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몸과 마음의 고향 > (19/200)

< 몸과 마음의 고향 >

“컨디션은 괜찮지?”

“당연하지. 내가 실력은 몰라도 몸 관리는 이제 전문가 수준이잖냐.”

“그냥... 타고난 몸이 괴물인 거지. 난 메이저리그 가는 선수들 정도 되면 다 형처럼 체력도 괴물이고 감기 하나 안 걸리는 줄 알았다니까.”

“타고난 건강 체질인 건 사실이지.”

타고난 건 아니고 회귀자의 특전일 뿐이지만.

그걸 ‘뿐’이라고 표현해도 되는 건지는 무시하고.

“지구 최강의 질병인 감기도 누구들한테는 안 통한다던데...”

“그래서 내가 3년에 한 번은 걸리더라.”

“... 그래서 바보는 아니라고?”

“안 걸리는 건 아니니까. 시끄럽고 내 배낭이나 한 번 확인해줘. 혹시 빼놓고 온 거 없나.”

“아니... 매번 말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하겠다고, 도시락도 자기가 싸겠다고 하면서 제일 간단하고 중요한 장비 확인을 나한테 시키냐...”

“뭘 새삼... 그냥 하던대로 해, 인마.”

영도는 멋쩍게 웃으며 승도의 엉덩이를 툭 걷어찼다.

사실, 이제는 요령도 꽤 좋아져서 충분히 직접 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어느새 루틴이 되어버렸다.

징크스, 루틴이 많기로 유명했던 만큼 이 정도로 오래 계속된 행동들은 전부 다 징크스였다.

“1루수 미트는 그렇다 쳐도 이제 외야 글러브는 놓고 다니지? 제츠는 내야수가 없는 게 문제지, 외야수는 넘쳐나는 팀이니까.”

“그래도 내 장점 중 하나인데 능력을 키우진 못해도 죽이면 안 되지. 여기서든 미국에서든 언제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는데, 1루, 코너 외야는 지금만큼만 해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으니까.”

“하여튼 형은... 뭐 하나에 목숨 걸지 않고 꼭 그렇게 뒤를 준비하더라.”

“쯧쯧... 그래서 네가 내 동생인 거다. 원래 현명한 사람은 물러설 곳을 정해놓는 법이지. 뒤가 든든해야 잡념 없이 최선을 다할 수 있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살 수 있으니까.”

“... 도망갈 곳이 있으니 비교적 쉽게 포기하는 게 아니고?”

“야, 전쟁하냐? 계백이야? 그런 건 진짜 목숨이 걸렸을 때나 하는 말이고, 심지어 실제 전쟁에서도 배수진 잘못 쳤다가 나라 말아먹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성공한 사람들의 일화만 유명해져서 그런 거지.

엄밀히 말해 한국 예체능계만 살펴라도 전공에 목숨 걸었다가 실패하거나 충분한 실력을 쌓지 못해 도태, 사회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청춘들이 수두룩했다.

영도는 투수에서 실패해 야수를, 팀 상황에 따라 1루수와 코너 외야를, 결국에는 지명타자를 노리는 등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

딱 하나의 목표를 두고 목숨을 걸기엔 세상의 무서움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3루 하나에만 몰두하는 것도 불안한데...’

그래도 이번 시즌은 부상 이후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좁은 분야에 집중하는 시즌이었다.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도 3루 포지션을 굳게 고집하긴 했지만, 유망주의 가능성을 다방면에서 평가하는 시기이기에 1루와 코너 외야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변화로 또 한 번의 도약을 노리는 이번 시즌.

아예 놓진 않았지만, 타 포지션 훈련은 그저 남는 시간에 감각만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영도 개인적으로는 매우 불안하고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1년 안에 메이저리그 수준으로 3루 수비를 끌어올려야 했으니까.

“어쨌든 야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머지를 부탁한다.”

“그래, 뭐. 야구는 형이 알아서 잘하니까. 그거 말고는 빼먹은 건 없네. 완벽해. 근데 형도 여기선 귀한 몸인데, 이제 슬슬 수비 장갑이랑 낭심 보호대 마련하지?”

“나중에. 나중에 익숙해지면.”

