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국 혹은 귀국 >
[‘비운의 메이저리거’ 유영도, 5개 구단 경쟁 속 드디어 계약 체결! 총액 170만 달러에 서울 제츠 합류!!]
[메이저리그 연 평균 25+홈런 타자의 KBO 도전, 생태계 교란종 될까?]
[임준수 제츠 단장, “이번 스토브리그 최대어를 잡음과 동시에 최대 약점이었던 3루 보강 성공. 많은 구단과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결국 우리가 승리했다.”]
만 24세, KBO 역대 최연소 외국인 선수보다 한 살이 더 어린 젊은 선수.
메이저리그 통산 OPS 0.750, 3년 연속으로 25+홈런을 때려낸, 역대 KBO 외국인 선수 중 커리어가 아닌 현재 기량으로만 따지면 최고를 다툴 만한 강타자.
미국 국적이라 외국인 선수로 합류하긴 했지만, 한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마친, 적응이 따로 필요 없는 선수.
안 그래도 대형 FA가 없었던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영도의 거취는 팬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3루를 비롯, 1루와 코너 외야도 소화 가능하기 때문에 외국인 타자를 구하는 구단이라면 거의 모든 구단이 영입전에 뛰어들었을 정도.
결국, 치열한 영입전의 승자는 계약금 50만 달러, 연봉 120만 달러로 옵션 없이 170만 달러를 보장한 서울 제츠였다.
금액은 다들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영도의 팬심과 과거의 미련이 크게 작용했다.
ㄴ 우와... 유영도가 한국에 다 오네. 이제 다음 시즌 리그 박살나는 거 아니냐?
ㄴ 유영도가 메이저리그에서 기록한 홈런을 트리플 A에서 찍었던 에드 르몽드가 작년 41홈런치고 홈런왕 먹었는데 더 말할 게 있나? 이번 시즌 제츠 개쩔겠네.
ㄴ 뭔가 울컥한다. 나였으면 한국 쳐다도 보기 싫었을 텐데 KBO에 오네. 저 정도 성적이면 더 좋은 조건으로 일본도 갈 수 있었을 텐데.
ㄴ 아니, 왜 다들 좋아하냐? 결론적으로 보면 나라 버리고 미국 간 미국놈 아님? 그냥 평범한 한 명의 외국인 선수일 뿐인데 왜 이렇게 빨아줌?
ㄴ 야. 구X에 유영도 치고 무슨 일 있었는 지나 봐라. 나라를 버리긴... 나라가 버린 거지.
ㄴ 아마추어 시절 내내 KBO에서, 특히 서울 제츠에서 뛰는 게 꿈이라고 매번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말하던 애가 유영도다. 재능 넘치는 어린 선수 망가뜨릴 뻔한 게 한국 야구계인데 잊지 않고 와주는 것만 해도 고맙지.
ㄴ 하여튼 저런 놈들 몇 있더라. 나라에서 도와주긴커녕 저 정도 재능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뻔했는데 욕을 해도 모자라지. 그런데도 인터뷰마다 한국 팬들 언급해주고, 항상 미안하다고 말하는 선수인데 응원하면 안 되냐?
ㄴ 난 모르겠다. 불쌍하긴 한데, 뭔가 한국 선수로 느껴지진 않음. 하는 거 보고 잘하면 응원하고 못하면 욕하는 거지, 뭐.
ㄴ 난 응원한다. 이번 시즌에 KBO 박살내고 다시 메이저가서 성공했으면...
ㄴ 아니, 이거 특혜 아니냐? 다른 선수들은 해외 나갔다가 돌아오면 2년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데, 얘는 왜 외국인 선수로 들어옴? 얘도 2년 동안 못 뛰게 해라.
ㄴ 그랬으면 저 정도 선수가 KBO에 왜 오냐? 당장 팀만 잘 고르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주전으로 뛸 수 있는데. 그리고 야구계가 쫓아낸 선수, 야구계로 다시 데려오려면 이보다 더한 것도 줄 수 있으면 줘야지.
ㄴ 진짜 저런 야알못들은 야구 기사에 댓글 안 썼으면 좋겠다. 유영도는 아예 가족 전체가, 그것도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간 거라 한국 국적이었어도 2년 유예 규정 적용 안 받는다. 애초에 이제 미국 국적이니 데려오려면 당연히 외국인 선수로 데려오는 게 맞고.
복수국적에서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선택하긴 했지만, 영도에 대한 팬들의 인식은 좋은 편이었다.
일단 미성년자 때 미국으로 넘어가 만 18세가 되자마자 미국 국적을 선택했고, 큰 부상이 있었던 선수라 병역법이 수 차례 개정된 2040년 현재 병역이 면제될 선수라는 게 컸다.
병역이 걸린 게 아닌 이상 팬들도 상당히 너그러워지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메이저리그 데뷔 후에도 종종 한국 팬들을 언급하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한 것, 이렇다 할 구설수도 없고 성실하게 야구밖에 모르는 생활로 유명한 것도 주요했다.
