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멘탈과 재능 >
[‘깜짝 스타’ 윤한태, 어린이날 시리즈 전초전에서 6이닝 7피안타 무사사구 1실점으로 차기 에이스 자리 예약!!]
[‘영혼의 라이벌’ 타이탄스 상대로 환상적인 데뷔전 치른 윤한태, 제츠가 원하는 믿음직한 토종 선발이 되어줄 수 있을까]
[올해 막 고등학교 졸업한 순수 신인 윤한태, 손성호 은퇴 전 우승 노리는 제츠의 마지막 퍼즐인가]
[20세 윤'한'태 - 24세 '류'종인, 한-류 듀오. 제츠의 미래는 한류 듀오가 이끈다!!]
[‘34경기 17홈런’, 두 경기당 홈런 1개의 괴력. 홈런 2위 김진형 앞에서 6개까지 격차 벌리며 독주 체제 준비하는 유영도.]
[영입 당시 기대치의 200% 해내는 유영도, 손성호-한영훈이 준비하고 유영도가 쏜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연전으로 시즌을 치러냈다.
한 팀과 한 팀이 한 번 붙었다는 것은 3일 동안 3경기를 펼치는 게 기본이라는 뜻이었다.
당연히 어린이날 시리즈가 중요한 만큼, 같은 3연전 내에서 펼쳐지는 나머지 두 경기 역시 평소보다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어린이날 3연전의 1차전, 훌륭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완벽한 데뷔전을 치른 만 18세의 순수 신인 선발.
신인 드래프트 전부터 2040시즌 신인 드래프트 BIG 3로 꼽히며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특급 유망주.
KBO 최대의 라이벌인 제츠와 타이탄스, 이 부담스러운 경기로 데뷔해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 신인 투수.
윤한태는 이번 한 경기, 단 한 경기를 통해 서울 제츠의 미래가 되었다.
외국인 원투펀치가 강하지만, 결국, 외국인 원투펀치는 근본적으로 항상 강력할 수 없었다.
외국인 선수 영입은 여전히 팀의 1년 농사를 결정짓는, 적당히 강력한 수준이던 팀이 단번에 우승후보로 올라가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장기적으로 꾸준한 강팀이 되려면 국내 선수가 중요했다.
제츠는 지난 시즌 외국인 투수 영입에 성공하며 강력한 원투펀치를 완성했고, 재계약에 성공하며 이번 시즌까지 그 원투펀치를 유지했다.
하지만 3선발 류종인은 만 24세의 아직 젊은 선수라 성장할 부분이 많이 남았고, 나머지 국내 선발들은 5선발 후보군만 많았지, 계산이 서는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서울 제츠는 벌써 몇 시즌째 새로운 국내 선발 발굴을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선발투수 육성이 약하다는 평가답게 긴 기다림 끝에 나온 새로운 얼굴도 팀이 키워냈다기보단 혼자 잘 커서 합류한 고졸 3개월 차 윤한태라는 게 아쉬웠지만, 어쨌든 긴 기다림 끝에 등장한 대형 신인 기대주인 만큼 구단도, 팬들도 그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체 나랑 그 자식 사이에 무슨 차이가 그렇게 있는 거냐.’
윤한태라는 깜짝 스타가 탄생하고, KBO 최대 팬덤인 제츠 팬덤이 새로운 스타의 탄생에 축배를 드는 동안...
의도치 않게 깜짝 스타 탄생의 조연이 되어버린 타이탄스 야수진, 특히 타이탄스 야수진의 핵심이자 지난 시즌 MVP 2위를 차지한 강타자 김진형은 비디오 분석실에서 어제 경기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
김진형의 눈빛에서는 묘사 그대로 레이저가 쏘아졌다.
아무리 낯선 투수와 만나면 타자가 불리하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짜리 핏덩이였다.
그런 선수에게 4타수 무안타 1삼진으로 꽁꽁 틀어막힌 그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대다수의 MVP급 후보가 다들 그렇듯 김진형 역시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한 선수였다.
‘지금 내가 이걸 보고 있을 때가 아닌데...’
사실, 이미 어제 경기는 끝난 경기였기에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분석실에 들어올 때도 오늘 경기 선발인 타일러 로즈의 영상을 한 번 더 봐야겠다고 말하며 들어왔고.
‘이놈의 미련, 이놈의 뒤끝...’
이런 뒤끝이 김진형을 최고의 선수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기복이 심하다는 단점 역시 함께 만들어주었다.
