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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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림길 >

[‘비운의 유망주’ 유영도, 2034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9라운드 전체 287번으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입단!]

[무서운 10대의 무서운 질주! 17세에 전체 287번으로 입단한 드래프트 9라운더 YU, 19세에 확장 로스터로 메이저리그 데뷔!]

[2036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유망주 TOP 100 중 7위에 이름 올린 유영도, 아메리카 드림 향한 쾌속 질주!]

[오클랜드 존 바이든 감독, 특급 유망주 YU 활용법 질문에 코너 외야와 1루수 자리에서 주전급으로 활용할 것이라 밝혀]

[‘풀타임 첫 시즌’ 유영도, 절반의 성공. 491타수 112안타 28홈런으로 0.228/0.283/0.471 기록. 장타력 A+, 컨택과 수비 보완 시급]

[풀타임 두 번째 시즌에도 0.231/0.276/0.452 25홈런 그친 YU, 지나치게 빠른 콜업이 성장 방해했나?]

[성장이 멈춘 특급 유망주 YU, 오랜만에 특급 유망주 확보한 구단의 조급증과 선수 본인의 빠른 개화와 낮은 한계치가 겹친 실패작?]

사건 이후 8년. 영도는 본인이 자신한 대로 메이저리거가 되어 있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행운 덕분에 어린 나이에 뛰어난 기량을 갖게 되었기에 10대에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었고, 만 23세의 어린 나이에 서비스타임 3년을 채워 연봉조정자격까지 얻었다.

“거기에 함정이 있었다는 건 차마 예상하지 못했지만...”

부모님이 꼼꼼히 스크랩해둔 기사들을 보면서 영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행운 덕분에 빠르게 메이저리거가 되어 돈도 벌고 급하게 진행한 이민에 수술과 재활로 기울었던 집안 사정까지 어느 정도 회복시켰지만 거기까지였다.

‘어린 나이에 기량이 너무 뛰어나서 제대로 된 경험을 쌓지 못할 거다, 라는 걸 내가 어떻게 예상하냐고.’

영도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했고, 그 훈련량이 그대로 기량으로 전환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시점에 이미 메이저리거급의 기량을 갖출 수 있었다.

문제는 훈련량과는 별개로 쌓아온 경험이라는 게 꼴랑 한국, 그것도 2군에서의 경험이 전부라는 것.

하드웨어 자체는 메이저리거도 씹어 먹을 정도인데, 소프트웨어가 한국 2군, 컴퓨터로 거의 20년 전 운영체제 수준이니 고전하는 게 당연했다.

그나마 미국에서도 뛰어난 편인 재능 덕분에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도 충실히 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20년 전 운영체제에서 15년, 잘 쳐줘도 10년 전 운영체제 정도로 업그레이드된 정도였다.

그걸 미리 깨닫지 못했을 뿐인데, 그게 치명적이었다.

ㄴ 아무리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해도 고졸 선수를 2년 만에 콜업하는 구단이 어디 있어!? 그렇게 조급하게 올려서 망한 유망주가 한 트럭인데!!

ㄴ 패스트볼은 귀신같이 때리는데 브레이킹볼만 들어오면 배트가 춤을 춰. 맞으면 홈런인데, 도통 맞추질 못하고, 수비도 아쉬운 편이지. 10대에 올라와 이 정도니 한 2년 정도만 더 마이너에서 묵혔으면 지금쯤 우리 에이스의 핵심 선수가 되었을지도...?

ㄴ 진짜 얘만 보면 당장 에이스 사무실로 쳐들어가서 다 때려 부수고 싶다. 얼마만에 나온 자체 팜 유망주인데, 그런 애를 이렇게 망쳐놔!?

ㄴ 이봐, 너무 희망적으로만 보는 거 아냐? 이 친구를 봐. 동양인이라고? 그냥 일찌감치 기량이 개화해서 성장 한계치를 일찌감치 찍었다고는 생각 안 하는 거야?

ㄴ 동양인 타자들의 약점은 대부분 파워나 배트스피드에 있었는데, YU의 문제는 대부분 경험부족으로 인한 것들이야. 너야말로 YU가 동양인이라고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거 아냐?