다만, 역시나 가장 큰 이유는 영도의 미국행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었다.
영도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때마다 이문재 감독, 당시 청소년 대표팀 투수코치와의 일화가 언급되었고, 그럴 때마다 비난의 화살은 그 둘에게 돌아갔다.
그 둘만 아니었다면 어릴 때부터 언급한 것처럼 KBO의 스타가 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영도의 한국 국적 포기는 비난의 이유가 되지 않았다.
일부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안티, 그 정도 수준이었다.
[메이저리그급 강타자로 마지막 퍼즐인 3루 보강 성공한 서울 제츠, 이번에야말로 일 내나?]
ㄴ 유영도 쟤, 예전부터 알아주는 제츠 팬이었는데... 그거 때문에 제츠랑 계약한 걸까?
ㄴ 어차피 제시 금액 자체가 크게 차이나진 않았을 테니 그렇지 않을까?
ㄴ 크으... 우리도 드디어 23년만에 우승하는 건가? 전력이 애매한 것 같았는데, 유영도 하나 추가되었다고 무게감 장난 아니네.
ㄴ 응, 아냐. 너흰 지구가 두 쪽 나도 안 돼~ 유영도도 잠실에선 15홈런 똑딱이~
ㄴ 일단 윗놈은 무시하고... 그래도 젤레발 금지다. 이 팀은 설레발 떨면 떨수록 망하는 이상한 팀이라...
ㄴ 근데 어른들한테 크게 상처받고 떠난 유망주가 성장해서 돌아와 응원하던 팀에 23년 만의 우승을 안겨준다... 이러면 이거 완전 영화 아니냐?
ㄴ 아니, 그러니까 젤레발 떨지 말라고!!! 네가 그렇게 젤레발만 안 떨면 어련히 알아서 잘해줄까!!
응원 혹은 비난, 설레발 혹은 신중.
어떤 식으로든 이번 KBO 스토브리그 화제의 중심은 영도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사건 이후 한국을 떠나 9년,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지 27년이 지난 지금, 영도는 드디어 그렇게도 꿈꾸던 KBO에 입성해 팬들의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
“그저께 드디어 정말 오랜만에 한국 땅을 다시 밟으셨는데요,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한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하고... 어쨌든 좀 복잡합니다.”
1월 초, 계약이 완료되자마자 일찌감치 입국한 영도에게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어지간하면 인터뷰에 시간을 소비하기 싫었지만, 워낙 요청이 쏟아지다 보니 에이전시에서 거르고 거른 몇 개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이 체결되기 전부터, 아니, 유영도 선수가 KBO에 올 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돌던 작년 말부터 모든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셨는데요, 한국 팬들이 이 정도로 유영도 선수를 응원한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사실, 인터넷을 잘 안 합니다. 커뮤니티 반응은 당연히 거의 못 보고요. 하지만 매니저로 도와주고 있는 동생이 말해줘서 알고는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 한국 선수도 아니고, 관심을 가져주시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변함없이 사랑해주고 아껴주시고, 안쓰럽게 여겨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랜만에 찾은 한국은 어떤 느낌인가요?”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고향에 온 느낌이 듭니다. 감격스럽다...는 표현이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아요. 예, 이래저래 복잡해서 한 단어로 설명할 순 없지만, 그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KBO에서의 활약, 그리고 팬들의 관심.
야구밖에 모르는 바보로 20년 이상 살아왔고, 회귀 전에는 1군 콜업, 지금은 메이저리그에서의 입지 확보를 위해 야구에만 매진했지만, 그렇다고 팬들의 관심과 주목이 고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특히 전생에서부터 그토록 바라왔던 한국 팬들의 관심과 사랑은 영도에게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벌써 입국... 아니, 귀국이라는 표현을 해야 할까요?”
“귀국이라는 단어를 듣기엔 염치가 없습니다. 편한대로 쓰셔도 됩니다.”
“어쨌든 한국에 오신지 벌써 3일이 지났는데요, 그동안 뭘 하셨나요?”
“일단 도착하고 몸이 뻐근해 구단 클럽하우스로 가서 운동을 좀 했습니다. 이후에는 운동하고 기록실에서 KBO 투수들 분석하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와... 9년 만에 한국에 오셨는데 학창시절 친구들을 만난다거나 하진 않으셨고요?”
“일단 한국에 친구가 많이 없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안 만난 건 아니에요. 다만, 술을 하거나 하진 않기 때문에 만나서 식사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죠.”
“그럼 남는 시간에는 전부 운동, 훈련, 분석?”
“예.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에이전시에서 받은 자료가 손상될 정도로 철저히 분석한 후 도착하긴 했다.
다만, 지근거리에서, 같은 리그에서 수집한 자료는 에이전시 자료에서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제츠의 자료도 샅샅이 살펴보았다.
