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심 >
“브라운! 너무 오랜만에 찾아뵙는 것 같네요. 좀 더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하하하, 죄송하긴 뭐가!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와주는 게 고맙지.”
영도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이었던 브라운을 찾아갔다.
젊었을 때는 NCAA 디비전 2의 야구팀 감독도 맡았던 인물이긴 하지만, NCAA 감독들도 프로팀 감독들과 비슷한 명성과 연봉을 받는 미식축구, 농구와 달리 야구는 고졸 출신과 해외 유망주 자유계약 출신이 미국 4대 스포츠 중 가장 많은 종목이기 때문에 NCAA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졌다.
쉽게 말해 감독으로서 아주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 이렇게 날 찾아온 걸 보니 고민이 있는 모양인데, 뭐야? 내가 또 궁금한 건 못 참는 거 알지? 빨리 말해.”
하지만 영도는 고민이 있을 때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브라운을 찾았다.
야구 하나 믿고 태평양을 건넜던 시기, 부상 복귀와 3루수 전향을 앞두고 조급해하던 영도가 미국에 적응하도록, 티끌만큼이라도 여유를 갖도록 도와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영도는 여유가 없었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야구에만 매진하는 선수였지만, 브라운이 없었다면 정말 심각한 외곬수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영도 본인도 미친 듯이 훈련에만 매진하다가 몸 상태를 오히려 악화시켰던 회귀 전의 생활을 후회했으니 어깨에 들어간 힘을 덜어준 브라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제 2의 아버지 정도는 아니었지만, 삼촌 정도는 되는 존재였다.
“에이전시나 동생, 한국에서 찾아온 관계자들도 한 번쯤 아예 다른 환경에서, 내가 비교적 편한 리그에서 1년 정도 제대로 된 성공의 맛을 보는 게 도움이 될 거라 하더라고요. 브라운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영도는 아직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마음이 많이 기운 건 사실이었고, 처음으로 받아보는 핵심선수 대우를, 메이저리그에서 풀타임 네 번째 시즌을 치러도 받을 수 없는 고액의 연봉을 받아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를 떠나 아시아행, 한국행을 결정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선수생활 말년에 돈을 벌러 아시아로 가는 선수들과 메이저리그로 다시 돌아오는 게 목표인 선수의 고민은 다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정확히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걱정이 뭔데?”
“그런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수준 낮은 곳에서 뛰면 그 정도 수준에 익숙해지고 맞춰진다는 이야기. 솔직히 가장 걱정하는 건 그겁니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어. 보통 한국이나 일본으로 떠나는 선수들은 열악한 마이너리그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선수생활 마지막에 목돈을 벌기 위해 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러니까요.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지만, 아시아 리그에 남을 수 있다면 최대한 남고 싶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손에 쥐는 돈의 차원이 다르니까.”
마이너리거의 수익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통계에 빈곤층으로 잡혔다.
메이저리그 승격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열악하게 만들었던 마이너리그 환경이지만, 그로 인해 안 그래도 젊은 재능들이 야구가 아닌 타 스포츠로 빠져나가던 흐름이 심해져 최근엔 어느 정도 개선이 이뤄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여전히 마이너리거의 생활은 어려웠다.
메이저리그와 AAA를 오가는 AAAA급 선수들이 보통 일본행을 선택하고, 이들보다 약간 아래에 있는 선수들이 한국행을 선택하는데, 이들의 수익이 대략 20만 달러에서 35만 달러 정도.
트리플 A만 해도 30대가 넘어가면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 어렵고, 주전 자리를 빼앗긴 30대 트리플 A 선수의 미래가 어둡다는 걸 감안하면 아시아로 떠나는 선수들의 목표가 은퇴 전 목돈 마련이라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도는 달랐다.
영도는 어디까지나 변화와 자극, 경험과 성공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해 메이저리그로 돌아오는 게 목표였다.
메이저리그에서 4년간 31홈런을 치고 일본의 한신 타이거즈에 입단해 38홈런 홈런왕, 이후 메이저리그로 돌아와 통산 319홈런을 때린 세실 필더가 그랬던 것처럼.
“호오... 그건 확실히 걱정이겠는데?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에 가는 건데, 얼마 남지 않은 가능성마저 갉아먹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는 거지?”