고졸 출신, 9라운드라는 높지 않은 순번의 드래프티로서 순식간에 마이너리그를 정복하고 메이저리그까지 올라온 특급 유망주 출신이다 보니 나름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고, 에이스 팬덤에서는 특히 많은 관심을 보내주었다.

그래서 지금 에이스 팬 커뮤니티에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모습을 드러낸 19세 시즌부터 연봉조정 전 마지막 시즌이었던 이번 23세 시즌까지 크게 발전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기나긴 토론이 이어졌다.

‘흔한 일 아닌가? 경험이 부족한 유망주를 팀 사정상 급하게 땡겨썼다가 성장할 타이밍을 놓쳐 애매한 선수로 전락하는 건.’

KBO와 MLB는 A부터 Z까지 전부 엄청난 수준 차가 있지만, 투수의 수준 차는 그중에서도 큰 편이었다.

KBO 투수들의 평균 레벨은 A+에서 AA 사이, 타자들의 평균 레벨은 AA 정도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는데, 투수의 뎁스가 얕은 KBO의 현실을 생각하면 2군 투수들과 2군 타자들의 격차는 이보다 더 클 것이 분명했다.

그런 곳에서 활약하던 영도가 대학무대 경험은커녕 마이너리그마저 거의 경험하지 못한 채 메이저리그를 밟았으니 변화구에 고전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1군 무대까지 정복한 뒤 메이저리그로 건너왔다가 망해서 돌아가는 선수들이 한 트럭이고, 투수보다 야수의 성공이 훨씬 어렵다는 게 증명되었으니 2군 출신인 영도야...

재능이 아주 뛰어난 메이저리그 탑클래스의 재능들은 마이너리그 경험이 몇 년이든 곧바로 메이저리그를 씹어 먹기도 하지만, 애초에 영도가 가진 재능이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한국 탑클래스, 전세계로 보면 적당히 뛰어난 재능에 말도 안 되는 훈련량과 이를 기량으로 전환해준 행운이 겹쳐 만들어진 게 유영도라는 선수였다. 

그리고 지금 약점을 드러낸 부분들은 전부 재능이 아니면 경험으로 커버해야 하는 부분들이라는 게 문제였다.

ㄴ 그래서 어쩌자고? 얘랑 내년에도 같이 가? 최저 연봉이 65만 달러니까 한 1.1M에서 1.2M 정도는 줘야 할 텐데?

ㄴ 솔직히 브레이킹볼은 경험의 영역 아닌가? 파워는 말할 필요도 없이 리얼이고 패스트볼도 잘 때리니까 아직 좀 더 안고 가도 될 것 같은데? 다음 시즌에도 고작 24세니 어린 편이고.

ㄴ 와... 얘가 아직도 24세야? 말도 안 돼. 일반적으로 대학 졸업하고 처음으로 메이저 콜업되는 나이가 그 정도 아닌가?

ㄴ 그러니까. 그렇게 일찍 올라와서 벌써 이 나이가 되었는데 발전이 없어. 더 시간을 준다고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ㄴ 다들 알잖아. 우리 팀이 최근 3년 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우린 우승을 노려야 해. 수비도 애매하고 파워 말고는 타격도 애매한 타자한테 내줄 자리는 없어.

ㄴ 얘가 1루랑 코너 외야밖에 안 된다는 것도 문제라고? 왜 아무도 그건 언급 안 하지?

ㄴ 1루랑 코너 외야에서 얘보다 잘하는 타자는 널렸어. 벤치 자원이라면 당장 저 포지션 유망주 아무나 올려도 큰 차이 없을걸?

ㄴ 난 YU에게 충분히 기회를 줄만하다고 봐. 다만, 그게 우리 팀은 아닐 거야. 우린 이번에 포지션이 겹치는 1루수 척 스노우를 데려오느라 100M 가까이 썼고, 3년 동안 6명의 FA를 영입하면서 팀 샐러리도 너무 높아졌어.

