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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매지션즈, 탄탄한 선발진의 높은 마운드 앞세워 30경기 20승 고지 선착. 19승 서울 타이탄스, 18승 서울 제츠의 매서운 추격 이겨낼까?]
[수원과 서울, 수도권 팀들 강세에 도전하는 대전과 광주. 의외의 모습 보여준 부산, 대구의 반전 가능할까?]
[서울 제츠의 개막 후 한 달 성적표. 선발 B, 불펜 B, 타격 A, 수비 B. 그리고 분위기 S]
“여보, 오늘은 쉬는 거야?”
“응. 당신 남자도 이제 늙어서 이렇게 중간중간 쉬어줘야지.”
“으이그... 그래요, 그럼. 푹 쉬어야지. 그럼 들어가서 좀 더 자지, 왜 나왔어?”
“늙어서 잠이 없어졌나...? 으하하하.”
손성호는 누구보다 더 열정적으로 이번 시즌을 치르는 중이었다.
영도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손성호만큼 열정적이지 못했고, 훈련량도 이를 반영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36세의 베테랑이었다.
아무리 10대 못지않은 뜨거운 열정이 가슴 속에 살아 숨쉰다고 해도 나이를 속일 순 없었다.
그는 주기적인 휴식이 필요한 노장이었고, 누구보다 본인이 이를 잘 알았다.
뜨거운 열정마저 철저히 관리하며 필요하다면 다 잊고 쉬는 법도 알고 있는 진정한 베테랑이 바로 손성호였다.
“이번 시즌은 좀 어때? 이번엔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도 가능성은 꽤 되는 것 같은데. 2030시즌 이후로 가장 분위기가 좋아.”
“유영도 선수가 되게 잘하더라. 벌써 홈런 15개 정도 치지 않았어? 딱 2경기 마다 1개씩이던데?”
“걔는 진짜 괴물이라니까? 어휴... 나도 진짜 어떤 선수를 봐도 나보다 낫다고, 전성기였어도 상대가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걔는 좀 그렇더라고.”
“음... 내 남자가 세계에서 제일 멋있긴 하지만... 좀 그렇긴 하지? 내가 잘은 모르지만, 타고난 게 아예 다르던데?”
“타고난 것도 있기는 한데, 내가 걔보다 더 나은 것도 있어. 그것보다는 그냥 야구에 미친놈이야, 그놈은. 하루가 24시간이면 36시간씩 야구 생각만 하는데 무슨 수로 따라잡아, 그걸.”
말은 이렇게 해도 이번 시즌 손성호의 성적은 여전히 훌륭했다.
3할 초반의 타율과 3할 후반의 출루율, 4할 초반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1번 타자의 역할을 120% 수행 중이었다.
그리고 17년간 쌓인 커리어가 슬로우 스타터임을 증명하고 있었기에 이보다 더 나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을 거란 예상이 가능했다.
“당신도 젊었을 땐 노는 거 무지하게 좋아했지. 내가 얼마나 속을 끓였는데... 유영도 선수가 처음부터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잘할 수밖에 없었네.”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번 시즌이 절호의 기회인 거야. 우승 반지 없는 선수 중 가장 뛰어난 선수 같은 걸로 기억되는 건 싫으니까.”
“어휴... 당신 우승 못 하면 평생 그것 때문에 후회하면서 살텐데 내 남자가 그러는 꼴은 또 못 보지. 좋아. 올해는 내가 팍팍 밀어줄게! 말만 해.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장어? 낙지? 뭐, 뭐 먹을래?”
“... 그거 나 응원하는 거 맞지? 다른 이유는 없는 거지?”
“어머! 짐승! 몰라, 뭘 생각하는 거야?”
“하, 하하... 아무리 쉬는 날이어도 훈련 말고 운동은 해야 할 것 같은...”
“어딜 가려고!!”
이미 개인으로서 가능한 영광은 MVP를 제외하고 모조리 쓸어담은 선수가 손성호였다.
그런 손성호의 우승에 대한 갈망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당연히 가족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기량은 몰라도 최소한 나이로 따지면 이미 커리어 황혼기를 보내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최선을 다해 받쳐주고 있었다.
다른 목적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아빠!! 아빠!! 아빠 오늘 안 나간다고 했잖아! 어디 있어, 지금!?”
“딸! 아빠 여기 있어!”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이 아빠를 찾았다.
딸의 부름에 반응하는 손성호의 목소리에 안도감이 느껴진다면 착각일까?
“아빠! 나랑 놀아! 나가자, 나가자!!”
