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차 목표 > (50/200)

< 1차 목표 >

[여러분도 다들 아시다시피 서울 제츠는 홈런과 정말 인연이 없고 거리가 먼 팀입니다. 제츠 유니폼을 입고 가장 많은 홈런을 때린 선수는 9시즌 동안 211홈런을 때린 양범규 선수고, 한 시즌 최다 홈런도 고작 32홈런에 불과합니다.]

[그게 아마 2009시즌 외국인 타자로 영입됐던 제프 티포드였죠?]

[그렇죠.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많이 아픈데, 통산 30홈런을 넘긴 선수도 57년간 겨우 두 명, 모두 외국인 선수였습니다.]

[참... 이게 이럴 수 있나, 싶어요. 아무리 팀컬러라고 해도 57년 중에 10년, 아니, 5년 정도는 홈런 군단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게 참...]

KBO 원년부터 지금까지 57년간 단 한 번도 파크팩터 꼴찌를 놓치지 않았던 잠실 야구장.

개방형 구장에서 개폐형 돔구장으로 리모델링된 이후에도 잠실의 파크팩터는 리그에서 독보적인 최저 수치를 자랑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제츠의 홈런 가뭄을 납득하긴 어려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변명거리는 찾을 수 있었다.

[57시즌 동안 중간에 교체된 선수 포함 외국인 타자 59명이 제츠를 거쳐갔습니다. 30홈런 타자 2명, 25홈런 타자 13명, 20홈런 타자 18명, 보시다시피 20홈런을 넘긴 타자도 33명에 불과합니다.]

[이게... 참... 이 정도면 잔혹사 수준이네요. 마지막 우승이고 뭐고 이런 상황에서 포스트시즌은 자주 진출했다는 게 오히려 대단하네요.]

이게 자존심이 조금 상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건데, KBO는 기본적으로 외국인 선수 제도가 생긴 그 순간부터 외국인 선수가 한 시즌 농사를 좌지우지했다.

제츠도 외국인 투수 농사는 곧잘 지은 편이었지만, 외국인 타자 쪽이 문제였다.

23시즌 동안 우승하지 못한 건 팀의 여러 가지 단점도 문제였지만, 그 단점을 제발 가려달라고 영입한 외국인 타자들의 실패가 원래 있던 단점을 더 크게 넓힌 탓도 있었다.

다른 팀들은 외국인 선수로 각자의 단점을 메웠으니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외국인 타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순 없었고, 제츠라는 팀이 가진 컬러 자체가 강팀 중 하나가 되기엔 충분해도 최강이 되기엔 애매한 것도 있었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외국인 타자 잔혹사의 영향을 아예 무시하는 건 불가능했다.

<유영도, 홈런!! 유영도, 홈런!! 유영도, 홈런!!>

<절대영도----------!!!!!!!!!!!!!>

[그리고 60번째 외국인 타자가 팀에 찾아왔습니다. 바로 이번 시즌 영입한 유영도 선수입니다.]

[크으... 이게 제츠뿐 아니라 KBO 역사상으로도 굉장한 포스를 보여주는 선수죠. 이 정도로 운이 없었으면, 불운했으면 이런 행운이 찾아오나 봐요. 진짜 대단한 선수를 영입했어요. 23년 전 우승했을 때도 욘달 구든이 30홈런은 못 때렸지만, 28홈런을 때렸거든요? 외국인 타자가 잘해줘야 좋은 성적이 나오는 건 어느 팀이든 진리나 마찬가지예요.]

[그동안 제츠의 기나긴 우승 실패에 외국인 타자의 지분이 컸다는 게 바로 증명된 것 아니겠습니까? 외국인 타자가 완벽하니까 바로 압도적인 리그 1위를 달립니다. 언제 또 위기가 찾아올지 모르는 팀입니다만...]

[팬들의 비명을 좀 들어보세요. 그 정도로 지금 제츠에서 유영도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지지를 받는지 단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기나긴 고통의 끝에 드디어 찾아온 영웅이 바로 영도였다.

