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과 베테랑 >
“요구하신 34인치에 33.5온스짜리 물푸레나무 배트입니다.”
프로선수들이 쓰는 나무배트는 규정상 길이는 42인치 이하로 제한되었고, 무게는 인치와 온스 기준으로 길이보다 2.5이상 낮을 수 없었다.
하지만 너무 길어지면 배트 스피드가 느려지고 몸쪽 공 공략에 불리해지기 때문에 대부분 33-34인치의 배트를 사용했다.
무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괴력보다 배트 스피드를 중시, 최대한 가벼운 배트를 쓰는 게 트렌드였지만, 가벼울수록 배트가 쉽게 쪼개져 부상을 유발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규정이 강화되었다.
원래 인치-3.5온스까지 가능했던 규정이 2.5로 엄격해지면서 파괴력과 배트 스피드 중 선수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33.5온스면 950g인데 생각보다 무거운 배트를 쓰시네요. 파워가 워낙 좋으셔서 그런가...”
“미국에 있을 땐 규정 딱 맞춰서 31.5온스, 900g짜리 썼습니다. 이번에 타격 폼을 바꿔서 좀 더 무거운 배트 한 번 써보려고 하는 겁니다.”
“유영도 선수는 물푸레 나무를 쓰시네요.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분이라 그런가... 한국은 예전보다는 덜해도 여전히 단풍나무가 대세인데.”
“둘 다 써봤는데 전 물푸레나무가 더 맞았습니다. 단풍나무가 부상 위험이 더 크다고는 하는데, 그런 이유는 아니고.”
전생에는 한국에서만 생활했으니 한국에서의 대세인 단풍나무를 썼었다.
회귀 후에는 바로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아마 야구에서는 단풍나무 배트를 금지한 규정으로 자연스럽게 물푸레나무 배트를 쓴 거고.
전생에는 안 좋은 기억밖에 없고, 회귀 후 마이너리그 시절까지는 승승장구만 했으니 어느새 물푸레나무 배트에 징크스가 생긴 것뿐이었다.
단풍나무는 쪼개질 때 날카롭게 여러 겹으로 쪼개져 부상 위험이 크고, 물푸레나무는 쪼개져도 손잡이와 몸통 부분이 달랑달랑 붙어있는 식으로 쪼개져 부상 위험이 작았다.
그래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2000년대 이후 단풍나무 배트가 대세였던 미국은 아마 레벨에서 단풍나무 배트를 금지했고, 그들이 메이저리거가 되면서 물푸레나무가 자연스럽게 리그의 대세가 된 것이었다.
물론, 영도는 그렇게까지 선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런데 정말로 저희랑 계약하시는 겁니까? 유영도 선수 정도면 워낙 대단한 유망주셨으니 원래 후원받던 배트가 있으셨을 텐데...”
“풀타임 2년차까지 생각만큼 성장하지 못했다고 끊겼습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3년차인 작년에는 미국, 일본의 유명 배트들을 다 써봤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그리고 이번 시즌, 이왕 타격 폼을 비롯한 여러 가지 변화를 주기로 한 김에 배트까지 바꿔보기로 했고, 딱 그 타이밍에 국산 배트 제조사에서 후원 제의가 들어왔다.
거절당해도 손해 볼 건 없다는 생각으로 한 제의였지만, 영도도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떠십니까? 손에는 좀 맞으세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역시 이제 국산 배트도 외국 유명 배트들이랑 큰 차이가 없네요.”
“스무 개 중에 몇 개나 시합에서 쓸 수 있으실 것 같으십니까? 저희 장인이 판단하기론 최소 8개는 완벽하다고 했는데...”
“제 마음에 드는 건 5개 정도인데, 제가 까다로워서 그런 거지, 배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다른 회사들 것도 대부분 이 정도였어요.”
“휴우... 다행이네요. 그럼 만약에 느낌이 좋고, 결과도 좋으면 나중에 메이저리그에서도...”
“안 될 건 없습니다. 손에만 맞으면 빨래 방망이라도 들고 나갈 텐데, 국산이라고 안 된다는 건 말도 안 되죠.”
“오! 감사합니다!”
1군에 올라가기 위해 뭐라도, 아주 작은 거라도 까다롭게 굴었던 경험 때문에 영도는 모든 부분에서 까다로운 편이었다.
장비처럼 중요한 것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징크스 덩어리이자 까칠 덩어리인 영도가 20개의 배트 중 5개를 마음에 들어 했다는 건 이 회사의 배트 제작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다른 선수들처럼 기준에 통과하지 못한 배트는 사인용이나 아마추어 선수에게 기부하는 용도 등으로 쓰면 그만이고.
“곧 제 매니저인 동생이 찾아갈 겁니다. 자세한 조건은 그때 동생이랑 맞춰보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계약기간 내내 정말 만족스러운 배트만 계속 공급해드리겠습니다. 저희 배트로 정말 좋은 성적 내셔서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변화의 시기를 맞아 이것저것 많은 것들에 변화를 준 2040시즌.
새로운 배트 제조사와의 계약을 마지막으로 영도의 변신도 일단 마무리되었다.
