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계기 > (16/200)

< 계기 >

[연습경기부터 홈런 두 방 폭발... 유영도, 벼르고 벼른 복수전에서 이문재 감독에게 빠르게도 KO 펀치 적중]

ㄴ 이제 진짜 큰일났다... 3타석 3타수 3장타에 2홈런. 드래곤스 이제 어쩌냐 ㅋㅋㅋㅋㅋ

ㄴ 앞으로 유영도가 드래곤스전에서 활약할 때마다 계속 씹고 뜯고 맛보겠네. 그러게 착하게 살지 왜 그랬을까.

ㄴ 드래곤스 자체가 양아치 집단인 걸, 뭐. 정양훈이 그때 폭행으로 들어가면서 금품수수까지 쓰고 갔지? 그런데 투수코치 혼자 금품수수 혐의를 쓰는 게 말이 되냐? 더 위에 감독이 있는데 투수코치가 무슨 대가를 준다고...

ㄴ 자, 자. 아무리 양아치 집단 감독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팩트 나오면 까자. 지금은 그것보다 저 미친 파워에 집중해야지.

ㄴ 내 말이 그 말. 근데 저 타구 어디 떨어졌는지 본 사람? 아직도 날아가는 거 아니냐?

ㄴ 팀 대 팀의 대결인데 왜 선수랑 감독의 라이벌 구도를 잡고 앉았냐? 기자들 요즘 돈이 급한가?

ㄴ 진짜 보기만 해도 시원하네... 드디어 우리 제츠도 홈런타자 갖는 건가!!

ㄴ 잠실에서도 저 정도 홈런 때려주면 업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젤레발을 조심하려고 해도 저런 홈런을 보여주면 참을 수가 없잖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

2차 스프링캠프의 연습경기가 스포츠 전문채널을 통해 중계되면서 영도의 달라진 모습이 처음으로 팬들에게 보여졌다.

그리고 엄청난 비거리와 속도의 대형 홈런 두 방과 3연속 장타, 그리고 기대보다 훨씬 뛰어난 수비까지.

영도는 단 한 경기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영도만은 틀어막으려던 이문재의 시도는 완벽히 실패했고.

사실, 연습경기도 아니고 시범경기까지도 상대 투수들을 폭격하다가 정규시즌에 들어서자마자 귀신같이 침묵하는 선수들도 많았다.

아니, 한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야구팬이란 한 경기 한 경기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어찌 보면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연일 계속되는 ‘메이저리그 30홈런 타자’의 KBO 마운드 폭격... 2차 스프링캠프 3경기, 8타석에서 4홈런 폭발]

[연일 계속되는 홈런포... 연일 커져가는 기대감... ‘돌아온 천재’ 유영도의 KBO 첫 시즌 성적은?]

[40홈런을 예상했지만, 그 이상이 보이는 공격력, 걱정했던 것보다, 아니, 오히려 탄탄해 보이는 수비력... 아직 뚜껑이 제대로 열리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유영도]

하지만 영도는 팬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연습경기 8경기 중 7경기가 진행된 시점에서 총 18타석에 등장, 무려 6개의 홈런을 터뜨렸고, 11안타 중 홈런 포함 9개의 장타를 때려냈다.

물론, 1군과 2군을 오가는 투수들, 마이너리그에서도 흘러나온 미국 독립리그 투수들을 상대한 연습경기 성적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지막지한 성적이었다.

당연히 정규시즌에도 이런 성적이 나오진 않겠지만, 어쨌든 몸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때릴 때마다 말도 안 되는 타구들을 뻥뻥 날려대는 모습에 KBO의 모든 관계자와 팬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아무리 메이저리그 25+홈런 타자라지만, 상대한 투수의 기량이 떨어지는 편이라지만... 

18타석에서 6홈런이라니... 제츠 제외 나머지 9개 팀에 비상이 걸렸다.

ㄴ 메이저리그랑 KBO 수준 차 좀 봐라... 아무리 메이저리그에서 30홈런 가까이 때린 타자라지만, 타율 2할대 초반에 출루율이 3할이 안 되던 타자였는데, 18타수 11안타 6홈런이 말이 되냐?

ㄴ 원래 메이저리그가 그런 거지, 이 수준 차 몰랐던 사람도 있냐? 2할 타자 오면 3할, 20홈런 타자 오면 40홈런...

ㄴ 유영도는 떨어지는 변화구라는 하나의 약점이 너무 커서 문제였던 건데, KBO 수준의 변화구는 유영도를 못 속이는 거지. 그 약점이 사라지니까 메이저리그에서도 탑 프로스펙트로 꼽혔던 재능이 나오는 거.

ㄴ 확실히 메이저리그 TOP 5급 유망주는 다르긴 하구나.

ㄴ TOP 5인 것도 마이너 경력이 너무 짧아서 그랬던 거지, 1년만 마이너에 더 있었으면 1위가 당연했던 시절이지. 그걸 가린 게 떨공 약점인데, KBO 투수들은 떨공으로 유영도를 못 속이니까...