야수 전향 이후 영도의 야구 인생은 장타와 수비,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움직임을 편하게 하고 손의 감각을 살리기 위해 강한 타구를 많이 받는 내야수 중에서도 특히 많이 받는 3루수 임에도 영도는 수비 장갑과 낭심 보호대를 사용하지 않았다.

배팅 장갑 역시 오른손으로 배트를 컨트롤하기 위해 왼손에만 꼈다.

한 타석, 한 타석이 소중한 과거의 영도에게 부상 방지는 사치였다.

“하여튼... 다치지 말고. 이번 시즌 느낌 좋은데 괜히 다쳐서 망치지 마. 손도 손인데, 특히 거긴... 그건 야구선수로서가 아니라 남자로서 끝이니까.”

“... 저주 고맙다, 새끼야.”

당연히 영도도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만큼 간절했다.

영도는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경기에 나서고 싶었던 그런 보잘것없는 선수였고, 그게 징크스가 되어버린 선수였다.

이제는 슬슬 안전을 생각하려 해도 그럴 수 없게 되어버린...

이렇게 된 이상 그토록 간절히 바라왔던 경기 출전, 나아가 주전 확보, 나아가 베테랑 메이저리거의 꿈이라도 목숨 걸고 이뤄내는 수밖에 없었다.

***

“유영도 선수, 다시 한 번만 생각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 제츠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가 유영도 선수라는 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메이저리그를 필두로 한 전 세계 야구계의 가장 큰 고민은 팬들의 고령화와 좁은 팬 기반이었다.

젊은 팬의 유입과 야구의 세계화, 크게 이 두 가지가 2010년대부터 야구계가 매달리는 목표였다.

그 과정에서 타임클락, 자동 고의사구, 기계식 스트라이크 및 아웃-세이프 판정 등 다양한 룰이 추가되었는데, 그중에는 팬들의 호평을 받은 ‘인게임 마이크’도 있었다.

선수가 직접 마이크를 차고 경기에 들어가 클러치 상황에 대해 즉각적으로 피드백하고 현장감도 전하는 등 팬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방송사고의 위험이 있기에 당연히 리플레이 형식으로 방송을 타지만, 그것만으로도 현장감이 대단했다.

방송환경의 한계로 일부 선수만 마이크를 차고 경기에 나서는데, 이 선수들이 덕아웃에선 리포터 역할을 수행하기에 모든 선수가 자신의 음성을 넣을 수 있긴 했다.

다만, 마이크를 찬 선수의 보이스는 거의 항상 들어가기 때문에 보통 한 팀의 스타들이 차는 경우가 많았다.

2040년이 되어도 야구는 옛날의 뉴스쿨이 올드스쿨이 되고 또 다른 뉴스쿨이 나타나 대립했기 때문에 일부 올드스쿨 슈퍼스타들은 마이크를 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의 결과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뤄냈기 때문에 인기의 맛을 본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편이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나도 내가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예민한 편이라 지금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국, 미국, 일본에서 모두 마이크를 찬 선수들이 이렇다 할 불편함을 토로하진 않았습니다. 물론, 일부 선수들이 그런 경우가 있지만, 극히 일부였어요.”

“저는 그 극히 일부가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시즌이 저에겐 정말 중요한 시즌입니다. 원래 변화를 두려워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누이 말했듯 이번 시즌을 앞두고 정말 많은 변화를 시도했죠. 더 이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기엔 내가 너무 여유가 없습니다.”

서울 제츠의 슈퍼스타는 투수 중엔 없고, 프랜차이즈 레전드인 손성호, 뛰어난 컨택과 유쾌한 성격을 자랑하는 좌익수 한영훈 정도가 스타라고 볼 수 있었다.

두 선수의 나이는 각각 36세와 34세.

연고지 서울과 유쾌하고 매력적인 팀 컬러, 전통적인 KBO 최고의 미남 군단 등의 요소로 KBO 최고의 인기팀으로 군림하는 제츠에겐 팀을 위해서도, 리그를 위해서도  새로운 스타가 필요했다.