남은 것은 평소처럼 사력을 다해 시즌을 준비하는 것뿐.
시즌 개막을 3개월 가까이 남긴 1월 중순, 영도의 시즌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
[서울 제츠 전력분석팀장, “유영도 선수 때문에 직원들이 야근할 정도. 이렇게 성실한 선수는 처음 봐”]
[지영규 제츠 타격코치, “우리 팀에서 선수 때문에 직원들이 우는 소리하는 건 처음. 아직 휴가 기간인데 하루 몇 시간씩 운동 후 클럽하우스에 출근도장 찍어.”]
[유영도는 오늘도 전력으로 달린다. 입국 후 트레이닝센터-전력분석실-집을 반복하며 시즌 준비에 구슬땀]
ㄴ 아니, 서울 제츠에 어떻게 이런 선수가 들어왔지? 우리 선수들은 다 세상 즐겁게 사는 선수들밖에 없던 거 아니었나?
ㄴ 이름도 한국 이름이고 아마추어 때부터 제츠 팬이라고 하도 말하고 다녀서 우리도 관심 있게 지켜봐서 그런 건가? 외국인 선수가 아니라 그냥 원래 우리 선수 같네...
ㄴ 아재들 다 쟤 학생일 때부터 이미 우리 선수라고 자랑하고 다녔잖아. 나도 그때 아재임.
ㄴ 근데 그때랑은 이미지 진짜 많이 바뀌었다. 그땐 놀기 좋아하고 멋 내기 좋아하고 겉멋까지 들어서 딱 우리 선수다,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진짜 우리 선수 안 같아...
ㄴ 저런 성실함에 야구밖에 모르는 외곬수 느낌은 제츠보단 타이탄스 느낌이지. 그래도 우리 팀에 저런 선수 한 명은 필요했는데 잘 됐다.
ㄴ 크으... 이번 외국인 선수 농사는 성공한 듯? 외국인 멘탈 걱정, 한국 생활 적응 걱정 안 한 게 대체 얼마만이야? 거의 처음 아닌가?
ㄴ 영도도 사람 됐네. 어릴 때는 너무 놀기 좋아하고 폼만 잡아서 걱정했는데, 지금은 모범생도 이런 모범생이 없음.
ㄴ 그만큼 상처가 컸다는 거겠지. 아직도 어린 나이인데 저렇게까지 목숨 걸고 야구하는 거 보니까 대견하면서도 안타깝다.
영도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흘러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입국한 1월 초부터 1차 스프링캠프가 시작하는 2월 초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영도의 생활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영도를 지켜봤던 제츠의 팬들은 과거 영도의 18년을 모르니 변한 모습을 어색해했지만, 대부분은 흡족해했다.
유쾌하고 잘 노는 팀 컬러와 선수단 분위기가 싫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야구에만 올인하는 선수를 싫어하는 팬이 있을 리 없었다.
이렇게 영도는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팬들의 애정을 받고 있었다.
[서울 제츠, 호주 시드니에 1차 스프링캠프 차려... 유영도, 손성호, 한영훈 포함 45인 참가]
11월에 있었던 마무리 캠프 이후 처음으로 선수단 전원이 모이는 1차 스프링캠프가 차려졌다.
서울 제츠는 호주 시드니에 1차 캠프를 차렸고, 영도를 비롯한 외국인 선수들과 손성호, 한영훈을 비롯한 간판 선수들, 이창우, 윤한태 등의 유망주들까지 감독, 코치 포함 총 63인이 모였다.
영도에겐 처음으로 팀원 전원을 만나 인사하는 자리였다.
특히 서울 제츠의 연고 학교이자 전국구 명문 고교 출신이었기에 1차 지명으로 팀에 합류해 주전급으로 성장한 선후배들도 많았다.
그중에는 서울 제츠의 간판이자 최고참, 상징인 손성호도 있었다.
“오, 영도! 오랜만이다. 역시 그따위 일쯤은 금방 이겨내고 돌아올 줄 알았지.”
“예,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선배님은 여전하시네요.”
“아이고, 야... 다 죽어가는 거지. 내가 올해 벌써 서른여섯이야. 야구계에서 서른여섯이면 언제 끝장날지 모르는 노인 아니겠냐?”
서울 제츠의 전설, 손성호.
고교 졸업 후 1차 지명으로 서울 제츠에 합류한 그는 프로 2년차인 21세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15시즌 동안 통산 타율 0.308, OPS 0.830, 1938안타, 188홈런, 252도루를 기록한,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중장거리 타자 중 한 명이었다.
서울 제츠의 상징답게 젊을 때는 노는 걸 좋아해 적당히 운동하다가 30대 초반을 넘어서면서 마지막 목표인 우승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베테랑이 된 선수로, 이번 시즌 2,000안타와 200홈런을 노렸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최대한 영도의 팀 내 융화와 적응을 도와주기로 했다.
“아직 멀쩡하신데요, 뭘. 지난 시즌에도 3할 2푼 가까이 치셨던데...”
“하하하, 마지막 발악이지. 나도 은퇴가 얼마 안 남았는데, 우승 한 번이라도 해봐야 그만두든 말든 하지 않겠냐?”