ㄴ 타격폼도 많이 바뀌었더라. 노력 많이 한 게 느껴짐. 사람 목도 날릴 타격폼에서 엄청 간결하게 바뀌었는데 그걸로도 140m짜리 홈런... 인간 한계를 넘어선 힘이다, 진짜.

지난 시즌 종료 후 이번 시즌 시작 전까지.

영도가 변화하기 위해 쏟았던 엄청난 노력을 모를 수밖에 없는 팬들은 이런 성적이 메이저리그와 KBO의 격차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MLB를 지나치게 치켜세우는 팬들과 KBO가 그래도 많이 따라왔다고 주장하는 팬들.

양 측의 논쟁은 수십 년간 이어졌는데, MLB에서 어정쩡한 선수가 KBO를 정복하거나 KBO 출신 선수가 MLB 탑클래스의 성적을 기록하거나 하는 등 당시 활약하는 선수에 따라 힘을 받는 쪽이 정해지는데, 영도 덕분에 점점 전자의 힘이 강해지고 있었다.

KBO에서 통산 OPS 0.930을 기록하던 타자는 현재 MLB에서 장타력이 사라진 0.800을, 압도적 에이스이던 투수는 FIP 3점대 후반의 괜찮은 3선발급 성적을 기록 중인데 영도는 KBO에 도착하자마자 날아다니고 있으니...

양대 리그의 수준 차가 심한 건 사실이지만, 영도의 지난 노력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그 수준 차가 훨씬 더 크게 다가갔다.

“여어! 도우!!”

“아, 조던! 오랜만입니다.”

“크으, 이 타이밍에 여기서 보는 네 모습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네.”

“그러십니까? 하긴... 조던은 몇 번이나 아시아에서 뛰는 것도 고려해보라고 했었으니... 그런데 조던은 왜 여기 있어요? 슬슬 은퇴하고 가족들이랑 산다더니.”

“하하하, 그러게? 나 왜 여기 있냐? 이제 가족들이랑 놀고먹을 때도 됐는데.”

“하여튼 이놈의 야구 X신들... 야구를 떠나서 살지를 못해요.”

44세, 야구선수로는 팔순도 넘은 나이에 여전히 독립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조던 알루.

지금은 비록 독립리그에서 활약하는 투수지만, 현역 때는 메이저리그에서 최고는 아니었어도 꾸준함의 아이콘으로 높은 이름값을 자랑했던 통산 222승의 대투수였다.

영도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데뷔했을 때, 팀의 최고참이기도 했다.

“나야 뭐 이제 마지막 미련 털고 은퇴하려고 여기 있는 거니까 지금 여기에 있는 게 기분이 나쁠 일은 없지. 너도 뭐 잠깐 항상 있던 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더 높이 올라가려고 준비 중인 거니... 기분이 나쁘진 않을 거야. 그렇지?”

조던 알루도 일단 메이저리그의 꿈을 놓지 않고 도전 중이라고, 인터뷰 등에서 이야기하지만, 사실 44세의 조던은 본인의 마음이 정리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항상 있던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가 아닌, 마이너리그 스프링캠프도 아닌 제3의 캠프에서 만났지만, 걱정했던 만큼 씁쓸하거나 아프진 않았다.

“조던이 항상 그랬죠. 너는 테크닉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지금처럼 고전할 이유가 없다고. 너처럼 재능이 너무 뛰어나서 경험 부족으로 고생하다가 사라져 간 선수들은 너무 많다고.”

“그래.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그 많은 선수들과 다른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지. 너는 한국에서 아주 오래 살았고, 선수생활도 했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기까지 하니 KBO에서 성공적인 기억을 가져오는 게 어떻겠냐고. 내가 바로 그렇게 이야기했지. 이 베테랑은 모르는 게 없단다.”

“... 그래, 알겠습니다. 지금은 일단 내가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니 조용히 있도록 하죠.”

“크으...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KBO도 요즘 수준이 많이 올라왔고, 다저스의 박이나 컵스의 안처럼 KBO에서 성장해 빅리그로 건너온 선수들도 많으니 한 번 가보라고, 내가 그랬잖아? 거기서 경험도 쌓고, 자신감도 키우면 지금 네 실력으로도 충분히 메이저리그 정상급의 타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냐, 안 했냐.”

“예, 예. 했습니다, 했어요. 데뷔하고 2, 3년 지났을 때부터 계속 그랬죠. 그땐 이제 막 서비스 타임 1년 채워가는 어린 선수한테 뭔 소리인가, 했는데...”

“그러니까 베테랑들은 거의 초능력자야. 꼬꼬마들은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보고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

수많은 선수를 보고, 수많은 성공을 보고, 그리고 그보다 수십, 수백 배는 더 많은 실패를 보고...

그렇게 이 바닥에서 버텨온 베테랑들은 그 자신의 전성기나 업적과는 별개로 신인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중에서도 남들이 은퇴할 나이에도 10승은 기본으로 찍어주던 베테랑 중의 베테랑, 조던 알루는 특히 다른 베테랑이었다.

