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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진실’, 초특급 유망주 유영도는 정말로 감독에게 항명했나]
[U-18 야구 월드컵 결승전, 4회 종료 후 무슨 일이 있었나. 의료진으로부터 입수한 증거에 담긴 이야기는 KBSA의 발표와 달랐다]
[혹사가 당연했던 7, 80년대, 수면 위로 올라오던 90, 00년대, 민감한 문제였던 10년대. 이제 아마추어 에이스들의 혹사를 뿌리 뽑을 때가 되었다]
사실상 아마추어 야구도 프로리그를 전담하는 KBO에서 함께 담당하게 된지 꽤 되었지만, 아마추어 야구와 소프트볼을 전담하는 KBSA의 영역도 여전히 넓었다.
그리고 그 부분이 영도가 파고들 틈이 되었다.
아마추어를 담당한다고 본인들 역시 아마추어여도 된다고 생각한 건지, KBSA의 일처리는 아마추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고작 기자 한 명한테 제보했을 뿐인데 KBSA가 짜놓은 판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 정도 큰일을 기사 몇 개로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웃긴 거지. 어느 정도는 본인들 잘못도 인정하면서 축소할 생각을 해야지, 아예 덮으려고 하니 그게 되나.”
“...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그리고 형은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똑똑해졌어? 야구랑 패션, 간지 말고는 아무것도 관심 없던 형이 이제 이런 짓도 하네?”
“시끄러워. 어쨌든 이야기 잘했지? 내가 시킨 거 티 안 나게.”
“아오, 몇 번을 물어? 형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니까? 동생인데 화가 나서 여기저기 연락한 거라고 말했어. 또 물어보면 진짜 나도 가만히 안 있어?”
KSBA와 이문재 감독의 거짓말이 탄로나고 후폭풍이 부는 이 상황에서 영도는 완벽히 빠져 있었다.
제보도 동생인 승도가, 그것도 현지에서 관람하던 야구팬으로 위장해 넣었을 정도였다.
‘직접 나서기엔 판이 아직 너무 작지.’
난리가 났다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수준.
아마추어 야구계에서는 오랜만에 터진 큰 사건이라지만, 야구계 전체, 스포츠계 전체로 보면 찻잔 속의 태풍 수준이었다.
달리는 댓글도 2, 300개 수준으로 매우 적고.
KSBA, 유중선, 이문재로 이어지는 커넥션에 타격을 주기엔 너무 규모가 작았다.
‘내가 직접 나서는 건 내가 조금 더 큰 사람이 된 이후야. 기대하라고. 그때는 정말로 바닥으로 끌어내려 줄 테니.’
[이문재 감독,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 정양훈 코치 자격박탈+경찰 수사]
[감독과 코치의 징계로 무고함 드러난 유영도 선수, 그런데 징계 해제는 없다?]
[관심이 사그라지면 바로 해제 될 무기한 자격정지와 1년 자격정지로 선수생활의 위기 맞이한 유망주. 협회는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예상대로 협회는 이문재 감독에게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를 내리면서도 영도의 징계를 취소해주지 않았다.
비인기 종목에서 무기한 징계를 때리고 몇 달 후 슬그머니 해제하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은 일.
결국, 이 정도 일로는 권력자들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만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형, 그런데 이 정도면 되는 거야? 바뀐 건 아무것도 없는 거 아냐? 댓글들도 형만 X됐다는데?”
“이 새끼... 형한테 X가 뭐냐, X가!”
“아니, 내가 그런 게 아니라 댓글이 그렇다고! 왜 나한테 화풀이야!! 시키는 대로 해도 지랄...”
“생각하고 말해라. 그 말을 그대로 끝내도 될지, 안 될지.”
“......”
“그래, 잘 생각했어, 인마.”
사실, 영도에게도 1년 자격정지 징계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어떻게든 팔꿈치를 지키긴 했지만,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팔이라 토미 존 서저리까진 피할 수 없었으니까.
야수로 전향한다고 해도 수술 후 최소 반년, 이상적으로는 7, 8개월의 재활 기간이 필요하기에 사실상 징계기간은 3개월 정도였다.
또, 고교야구를 사실상 KBO가 주관하는 상황이라고는 해도 징계는 KSBA가 주관하고, 때문에 아마추어 야구에서만 적용되었다.