외국인 선수지만, 이번 시즌 화제의 중심이자 미남, 스토리와 캐릭터마저 확실한 영도는 베테랑 손성호-한영훈과 다음 세대를 이어줄 최고의 징검다리였다.

하지만 영도는 더 이상의 변화를 받아들일 여력도, 의사도 없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선수의 의사와 경기력이 가장 중요하죠. 그래도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생각도 계속해주시면 감사하고요.”

“알겠습니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괜찮다,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그 전에 성적을 내는 게 먼저겠지만.”

지금 많은 팬들의 관심을 받는다 해도 성적이 떨어지면 당연히 이 이야기는 없던 일이 될 것이었다.

그땐 팬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영도가 직접 마이크를 요구한다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확률도 높았다.

최근 선수들에게 마이크의 의미와 마이크가 상징하는 기회를 생각하면 지금 영도는 명백히 인기가 아닌 성적, 실적이 우선임을 드러낸 것이었다.

“아쉽지 않아? 네가 여기서 확실한 영역과 팬덤을 구축하면 구축할수록 메이저 복귀 후 네 가치가 달라질 텐데...”

보통 무조건 마이크를 차는 포수를 빼면 세 명의 선수에게 마이크를 채워준다.

손성호마저 후배에게 기회를 준다는 이유로 이번 시즌부터 마이크를 차지 않기로 하면서 한영훈과 김원상, 우희운에 이어 박윤형이 마이크를 찼다.

뛰어난 외모와 빠른 발을 앞세운 시원시원한 플레이로 주목받는 김원상은 손성호-한영훈의 뒤를 잇는 인기스타였지만, 박윤형의 경우 좋은 선수지만, 슈퍼스타가 되기엔 모든 부분에서 2%씩 부족한 선수였다.

그게 본인도 민망했는지 영도에게 다가와 멋쩍은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연봉은 팀 내 주전 경쟁에서 연봉 때문에 밀리는 수준만 아니면 됩니다. 그리고 전국구 인기스타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지금처럼 이렇게 똥폼이나 잡다가 잘 풀려서 자연스럽게 된다면 모를까...”

“허... 그래. 하긴, 너는 나랑 다르니까. 난 지금 이 정도가 한계지만, 넌 다르겠지.”

“말한 것처럼 똥폼입니다. 진짜 잘난 선수들은 팬들에게 성적은 물론 사랑으로도 보답하죠. 나도 애매한 선수니 둘 중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는 겁니다.”

영도 본인도 본인의 이런 성격과 성향이 답답했지만, 여전히 변화가 불안했다.

언젠가는 이 징크스들을 다 털어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그래,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 네가 성적 내줘서 우승하면 그게 최고지.”

“뭐... 우승해서 나쁠 건 없겠죠.”

“그래. 그러니까 괜히 시범경기부터 부담 갖지 말고. 설렁설렁해. 난 괜찮으니까 시범경기 중에라도 마이크 차보고 싶으면 바로 말하고. 시범경기에서라도 팬들한테 네 목소리 들려주면 좋잖아.”

“일단 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손쉽게 KBO에 적응하게 된다면.”

물론, 이러한 징크스들 모두 개인 성적을 위한 것들이었다.

팀 성적? 23년 만의 우승?

영도에겐 전부 남의 일이었다.

2040시즌은... 영도에겐 마지막 남은 KBO에 대한 미련을 털어버리고 메이저리그 복귀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목표들만 존재하는 시즌이었다.

***

[드디어 2040시즌 KBO 시범경기가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서울 제츠와 서울 타이탄스, 서울 타이탄스와 서울 제츠의 경기로 2040시즌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전통적인 서울 라이벌이자 KBO를 대표하는 인기구단들의 맞대결, 유독 전성기가 번갈아 오며 절대 겹치지 않는 라이벌들의 대결이죠?]

[최근에는 타이탄스가 전성기를 맞았고요. 아니, 제츠가 23년 전을 마지막으로 우승이 없으니 애매하긴 합니다만.]