“우리 딸, 아빠랑 나가 놀고 싶어?”
“응!! 아빠 집에 잘 없잖아!”
“으이그...”
일부 사람들은 야구라는 종목의 특성을 무시한 채 저 정도면 레저라며 비아냥대곤 했다.
축구, 농구 등 다른 스포츠와 비교해 경기당 체력 소모가 매우 적고 체형만 봐도 운동선수라고 하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형편없는 비교였다.
경기당 체력소모가 적은 종목이긴 하지만, 그건 종목의 특성 때문에 그런 것이고, 야구선수들의 체형은 일부 불성실한 선수들을 제외하면 아무리 비대해 보여도 그 안에 무시무시한 근육이 숨겨져 있었다.
체형으로 따지면 운동선수 중 가장 비대한 씨름 선수들도 평균 체지방량이 또래의 회사원들보다 훨씬 적었다.
야구선수들 역시 종목에 맞는 체형을 만들기 위해 뼈를 깎아 노력했다.
무엇보다 야구는 체력소모가 적다는 그 특성 때문에 연습경기와 시범경기 포함, 거의 8개월 동안 200여 경기를 소화해야 했다.
몸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가족들과 계속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 그로 인한 외로움이 선수들을 괴롭혔다.
1년의 거의 절반을 집 밖에서 생활해야 했으니 자녀가 있는 선수들은 매일 밤 그리움에 몸부림쳤다.
“그래, 나가자. 어디 갈까? 붕붕이 타러 갈까?”
“웅!! 붕붕이!!”
“여보, 괜찮겠어? 오늘은 푹 쉰다며.”
“으잇차! 우리 딸이랑 같이 있는 게 쉬는 거지! 아빠는 딸이랑 같이 있으면 막 힘이 난다니까? 딸은 어때?”
“나두! 나두 아빠랑 있으면 막막 신나!!”
시즌이 개막한 이상 손성호 역시 딸과 보내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오늘처럼 쉬는 날이면 최대한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하는 편이었다.
‘몸은 아직 버틸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짓, 오래는 못하겠어. 우리 딸 학교 가기 전에는 끝내야지. 요즘 애들 사춘기도 빨라진다는데.’
몸도 몸이지만, 딸내미 때문에라도 손성호에겐 시간이 없었다.
아무리 늦어도 딸의 나이가 두 자릿수를 찍기 전에는, 앞으로 4년 안에는 이 짓을 끝내고 딸과 함께 최대한 많은 추억을 쌓아두고 싶었다.
***
“영도야. 내 말 알아들었지? 그러니까 부탁 좀 하자.”
다음 날, 훈련에 복귀한 손성호는 다시 한 번 영도에게 다가갔다.
물론, 영도가 이런 말에 부담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만약 이런 말 한마디에 부담을 느끼는 성격이었다면 천하의 손성호가 쉽게 꺼내지 않았을 말이었다.
“선배... 저 열심히 하고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열심히 하고 있지... 에휴... 사람이 늙으면 참을성이 없어진다고, 내가 요즘 그렇다.”
“무슨 일 있습니까?”
“그냥... 어제 쉬면서 하은이랑 놀아주는데, 하은이가 아빠를 좀 더 자주 보고 싶은가 봐. 그럴 수밖에 없지. 고 쪼꼬만 애가 아빠를 1년에 반은 못 보니까 당연히 보고 싶겠지.”
그 누구보다 우승이 간절한 베테랑, 손성호.
그런 만큼 영도에게 더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의 리그 역사를 봤을 때, 영도 같은 외국인 선수와 함께하는 건 거의 로또 당첨과 맞먹는 행운이었으니까.
제츠가 나름 탄탄한 전력을 갖춘 팀이라고는 하지만, 팀 특성상 중요한 경기 때 더욱 강해진다거나 하는 건 기대할 수 없었다.
이 팀이 우승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영도였다.
“네가 있는 이번 시즌이 나한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
타일러 로즈와 에디 렉스, 지난 시즌 합류해 든든한 원투펀치 역할을 맡아준 검증된 1, 2선발.
이번 시즌 합류한 풀타임 메이저리거 출신 괴력의 홈런타자 유영도.
외국인 선수 라인업이 이렇게 완벽한 건 KBO 역사를 뒤져봐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럴 때마저 우승하지 못한다면 제츠의 다음 우승은 23년이 아니라 30년, 50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다.
“일단 지금은 어린이날 시리즈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 그렇지. 시리즈 하나 하나가 중요한 거지.”
