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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매듭을 풀다 > (3/200)

< 첫 매듭을 풀다 >

“아오, 진짜 아파 죽겠네!!”

다음 날, 일단 본인은 다음 날이라고 생각한 날, 영도는 눈을 뜨자마자 왼쪽 팔꿈치를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3차 수술까지 거친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쑤셔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후유증 개념의 통증이었다.

그러니까 너무 많이 써서 부하가 걸렸다거나 하는 느낌의 통증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런제 지금의 이 통증은 마치 부상을 안고 던졌던 그 날의...

“뭐, 이 자식아!? 너 지금 그게 무슨 뜻이야? 감독님 명령에 따르지 못 하겠다? 반항하겠다, 이거냐고!?”

음? 뭐지? 저 코치님, 아니, 저 코치... 저 인간이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지?

영도는 거의 20년 만에 만나는 얼굴을 보고 당황해 어떤 식으로도 반응하지 못한 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뭐야, 이 새끼야! 그렇게 야리면 어쩔 건데? 어디 건방지게 코치님 얼굴을 그딴 식으로 야려, 야리길! 한 번 해보겠다, 이거야? 항명이냐고!!”

“어이, 어이. 정코치. 우리 에이스한테 그렇게 윽박질러서야 되겠나. 안 그래도 지금 어디 불편하다는 애한테.”

‘저, 저 인간이!!’

꿈에서도 만나던, 사건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매일 떠올리며 칼을 갈았던 그 얼굴이 보이자, 순식간에 주변 환경이, 그리고 이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확실했다. 오늘은 바로 문제의 그 날.

왼쪽 팔꿈치 통증이 심각하다고 말했음에도 저 인간이, 이문재 감독이 이를 무시하고 마운드에 올려 60구를 더 던지고 완벽하게 팔꿈치가 망가졌던 그 날이었다.

“영도야. 어쩌겠냐. 세계대회 결승까지 왔는데 에이스인 너 말고 우리가 누굴 믿겠냐. 하루만 참자. 알아들었지?”

이 시기의 영도는 이제 막 고등학교 1학년 시즌을 마친 선수였다.

청소년 대표팀의 핵심 선수들은 이미 프로 지명을 받은 두 살 많은 형들이었고.

영도는 그런 형들과 비교해도 더 나으면 나았지, 부족한 게 없다는 평가를 받아 1년의 차이가 지대한 유소년임에도 두 살이나 어린 나이에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었다.

그리고 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이 시기 2020년대에도 유소년 에이스들의 운명은 다르지 않아서 이 팀의 1, 2선발 형들 역시 멀쩡한 곳이 없었다.

1선발은 허리 부상, 2선발은 팔꿈치 부상으로 일찌감치 이탈했다.

차라리 이 두 선수는 사정이 괜찮았다.

시즌을 치르며 누적된 부상이었고, 훈련 중 통증이 발견되어 한계까지 가지도 않았으니까.

결국, 에이스를 맡게 된 3선발은 뒤를 받쳐줄 선수가 없어 마지막까지 혹사당했고, 결국, 형들의 뒤를 따라 쓰러졌다.

아파서 던지지 못한 형들과 달리 던지지 못할 때까지 던지다가 다시는 던지지 못할 정도로 제대로 박살났다는 게 다르긴 했지만.

아마추어 에이스 출신 투수들은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면 뽑지 않는 게 좋다는 속설.

그 속설은 영도가 돌아오기 전인 2040년대에도 유효했다.

“... 하루만 참다가 20년이 날아갈 것 같습니다, 감독님.”

“음? 뭐라고? 지금 그게 무슨 뜻이지?”

이전의 영도는 여기서 감독과 코치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마운드에 올랐다.

팔꿈치에 이상 징후가 나타난 것은 경기 전날이었고, 더 이상 던지기 힘들 정도의 통증이 느껴진 것은 2회가 진행되는 와중이었다.

참다못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코치에게 통증을 호소한 건 4회 종료 후.

그리고... 망가진 팔꿈치로 7회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위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이후 3이닝 동안 던진 공은 무려 60개.

이 경기 이후 다시 마운드에 오른 것은 무려 5년이 지난 후였다.

“더 이상 던지기 힘들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도 어지간하면, 진통제 맞고 던진 뒤 내려와서 치료받을 정도라면 마운드에 오르겠습니다만, 그 정도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 허! 정코치! 정코치! 얘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오늘 애들 뭐 먹였어? 뭘 먹였는데 이렇게 간이 부었지?”

“죄, 죄송합니다. 제가 알아듣게 이야기해서 내보내겠습니다!”

‘쯧쯧... 저 불쌍한 인간...’

이문재 감독이 이렇게 보내버린, 보내버리진 않았어도 가진바 잠재력을 채 터뜨리지 못하게 망가뜨린 유망주는 한둘이 아니었다.

2군, 심지어는 대학에서 커리어가 끝난 유망주 출신 선수들 중 이문재 때문에 망가진 선수들의 단체 톡방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래놓고 본인은 KBO 서울 드래곤스 1군 감독에 부단장까지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심지어 유일한 장점이 '유망주를 잘 키워낸다'라고 평가받으면서.