안 풀리면 안 풀리던 걸 계속 생각해 파고 들어가 부진이 길어지는, 기복이 심하다는 게 김진형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 대체 이걸 어떻게 넘긴 거지? 이게 사람이야?’
다만, 김진형도 근본적으로 타자인지라 타석에서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다.
타자는 10번의 기회 중 3번만 살려도 A+급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
특급 신인이 아니라 F급 2군 선수를 상대해도 무안타로 묶이는 게 아주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기복이 잦다고 해도 그때마다 빠져나올 때까지 오래 걸린다면 MVP급 타자라 할 수 없었다.
김진형은 기복을 컨트롤하진 못했지만, 기복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을 현저하게 줄이면서 MVP급 타자가 되었다.
지금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다른 부분이었다.
바로 1회 말 영도가 보여준 홈런과 4회 초 자신이 때려낸 외야 플라이의 차이.
절대 장타가 나올 수 없는 코스, 심지어 코스와 높이 모두 더 까다로운 상황에서 영도가 잡아당긴 타구는 펜스를 넘어갔고, 자신이 잡아당긴 타구는 워닝트랙도 가지 못한 채 잡혔다는 게 김진형의 심기를 건드렸다.
‘내가 억지로 당황해서 때린 타구도 아니었어. 영도가 얼마나 노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충분히 노리고 때린 타구였다고.’
자신의 펀치력에 절대적인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김진형.
적어도 KBO 내에서, 아니, 한국 국적의 야구선수 중에서 자신보다 순수 파워가 뛰어난 선수는 있겠지만, 배트를 들고 있을 때의 펀치력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영도가 보여준 홈런은 똑같은 순간이 10번 와도 10번 다 재현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굴욕적인 느낌이 자꾸 들었다.
사실, 보다 유리했던 다음 타석에서의 외야 플라이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젠장. 뭐가 다른데? 나랑 뭐가 다른 건데.’
김진형은 영도만큼은 아니더라도 밑바닥과 최정상을 모두 경험한 선수였다.
아예 한 번의 선수인생을 실패로 마무리하고 말도 안 되는 기적으로 인해 다시 한 번 기회를 받은 영도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 6년 차인 김진형 역시 3년 차까지는 팀의 전폭적인 푸쉬를 받으면서도 매우 부진해 팬들의 욕받이로 전락했던 전적이 있었다.
4년 차 때 가능성을 보여주고, 5년 차인 작년부터 대폭발해 MVP 투표 2위까지 올라간 케이스.
그렇기에 여전히 열등감과 조급함이 남아 있었다.
한 번 부진하면 오랫동안 이어지는 것도 최정상에서 과거의 습관과 영향이었다.
정말 최고가 되기 위해선 슬럼프가 있는 듯 없는 듯, 빠르게 극복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직 부족했다.
“야! 너 지금 뭐하냐?”
“아... 선배님...”
그때, 타이탄스 최고참 홍인주가 분석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김진형은 타이탄스의 핵심이었고, 당연히 팀에서 모든 부분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성격 역시 당연히 알고 있었고, 분석실에 있다는 소식에 이럴 줄 알고 최고참을 파견한 것이었다.
“지금 네가 보고 있던 영상이 뭐야.”
“...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새X야. 그거 어제 경기지? 뻔하지, 네가 하는 짓이야. 시X, 그거 어제 경기지?”
“... 예. 죄송합니다.”
타이탄스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이고 올드스쿨한 팀 분위기를 보여주는 팀이었다.
감독 역시 20, 30년 전에 흔했던 권위적인 스타일이었고, 팀 분위기도 과거의 국내 팀들처럼 선후배 위계질서가 강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긴 커리어를 자랑하는 선수가 홍인주였으니...
집에서 편히 쉬다가 7년 후배 때문에 호출된 권위적인 선배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리 없었다.
“씨X... 이게 무슨 X같은 상황이냐? 내가 한참 후배 때문에 이 시간부터 잠실에 와야겠냐? 안 그래도 여기 올 때마다 X같은데?”
“죄송합니다.”
영상 자체는 당연히 타이탄스가 준비한 영상이었지만, 각 구장마다 원정팀을 위한 분석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잠실에서 시리즈를 치르는 타이탄스이기에 당연히 여기는 잠실 올림픽 파크 내 원정팀 전용 분석실이었다.
양 팀 대부분의 선수들은 상대의 홈구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찝찝해하기 때문에 갑작스레 불려 온 홍인주의 기분은 더더욱 가라앉아 있었다.
“에이, 씨X... 됐고 타일러 로즈 영상이나 틀어. 왔는데 그거라도 해야지.”