ㄴ 아니, 얘는 무조건 터진다니까? 지난 두 시즌처럼 어떻게든 자리 주고 주전급으로 박아놓으면 터질 놈을 이번 시즌에 백업으로 아무 자리에서나 굴리니까 안 그래도 조급한 친구를 망쳐놓은 거야!

ㄴ 그래서 어느 자리를 줄 건데? 6년 100M에 영입한 척의 1루? 3년 36M에 영입한 알버트의 레프트? 그것도 아니면 프랜차이즈에 3할 30홈런 치는 요앙의 라이트? YU는 분명 포기하긴 아까운 유망주지만, 우린 백업한테 1M을 넘게 쓸 정도로 여유 있는 상황이 아냐. 특히 시장에 흘러넘치는 1루와 코너 외야 자원이라면 더더욱.

ㄴ 20년대 중반에 구장 재건축, 중계권료 대박으로 분이 넘치게 돈을 펑펑 썼다가 고꾸라지지만 않았다면 YU도 조금 더 여유롭게 성장할 수 있었겠지. 그땐 팀이 급했으니까. 그리고 이후 바짝 숨을 죽이고 있다가 몇 년 전부터 다시 내달리는 상황인데, 그런 상황만 아니었어도 조금 더 기회를 받을 수 있었을 거고.

ㄴ 빠르게 데뷔해서 서비스 타임을 쌓은 것, 그거 하나 빼면 YU는 팀 상황 때문에 계속 손해만 본 거네. 어릴 땐 성장할 시간을 빼앗겼고, 지금은 성장할 기회를 빼앗기는 거니까...

영도의 문제점과 실패 이유에 대한 토론은 곧 다음 시즌 계약에 대한 토론으로 넘어갔다.

애매한 입지의 선수가 연봉조정신청자격을 얻었을 때, 재계약을 따내지 못하고 이적하거나 마이너리그 계약, 최악의 경우 아예 미아가 되는 건 아주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보직이 애매한 투수, 다른 포지션에서 뛰다가 타격 기량만 남은 노장들의 포지션 전향 때문에 자원이 넘쳐나는 1루와 코너 외야의 야수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흔했고.

불운하게도 영도의 경우 처음 콜업될 때까지만 해도 3루수 자원이었고, 그 포지션을 고집스럽게 고수할 만큼 팀 내 위상이 높았지만, 팀 사정과 본인의 부진이 겹치며 어쩔 수 없이 1루와 코너외야 자원으로 넘어온 상황.

풀타임 3시즌 동안 80홈런 가까이 때려낸 장타력이 있어도 다음 시즌 계약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아... 대체 이게 잘 풀린 건지, 망한 건지 판단을 못하겠네. 메이저리거 헬스케어에 연금까지 전부 받을 수 있고, 커리어를 이어가자면 못할 것도 없으니 분명 성공한 커리어이긴 한데, 세상 그 누구도 받지 못한 혜택을 받은 것치고는 개인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단 말이지.’

영도는 복잡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고 있다고 자부할 만했다.

한국의 만년 2군 선수가 만 23세에 메이저리그에서만 3시즌을 보냈고, 통산 90홈런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니까.

3루는 그야말로 가능만 한 수준이고, 나머지 포지션은 가치가 가장 낮은 포지션이라지만, 그래도 4개 포지션을 소화하고 지명타자 자리까지 가능했다. 

그때그때 특정 포지션이 구멍 난 팀을 찾아 옮겨 다니면 통산 300홈런까지도 노려볼 수 있을 터였다.

다만... 그래도 여전히 뭔가가 아쉬웠다.

시간까지 거슬러 돌아오고 말도 안 되는 선물까지 받았는데 역사에 이름은 못 남겨도 당대를 호령하는 A+급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본인의 재능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 정도였다.

“왜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어? 팬 커뮤니티? 웬일로 그런 걸 다 찾아본대? 그런 거 볼 시간에 훈련이나 하겠다던 사람이.”