“예. 정확하게 바로 그겁니다.”
“흠... 이해는 하지만... 내 생각을 말해줘도 될까?”
“당연하죠. 저 그거 들으려고 온 겁니다.”
사람이 고민이 생기면 참 많은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곤 한다.
그리고 결국 본인의 뜻에 따라 결론을 내리고.
영도도 마찬가지였다.
고민이 생기니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듣고 싶었다.
본인도 결국 본인이 원하는 대로 결론을 내리리라는 것을, 결국, 한국행을 결정할 것임을 내심 짐작하고 있지만, 그래도 조언이 듣고 싶었다.
“내가 볼 때 지금 넌 한국이든 일본이든 상관없이 미국을 떠나야만 해.”
“예...?”
“미국에서는 네가 성장하기 어렵단 소리야. 네가 지금 미국에서 배울 게 뭐가 있는데? 벌써 메이저리그에서만 5년을 뛰었고, 풀타임으로 3년을 뛰었어. 그런데 냉정하게 말해서... 고등학교 때랑 비교해서 뭐가 크게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소소하게 성장한 부분들은 많지만, 너도 알잖아. 메이저리그란 곳은... 아마추어 때보다 소소하게 성장한 정도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잔인한 곳이라는 걸.”
의외로 영도는 남들 못지않은 속도로 발전했다.
회귀를 겪은 뒤, 몸을 단련하긴커녕 오히려 몸을 망쳤던 말도 안 되는 훈련량이 그대로 기량으로 전환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메이저리그에서 백업으로나마 살아남을 수 없었다.
야수로 완전히 전향하고 훈련한 건 전생에도 7년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KBO의 평범한 2군과 메이저리거 사이에는 기적 한 번으로는 메울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존재했다.
회귀한 이후에도 영도의 자세는 변하지 않았고, 그 덕에 지금의 위치까지 아득바득 올라왔다.
그래서 ‘너무 짧은 마이너리그 생활과 부족한 경험으로 성장이 정체된 메이저리그급 특급 유망주’가 될 수 있었던 거고.
브라운은 이렇게 된 이상 메이저리그에 남는 건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 네가 컨택이 너무 안 된다고 걱정했을 때 내가 말했지. 너의 말도 안 되는 파워라면 굳이 어퍼스윙을 고집하지 않아도 홈런을 때릴 수 있다고. 어퍼스윙으로 컨택까지 잡을 능력이 안 된다면 레벨스윙으로 타격폼을 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그때, 네가 뭐라고 했지?”
“... 지금 타격폼을 바꾸면 그나마 있는 장점도 사라질까봐 무섭다고...”
“그래, 그거야. 넌 조금 더 성장하고 싶고, 그러려면 뭐든 변화가 필요한데... 겁이 많고 걱정이 많아서 쉽게 그 변화를 시도하지 못해. 그럼 어쩌겠어. 네가 조금 더 편하게 변화를 결심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지. 메이저리그는 너무 무섭고 살벌한 곳이니까.”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보수적이 된다는 건 많이들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영도처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고도 실패한 선수 역시 변화를 두려워했다.
수도 없이 시도해서 그나마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하니까.
다만, 기적이 찾아와 신체능력을 비롯한 많은 것이 달라졌음에도 그만큼의 변화를 시도하진 못했다.
메이저리그의 위엄에 눌려 갖은 시행착오 끝에 찾은 무기들을 버리고 새로 찾기보다 그대로 갈고닦는 데 매진했기 때문이었다.
이민 이후 수익이 70% 이하로 떨어지고 생활비는 1.5배 이상 늘어 기울기 시작한 가정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부채 의식도 보수적인 선택의 이유 중 하나였다.
회귀 후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때까지 주어진 시간은 3년 여.
최대한 빠르게 메이저리그에 올라가 돈을 벌어야 했던 영도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이라면 가능하겠지. 내가 말했던 레벨스윙도 한 번 시도해볼 수 있을 테고, 메이저리그에서는 불가능했던 3루수 출전을 이어가면서 네 가치를 더 올릴 수도 있을 거야. 한 번에 목돈을 받아 가족에 대한 마음의 빚도 청산할 수 있겠지. 성공 경험, 자신감, 그로 인한 여유도 기대할 수 있을 거고... 이렇게 장점밖에 없는데 뭘 망설이는 거지?”