“예. 죄송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선배의 말에 토를 다는 건 적어도 타이탄스에서만큼은 용납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홍인주의 말이 절대적으로 정답인 상황이기도 했고.
다만, 아직 기량을 전부 다 따라오지 못한 김진형의 무른 멘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
“지금 원정팀 분석실에 김진형 선수랑 홍인주 선수가 와 있어요.”
“오... 그래요?”
그 시간, 영도 역시 홈팀 분석실에서 다시 한 번 조지 스넬의 영상을 분석하고 있었다.
영도는 여전히 어떤 투수를 상대하든 120%의 노력을 기울였다.
누군가는 이걸 멘탈 문제라 말할 수도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아 비교적 쉽게 흔들리는 김진형과 달리 영도의 멘탈은 리그 내 다른 특급 선수들과는 다를지라도 누구보다 단단하게 완성되어있다는 게 다르긴 하지만.
“오늘은 1등 못하셨네요? 김진형 선수가 한 20분 정도 먼저 나왔거든요.”
“흠... 김진형 선배님은 옛날부터 성실하기로 유명했으니까 인정하겠습니다. 홍인주 선배님은... 좀 의외지만.”
청소년 대표팀으로 함께 생활할 때도 그랬고, 전생에서도 30대 후반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갔던 김진형은 성실한 선수로 유명했다.
홍인주는... 글쎄. 타이탄스 선수단 분위기는 전생에도 유명했고, 김진형이 선수생활 황혼기를 보낼 때 관련 일화들을 많이 이야기했기 때문에 왜 왔는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게으른 천재의 전형과도 같은 선수였으니까.
‘애초에 써드피치 훈련하기 귀찮다고 타자를 선택한 선수인데, 30대 중반에 선발투수 분석하겠다고 세 시간이나 일찍 온다고? 말도 안 되지.’
아마추어 시절, 투수로도 타자로도 압도적이었던 홍인주는 당시 드래프트에서 압도적인 NO.1으로 평가받았다.
투수의 육성 기간이 더 길고, 써드피치를 새로 익히기 귀찮다며 타자를 선택한 건 매우 유명한 일화였다.
그렇게 게으른 성격과 절제와는 거리가 먼 부실한 자기관리로 결장도, 잔부상도 많은 선수인데 통산 321개의 홈런을 기록, 통산 홈런 순위 TOP 10 진입을 눈앞에 둘 만큼 재능 하나만큼은 확실한 선수이기도 했다.
그 빡센 타이탄스에서 비교적 이른 연차부터 자유를 준 선수였으니 그 재능이야 뭐...
‘자기관리를 그따위로 하는데도 30대 후반까지 기량을 유지하면서 선수생활을 이어간 축복받은 육체도 유명하고. 제길... 그건 참 부러워.’
몸이 망가진 게 전생에서의 실패 원인 중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하는 영도이기에 홍인주의 타고난 재능과 피지컬은 항상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졌다면 절대 저 정도 성적에서 끝나지 않았을 테니까.
‘이제는 다 의미 없는 소리지만.’
영도는 쓰게 웃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경기 시작 세 시간 전이지만, 오늘은 다른 일정이 있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두 시간 빨리 경기장을 찾아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고.
“어? 유영도 선수. 어디 가세요? 한 시간 있다가 사인회 있는데...”
제츠와 타이탄스의 어린이날 시리즈는 KBO가 가진 최고의 흥행카드였다.
당연히 이런 기회를 그냥 넘길 리는 만무했다.
잠재적인 미래의 팬층을 잡기 위해 어린이날에는 경기가 펼쳐지는 모든 구장에서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고, 오늘 잠실에선 양 팀 선수들의 합동 팬 사인회를 비롯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거기 못 오는 아이들이 밖에서 기다린다고 들어서... 시무룩해 있을 것 같아 애들 보러 갑니다.”
당연히 참가 인원이 정해져 있는 행사이기에 들어오지 못한 아이들도 많았다.
팬들에게 신경 쓸 정신이 아직까진 없는 영도지만, 그래도 아이들이라면 달랐다.
어린이날은 모든 어린이가 행복해야 했다.
영도는 행복해야 할 어린이날에 시무룩해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흔쾌히 자신의 시간을 내주었다.
“오... 유영도 선수... 의외네? 머릿속에 야구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대화를 나누던 구장 직원은 감탄한 표정으로 영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영도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이 상황은 이후 ‘익명의 한 제츠 관계자’의 입을 통해 전해져 영도의 이미지 상승에 일조하게 되었다.
< 멘탈과 재능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