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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감 > (46/200)

< 기대감 >

“와... 에이스에서도 연락이 왔다고요? 으하하하, 후회 좀 하나 봅니다. 주전들 제대로 갖췄다고 그렇게 헌신짝처럼 내버리더니.”

타이탄스와의 3연전을 앞둔 월요일.

승도는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휴대폰을 부여잡고 있었다.

요즘 들어 부쩍 많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럼 벌써 세 팀인가요? 크으... 아직 전반기도 끝나려면 3주 정도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연락이 오다니... 시즌 끝날 때쯤엔, 그리고 스토브리그 때는 어떨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아, 벌써를 몇 번이나 쓰는 거냐고요?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동의어 반복하면 안 된다고요? 으하하하, 지금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보스.”

‘어휴...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는 말은 그냥 비유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입꼬리가 귀에 걸리기도 하네.’

영도는 슬쩍 헤드폰을 쓰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영도의 표정 역시 나쁘지 않았다.

승도의 입꼬리가 귀에 걸린 이유는 자신 때문이었으니까.

내가 잘 나간다는 이유로 옆에서 저렇게 기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다.

“어우, 당연히 벌써 결정 안 하죠. 우리 형, 이제 막 물들어오기 시작한 거 아시죠? 본격적으로 궤도 올라온 건 6월부터입니다. 남은 전반기, 그리고 후반기... 우리 형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승도의 전화기가 불타기 시작한 시기는 영도의 맹활약이 시작된 시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아직 승도가 영도의 정식 에이전트는 아니었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전담 매니저였고, 무엇보다 친동생이었다.

에이전시에서도 영도 관련 업무의 상당 부분을 승도에게 맡겨 영도의 신뢰를 끌어냄과 동시에 승도를 좋은 에이전트로 키우면서 고객과의 연결고리까지 굳건히 하는 중이었다.

“시즌이 끝나면 우리 형 몸값은 지금 상상하시는 것의 딱 세 배 정도 될 겁니다. 비록 처음 계약할 때의 기대치만큼 성장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런 만큼 성장한 이후의 최대치는 기대치보다도 훨씬 높을 겁니다. 계약을 해지하지 않은 보답... 충분히 해드리겠습니다.”

‘쟤는 대체 분위기 타서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아마 연락이 온 곳은 영도와 지금 계약이 되어있고 승도가 직원으로 있는 에이전시일 것이었다.

저 친구도 한국에는 생각보다 친구가 없으니까.

일만 하느라 그렇게 바쁘게 나다니면서도 일 관련된 사람들만 만나고.

다만, 친화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나다는 건 알았지만, 상사와의 통화에서도 저런 태도, 말투인 줄은 몰랐다.

그건 이쪽에서 좀 미안한 일이기는 한데, 그동안의 승도는 영도로 인해 항상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위치였으니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도 저렇게 신나 하는 걸 보니 흐뭇하네. 이래서 가족이 생기면 다들 버프를 받는 건가. 신혼버프, 분유버프, 뭐 그런 식으로?’

영도는 신나서 어쩔 줄 몰라 별의 별말까지 다 하는 동생의 표정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나름 괜찮은 에이전트가 되었음에도 형 때문에 항상 한구석이 어두웠던 회귀 전과 달리 지금의 동생은 비록 아직 에이전트로서는 햇병아리임에도 표정만큼은 항상 밝았고, 그 나이답게 패기 넘치고 상큼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같은 부모님에게서 나온 동생, 그것도 남자 동생이 상큼한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두운 모습보다는 나았다.

“... 우리 형이 말이죠. 아, 예? 당연한 거라고요? 그건 그런데... 지금 옆에서 그 형이 왜 네가 그렇게 신난 거냐고 눈으로 말하고 있어서요. 주체를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런 시선을 오해한 승도는 급하게 한 마디를 더했다.

형을 둔 남동생다운 눈치와 스피드였다.

비록 헛짚긴 했지만, 헛짚어도 위험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했다.

“이야... 우리 형! 대단한데?”

“뭐래. 아까 들어보니까 에이스에서 연락이 왔네, 어쩌네 하는 것 같던데.”

“정확해! 이번엔 에이스에서 혹시 다음 시즌 계획이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봤다던데? 아직 시즌 끝나려면 한참 남았으니까 확실히 이야기한 건 아닌데, 3루수 자리도 줄 수 있다는 뉘앙스도 있었나 봐. 그렇게 버리더니...”

“버렸다기보단 포기할만했으니 포기한 거지. 내가 포지션이나 팀 상황 대비 경쟁력이 없었던 건 사실이니까.”

“후후... 내가 팩트폭행 안 해도 되니까 다행이네. 형이 그렇게 잘 알고 있으니...”

“이 새끼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영도는 메이저리그 전체 유망주 랭킹에서 5위권 안에 들었던 특급 유망주 출신이었다.

마이너리그 시절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당연히 유망주 랭킹 1위를 차지했을 거라 모두가 평가했던 초특급 유망주.