“아무리 그런 나라도 네가 이 정도까지 날아다닐 줄은 몰랐지만 말이지.”

“아아, 그건 나도 몰랐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잘 때릴 줄은 나도 몰랐는데... 휘두르면 자꾸 닿더라고요.”

“내가 상상한 건 0.280에 50홈런, OPS 0.950. 뭐 이 정도였다고. 아무리 KBO라지만, 네 폼에선 컨택이나 출루율에 영향이 있을 거라고 봤으니... 그렇게 메이저로 돌아와 0.250 정도 쳐주면 네 파워로 40홈런 가까이 때릴 테니 살아남겠구나, 했던 거지.”

“내가 고작 그 정도 선수가 되려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게 아니니까. 이왕 도전할 거면 아예 제로부터, 한계가 있는 지금의 나를 버리고 훨씬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안 그래도 아는 놈이라 챙겨봤는데, 많이 달라졌더라. 폼은 엄청 작아졌는데, 파워는 여전히 괴물이라 뻥뻥 넘겨버리고... 너, 눈도 좋더라? 그런 놈이 왜 출루율 3할을 못 넘겨서...”

“인정합니다. 조급했죠. 내가 보여줄 건 홈런, 그거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 폼은 점점 커지고, 참을성도 없어지고, 약점은 점점 심해지고...”

조던은 영도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선수였고, 선수의 잠재성과 기량을 보는 눈이 정확하다고 평가받는 선수였다.

하지만 그런 조던도 영도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아니, 영도 본인마저도 본인의 가능성을 몰랐고, 파워 외의 다른 장점들을 잊고 살았으니 그 가능성은 세상 그 누구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시즌, 꼭 KBO 씹어먹고 다시 와라. 냉정히 말해 수준 차가 있으니 좋은 성적도 낼 수 있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장과 리그의 분위기는 메이저리그와 비교해서 더 뜨거우면 뜨거웠지, 허전하진 않으니 마이너리그 때와 달리 자신감도 확확 쌓일 거야.”

“나는 분명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난 나를 믿어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런데... 조던은 내년에 어디 있으실 겁니까?”

“... 아, 내가 문제인가?”

“미련이 사라져도 야구계에서 일하실 겁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볼을 던지다 보면 어느 순간, ‘여기까지구나...’하고 깨닫고 뭔가 하고 싶어지겠지. 야구계에 없으면 어때, 어차피 같은 미국에 살 건데 보려고 하면 한 번은 보겠지.”

“허어... 그렇게까지 해서 날 보고 싶을 것 같습니까?”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게 증명되는 거니까. 어쩌면 스카우트나 에이전트 같은 것도 할 수 있겠지.”

“확실히 나한테 안 보이는 걸 남들이 봐주는 것 같긴 합니다. 조던이 처음이긴 했지만, 그 후로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해주더라고요.”

“그래. 원래 자기가 자기를 가장 모르는 법이라고. 그걸 과연 누가 가장 먼저 봐주느냐, 어떻게 설득해내느냐, 그런 게 중요한 거지.”

영도가 더 높은 곳만 바라보며 흘려듣는 사이 수많은 사람이 진심으로, 괜찮은 길을 추천해주고 있었다.

조던을 시작으로 브라운 감독, 몇몇 코치들과 베테랑들, 동생 승도까지도.

그리고 잠깐 귀가 열린 순간 들려온 승도의 말, 그리고 이어진 과감한 선택과 놀라운 초반 적응까지.

최근 영도는 본인의 고집과 뚝심도 중요하지만, 남들의 충고를 골라 들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다시금 배워가고 있었다.

다행히 늦지도 않고 이르지도 않은, 딱 적당한 타이밍에 승도의 충고가 있었고, 그 충고를 흘려듣지 않은 자신에게도 감사했다.

“좋습니다. 다음 시즌에 난 메이저리그에서 조던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겠습니다. 그러니 조던도 스카우트든 에이전트든 본인이 원하는 걸 찾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면 계속 도전하는 중이어도 괜찮고.”

“오냐, 이 슈퍼 베테랑은 베테랑답게 알아서 하고 있을 테니 너 같은 초짜들은 항상 조심해서 나아가라고.”

고작 2차 스프링캠프에 펼쳐진, 원래대로라면 중계도 되지 않았어야 할 연습경기.

그래서 아무리 칭찬이 쏟아져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메이저리그에서, 미국에서도 인지도가 있고, 한때 크게 주목받던 유망주여서 그럴까?

최근 들어 고작 이런 무대에서의 활약을 미국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들이 소수나마 있고, 과거의 지인들이 네가 성공할 줄 알았다거나, 이제야 터졌구나, 하며 기뻐하는 연락도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이제 슬슬 영도도 본인의 마음속에 자신감과 기대감이 쌓이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곧 시작될 시범경기, 그리고 이어질 정규시즌.

이제는 기다리는 게 힘들었다.

< 계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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