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다시 찾은 기회 > (11/200)

< 다시 찾은 기회 >

-딱!!

“어휴, 날아가는 것 좀 보세요. 무슨 미사일이 날아가는 것 같네요. 타구 속도가 무슨...”

“허허허, 괴물들만 모인 메이저리그에서도 파워 하나는 최고로 평가받던 선수 아닌가. 치라고 던져주는 배팅볼이야...”

-딱!!

“저거 진짜 똑같은 나무배트로 때리는 거 맞을까요? 배트에서 폭발음이 들리는데요?”

“허허허, 딱 봐도 알루미늄 배트는 아니구먼.”

-딱!!

“이번에 때린 공은 나중에 주워 와서 확인해봐야겠네요. 공이 터졌을 수도 있겠어요.”

“시즌 중에도 저렇게만 쳐주면 빠진 머리가 다시 날 수도 있을 것 같군. 제츠에서 25홈런 넘긴 타자가 마지막으로 나온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니...”

1차 스프링캠프는 일반적으로 집중 훈련이 이뤄지는 기간이었다.

1차 캠프에서 집중적으로 훈련 일정을 진행해 기량 향상을 꾀하고, 2차 캠프에서는 다른 구단과 연습 경기를 치르며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게 정석.

그 1차 캠프에서 영도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앞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프리 배팅을 선보였다.

“와... 선배님. 진짜 저희랑 같은 사람 맞을까요? 아니, 같은 사람이어도 외국인이면 이해하겠는데, 유전적으로 완벽한 한국인이 저런...”

“달리 말하면 저 정도는 되어야 메이저리그에서 장타자라고 할 수 있다는 거겠지.”

“지금까지 왔던 용병들 프리 배팅도 놀라웠는데, 영도는 수준이 다르네요. AAAA랑 메이저리거의 차이가 저 정도로 클 줄이야...”

“나도 소름이 다 돋는다.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네.”

“이번 시즌 벤치 클리어링은 걱정 안 해도 되겠는데요?”

“벤치 클리어링 때 저 놈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만 한다면 말이지.”

영도와 고등학교 시절 1년을 함께 뛰었던 주전 중견수 김원상과 손성호는 현재 영도에게 가장 관심이 많은 팀 동료들이었다.

최근 몇 달 동안 가장 핫한 선수였고, 이번 시즌 팀의 외국인 선수로 합류한 영도가 프리 배팅을 진행한다는 소식에 다른 팀원들처럼 후다닥 달려온 두 사람은 프리 배팅을 지켜보면서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저렇게만 해주면 이번 시즌에는 거포 걱정, 타선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선배랑 영훈 선배, 두 사람 다 많이 편해지겠는데요?”

“모르지. 프리 배팅에서 홈런 뻥뻥 날리다가 시즌 시작하면 배트만 붕붕 돌린 외국인 선수가 어디 한둘이야? 쟤도 메이저리그에선 약점이 명확했던 편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지.”

“와... 선배 혹시 그걸 바라는 건 아니죠? 싫은 소리 한 번 했다고 설마 담아둔 거?”

“에라이, 이 새끼야. 내가 설마 그러겠냐? 1년, 1년 우승 없이 흐르는 게 미칠 듯이 불안한 사람인데? 그냥 그럴 수도 있으니 젤레발은 떨지 말라는 거지.”

“젤레발 떨지 말라고 하는 건 좋은데... 너무 세게 때린 거 아닙니까!? 나도 이제 2년만 지나면 서른이라고요!”

“어이구, 아직도 20대였어? 몇 대 더 맞아도 금방 회복하겠는데?”

프리 배팅을 지켜본 팀원들의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다.

성적에 목숨까진 걸지 않을 뿐, 이들도 프로이니 승부욕은 강한 편이었다.

지는 것보다 당연히, 아주 당연히 이기는 걸 훨씬 더 좋아했고, 뛰어난 외국인 선수의 합류는 승리를 위한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였다.

“오오, 영도! 너 진짜 장난 아니구나!? 메이저리그 30홈런 진짜 아무나 치는 거 아니네?”

“후우... 프리 배팅은 오클랜드에 있을 때도 팀 내에서 가장 잘 때리는 편이었습니다. 프리 배팅에 큰 의미는 두지 않아요. 실전에서 잘할 수 있느냐, 그것만 신경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도의 프리 배팅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호쾌하기로, 비거리가 상당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컨택이 심각하게 떨어져 파워 역시 저평가될 수 있는데, 그런 디메리트를 안고도 스카우팅 리포트에 20-80 스케일 중 70점이 기록된 파워였다.

70점이면 그 분야에서 시대를 풍미할 재능이라는 뜻.

치명적 약점인 브레이킹볼과 그로 인한 선구안의 혼란이 없는 프리 배팅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밀릴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타격 폼은 일부러 바꾼 거지? 영상으로 본 거랑은 많이 다른데.”

“예. 아무래도 컨택과 선구안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고생했으니까 컨택이랑 선구안을 끌어올려보려고 좀 바꿨습니다. 변화구에 약점이 있다면 최소한 변화구를 골라내기라도 해야죠.”

