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마지막 너머
최후의 관문.
하늘에 나타난 이것으로 인해 성운전은 그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왔다.”
마침내 관문이 열렸다.
쏟아지는 광활한 빛 속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하얀빛에 휩싸였던 그들은 조금씩 조각을 벗듯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스터는 그들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에어리스…….”
에어리스와 두 자매들이 무사히 돌아왔다.
어머니 시오도 함께 복귀했다.
“영웅들도 돌아왔어.”
<천재지변의 책략가> 제갈공명과 살아남은 영웅들이 귀환했다.
“다들 돌아왔어.”
무사히 살아남은 자.
힘내서 싸운 그들이 별빛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귀환자들이다.”
그렇게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지고.
환희의 감정으로 서로 축하하고.
“이겼다.”
환호로 가득한 무리들은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었다.
지구는 무사했고, 세상은 평온했다.
“다들 정말 고생했어요.”
마스터는 귀환한 원정대에게 다가가 모두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안아 주며 격려했다.
“그런데… 유진하는?”
마스터는 한 사람을 계속 찾았다.
원정대의 리더가 보이지 않았다.
“진하는 끝에 가 있어요.”
에어리스가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돌아봤다.
기나긴 성운전의 체계가 무너지던 날.
유진하는 하나의 끝으로 향했다.
“성운전의 진정한 끝으로…….”
* * *
평평한 터전.
아무것도 없는 세상.
그곳에는 두 사람만이 있었다.
“라그나로크 신화가 끝나고 세상은 변했다.”
회색 코트를 입은 유성하가 입을 열었다.
유성하의 옆에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세상은 끝나지 않았고, 새롭게 시작될 거야.”
동생 유진하가 있었다.
하얀 코트를 입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라그나로크 신화는 종말과 동시에 탄생의 신화야. 올림푸스나 아스가르드가 종말했지만 끝이 아니라 새롭게 탄생하겠지.”
라그나로크 신화는 열렸다.
다행히 올림푸스, 아스가르드의 종말로 끝났다.
‘신좌들은 거짓말을 한다.’
그 말은 마지막까지 적용됐다.
대전쟁에서 패배한 신들은 종말의 황혼을 맞이했고, 새로운 세계가 다시 시작됐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신좌들이 추락한 지금.’
세상이 바뀌었다.
“형이 여기서 나를 처음 만난 거지?”
“그래.”
과거의 유성하는 마지막 순간에 막혔다.
“내가 좌절하던 때. 여기서 하나의 희망을 만났지.”
하얀빛에 휩싸인 존재.
유진하가 이곳에 있었다.
“나는 왜 있었을까?”
“글쎄…….”
유성하가 좌절했던 그 순간에 마치 하나의 희망처럼 남았던 빛이었다.
그 빛은 유진하가 되었고, 어느덧 긴 여정을 뚫고 이 자리에 섰다.
“저 문에 그것이 있을 수도 있어.”
유성하는 줄곧 생각했다.
대체 저 문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유진하도 같은 고민이었다.
‘나는 여기에 왜 있던 걸까.’
더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동시에 에어리스가 자신에게 했던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왜 궤짝 속에 있었을까.’
‘나는 대체 누구일까.’
그런 고민에 사로잡혔다가 끝내 이겨 냈다.
이제는 유진하의 차례였다.
“가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유성하가 얘기했다.
항상 회귀를 반복할 때마다 고민했다.
자신이 이 문에서 막힌 것은, 어쩌면 ‘회귀의 저주’ 때문만이 아닐 수도 있다.
‘시간을 조작하는 자’라서 제약이 걸린 게 아니라… 어쩌면 자신이 문을 열 진짜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열리지 않을 것일 수도 있었다.
‘이 문에 들어갈 자격은 단 한 사람에게 있다.’
그게 유진하라고 생각했다.
“네가 가야 하는 길이야.”
유성하는 길을 양보했다.
그렇게 가 보고 싶었던 마지막 문 너머의 세계로 가고 싶었지만, 유진하에게 맡기기로 했다.
“네가 원하는 대답이 그곳에 있을 거다.”
유성하는 회색 코트를 추스르고 양손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회귀자의 행적이 적힌 책을 읽거나 미래를 안다고 신좌들을 넘어서는 건 불가능했다.
“진짜 필요한 부분은 그게 아니었다.”
회귀를 반복한다거나, 미래를 안다고 신좌들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건 세상을 터무니없이 얕보는 것이었다.
“결국 믿음이었다.”
유성하는 회귀자의 운명을 믿었다.
동료와 동생 유진하를 신뢰했다.
지나온 모든 과정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끝은 여기야.”
싸움은 끝났다.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다.
앞에는 하얀 문이 있었다.