물론, 이문재가 키워낸 유망주는 많았다. 프로에선 팬들의 눈치를 본 건지, 주변에서 누가 억제한 건지, 망가뜨린 유망주도 별로 없었고.

팬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마추어 야구계이기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앞길 창창한 유망주들을 갈아넣은 것이었다.

‘저렇게 뒤 닦아줘도 나중에는 금품 수수 의혹을 혼자 뒤집어쓰고 들어갔다가 야구계로 돌아오지도 못할 텐데.’

워낙 오랜만이라 이름도 제대로 기억 안 나는 정코치를 보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하여튼 꼭 저런 하자있는 인간들한테는 똑같이 하자는 있는데 충성심도 있는 똘마니들이 있더라, 고 생각하면서.

“이 자식이!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 일단 봐준다. 봐줄 테니까 빨리 몸 풀어! 뭐하는 거야? 우승 안 해?”

“누구보다 우승하고 싶은 게 접니다. 그래서 못 던져요. 이 몸으로 결승전에서 어떻게 던집니까.”

“그럼 누가 던져? 재훈이하고 희중이 둘 다 다쳐서 빠졌는데, 너도 빠진다고? 4회까지 멀쩡히 던져놓고 이제 와서 엄살 부리는 거 다 알아! 봐준다니까? 봐줄 테니까 나가라고!”

“4회까지 멀쩡히 던지다가 왜 이제 와서 이러겠습니까? 참다 참다 안 되니까 말씀드린 거 아닙니까!”

그래서 김재훈이랑 강희중은 각각 불펜 마당쇠, 5선발로 1군 무대에서 살아남았지만, 영도는 그것마저 하지 못했다.

이미 미래를 겪어 본, 그러면서 수도 없이 이 순간으로 돌아오는 것을 상상해 본 영도이기에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아오, 진짜 얘가 갑자기 왜 이래? 꼴통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감독, 코치 말은 잘 듣는다면서!”

“정코치. 어쩔 수 없으니 대충 내보내. 지 때문에 경기가 중단된다는데 어쩔 거야. 지가 책임이라도 질 거야?”

다만, 아마추어 선수의 단호함을 코딱지만큼이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저 지도자들이 문제였다.

하긴, 이문재 감독이 심한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별날 정도로 심한 것도 아니었다.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아마추어 스포츠의 성적지상주의와 에이스 혹사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으니까.

대한민국 체육계의 성적지상주의에 더해 대학 졸업장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을 문제였다.

감독과 선수의 관계를 마치 주군과 부하처럼 생각하는 꼰대 마인드 역시 사라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고...

이 둘이 겹쳐진 엘리트 스포츠계의 꼰대 감독들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새끼야, 뻘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서 몸 풀어! 공격 다 끝나가잖아!”

“지금 팔꿈치가 망가져가는 투수한테 뭐하는 겁니까! 억지로 끌어낸다고 해서 팔꿈치가 낫기라도 한답니까!?”

“이 새끼가 어딜 따박따박...”

“아악!! 이런 미친! 이거 놔! 놓으라고요, 좀!! 아프다고, X발!!”

결국,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 끌어내려던 정코치에 의해 영도의 왼쪽 팔꿈치에 큰 충격이 가해졌고, 영도는 크게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져 팔꿈치를 감싸 쥐었다.

안 그래도 어쩔 줄 몰라 눈치만 보던 선수들은 아예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후우... 정코치. 성일이 올려. 저 새끼는... 그렇게 아프다니 의무실에나 보내고.”

“알겠습니다. 야! 야!!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나서 따라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다른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던 영도는 그대로 일어나 덕아웃을 나섰다.

일단 의무실에서 진통제라도 먹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온 건 좋은데, 온몸의 후유증에서 오는 통증보다 하나의 현재 부상 부위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훨씬 강하네. 부상 전, 아니, 최소한 재활 후로 돌려보내주면 어디 덧나냐고...’

이미 망가진 재활 후로 돌아가 봤자 좋을 것도 없겠지만, 그런 생각까지 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이미 식은땀이 언더웨어까지 다 적실 정도였으니.

다만, 이 악마들을 너무 띄엄띄엄봤다는 게 문제였다.

- 짝!!

“이 X새끼, 진짜... 너 이거 이대로 안 넘어간다. 4회까지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아프다고? 그 전까지는 티도 안 내다가? 왜, 결승전이 무섭더냐? 내가 너 같은 새끼들 한두 번 본 게 아냐. 큰 무대 서니까 쫄리든? 쫄렸으면 적어도 어제 말했어야지. 이게 뭐야? 감독님한테 이게 무슨 민폐냐고!!”

‘와... 나 지금 맞은 건가? 지들 때문에 팔까지 갈아서 던지던 투수를? 심지어 아직 고등학교 2학년도 못 올라간 어린 애를?’

