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종말의 신화전(9)
인간 영웅들의 혼신을 다한 공격으로 올림푸스 신좌들이 하나둘 쓰러져 갔다.
그 결과 아폴론과 헬리오스만 현장에 살아남았다.
“쳇! 전력으로 회피 기동을 해야겠군.”
빛의 마차를 탄 헬리오스가 고삐를 움켜쥐며 이순신, 넬슨 대함대의 포격을 회피했다.
태양신 아폴론도 사력을 다해 알렉산더의 검을 피했다.
그때, 아래에 있던 유진하가 자신 있게 얘기했다.
“지구는 온전해요.”
아폴론은 그 말이 거슬렸다.
“저 녀석…….”
번쩍이는 빛과 함께 아폴론은 모든 인간 영웅들을 지나치고 밑으로 향했다.
“지구가 온전한다고?”
“…네.”
아폴론이 눈앞에 다가왔음에도 유진하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태양신 아폴론
성화의 빛 유진하.
이들은 이번 대전장에서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당신들이 간 지구는 진짜가 아니거든요.”
“뭐라고?”
진짜 지구가 아니라니.
그렇다면 무엇이란 걸까?
“형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회귀자 유성하를 말하나.”
유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자나 미래를 보는 자 즉, 시간을 건드리는 자들은 성운전의 법칙에 따라 결코 끝으로 갈 수 없습니다.”
시간을 넘어서는 것은 금기였다.
회귀 능력은 금기를 넘어서 저주 받은 능력으로 취급받았다.
신좌들이 정한 성운전의 법칙이 그랬다.
‘회귀는 사실상 무의미했죠.’
어떤 사람이라도.
어떤 존재라도.
마지막에 절망만 남아 있다는 걸 안다면 좌절할 터였다.
“하지만 형은 달랐습니다.”
회귀의 과정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첫 시점으로 되돌아가더라도.
같은 시간.
같은 사람.
같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실에 절망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다행일 수도 있다.
‘죽었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은 누군가에게 반가움이었기에.’
유성하는 회귀의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았다.
“신좌들은 시시덕거리면서 내가 회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즐기겠지. 하지만 나도 같은 마음이다.”
이어서 얘기했다.
“계속 실패하면서도 다시 살아 있는 그 사람들과 만나면서 행복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하나의 결심을 했지.”
끝없는 회귀자는 새로운 목표를 가졌다.
“반드시 이겨서 이 억압의 굴레를 깨 버리겠다고.”
긴 시간 동안, 고민하면서 하나의 방법을 떠올렸다.
“내가 금기에 걸려 할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었다.”
단 한 명의 후보가 있었다.
“유진하, 너를 만났다.”
회귀자 유성하는 유진하를 마주 보았다.
이곳은 빈 공간이었고, 새로운 공간이 막 태어나는 터전이었다.
군데군데 블랙홀이 있어서 아직 불완전한 세계였다.
“이곳이라면 얘기를 나눠도, 신좌들의 눈을 잠시 피할 수 있을 거야.”
라그나로크가 열리기 전.
감시하는 눈을 피해서 유성하와 유진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 자랐구나.”
유성하는 성장한 동생을 보자, 대견하면서도 동시에 든든한 전우를 보는 기분이었다.
“나는 끝에서 닫혀 있는 관문만 발견했다. 하지만 거기서 절망만 한 것이 아니었다.”
회귀자는 마지막 관문 너머로 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거기서… 무언가를 만났거든.”
유성하가 말했다.
“유진하, 네가 그곳에 있었어.”
회귀자 유성하는 성운전의 마지막 관문 앞에서 막혔다.
절망적인 순간.
그 근처에서 낯설고 희미한 빛의 존재를 느꼈다.
“누구?”
그 존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녀석은 빛의 잔광처럼 보였지만, 정확하게 무엇인지 몰랐다.
정적이 흐르는 동안, 유성하는 그것에게 여러 번 말을 걸었다.
“너는 뭐지?”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곰곰이 고민한 끝에 혹시나 해서, 질문 대신 명령으로 말을 바꿔 보기로 했다.
“인간이 되어 줄 수 있나?”
이 말에는 반응을 보였다.
그 존재는 찬란한 빛을 뿜어내더니 하나의 인간이 되었다.