“크으... 안 그래도 이번에 너 만나면 타격 폼 좀 간결하게 바꿔볼 생각 없냐고 넌지시 제안해 볼 생각이었는데, 미리 다 준비해왔네.”

“역시...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게 다 보이나 봅니다.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파워는 충분하니 최대한 간결하게 해보라는 이야기, 많이 들었었는데...”

“다른 사람이니까 편하게 말하는 거지. 선수한테 타격 폼이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 잘 아니까 그렇게 씁쓸해할 거 뭐 있어? 그게 당연한 거야.”

메이저리그와 아시아 지도자들의 가장 큰 차이는 선수를 대하는 태도였다.

메이저리그 지도자들은 타격 폼, 투구 폼 같은 민감한 문제들을 선수의 요청이 없는 한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선수의 훈련 방식이나 루틴 역시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 만큼 성장하고 성공하기 위해선 선수 개개인의 노력이 절대적이었다.

반면, 아시아의 지도자들은 메이저리그와 달리 조언자가 아닌 말 그대로 지도자의 포지션을 취했기 때문에 명백히 선수보다 위에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만큼 개인의 야구관을 선수에게 주입해 투구 폼이든 타격 폼이든 민감한 부분들을 마음대로 건드렸다.

훈련 방식 같은 건 당연히 시시때때로 간섭했고.

어느 정도 리그에서 통하는 평범한 수준의 선수를 만드는 건 아시아의 지도 방식이 나았지만, 선수 개인의 잠재력과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린 괴물이 나오기엔 당연히 메이저리그의 방식이 나았다.

자신의 특징과 장점을 가장 잘 아는 건 결국 자신일 수밖에 없으니까.

“어쨌든 다른 선수들이 네 반만 성실해도 하루 24시간 춤을 추면서 다닐 텐데 말이야. 이렇게 알아서 다 해오니 얼마나 좋아?”

“선수라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하는 거죠. 특별히 대단한 것도 아닌데 너무 칭찬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고, 무슨 소리야? 다른 외국인 선수들 태도가 어떤지 네가 몰라서 그래. 걔네들은 진짜 돈만 보고 아시아에 온다니까? 돈만 아니었으면 이런 허접한 데서 뛸 생각도 없었다, 는 마인드야. 이미 한국에 오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자기가 한 수 위라고 단정한다니까?”

“아... 미국에서 뛰면서 그런 선수들을 몇 명 본 것 같긴 합니다.”

“그래. 선수생활 말년에 돈이나 벌자, 는 마인드라 그때부터 아예 성장 욕구를 딱 버리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메이저리그와의 격차는 여전히 엄청나지만, 그래도 아시아 야구가 만만한 곳은 아닌데 말이야. 훈련도 안 하고 약점도 그대로 내비둬도 통할 만큼 만만하진 않지.”

“그럼 큰 돈 주고 데려온 외국인 선수들까지 코칭해서 가르쳐야 한다는 게 그냥 하시는 말씀은 아니었나 봅니다.”

“당연하지! 일본처럼 성장형 용병으로 데려온 놈들도 아닌데 성장을 시켜야 해. 그게 얼마나 골 터지는 일인지 넌 모를 거다.”

한국이나 일본에 올 정도면 미국에서도 최소 AAA 정상급 선수는 된다는 뜻이었다.

재능은 충분한데, 약점이 명확하거나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선수들.

그러니 다소 강압적이기는 해도 선수 한 명 한 명마다 일대일로 붙어 귀찮을 만큼 지도하는 아시아 지도자들과 궁합이 맞으면 가끔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이전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물론, 영도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는 건 기본이었다.

“그러니까 저기로 가 봐. 타격은 네가 알아서 할 수 있고, 자신도 있으니 이번 1차 캠프에서는 수비, 주루 위주로 훈련하고 싶다고 했다며. 주 코치랑 오 코치가 엄청 기대하고 있더라.”

“예.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런 저런 말들을 했지만, 메이저리그와 아시아의 지도자 수준 차이는 여전히 선수들의 수준 차이보다 훨씬 컸다.

다만, 그렇다고 훈련을 안 할 순 없고, 테크닉 대비 경험의 영향력이 큰 수비와 주루 같은 부분은 그나마 괜찮으니 부족한 부분도 채울 겸 이 둘을 집중 보완할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수비와 주루로 어디 가서 잘난 척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고...

“퍼스트 스텝이 조금 떠 빨라야지! 아무리 요즘 내야수 키를 넘기는 타구가 많아도 핫코너는 핫코너라고!!”

“알겠습니다!!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비록 메이저리그에서는 3루 수비에서 20-80 스케일 기준 35점을 받아 45점으로 평균에 가까운 1루, 40점으로 수비 나쁜 선수가 많기로 유명한 포지션이라 쓸 만하다는 평가를 받은 코너 외야와 달리 그냥 ‘지킬 수는 있다’ 정도의 평가를 받았지만...