유진하는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빛의 아우라.
광활한 빛을 발산하는 저곳.
저 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
“…….”
유진하는 문에 들어가기 직전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형과의 인연.
에어리스를 만났을 때.
동료들.
상대했던 수많은 상대들.
그 모든 끝이 마치 상념처럼 머릿속에 남았다.
“…가 볼게.”
유진하는 생각을 정리하고 나아갔다.
마지막 진정한 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세계를 가기 위해서.
“새로운 시작으로…….”
유진하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됐다.
혼자만의 긴 도전이 되었다.
* * *
“하아암.”
유나가 길게 하품했다.
넓은 벌판에는 세쌍둥이 자매가 같이 있었다.
“시원하다.”
언덕에는 레다와 에어리스가 함께 앉아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자 금발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평온하구나.”
레다가 차분한 눈빛으로 얘기했다.
에어리스는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면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너희들은 계속 쉴 거니?”
어머니 시오는 귀혼검을 가지고 혼자만의 연습을 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평화로울 수만은 없을 거야. 대비를 해야 한다.”
성운전의 체계가 사라진 지금.
새로운 세상이 열렸으나 아직 완전하지는 않았다.
지구나 지옥도를 비롯하여 최상위 성운들은 새로운 협의체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마 새로운 체계가 마련되겠지. 간단한 일은 아닐 거야.”
사람들이 원하는 건 하나였다.
평화와 평등을 만들고, 오래도록 이 체계를 유지하기를 바랐다.
검을 휘두르던 시오는 신좌들이 없어진 세상에서도 수련에 열중했다.
“너희는 어때?”
“조금은 쉬려고 해요.”
에어리스가 대답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함을 느끼며 모처럼의 평화를 만끽했다.
“다른 사람들은 잘 있을까?”
이소민은 원래 하고 싶었던 무료 병원 설립을 전 세계로 확장하느라 매일매일 바빴다.
M과 J 같은 정부 요원들은 여전히 마스터 경호에 최선을 다했다.
지옥도 역시 대변혁을 맞이했다.
원래는 죄인들과 신좌들을 가두는 성운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해방되어 평범하게 왕래하는 세상이 되었다.
쾅쾅쾅.
염라대왕은 여전히 망자들을 심판했으나, 이전과는 판결 내용이 달랐다.
“그대는 생전의 선한 행위로 인해 부활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제는 달라졌다.
육체를 줄 수 있는 명부의 힘을 이용해서 부활의 기회를 주는 곳이 되었다.
염라대왕의 심판이 끝나면 바리데기가 입김을 불어서 생명의 힘을 불어넣었다.
“후욱.”
살짝 불어오는 생기의 바람.
죽은 자들도 새로운 육신을 받아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억압의 시대는 끝났다.
화합의 시기가 시작됐다.
“그대들도 완전히 부활하는 육체를 주겠다.”
대전쟁에서 죽었던 영웅들이나 활약한 자들이 모두 부활했다.
괴도 알파도 임시 육체가 아니라 완전한 몸을 부여받았다.
“흐음, 또 훔칠 게 있을까.”
지구에 돌아온 괴도는 여전히 왕성한 도둑질을 시작했고, 지구는 다시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괴도와 요원들이 한밤중에 벌이는 숨바꼭질이 계속됐다.
그 와중에 가장 바쁜 곳이 하나 더 있었다.
“새로운 성운전의 체계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제갈공명은 평화를 완성할 체제의 구상에 전념했다.
새로 부활한 지략이 뛰어난 영웅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며 새 체제를 고민했다.
“우주와 성운의 흐름. 여기서 가장 중요한 법칙이 필요할 겁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공평한 세계.
다수가 최대한 행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했다.
“그게 유진하가 원하는 세상일 겁니다.”
시대를 바꾸고.
세상이 변하고.
대변혁의 시대가 되었다.
* * *
“언제까지 이래야 하지?”
회귀자 유성하는 지옥도에 있었다.
지옥도는 바빴으나 사실 가장 열정이 넘친 자는 따로 있었다.
<지옥의 이름을 가진 여신> 헬라가 그랬다.
“유성하, 너와 계속 싸우고 싶다.”
“왜 하필 나지?”
유성하의 푸념 섞인 한탄에 헬라가 웃었다.
“네가 제일 적당하다. 싸우기에 가장 좋은 상대야.”
“…….”
젠장.
유성하는 최악의 상황에 몰리고 있었다.
싸움에 환장한 헬라를 어떻게 하면 만족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
“어쩔 수 없지.”
서로 초월격을 발휘하며 계속 겨루게 되었다.
한편, <정의와 신념의 여신> 아테나는 소멸된 올림푸스 성운의 빈 영역에 홀로 있었다.