비록 이후 성장이 정체되어 지명할당 후 방출로 쫓겨나고 KBO까지 흘러들어왔지만, 현재도 미국 기준 24세의 아주 젊은 선수였다.

몸값도 비싸지 않고, 최소한 몸값만큼은 안정적으로 해줄 수 있는 선수라 복권 긁듯 한 번 긁어보기도 부담스럽지 않고, 터지면 그 당첨금액은 어마어마한 노리스크 하이리턴의 복권.

만약 영도가 KBO행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메이저리그 내에서도 팀을 선택해서 갈 수 있을 만큼 인기는 많았다.

KBO행을 선택한 이후에도 시즌 개막 전부터 영도가 뼈와 살을 깎아 변신을 시도한다는 소식을 입수한 메이저리그 팀들이 달려들어 관찰 중이었고.

“어쨌든 지금은 주전으로 생각한다기보다는 포지션 경쟁자 중 한 명, 그것도 3루뿐 아니라 1루나 코너 외야까지 생각하는 팀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대로 끝낼 거 아니잖아?”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끝낼 생각은 없지.”

“구라치지 마. 형 요즘 하는 거 보면 진짜 자신감을 주체를 못 하는 것 같던데 뭘. 한창 건방지고 재수 없었던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그 정도 자신감은 아니었어.”

“... 역시 넌 나를 너무 잘 알아.”

KBO를 그냥 파괴하고, OPS 10할에 WAR 10을 넘기고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WAR 3.0급의 평범하게 준수한 선수에 그치는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

때문에 메이저리그로 돌아갈 때 최대한 많은 것을, 많은 기회를 얻어내기 위해선 말 그대로 KBO를 박살 내는 걸 넘어 갈기갈기 찢은 뒤 씹어먹어야 했다.

영도야 그런 부분에 담백한 성격이라 일단 메이저리그에 돌아간다는 것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물이 올라 선수의 가치가 높아지는 타이밍.

에이전시와 승도 입장에선 이럴 때 숙이고 들어갈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난 진짜 기대하고 있어. 이번 시즌의 형은 중학교, 고등학교 때보다도 더 멋지고 대단해 보이니까.”

“... 네 덕분이다. 한국에 온 것도, 처음부터 모든 걸 다 뜯어고친 것도 다 네 조언 덕분에 할 수 있었던 거니까.”

승도는 항상 영도의 뒤에 가려져 있고, 그 존재와 공로를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지만, 영도가 이번 시즌 보여준 급격한 발전, 성장에 큰 지분을 차지했다.

어떻게 보면 에이전트와 매니저로서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었다.

“후후... 당연하지. 내가 말했지? 형은 야구장에서, 나는 사무실에서 야구계를 놀라게 해주자고. 형이 시작했는데, 내가 가만있을 순 없지.”

“그래. 파이팅해라. 네 덕에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다 도와야지.”

“선수가 에이전트를 도와주는 유일한 방법이 뭔지 알아?”

“잘 모르겠는데. 그것보다 방법이 하나밖에 없냐?”

“당연히 하나지. 선수가 에이전트를 돕는 건 그냥 성적을 잘 내면 돼. 성적을 잘 내고 스타성에 흥행성까지 키우면 200점이고. 기억해. 에이전트의 힘은 데리고 있는 선수의 성적에서 나오는 거야.”

“... 근데 너... 내 에이전트 아니잖아. 매니저 주제에 좀 나댄다, 너?”

“... 나중에 전담 에이전트로 써주실 거죠, 형님? 항상 멋지고 쿨함이 줄줄 흐르는 우리 형님...”

***

“안녕하세요, 여러분! 여러분의 황근주, 인사드립니다! 오늘은 예고해드렸던 것처럼 우리 TV 스피릿의 여신! 마스코트! 리포터 겸 PD로 재직 중인 신초희 씨와 인사드리겠습니다. 초희 씨, 시청자분들에게 인사 한 번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여러분의 신초희, 인사드립니다!”

“아... 제 트레이드 마크 빼앗겼네요. 제 대사인데 말이죠.”

“... 근데 오빠? 왜 또 존댓말 해요? 우리 지난번 방송에서 대충 정리했던 것 같은데?”

“아니... 그래도 구단에서 운영하는 공식 방송인데 존댓말 정도는 써야 하지 않나...”

“내가 PD인데 대체 누가? 누가 그래요? 우린 인터넷방송이니까 공식방송답게 시청자들, 그러니까 우리로 따지면 똑같이 제츠를 응원하는 팬들끼리 으쌰으쌰하면서 친하게 지내자고 분명 말했던 것 같은데?”

“... 에이, 솔직히 말해? 솔직히 말하면 너랑 반말하면서 막 친하게 대하고 그러면 메일이 와!! 메일이 엄청 온다고! 친한 척하지 말라고 막 욕이 담긴 메일이!!”

“... 오빠도 많이 힘드셨나보네요... 팬 여러분과 대화할 땐 존댓말로 하는 게 당연하지만, 나한테는 반말로 해도 돼요. 자연스럽게 하자고요, 자연스럽게.”