프로에 진출하게 된다면 이 징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 나라 협회와 지도자들은 수십 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여전히 아마추어 선수들을 그저 본인들의 자리와 권력, 명성을 쌓고 유지하기 위한 소모품으로 본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나라에선 학생이 야구를 잘하는 게 죄야. 우리 학교 사정상 재활 후 복귀도 여유롭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고.’
그 나물에 그 밥.
이문재 감독에 대한 반감이 워낙 커서 그렇지, 영도의 모교 감독 역시 특별히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꼰대 감독이자 사람을 잡기 직전까지만 굴리는, 겨우겨우 백정은 면한 정도였다.
부상이라면 학을 떼는 영도이기에 재활기간을 제외하면 1년 반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한국에서 활약하는 게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영도야. 후우... 미국에서 야구하는 건 어떠니?”
“그래. 너도 알다시피 너한테는 미국 국적도 있으니까 거기서 자리 잡는 게 어렵진 않을 거야. 아빠 말 듣자.”
그리고 영도에게는 플랜B가 있었다.
이전에도 한국 아마추어 야구계의 선수 혹사에 화가 난 부모님은 미국 유학을 설득했다.
마침 영도는 태교를 위해 부모님이 임신 7, 8개월 즈음 미국 여행을 떠났을 때 2개월이나 먼저 세상에 태어난 팔삭둥이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미국 국적을 갖게 된 영도이기에 부모님 입장에서는 더더욱 미국으로 보내고 싶어했다.
야구선수로서의 성공 가능성이 좀 낮아지더라도 일단 자식의 건강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게 부모님이라는 존재였으니까.
중학교 때부터 이어진 혹사로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사는 아들의 모습에 남몰래 눈물을 훔치면서도 아들의 꿈이 달린 일이기에 참고 또 참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결국 터지고 만 것이었다.
다만, 이전에는 미국 야구와 타국 생활에 대한 두려움, 한국에서 쌓아놓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영도 본인이 거절해서 없던 일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어디서 야구하든 제가 못할 리 없잖아요?”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부상 때문에 운동을 제대로 해보진 못해서 자세히 파악하진 못했지만, 꿈이라고 생각했던 목소리가 꿈이 아니었는지 팔꿈치를 제외한 몸 상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그 목소리가 말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미국 야구도 두렵지 않았다.
당장 통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겠지만, 이 몸의 나이는 고작 만 16세.
이렇게 된 김에 평생 꿈이었던 메이저리그에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해온 훈련을 실제 기량으로 환산해준 게 맞다면... 더더욱 그랬다.
만년 2군 선수였다지만, 그만큼 충실하게, 성실하게 야구를 대했다는 자부심은 있었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것, 일찌감치 큰물로 나가볼게요. 어차피 곧 갈 거였는데, 조금 미리 가는 것뿐, 달라지는 건 없을 거예요, 아마.”
영도의 미국 진출은 이렇게 결정되었다.
부상과 징계, 이어진 논란과 결정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어쩌면 조금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물론, 영도 본인은 수십, 수백 번을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
[(단독) 비운의 유망주 유영도 미국 유학 결정!!]
[유영도父, “계속 여기서 야구하다가는 애 잡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아들이 야구선수로 성공하는 것보다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더욱 간절히 원한다. 결국, 아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떠나는 것.”]
[유영도의 미국 유학 소식에도 KSBA-이문재 감독은 침묵으로 일관 중. 유망주 해외 유출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그동안의 모습은 그저 밥그릇을 지키려는 추악한 몸부림이었나]
ㄴ 역시... 헬조선이 헬조선한 거지, 뭐. 어떻게 이 나라는 변하는 게 없냐?
ㄴ 프로야구도 프로야구지만, 아마추어 야구에는 진짜 인간백정들밖에 없는 듯. 사람 잡는 게 당연하고, 못 잡으면 아쉬워하는 것 같네.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뭐냐, 진짜? 실상이 밝혀진 후에도 징계 발표만 툭하고 사과문은커녕 입장문 발표도 없고, 지들 때문에 특급 유망주 한 명이 한국을 떠난다는데도 침묵? 대체 이 협회는 왜 있는 거임? 그냥 KBO가 다 하면 안 되나?
ㄴ 이게 다 우리 때문이지, 뭐. 이런 일 한 번 터지면 일이 해결되고 저 인간쓰레기들이 바뀔 때까지 관심을 줘야 하는데, 금방 관심이 식으니까.