[그래서 이번 시즌이 중요해요. 우승은 없지만, 포스트시즌에는 매번 진출할 정도로 전력이 강한 팀이거든요? 여기에 제대로 된 거포 한 명만 있으면 더욱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평가받았는데, 유영도 선수를 영입했어요. 항상 거포라 믿고 외국인 타자를 영입하긴 했지만, 유영도 선수는 바로 지난 시즌까지 메이저리그에서도 30홈런 가까이 때려낸, 그동안 영입한 외국인 타자 중 가장 클래스가 높은 선수죠.]

제츠와 타이탄스의 서울 시리즈는 양 팀의 상징성과 인기, 서울이라는 연고지의 위력, 상반되는 팀컬러 등 여러 이유로 KBO를 대표하는 라이벌전이 되었다.

어린이날을 끼는 3연전엔 무조건 양 팀의 시리즈가 편성되고, 시범경기 개막전도 어지간하면 무조건 양 팀의 시리즈가 잡혔다.

그만큼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최고의 흥행 시리즈였다.

“영도 형!! 형!! 형!! 저 사인!! 사인!!”

“유영도!! 유영도!! 사인 좀 해주세요!!”

“여기 고등학교 때 사진!! 저 10년 전부터 팬이었어요!!”

영도의 계약 가능성이 보도되고 약 4개월.

4개월 내내 영도를 기다렸던 한국 야구팬들은 행동으로 이를 증명했다.

수많은 팬이 영도 관련 굿즈를 들고 경기장을 찾은 것.

타이탄스의 홈구장 고척돔에서 펼쳐질 경기지만, 두 팀의 팬덤에 지역별 차이는 없었다.

강남이나 강북이나 강동이나 강서나 그냥 좋아하는 팀을 좋아할 뿐, 서울 내 특정지역에서 특정 팀의 인기가 더 높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는 뜻.

여담으로 드래곤즈는 어느 지역에서든 두 팀의 인기를 반도 따라가지 못했다.

“이건... 진짜 10년 전 물건이네요. 제츠에서 졸업하면 바로 계약하자면서 만들어준 특별 굿즈...”

“으하하하, 템퍼링 위반이 될지도 모른다고 KBO에서 겁주는 바람에 금방 단종된 굿즈죠. 제가 또 이걸 살 정도로 유영도 선수의 팬이었다는 거 아닙니까!”

“... 진짜 팬이셨네요. 그때 좀 날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고등학교 선수였는데...”

“겉으로는 그랬죠. 우리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우리 유망주였지만.”

이문재 감독과의 일로 동정론이 일고 이후 이를 극복하며 메이저리거가 된 유망주.

이게 영도의 포지션이었고, 그렇기에 영도의 한국 내 팬덤은 딱히 어느 집단을 중심으로 하진 않았다.

하지만 역시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제츠 팬덤이었다.

제츠 팬덤은 영도가 졸업반도 아니고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선수임에도 고교 선수가 아닌 자신들의 유망주라 여겼다.

타 팀 팬들도 욕심내는 특급 유망주였기에 템퍼링이다, 규정 위반이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그만큼 제츠의 골수팬임을 자처한 영도는 제츠 팬덤의 사랑을 받았다.

10년을 방황하던 그 사랑이 드디어 주인을 찾았다.

“우린 진짜 많은 거 바라지 않는다니까요? 이번 시즌, 딱 한 시즌만 화끈하게 홈런 뻥뻥 때리면서 우승 한 번 시켜주고 내년엔 메이저리그 가야죠. 내가 아무리 제츠 팬이어도 우리 유영도 선수는 제츠에서 멈추면 안 되는 선수니까.”

그리고 그 사랑은 영도에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사춘기 시절의 기억, 나아가 한 인간의 정체성은 아무리 오랜 시간 떠나 있어도 절대 지워지지도, 흐려지지도 않는 강렬한 존재였다.

“...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영도는 팬들에게 친절하고, 팬서비스가 충실한 선수였지만, 이는 선수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의도였다.

일단 자신이 많은 팬을 거느리는 게 익숙하지도 않았고, 팬들의 존재에 대해 깊게 사색하기엔 본인의 위치 자체가 불안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영도는 좋은 기억 따위는 없다고 여겼던, 그리 그립지도 않다고 여겼던 곳에서 집에 돌아온 듯한 포근함과 든든함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프로 스포츠의 근간, 팬이었다.

< 몸과 마음의 고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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