그러니 제츠 팬들이 보내주는 지지와 응원은 57년 동안 쌓인 울분에서 시작되었기에 말 그대로 어마어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자, 지금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타율 0.311, 출루율 0.397, 장타율 0.667. 그리고 31개의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지금이 7월 초예요. 오해하지 마세요? 시즌 막판 아닙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31홈런. 제츠 역사상 한 시즌 최다 홈런이 제프 티포드의 32홈런인데, 7월 초, 정확히 시즌 90번째 경기인데 이미 31개의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참, 이게... 이게 진짜...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죠! 산술적으로 50홈런 페이스예요. 잠실을 홈으로 쓰는 팀에서!]

[그것보다 대단한 건 가뜩이나 어마어마한 성적인데, 지금 점점 더 페이스가 올라오는 중이라는 겁니다.]

[그게 정말 대단한 거죠. 지금보다 더 대단한 속도로 성적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꽤 높아요. 대체 어디까지 갈지 섣불리 상상조차 못 하겠어요.]

이미 제츠 역사상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과 고작 한 개 차이였다.

즉, 제츠 팬들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홈런 페이스라는 것.

팬들이 보내주는 지지와 응원이 단번에 이해되는 기록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때릴 수 있겠는데?’

현재 리그 5위로 서울 타이탄스를 추격 중인 광주 울브즈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

선발투수는 KBO 우완 NO.1 안성흠에 이은 NO.2 자리를 두고 대전 에이스의 김유선과 경쟁 중인, 지난 시즌 15승의 장민우였다.

‘장민우가 이 정도였나?’

당연히 회귀 전에는 맞대결에서 안타를 때리는 모습조차 상상이 잘 안 되던 에이스급 투수였다.

하지만 지금 영도는 장민우의 공을 보고 전혀 위압감을 느끼지 못했다.

회귀 전은 물론, KBO 진출 직후 있었던 안성흠과의 맞대결 당시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만큼 영도는 이번 시즌을 치르며 그동안 터뜨리지 못했던 잠재력을 빠르게 터뜨리고 있었다.

[장민우 선수가 유독 유영도 선수를 까다롭게 상대하는 게 보입니다. 정면승부를 즐기는 투수까진 아닙니다만, 그래도 쉽게 쉽게 던지는 투수인데 유영도 선수를 상대할 땐 어렵게 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쉽게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선수죠. 절대로.]

어느새 3-1으로 유리해진 카운트.

‘무난함’, 혹은 ‘안정감’이 장점이자 단점일 만큼 어떤 타자를 상대하든 무난하게 상대하는, 그 스타일로 KBO 우완투수 중 TOP 3에 이름을 올린 장민우.

그런 투수가 어쩌다 이렇게 된 게 아닌 대놓고 피하다가 3-1으로 몰린 상황.

이 장면만으로도 현재 영도의 리그 내 위상과 현재 포스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선배는 붙어줄 거라 믿었지.’

장민우마저 이럴 정도니 6월 말과 7월 초를 지나면서 상대 투수들의 피해 가는 피칭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홈런 칠 공이 들어오질 않아서 홈런을 칠 수 없었던 그런 상황.

그래서 장민우의 등판이 예고되었을 때 이번만큼은 홈런을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아... 그렇죠. 장민우 선수는 스트라이크 존에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3-1에서 어쩔 수 없이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가는 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공이 유영도 선수에게 걸리면 어쩔 수 없죠. 유영도 선수에게는 그냥 던지는 공이 단 하나도 있어선 안 돼요.]

[타이탄스전을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 대놓고 뺀 공도 빼는 공이라고 대충 던지면 까마득하게 날아갑니다.]

[벌써 32호 홈런이네요. 뭐... 더 말이 필요할까요? 서울 제츠 역사상 최다 홈런 타이기록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7월 8일이고요.]

33년 만에 터진 서울 제츠 선수의 시즌 32호 홈런.

잠실돔, 잠실 올림픽 파크를 가득 메운 제츠 팬들의 환호에서 그동안의 갈증과 울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다음 주 화요일부터 대전 에이스와의 마지막 3연전을 치른 뒤 올스타 휴식기가 시작되는데, 기어이 전반기 종료 전에 32호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이제부터 유영도 선수가 때리는 홈런 하나하나가 서울 제츠의 새로운 역사가 되는 거예요.]