안 그래도 한국행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영도는 존경하는 브라운 감독의 조언에 점점 결심이 굳어졌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 주변 사람들은 물론 영도 본인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계속 메이저리그에 있으면 계속 이 정도 수준을 유지하다가 하락할 뿐이었다.
낮은 수준에 자신이 맞춰지는 걸 걱정하느라 비교적 경쟁이 덜한 리그에서 마음 편히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장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볼 땐 나한테 찾아오기 전부터 떠나기로 어느 정도 마음을 먹은 것 같았는데... 맞지? 내가 제대로 봤지?”
“...하하하, 역시 브라운은 야구 감독보다 카운슬러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한 번 생각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후후, 내가 또 한 상담 하지. 요즘도 애들이 상담해달라고 너무 많이 찾아와 힘들다니까?”
“거기 두 사람! 이야기 끝났으면 나와서 차나 한 잔 해요. 오랜만에 왔는데 내가 타준 차는 한 잔 마시고 가야지.”
“... 하여튼 우리 달링은 호구조사 좀 해봐야 한다니까? 내가 볼 때 분명히 영국 사람인데 등록이 잘못된 걸 거야.”
“하긴... 차를 참 좋아하시긴 하죠.”
안 그래도 많이 기울었던 마음에 브라운 감독의 조언이 더해지며 마침표까지 찍은 지금, 영도는 그 어느 때보다 후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회귀 전, 자신의 몸을 말 그대로 갈아가면서 십 수 년을 염원했던 무대, 드디어 그 무대에 설 기회가 찾아온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
“형, 뭐해? 그거 설마... KBO 분석자료야?”
“응. 이왕 가기로 한 것, 가기 전에 완벽하게 준비해서 가야지.”
훈련, 노력, 성실... 이런 것들은 영도를 대표하는 단어들이었다.
한국행 결심을 확고히 한 이상 이제 고민할 것도 없었다.
영도는 본인의 장점을 살려 시즌 개막이 반년 가까이 남은 지금부터 KBO의 투수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보니까 좀 어때? 할 만할 것 같아?”
“내가 브레이킹볼을 어려워하는 거, 너도 잘 알지?”
“당연히 알지. 아니, 야구팬 중에 모르는 사람이 더 적을 걸.”
”브레이킹볼이 눈에 이렇게 잘 들어오는 건 처음이야. 아무리 영상으로 보는 거라고는 하지만...”
KBO 투수들의 평균적인 수준이 싱글A, 에이스급 투수들이 AAA에서 AAAA급 정도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마이너리그 경험이 짧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워낙 괴물이라서 느끼지 못했던 건지, 영도도 그동안 많이 성장해서 그런 건지...
KBO 투수들의 피칭을 아무리 봐도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형. 형 메이저리거야. KBO 에이스도 아니고 투수 전원의 영상을 보면서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게 이상하지.”
“그런가... 지금 내가 그 정도란 말이지?”
회귀 전에는 이 투수들 대부분을 하나의 산처럼 느꼈더랬다.
아직 한국에 간 것도 아니고 KBO의 타석에 선 것도 아니지만, 벌써부터 느낌이 좋았다.
이젠 야구를 사랑한다기보다 집착한다는 게 더 어울리는 영도에겐 다른 무엇보다 본인이 성장했음을 깨달을 때가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
“에드가 펜서 코치한테 연락 좀 해줘. 별다른 일 없으면 내 타격폼 좀 봐줬으면 한다고.”
“오... 드디어 결심이 선 거야? 레벨스윙?”
“선수가 먼저 요청하지 않으면 그런 예민한 부분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 곳에서 나한테 슬그머니 레벨스윙을 추천한 감독, 코치만 몇 명인데... 이제 나도 돌파구를 찾을 때가 됐지.”
걱정과 두려움이 많아 변화를 피했던 영도지만, 한 번 결정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도 영도였다.
한 번의 기적으로도 넘어설 수 없는 메이저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주춤한 지금, 영도는 다시 한 번 본인의 장기인 집착과 집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결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