솔직히 말해서 우승 타령은 이제 좀 그만해줬으면 했다.
스프링캠프부터 잊을만하면 계속 언급하는데,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쿨타임을 좀 길게 가져가줬으면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손성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운동선수는 항상 외로움, 고독함과 싸우는 직업이고, 시즌이 길고 집을 오래 떠나 있어야 하는 야구선수는 그중에서도 심한 편에 속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멘탈이 흔들리는데, 오랜만에 만난 딸에게 그런 말을 들었으니 심란할 수밖에.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할 거라는 겁니다. 선배님과 달리 딱히 우승에 집착하진 않지만, 매 경기 최선을 다하면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래. 미안하다, 야. 늙으면 쓸데없는 걱정이랑 말이 많아진다고 하던데 내가 딱 그러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대충 넘겨. 지금도 넌 이보다 더 잘할 수 없을 정도로 잘해주고 있으니까.”
압도적으로 최고였던 시절은 없어도 17년간 꾸준한 모습을 보여 KBO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거인이지만, 지금 보이는 그의 뒷모습은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그놈의 우승이 대체 뭐라고...’
아직 영도는 대체 왜 그와 같은 위대한 선수가 저런 뒷모습을 보여줘야 하는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우승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저런 거인의 등마저 좁아 보이는 것인지...
영도는 아직 우승의 가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많은 도움을 받은 베테랑이 저 정도까지 원하면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조금씩 생겼다.
어차피 같은 팀이고 커리어에 똑같이 한 줄씩 추가되는 거니까 꼭 그를 위한 거라고 하기도 뭐했다.
***
[올해도 찾아온 어린이날 시리즈! 서울 제츠와 서울 타이탄스, 이번엔 잠실돔에서 3연전 치러]
[어린이날 시리즈 통산 전적 26승 26패로 치열하게 대립 중인 양 팀, 어떤 팀이 다시 한발 앞서게 될까]
[‘에이스 출격 준비 완료’, 어린이날 시리즈에 맞춰 등판 일정 조정한 양 팀, 시리즈 2차전에 스넬 vs 로즈 맞대결 확정!!]
리그 흥행을 위해 매년 어린이날마다 홈팀만을 바꿔 맞붙는 제츠와 타이탄스의 어린이날 시리즈.
언제나처럼 양 팀 모두 시리즈 2차전인 어린이날 시리즈에 맞춰 선발 로테이션을 조정해가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특히 지난 시즌 제츠가 승리를 가져가면서 통산 전적의 균형을 맞춘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중요한 경기였다.
자연스럽게 시리즈 1차전에는 5선발, 혹은 임시 선발이 등판하게 되었다.
제츠는 크게 기대하는 특급 유망주이자 2군에서 선발 수업 중이었던 20세의 고졸 1년차 루키, 윤한태를 올렸고, 타이탄스는 5선발 성기주를 선발로 예고했다.
“너만 미국 가서 성장한 거 아냐. 네가 떠난 2년, 그리고 프로 데뷔 후 7년. 나도 많이 컸다고. 쉽게 보면 큰코다칠걸?”
타이탄스 선발 성기주는 경기 전 찾아와 옛날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돌아갔다.
고교 시절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티를 대놓고 보여주었음에도 자기 할 말만 하더니 그대로 떠나버렸다.
“아, 맞다. 쟤도 우리 학교 출신이었지? 너랑 동기?”
“예. 같이 입학하긴 했죠.”
“친했어?”
“아뇨. 그때도 일방적으로 쟤가 절 질투했죠.”
성기주는 고등학교 시절, 영도의 뒤를 이어 1학년 중 두 번째로 뛰어난 투수였다.
물론, 1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로 활약한 영도와는 수준 차이가 상당했고...
“제가 웬만해선 이런 생각 잘 안 하는데...”
“안 하는데?”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요. 자신감도 좋지만, 저 정도면 병인데...”
모르긴 몰라도 지금은 그 격차가 더 벌어졌으면 벌어졌지, 좁혀지진 않았을 터였다.
본인에게 집중할 시간도 모자라 남을 고평가하지도, 저평가하지도 않는 영도지만, 지금 성기주의 생각이 뭔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음... 그래도 배포는 크네? 선발진이 그리 강하지도 않은 타이탄스에서 겨우겨우 로테이션에 포함된 것치고는...”
손성호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영도의 기분이 상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면 경기 내에서 신나게 두들겨 줄 테니까...
손성호는 항상 한결같은 타입이었다.
< 배포는 크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