영도는 아직 3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3루수로는 기회 자체를 거의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고교 시절 1년, 마이너리그에서 2년, 메이저리그 콜업 후 반 년 정도가 받은 기회의 전부.

수비는 재능과 신체 능력만큼이나 경험도 중요하다는 걸 감안하면 아쉬움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네가 보기엔 좀 어때 보이냐? 나는 지금 생각보다 잘하는 것 같아서 당황하는 중인데...”

“그러게요. 생각보단 많이 괜찮은데요? 이번 시즌도 수비하다가 죽어나려나,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서울 제츠의 타격코치, 지영규는 영도의 팔꿈치가 박살났던 당시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타격 코치를 맡았었다.

권위의식도 없고 친화력이 좋은 그는 1, 2선발의 부상이탈로 얼떨결에 에이스가 되어 혹사당해 힘들어하던 영도를 잘 챙겨주었고, 이는 이번에 영도가 제츠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지영규에게도 영도는 아픈 손가락이었고, 캠프 내내 신경 써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일단 덩치도 덩치고, 주력도 거북이 수준인 것에 비해서는 순발력이 나쁘지 않네요. 1루 수비 평가는 나쁘지 않다고 했죠? 확실히 글러브질도 기대 이상이고...”

“KBO 기준으로 보면 어느 정도인 것 같냐? 좀 쓸만 해?”

“작년에 3루수랍시고 데려왔던 아델인가 뭔가 하는 놈보다는 훨씬 나아요. 우리 무열이보다는 백만 배 낫고. KBO에서는 못해도 평균, 잘하면 평균 이상은 되겠는데요?”

“크으... 3루 수비 때문에 몇 년을 고생했는데, 의외의 곳에서 해결되나 보다. 평가가 안 좋아서 올해도 너를 갈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저 좀 그만 갈아주세요. 이러다 진짜 수비만 하다가 은퇴하겠어요.”

서울 제츠의 주전 유격수, 조규영은 사실 타자로서는 평범 이하의 선수였다.

2할 5푼이 버거운 타율에 그렇다고 출루율이나 장타율이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니고, 발이 빠른 것도 아닌, OPS 0.650에 한 자릿수 홈런, 도루를 기록하는 타자.

이게 전부였다면 1군에 발을 붙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선수겠지만, 그에겐 다행히도 리그 최고의 수비력이 있었다.

고작 저 정도의 타격 성적임에도 매 시즌 WAR 2.0 이상을 기록하는 뛰어난 수비력과 몇 시즌 째 메워지지 않는 3루의 구멍, 수비 범위가 좁은 주전 2루수 이재준의 존재가 조규영을 제츠의 붙박이 주전 유격수로 만들었다.

“나도 제발 네가 수비만 하지 말고 방망이 좀 때렸으면 좋겠다. 누가 때리지 말라고 했냐? 네가 안 때렸지.”

“... 안 때린 건 아니죠! 못 때린 거지... 이게 다 3루수라고 데려온 외국인 선수들이 삽질하고, 재준이 형도 점점 범위가 좁아지니까 그 넓은 2-3루를 혼자 다 지키느라...”

“오케이, 거기까지. 그럼 네 입으로 영도는 수비 좀 한다고 했으니까 올해는 다르겠네? 방망이도 좀 때리시겠어?”

“다시 보니까 수비 자체는 괜찮은데 범위는 좀 많이 좁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시끄러워, 이 새끼야! 요즘 경모 심상치 않은 거 알지? 경모랑 너랑 OPS 고작 2, 3푼 차이다? 그 녀석은 발도 빨라서 30도루는 기본으로 해줄 텐데 너 여기서 더 발전 못하면... 알지?”

“크흠! 아오, 갑자기 어깨가 뻐근하네... 배트 좀 휘두르면 나아지려나...”

조규영은 슬슬 눈치를 보며 타석으로 이동했다.

저 엄청난 수비력에 공격력 조금만 받쳐주면 훨씬 더 대단한 선수가 될 텐데... 아쉬운 마음으로 그 뒷모습을 응시하던 지영규 코치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영도의 수비 훈련을 지켜봤다.

“수비는 경험이다, 영도야. 이왕 이렇게 된 것, 여기서 밀도 높게 경험 쌓고 다시 메이저리그 가야지.”

영도는 생각보다 괜찮은 수비력에 흥분한 주수호 수비코치의 펑고가 점점 더 까다로워지면서 이리저리 몸을 날리느라 대답은커녕 듣지도 못한 듯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당장 이 말을 듣는 것보다 몇 번 더 몸을 날리는 게 메이저리그 복귀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메이저리그 가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우리 팀에서 2년은 뛰어줬으면 좋겠군. 허허허... 자네는 그렇지 않나?”

“아이고, 감독님... 하, 하하... 당연하죠!”

1년만 뛰고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먼저 갔으면 좋겠지만... 대신 올해 우승만 좀 시켜줘.

지영규는 구승배 감독의 눈치를 보며 속으로 못 다한 말을 삼켜냈다.

< 다시 찾은 기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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