“여기는 과거의 영광이 있었지만, 이제는 텅 비어 버렸습니다.”
사라진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는 허공처럼 버려졌지만, 아테나는 손에 작은 빛을 하나 가져왔다.
그 빛은 빅뱅을 일으키고 새로운 세상의 씨앗이 될 터였다.
“새로운 세계가 될 겁니다.”
죽은 세계에서 새로운 세상이 피어나는 법.
아테나의 두 손에서 새로운 세상이 작은 희망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끝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함께 웃기도 하며.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기도 했다.
“진하…….”
에어리스는 고원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마지막 기억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성운전의 진정한 끝.
최종 문 너머로 가기 전에 유진하는 한 가지를 약속했다.
“반드시 돌아올 거야.”
그는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었다.
지켜 주겠다고 했던 말.
함께하겠다는 말.
자신의 말에는 책임을 졌던 그였기에 이번에도 믿고 기다렸다.
언젠가 돌아올 날.
다시 함께 마주 보고 웃기를 원했다.
그와 같이 식사하고 새로운 여행을 가고 싶었다.
“돌아올 거죠?”
기간은 알 수 없었다.
몇 년이 걸릴지. 몇십 년일지.
어쩌면 지금 당장 올 수도 있었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하염없이 긴 세월이 흐르더라도 기다리기로 했다.
혼자만의 기나긴 길을 마치고.
반드시 돌아올 그 사람을 위해서.
“빛이 밝구나.”
하늘에서 쏟아지는 태양.
그 햇살 속에서 에어리스는 가만히 있었다.
빛은 언제나 따사로웠다.
“기다리고 있어요.”
그때였다.
빛을 보고 있는데, 무언가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따스한 감정이 서서히 다가오는 듯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몸이 점점 뜨거워질 즈음.
빛 속의 무언가 있다고 느꼈을 때.
누구보다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설마…….”
에어리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나의 빛으로 나타난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빛이 껍질을 벗듯이 조각처럼 부서졌다.
흩어지는 빛의 조각.
그 파편 속에는 한 사람이 밝은 미소와 함께 나타났다.
“진하.”
환한 미소와 함께 유진하가 나타났다.
“널 만나면서 모험을 시작했고, 널 만나면서 모험이 끝나는 거야.”
살짝 울음이 터진 에어리스.
유진하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가볍게 안아 주었다.
“정말 돌아온 거죠?”
“그럼.”
둘은 서로를 품에 안은 채로 얘기했다.
너무나 반가운 목소리와 감촉.
정말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 너머의 세계에는 우리와 같은 성운들이 있었어. 특이하게도 생명체 자체가 성운인 곳도 있었지.”
“혹시 그게 진하였던 건가요?”
“맞아. 나는 살아 있는 성운이었어.”
유진하는 품에 안았던 에어리스를 잠시 놓아 주었다.
“내가 이곳에 왔던 이유.”
그 대답은 하나였다.
사실 ‘세상’은 살아 있는 존재였다.
‘성운은 스스로 생각하고 생존한 매개체였다.’
그런 세상에 올림푸스가 등장했다.
이들은 성운전의 체계를 만들어서 심하게 억압했다.
신좌들의 만행에 스스로 살아 있는 세상은 서서히 힘을 잃어 갔다.
차츰 수명이 다해 가고 있던 것이다.
“세상은 죽어 가고 있었어. 그래서 외부 세상에 도와 달라는 신호를 보냈지. 나는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보내진 거였어.”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성운.
살아 있는 성운이 그의 정체였다.
성운전에 억압받는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보내진 구원자였다.
유진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럼… 지금은요?”
에어리스가 되물었다.
유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의 유진하는 대체 누구일까?
살아 있는 성운일까.
아니면 무엇이 되는 걸까?
“나는… 인간이야.”
유진하는 결심하듯이 얘기했다.
그는 인간이었다.
동시에 한 명의 인간으로 살아가겠다는 말이기도 했다.
모든 여정을 함께한 사람들과 지내겠다며 지구에 돌아왔다.
“진하…….”
에어리스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유진하는 환하게 웃어 주며 다시 에어리스를 안아 주었다.
“여기가 내 집이야. 에어리스의 옆이 내가 있을 곳이고.”
그렇게 두 사람은 오래도록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쏟아지는 빛과 불어오는 바람.
풀잎이 휘날리는 초원.
둘은 모두가 기다리는 곳으로 계속 걸어갔다.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향해서.
새롭게 열리는 하늘의 빛이 두 사람을 계속 비추었다.
조금은 길었지만, 앞으로도 계속될 새로운 길을 향했다.
“새로운 세상을 활용하는 방법.”
그것이 이들이 앞으로 만들어갈 새로운 책의 이름이 되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