결론은 메이저리그와 KBO의 분석 기술과 노하우의 질적인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새롭게 건질 만한 건 거의 없었다.
다만, 같은 리그에서 경쟁하는 팀이고, 아마추어 시절의 자료도 있어서 소소하게 참고할 내용 정도는 찾아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유영도 선수의 활약을 기대하는 팬들이 참 많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굉장한 장타력을 뽐내셨으니 더욱 기대가 큰데요, 이번 시즌 목표. 어느 정도로 잡고 계신가요?”
“팀이 저에게 기대하는 바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결국 외국인 선수고, 외국인 선수는 리그 최고 수준의 활약을 보여줘야 하는 자리입니다. 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츠는 23년 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팀이죠. 제츠의 팬으로 유명한 유영도 선수도 잘 알고 계실텐데, 이번 시즌 서울 제츠의 우승. 기대해도 될까요?”
“제가 제몫을 해낸다면 자연스럽게 성적도 따라올 거라 생각합니다. 일단 지금은 팀의 기대에 부응하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는 것, 그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영도는 팀 성적에 큰 관심이 없었다.
팀 성적에 심력을 쏟기엔 지난 27년 동안 너무 여유가 없었으니까.
팀 성적이란 건 결국 선수 개개인의 성적이 좋으면 따라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근 30년을 개인 성적에만 집중하며 보내다보니 어느새 그게 기본 마인드가 되어버린 탓도 있었다.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미국행 이후의 행적이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인터뷰 시간이 길어졌다.
하지만 인터뷰 막바지, 그래도 기분 좋게 인터뷰를 이어가던 영도의 심기를 건드리는 질문이 주어졌다.
“서울 드래곤스의 이문재 감독이 기회가 된다면 유영도 선수에게 다시 한 번 사과하고 싶다면서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발언을 했는데, 유영도 선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볼 의향이 있으세요?”
영도의 팔꿈치를 갈아버린, 통증을 호소하며 던지지 못하겠다는 의사를 전했음에도 억지로 마운드에 올리려 했던 이문재 감독은 현재 회귀 전과 같이 서울 드래곤스의 감독으로 있었다.
과거와 달리 무기한 자격정지라는, 표면적으로는 중징계처럼 보이는 처벌을 받았지만, 예상대로 관심이 식은 뒤 슬그머니 징계가 해제되어 대학 감독, 드래곤스 2군 감독을 거쳐 1군 감독으로 승격된 것.
영도의 사건이 크게 화제가 되긴 했지만, 영도의 뺨을 때린 정양훈 당시 코치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면서 상대적으로 비난이 적었던 덕이었다.
덕분에 정양훈 코치가 자격 박탈 후 경찰조사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에 벌금형으로 형사처벌까지 받는 동안 그의 뒤에 숨어 뒷배인 유중선의 도움으로 별다른 타격 없이 커리어를 이어갔다.
이문재는 드래곤스 특유의 프런트 야구에서 다루기 쉬운 인물이라는 유중선의 판단으로 감독직을 맡아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 말, 영도의 KBO행 가능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대다수 구단의 참전으로 점점 현실화되면서 조용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던 이문재의 앞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선임 직후부터 과거 행적을 거론하며 비난한 팬들이 많았는데, 감독 때문에 유영도 영입 전에 참전조차 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드래곤스 팬덤마저 돌아선 것.
실제로는 드래곤스의 열악한 재정으론 영도의 연봉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팬들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밉상인 감독을 비난할 계기라는 게 중요할 뿐.
결국, 이를 버티지 못한 이문재는 직접 언론 앞에 서는 쇼를 기획했다.
“이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또 거론될 수 있으니 이 기회에 확실히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쇼도 주인공과 상대역이 있어야 성립되는 법.
주인공이 이문재라면 상대역은 영도였다.
그리고 영도가 이문재의 쇼에 상대역이 되어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앞으로 제 입으로 그 일을 거론하진 않을 겁니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이문재 감독의 사과를 받아주는 일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제 와서 사과하고 싶다는 둥, 만나서 대화하고 싶다는 둥,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9년이 지났고, 타이밍은 이미 옛날에 지나갔습니다.”
대체 왜 굳이 자기 무덤을 파는 걸까... 그냥 조용히 닥치고 있으면 이미 징계도 받았고, 정양훈이 어그로도 거의 다 가져간 상태라 언젠가는 조용해졌을 텐데.
어느 정도의 비난은 이어져도 그 정도 비난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선수든 감독이든 코치든 누구나 받는 거고...
이문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영도에게 나쁠 건 없었다.
영도도 당시의 사건으로 더는 공격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 대 더 때릴 기회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처음부터 그때의 일로 공격할 생각은 없었다.
유중선 라인 자체가 털면 먼지밖에 안 나올 정도로 털 게 많은 더러운 커넥션이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앞으로는 언론플레이를 하고 싶어도 들어주는 언론이 없도록 만들어 줄 테니까.’
< 입국 혹은 귀국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