ㄴ 2222222222 분명 이제 한두 달 지나면 관심 식을 거고, 관심 식으면 저 감독 징계 해제 후 복귀한다에 내 오른쪽 손목 검.
ㄴ 어쨌든 쟤는 미국가서 성공했으면 좋겠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면 한 번 더 확 이슈되고 협회랑 저 감독도 못 버틸 정도로 거물이 될 텐데.
ㄴ 쉽진 않겠지만, 응원은 함. 저 어린 친구가 얼마나 무서웠겠냐. 그냥 야구가 하고 싶었을 뿐인데, 지도자라고 있는 것들은 팔을 갈아버리려고 하지, 아파서 못 던지겠다는데 뺨이나 때리지... 차라리 미국에서 인종차별 받는 게 마음은 더 편하겠다.
ㄴ 인종차별보다 무서운 꼰대 클라스!! 크으, 자랑스럽다! 이게 대한민국이지!!
영도의 미국 유학 결정은 순식간에 내려졌기에 아직 사건에 대한 관심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팬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당연히 피해자인 영도에게는 팬들의 동정과 응원이 쏟아졌다.
큰 상처를 받고 한국을 떠나는 모양새였기에 이민 후의 커리어에 대해서도 응원을 보내주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이렇게 이쪽에서 도망치듯 떠나지만,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그땐 겨우 이 정도로 끝내지 않아.’
어느 정도 분을 풀긴 했지만, 20년 가까이 쌓인 한을 풀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지금은 본인이 가진 힘도, 지지해주는 팬들의 화력도 턱없이 부족해 이 정도로 끝내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영도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본인조차 아직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행운을 얻어 이제 막 돌아온 상황이었고, 두 번째 인생, 두 번째 야구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너한테는 진짜 미안하다. 나 때문에 너까지 팔자에도 없는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었으니...”
“맞지. 많이 미안해해야지. 형이랑 다르게 난 미국 국적도 없는데 말이야.”
다만, 가족들에게 미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급하게 결정된 이민이기에 어머니와 동생만 먼저 함께 떠나게 되었는데, 어쩔 수 없이 어머니는 일단 먼저 일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다시 직업을 찾아야 했고, 이후 따라올 아버지 역시 상당한 수익 감소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었다.
원래 역사보다 1년 먼저 야구를 그만두게 된 동생 역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고.
“에이, 그런 표정이면 내가 또 마음 약해지지. 나한테는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부모님한테나 잘해. 어차피 난 형만큼 재능도 없어서 곧 그만둘 거였는데, 뭐.”
“... 하하하, 하긴. 내가 생각해도 넌 선수 재능은 좀 별로인 것 같더라.”
“후우, 금방 기가 살아가지고는... 이왕 미국까지 가는 거니까 본고장에서 제대로 에이전트 공부나 해보려고. 그리고 에이전트 되어서 형을 내 손으로 주무를 거야. 각오해라, 진짜.”
“... 넌 잘할 거야. 기대는 해볼게.”
어쩌면 동생에게도 잘된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래도 한국 야구계는 2020년이 다 되어서야 에이전트 제도를 받아들였고, 승도 역시 한국에서만 공부해 에이전트가 된 것을 많이 아쉬워했으니까.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까 너나 부모님이나 잘난 아들, 형 덕분에 덕 좀 봤다고 말할 수 있게 해줄 거다. 특히 너는 잘난 형 덕 크게 봤다고 말하게 해줄게. 네가 내 앞에서 설설 기는 거, 꼭 보고 싶으니까.”
“형이 아무리 잘 나가도 형 에이전트는 나야. 그리고 마음대로 굴릴 테니까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올라가 봐. 형이 어디까지 가든 결국 내가 형 머리 위에 있을 테니.”
이렇게 영도와 가족들은 한국을 떠났고, 이후의 일은 예상한 그대로 진행되었다.
한동안은 관심이 이어졌지만, KSBA와 이문재 감독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팬들 역시 곧 KBO의 포스트시즌이 시작되면서 순식간에 관심을 끊었다.
이후 이문재 감독은 슬그머니 야구계에 복귀했으며, KSBA와 아마추어 지도자들은 변함없이 아마추어 선수들을 갈아 기득권과 명성을 챙겼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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