사실, 영도가 KBO 진출을 결정했을 때 세워둔 최소 목표가 있었다.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한다, 이 정도는 해야 평범한 수준이고, 실패는 면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최소 목표.

그게 바로 제츠 역사상 최다 홈런인 32홈런이었다.

‘메이저리그에 돌아갈 수는 있겠네.’

덕아웃으로 돌아와 동료들과 손은 마주치던 영도의 생각처럼 정말 최소 목표였다.

KBO행이 실패로 끝나지 않고 재계약 정도는 겨우 따낼 정도의 성적.

목표한 메이저리그 복귀를 위해서는 이제부터 또 잘해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영도도 메이저리그 복귀를 걱정하진 않았다.

이미 그 수준은 넘어섰고, KBO에서의 경쟁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후반기의 유영도는 전반기의 유영도보다 훨씬 더 대단할 확률이 높았다.

***

“형! 형! 이번에는 양키스에서도 연락이... 어휴... 또? 또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냐?”

“시끄러워, 인마. 메이저리그에서 슬쩍 찔러보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뭘... 양키스라고 특별할 게 뭐 있냐.”

아무리 KBO라지만, 90경기 32홈런은 놀라운 수치였다.

홈런만 많은 것도 아니고 타율, 출루율, 장타율에 WRC+ 등 어떤 수치로 봐도 KBO를 지배하는 중이었으니 당연했다.

단순히 MLB와 KBO의 수준 차이로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KBO를 파괴하는 중이었고, 영도는 성장이 멈췄을 뿐, 성장 한계치만큼은 처음부터 인정받던 선수.

KBO 투수들을 재기 불가능한 수준으로 미친 듯이 파괴하지 않고서는 몸값도 아주 높아지진 않기 때문에 양키스는 물론, 그 어떤 메이저리그 구단도 찔러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뭐,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양키스잖아?”

“그래. 양키스지. 연간 수백에서 천만 달러 정도는 대충 날려 먹어도 문제없는 돈 많은 팀.”

영도도 양키스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모든 선수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메이저리거는 뉴욕 양키스라는 팀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특별한 감정까지는 아니었고, 같은 돈이면 양키스를 선택하지 않겠지만, 양키스가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

돈이 아무리 중요하지 않아도 돈에서 완전히 초연할 순 없었고, 돈 외에도 양키스가 가지는 위상은 영도에게도 의미가 있었다.

단, 지금 온 오퍼에 관심이 없는 건 양키스가 진심으로 데려오고 싶어서 찔러보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뭐하는데?”

“뭐하겠냐. 에이스 투수들 분석하지.”

“와... 징그럽다, 징그러워. 그거 아까 3시간 전에도 하던 거 아냐? 시즌 전에도 하루 5, 6시간씩 대여섯 번 돌려보고, 시즌 중에도 3, 4시간씩 또 본다고? 적당히 좀 해라, 진짜. 지금 형한테 위협적인 투수가 얼마나 있다고...”

“이런 식으로 해서 이런 성적이 나왔으니 멈출 수가 없다, 야. 좋은 결과가 나온 루틴을 어떻게 버려?”

대전 에이스는 현재 제츠와 매지션즈에 이어 3위를 달리는 팀이었다.

물론, 대전 에이스가 강팀이고 선발진이 탄탄한 팀이라서 특별히 분석에 힘 쓰는 건 아니었다.

이건 그냥 루틴이고 습관이었을 뿐...

“그래... 형도 갑자기 그럴 순 없겠지. 그럼 이번 올스타 브레이크를 계기로 시도해보는 건 어때? 충분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 그래 볼까? 하긴, 나도 커리어 내내 이렇게 살다가는 몸보다 눈이 먼저 망가지겠단 생각은 한다.”

“그러니까! 선수, 특히 야수한테 눈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래, 그건 생각 좀 해볼게.”

“매일 생각만 하지 말고. 생각해보겠다는 말도 벌써 몇 번째인지 알아?”

“... 그것도 생각 좀 해볼게.”

“쓰-읍!?”

“... 뭐하냐? 선 넘냐?”

< 1차 목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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