“우승이라...”
“에이, 그런 서글픈 이야기는 그만두고 가자. 내가 애들 소개해줄게. 너 원상이는 알지? 걔는 너 1학년 때 3학년이었으니까 같이 뛰어봤을 거고... 아, 명근이도 우리 학교 출신이고, 종인이랑 한태도 있어. 명근이는 너도 알 거고, 종인이랑 한태, 이 자식들이 물건이야. 요즘 애들 무섭다니까?”
영도는 손성호의 이러한 호의가 고마우면서도 불편했다.
일단, 확실히해두자면 영도는 한국의 선후배 문화를 딱히 싫어하진 않았다.
직접적으로 피해가 된 서열 문화와 꼰대 문화는 혐오하지만, 서울 제츠는 그런 것과 거리가 멀었고, 최고참인 손성호는 팀 분위기를 좌지우지할 위상을 가진 선수인 만큼 당연히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제츠 같은 팀 분위기가 만들어질 리 없었으니까.
“선배님. 소개해주시는 건 감사한데, 일단 하나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뭔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야지.”
“저한테 마음 써주시는 건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제가 외국인 선수라는 걸 잊지 않고 이번 시즌을 치를 생각입니다. 외국인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개인 성적이라는 걸 선배님도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호오... 그러니까 선수들이랑 굳이 친해질 생각은 없다?”
“같이 훈련하고 생활하고 시즌을 치르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면 그건 그것대로 좋겠죠. 하지만 굳이 친해지려고 나서서 노력할 생각은... 예, 없습니다.”
지금은 영도가 한국 출신이고 어릴 때부터 제츠의 팬이었으며, 일찌감치 제츠 팬들도 우리 선수라고 생각해왔기에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구단 역시 큰 금액으로 잡아온 현역 메이저리거였기에 웬만하면 영도에게 맞춰주는 중이었다.
하지만 결국 영도의 신분은 외국인 선수.
기대하는 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지금의 관심과 사랑, 배려는 금방 사라질 테고, 최악의 경우 퇴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저는 이번 시즌 가능한 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그 외의 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 뭐, 네가 그런 생각이라면 그것도 좋겠지.”
손성호의 성격이라면 아무리 후배라 해도 무시하지 않을 것이고, 잘 설명하면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줄 거라 믿었다.
역시 그는 영도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오케이! 알았으니까 일단 따라와. 아, 오해는 하지 마. 네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했으니까. 이 정도는 다른 외국인 선수들한테도 해주는 거니까 외국인 선수 대우... 괜찮게 해주는 거지?”
“감사합니다, 선배님.”
“감사할 것도 많다, 야. 네가 내 후배라 당연하게 다른 한국 선수들처럼 대한 게 잘못이지.”
“그래도 한국 문화라는 게 또 안 그럴 때도 많지 않습니까.”
“감사하다는 데 굳이 감사한 거 아니라고 우길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감사하면 하나만 좀 부탁하자.”
“뭡니까, 선배님? 웬만하면 들어드리겠습니다.”
손성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가까이 붙어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했다.
“너도 잘 알겠지만... 우리 팀 분위기가 그렇게 성적에 목 메는 분위기는 아니잖아.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사활을 걸지만, 그 이상은 딱히 목숨 걸지 않는...”
“예전에도 그랬죠.”
“그러니까. 그런데 나는... 이제 진짜로 우승 한 번 꼭 해보고 싶다. 그래야 은퇴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직도 최고이신...”
“그런 말은 됐고. 여하튼 네 말대로 꼭 미친 성적 찍어서 메이저리그 가. 대신 그 전에 그 성적으로 나 우승 좀 시켜주고 가. 지금처럼 미친 듯이 야구만 해서 조금이라도 팀 분위기 진지하게 해주면 더 바랄 것도 없고.”
사람들은 9년 만에 180도 달라진 영도를 보며 놀라지만, 매일 봐서 몰랐을 뿐, 손성호 역시 예전과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되어 있었다.
영도는 팀에서 가장 높은 위상을 지닌 손성호와 코드가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웃었다.
“확신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개인 성적을 챙기다 보면 당연히 팀 성적도 따라오겠죠.”
“그 정도면 충분해. 팀 성적을 먼저 생각해주면 좋겠지만, 그것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네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팀 성적을 우선시해 개인 성적을 다소 희생한다?
영도는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게 가능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개인 성적이 안 좋은데 어떻게 팀 성적이 좋을 수 있을까.
특히 중심타자 역할을 맡을 게 분명하기에 더더욱 그랬다.
중심타자는 당연히 언제나 좋은 결과, 좋은 성적을 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팀 성적은 뛰어난 개인 성적에 따라오는 결과물이니, 개인 성적에 초점을 맞추는 것.
지금의 영도는 여러모로 개인 성적에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그럼 이제는 좀 가자! 애들이 아까부터 기다린다고!”
“알겠습니다. 선배님 얼굴 봐서 웃으면서 기쁘게 인사 한 번 하겠습니다.”
“어휴, 비싸게 굴긴... 애가 변한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네.”
< 외국인과 베테랑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