그때, 승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드래프트 이후 프로가 되면서 독립한 영도였지만, 승도가 대학을 졸업하고 영도의 에이전시에 입사, 매니저로 함께 일하게 되면서 지금은 둘이 함께 살고 있었다.

“일단 이것부터 보고 이야기하자.”

“이게 뭔데?”

“아니, 보면 아는 걸 왜 굳이 물어 봐? 우리 에이전시에서 형에 대해 평가한 스카우트 보고서야.”

“스카우트 보고서?”

[이름 : Young-Do, Yu]

[포지션 : 1B, LF, RF, 3B]

[6-1ft(185cm), 225lb(102kg), R/R]

Hit 40 / Power 70 / Run 35 / Arm 60

Fielding (1B) 45, (LF, RF) 40, (3B) 35

매우 뛰어난 장타력을 갖춘 타자.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어퍼스윙 메커니즘을 보유했다. 빠른 배트스피드를 가지고 있어 패스트볼 대처 능력은 정상급. 리그를 대표할 만한 파워를 가지고 있으며, 선구안도 나쁜 편은 아니다.

다만, 브레이킹볼을 공략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다. 낮은 타율과 출루율은 모두 브레이킹볼로 인한 것. 브레이킹볼 대처 능력만 키울 수 있다면 타율과 출루율 모두에서 드라마틱한 상승이 있겠지만,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늦은 나이의 야수 전향과 짧은 마이너리그 경험으로 인해 수비에서도 문제를 보이지만, 짧은 시간에 평균적인 수준까지 올라온 1루 수비 능력을 봤을 때 기회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제몫은 할 수 있을 듯. 어깨도 플러스급이라 장기적으로 3B, 혹은 RF로 가는 것이 선수 본인에게는 베스트.

[미래]

매우 뛰어난 하드웨어와 테크닉을 갖췄지만, 너무 이른 콜업으로 인한 경험 부족으로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생긴 타입.

경험이 쌓이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대부분인 만큼, 아직 어린 나이와 비교적 많은 경험을 고려하면 아직 최대 올스타급까지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당장 메이저 계약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회사와 선수의 최대 이익을 고려, 수익과 경험, 성공의 맛, 그로 인한 성장까지 한 번에 네 가지 열매를 노릴 수 있는 아시아 진출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적나라하네...’

회귀 전, 영도는 파워를 키우기 위해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했다.

주루와 수비가 안 되고 짧은 야수 경력으로 테크닉마저 투박했기에 장타 하나에 모든 걸 걸었던 것.

애초에 불가능한 주루는 아예 포기했고, 수비는 비교적 요구치가 낮은 1루와 좌익수 위주로 훈련했다.

그리고 모든 초점을 장타에 맞춘 채 컨택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극단적은 당겨치기와 어퍼스윙을 장착했다.

그렇게 무식할 정도로 키운 파워와 반대급부로 포기한 컨택, 짧은 경력에 비해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 1루와 코너 외야 수비, 가까스로 사람 축에는 드는 주루.

50이 리그 평균임을 감안했을 때, 무서울 정도로 영도의 과거를 정확히 반영한 스카우팅 리포트였다.

‘사람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그 목소리가 준 선물이니 당연한 결과지만.’

이에 비해 회귀 후 매달렸던 3루 수비와 컨택, 변화구 대처 등은 딱 적당히 뛰어난 재능을 갖춘 선수의 성장 그래프와 비슷했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라면 메이저리그 수준에서도 뛰어난 축에 속하는 재능이 증명되었다는 것이지만...

이제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게 문제.

“다 읽었어?”

“그래, 다 읽었다. 무섭네. 그렇게 메이저한 에이전시도 아닌데, 역시 본토에서 활약하려면 다 이 정도는 해야 하나 봐? 넌 언제 이렇게 되냐?”

“... 반박할 말이 많지만, 일단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미뤄두자고.”

“왜. 뭐 중요하게 할 말이라도 있냐.”

“형. 혹시 한국 안 갈래?”

영도는 잠시 생각을 멈췄다. 행동도 멈췄고.

그리고는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지막 줄... 혹시 네가 쓴 거냐?”

< 갈림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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