙해졌다.
메이저리그 복귀 이후가 걱정될 정도로.
[역시 이렇게 되는군요. 에이스의 외야수 중 단 한 명도 발을 떼지 않았습니다. 유영도 선수의 홈런을 중계할 땐 이런 멘트를 말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비거리가 상상을 초월하니까요. 외야수도 체력을 아껴야죠.]
143m짜리 대형 홈런.
구속이 너무 느려서 생각보다 멀리 날아가진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했다.
[3-0입니다. 오늘 타일러 로즈의 컨디션을 고려하면 결정적인 홈런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영도 선수가 꼭 해줬어야 하는 타이밍인데, 역시 해주네요. 아니, 애초에 이 정도 성적이면 그냥 쳤는데 알고 보니 승부처, 뭐 이렇게 되죠. 선후가 바뀝니다.]
[그렇죠. 7월 10일에 벌써 33호 홈런입니다. 기어이 전반기가 끝나기 전에 33호 홈런으로 제츠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7월 10일에 33호 홈런. 이런 타자한테 영양가다, 클러치히터다,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죠. 그냥 유영도 선수는 이번 시즌 투타 통틀어 최고의 선수예요. 그걸로 끝이죠.]
“네가 부족한 형들 몫까지 다 끌고 가는구나!”
“이 새끼야! 네가 너 부족한 건 아냐?”
“억! 아니, 성호 형! 형도 이번에 겨우 한 번 출루해놓고 왜 형이 난리야!? 영도는 가만히 있는데!!”
“뭐? 영도야! 왜 가만히 있어? 너도 한 마디... 아... 글러브 찾고 있었구나?”
오늘 한 번도 출루하지 못한 한영훈과 이번에 겨우 출루하며 마음의 짐을 덜어낸 손성호.
앞선 두 타석에서 골머리를 앓게 했던 두 베테랑 덤앤더머가 홈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앞장서서 바보짓을 하는 동안.
영도는 자리로 돌아가 글러브를 정비하고 있었다.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았다.
“... 다음 타석엔 잘할게.”
“... 나한테 할 말은 아니지. 영도나 타일러한테 말해.”
***
[드디어 시작된 서울 제츠의 여름 잔혹사? 3-1로 승리하고 찝찝한 서울 제츠]
[“유영도만 대놓고 거르면 어쩔 건데?”, 손성호-한영훈에게 던져진 숙제]
[여름 공포증과 손성호-한영훈의 기복. 23년 묵은 숙원 해소를 위한 마지막 퍼즐]
- 그래... 어째 이번 여름은 잘 지나간다 싶었다.
- XX, XXX... XXXX 놈들... 대체 뭔 XX을 하길래 여름만 되면 XX...
- 진짜 뭐지? 뭔데 여름만 되면 이 지X이지?
- 하아... 영도가 아무리 잘해줘도 다른 선수들이 이렇게까지 삽질하면 대체 혼자서 뭘 하는데?
- 이번 경기 봐라. 영도한테는 볼넷만 주면 출루율 10할로 경기는 지겠네.
여름에 약한 서울 제츠.
이게 어쩌다 한두 시즌 생긴 일이 아니라 꾸준히 이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전문가나 기자들도 제츠의 ‘여름 공포증’만 기다렸다.
제츠 관련 기사는 언제나 조회 수가 보장되어 있었다.
대전 에이스와의 3연전 첫 경기에서 보여준 제츠의 모습은 매년 여름 보여줬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에이스가 등판하면 에이스의 힘으로 꾸역꾸역 이기거나 에이스마저 무너져서 패배하거나.
사이클이 제대로 어긋나서 야수 한두 명의 폼이 올라오면 나머지가 무너져 그 한두 명이 외롭게 고군분투하다가 겨우겨우 승리하거나 그 한두 명마저 무너지거나.
[서울 제츠,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 분위기 반등 성공하지 못하면 후반기 시작부터 위험해질 것]
2위와 3.5경기 차라는 적지 않은 격차를 벌려놓았음에도 대부분의 KBO 전문가들, 팬들은 제츠의 우승 가능성을 여전히 높지 않게 평가했다.
제츠는 일단 여름이 끝난 뒤의 성적, 혹은 그때부터 확 살아나는 경우가 많으니 한 단계 정도 위의 성적이 진짜 성적이다, 라는 게 KBO의 유명한 격언이었을 정도.
23년 만의 우승을 노리는 서울 제츠.
이제부터 시작될 집중견제를 버텨내야 할 유영도.
팀에게도, 영도 개인에게도 중요한 시기가 찾아왔다.
< 기록 달성과 견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