황근주는 제츠 장내 아나운서 출신으로 4년 전 공식방송 캐스터로 들어온, 34세의 유부남이었다.

그러나 제츠 공식방송 TV 스피릿의 마스코트로 통하는 신초희의 팬덤이 너무 강력했다.

2040년이고, 스포츠팬 중 여성의 비율도 많이 늘어났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바닥은 남성의 비율이 많이 높은 바닥이었다.

“큼, 큼...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오늘은 일단 반말로 진행하겠습니다. 우리 팬 여러분들도 좀 봐주세요. 보셨죠? 초희가 먼저 반말로 하자고 했습니다?”

“경기 이야기하죠, 경기. 아니, 타이탄스... 친구들이랑 붙는데 왜 우리끼리 싸워요? 다른 때는 우리끼리 싸워도 오늘 같은 날은 절대 싸우면 안 되는데.”

- 우리 쵷이 싸움을 멈추랍신다!! 다들 싸움을 멈추어라!!

- 예, 쵷! 명 받들겠습니다!

- 어휴... 그 정도면 이제 야구 잠깐 쉬고 나가서 여자 좀 만나라. 제츠도 그 정도는 봐줄 거야.

 - 너희 잘못이 아니야. 너희의 상황이 잘못한 거야. 봐줄 테니 야구는 잠깐 쉬고 나가서 현생을 즐기도록 해.

- 무슨 소리!! 여기 쵷이 있는데 어떻게 나가서 여자를 만나!? 쵷과 야구면 난 행복하다고!!

“크흠!! 어린이날 3연전 이후 다음 3연전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일정이 이렇게 잡혔는데, 나쁘진 않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오빠가 말한 것처럼 우리한테 어린이날 3연전을 전부 처절하게 발리고부터 그냥 처절해진 타이탄스인데, 아직 빠져나오진 못했어요.”

“그 처절해진 팀을 이제야 만나는 게 좀 빡치긴 하지만... 그렇잖아? 아니, 우리가 땅 파서 묻어줬는데, 왜 우린 48경기 만에 만나? 다른 팀들은 다 타이탄스 실컷 패고 승수 신나게 쌓아갔는데?”

“다른 건 다 상관없는데 매지션즈가 그 사이 두 번 만나 5승 1패를 가져간 게 좀 짜증 나죠?”

최근 몇 시즌 동안 대 타이탄스 상대 전적이 매우 좋지 않았던 제츠였다.

드디어 기회를 잡았고, 그 기회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냈는데 정작 타이탄스가 부진한 시기 내내 맞대결이 잡혀있지 않다니...

“그래도 오랜만에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이 타이탄스를 상대한다는 게 뿌듯하긴 합니다. 이번 3연전에서 우린 1, 2선발 다 빠지고 류종인, 윤한태, 전상일 선수가 연달아 등판하는데, 타이탄스는 오민수, 스넬, 장진규 순서로 등판합니다.”

“호르헤 루고를 방출하고 새로운 외국인 투수를 구하는 중이니까 스넬-장진규가 현시점에서 타이탄스의 1, 2선발이에요. 분명 무게감이 많이 떨어지죠?”

“타이탄스가 투수진 때문에 고생한 지는 꽤 되었지만, 이번 시즌은 타선과 함께 헤매는 느낌이잖아. 참 이상하지? 우리랑 타이탄스랑 같이 잘 나가는 시즌은 왜 없지? 꼭 번갈아가면서 헤맨단 말이야.”

“그러니까요. 유영도 선수가 등장하면서 드디어 우리도 타이탄스 부러워할 필요 없는 홈런타자가 생겼다, 했는데 오히려 타이탄스가 우릴 부러워하고 있어요. 김진형 선수가 이렇게 갑자기 부진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제츠 입장에선 정말 오랜만에 타이탄스와의 맞대결을 기다리는, 이쪽에서 오히려 자신 있어 하는 시즌이었다.

전통의 라이벌이긴 하지만, 최근 몇 시즌은 분명 타이탄스가 제츠를 편하게 생각하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시즌은 반대였다.

“자! 드디어 우리 손성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설 준비를 끝냈습니다! 이제 편하게 봅시다. 타이탄스전이지만, 편하게! 어떻게 우리 선수들이 타이탄스에게 승리를 빼앗아오는가, 그것에 집중하면서 편한 마음으로 지켜봅시다!”

“크으... 빨리 경기가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선수들이 오늘은 또 얼마나 좋은 모습을 보여줄까, 유영도 선수는 오늘 또 홈런을 쳐낼까? 이런 긍정적인 물음표만 존재하는 시즌은 정말 오랜만이거든요?”

제츠 공식방송의 분위기가 곧 제츠 팬덤의 분위기였다.

영도의 합류로 인해 젤레발을 실컷 떨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절반을 치른 시점까지 리그 1위를 달리는 이 현실이 기쁘면서도 낯설었다.

그동안 당한 게 있기에 아직 젤레발의 여파가 어떻게 다가올지에 대한 불안감은 있었지만, 일단 당장은 이 현실을 즐길 생각이었다.

< 기대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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