그렇게 수도 없이 이 순간을 상상했어도 여기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 아마추어 지도자들의 선수 폭행 문제야 그리 비밀스러운 일도 아니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해외에서 펼쳐지는 세계 대회 결승전에 팔을 갈아 던지던 에이스가 부상으로 내려온 상황에서?

역시 현실은 허구보다 시궁창이었다.

“이, 이...”

“됐고,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확실한 건... 각오해야 될 거란 거야. 우리 감독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지? 아마추어 대표팀 감독까지 할 정도로 강한 분이라고. 두고 보자, 어디 한 번.”

“와... 허어...”

“알아서 꺼져. 보니까 꼬라지보니까 의무실은 알아서 잘 찾아가겠네. 꺼져라.”

이 순간 영도는 사람이 당황하면 말도 제대로 안 나온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깨달았다.

이를 악 물고 고통을 참으며 의무실로 향하는 와중에도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어쩌면 정코치 덕분에 통증을 참고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아이고, 이 식은땀 좀 봐! 이봐요, 학생! 어떻게 된 거예요!? 아니, 얼굴은 또 왜 이래!?”

“아, 선생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일단 팔꿈치가 아작난 것 같긴 한데, 그보다 먼저... 휴대폰 있으시죠? 휴대폰으로 사진 한 장 찍어서 제가 불러드리는 번호로 좀 보내주세요.”

“... 예? 갑자기 사진이요?”

“네. 이 곳이 어디인지,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나오도록 찍어서 좀 보내주세요.”

당황한 건 당황한 거고, 증거를 남기는 건 또 별개였다.

야구 말고는 바보나 다름없어서 야구 외의 생활은 에이전트인 동생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30대 중반까지 살다 온 몸.

이런 상황에서 증거를 남겨야 한다는 것쯤은 상식이었다.

‘여기가 영어가 통하는 캐나다라 다행이야... 미국에서 수술 몇 번 하느라 어느 정도 익혀놨으니 망정이지, 말이 안 통했으면 증거도 못 남길 뻔 했네.’

***

[대한민국 청소년 야구대표팀, U-18 야구월드컵 결승에서 의문의 투수교체 후 급격히 무너져 3-7 패배! 아쉬운 준우승!]

[이문재 감독, “투수교체에 대해 당장 드릴 말씀은 없다. 다만, 부족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할 뿐.”]

[의문의 투수교체와 덕아웃에서의 언쟁. 에이스의 항명인가, 어린 학생의 투정인가]

아마추어 야구의 인기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 이후 의도적인 아마추어 야구 죽이기 등을 이유로 급격히 떨어졌다. 

이제 와서는 U-18 야구월드컵 결승전 기사도 많아야 5, 6개, 댓글도 가장 많이 달린 기사에 50여 개가 달리는 정도.

인기가 없으니 이를 다루는 기자의 숫자도 한손으로 꼽아도 손가락이 남을 정도로 적었다.

[U-18 야구월드컵 결승전 선발투수 유영도, 징계위원회에서 선수자격 1년 정지 중징계]

달리 말하면 소위 말하는 ‘윗분’들이 기자 몇 명만 구워삶으면 충분히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뜻.

그 몇 명의 기자도 오랫동안 아마추어 야구를 다루면서 '그들'만의 카르텔에 속해버린 인간들이었다.

고교야구 자체가 고인지 한참 된, 썩은 물이 되어버렸으니 가능한 믿을 수 없는 현실.

‘이건 또 의외인데, 내 상상력이 역시 빈약한가 보네.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이 대부분 이렇지, 뭐.’

사실, 이전에도 4회부터 고통을 호소했다는 말은 쏙 빠지고 갑작스러운 부상이었던 걸로 조작되긴 했다.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도 기자라는 사람들이 실상을 알아보긴커녕 협회에서 기삿거리라고 던져주는 대로 덥석 물었다는 게 조금 놀랍긴 했지만, 아예 상상하지 못한 일은 또 아니었고.

“아마추어 협회, 유중선 라인이랑 사이 안 좋은 언론사가 어디라고 했더라? 아아, 전에 승도한테 알아봐달라고 해서 알아놨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이 돌대가리...”

이 순간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그렇게 자주 상상했고, 나름대로 분을 풀기 위해 알아보기도 했는데, 솟아날 방법 하나 없을까.

문제는 대중들이 일의 진상을 모른다는 것뿐이었다.

현대사회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모으는데 갑질, 꼰대질에 의한 피해만큼 좋은 게 또 없으니.

아마추어 야구인만큼 큰 관심은 끌기 어려울 테고, 제대로 된 복수 역시 어렵겠지만, 그 전에 가볍게 분을 푸는 정도는 가능할 터였다.

“아, 예. 안녕하세요. 혹시 스포츠OO 기자님 되시나요?”

지금의 영도는 까라는 대로 까다가 망가지고도 한 마디 제대로 못 했던 열일곱 소년이 아니었다.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첫 매듭, 그 첫 매듭 정도는 충분히 풀 수 있는 3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 첫 매듭을 풀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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