“정말 내 말을 따르는 건가.”
빛의 힘을 발휘하는 인간.
새롭게 태어난 녀석을 보자, 유성하는 하나씩 명령을 내렸다.
“너는 앞으로 내 동생이다. 피를 나눈 혈육과도 같아.”
“…….”
녀석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유진하.”
“…….”
“너는 나와 지구에서 함께 살 거야.”
“…….”
점점 중요한 명령을 주었다.
“내가 회귀하는 순간 너는 지구에서 태어난다. 지금의 기억은 잊고 내 동생이라는 설정으로.”
유성하는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거기서 너에게 행동의 자유를 주겠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
마지막 관문에서 마주한 빛의 존재.
유성하는 그 미지의 무언가를 동생으로 받아들였고, 자유를 주었다.
“자유에는 힘이 있다.”
유성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구 성운의 마스터도 같은 생각으로 세상을 만들었다.
‘자유는 억압을 이긴다.’
유성하의 생각은 확고했다.
새롭게 태어난 동생, 유진하에게도 자유를 주어야만 반드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거라고 믿었다.
‘내가 아니다. 내 동생 유진하가 성운전의 진정한 끝을 본다.’
자기 대신 신좌들의 억압을 깨뜨릴 것이다.
유성하는 그렇게 믿었다.
그 후로 새로운 준비를 시작했다.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
1권은 동생 유진하를 위한 길잡이로 삼았다.
자신이 겪은 경험.
던전에서 살아남는 법.
하지만 그 핵심은 던전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었다.
던전 자체를 두루 ‘활용’할 수 있을 만큼 능수능란해지기를 바랐다.
“이 책을 다 외워라.”
“으아.”
동생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1권을 달달 외웠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유성하는 두 가지를 더 결심했다.
“첫 번째는 내가 자리를 비켜 주는 거야.”
진정한 자유를 주려면 남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동생 유진하가 혼자 남아야 성장할 것이다.’
유진하가 스스로 독립하려면 같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이별은 슬프지만, 동생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여겼다.
두 번째는 유성하가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만약 라그나로크 종말의 신화가 열리면, 신좌들은 반드시 지구를 공격할 것이다.’
그동안 회귀의 과정에서 겪은 노하우였다.
신좌들은 비겁하기에 반드시 뒤통수를 칠 것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반드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유성하는 계속 방법을 찾아다녔다.
전지전능에 가까운 최상위 신좌들이 지구를 공격한다면, 정면에서 막아 내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터였다.
설사 막아 낸다고 해도 지구는 궤멸적인 피해를 당한다.
‘막아야 한다.’
오랜 궁리 끝에 한 가지 묘수를 찾았다.
가짜 지구를 만들겠다는 거였다.
“모든 성운을 돌아다니면서 복제 성운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봤다.”
가짜 지구를 만든다면… 신좌들을 속이고 유인할 수 있다.
그러면 진짜 지구는 무사할 수 있다.
무수한 노력 끝에 유성하는 가짜 지구를 만들 수 있었다.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 2권.’
이 책에는 가짜 지구를 만드는 과정을 집약시켜 놓았다.
책 안에는 성운의 재료와 비법이 전부 담겨 있었다.
“2권의 봉인은 아테나 여신에게 맡긴다.”
올림푸스의 아테나는 회귀자 유성하를 신뢰하는 유일한 여신이었다.
기나긴 회귀의 과정이 헛되지 않았는지, 아테나 여신은 성운전의 굴레에 환멸을 느끼고 유성하에게 협력했다.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이제는 대반격이다.”
원래 유성하는 쌍둥이 자매와 함께 성운전에서 싸워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동생 유진하에게 한 명을 보냈다.
그리고 그녀는 에어리스가 되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 책은 히든카드가 될 것이다… 기회를 만든 후 최후의 승부에서 운명을 바꾸겠다.”
라그나로크.
종말의 신화가 열린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다음 회귀가 열리면 신좌들은 절대로 가만히 있을 리가 없기에, 2권을 열어서 여기서 승부를 걸어야 했다.
“가짜 지구를 만든다.”
완벽하게 복제된 세계.
성운마다 좌표가 붙어 있지만, 그것까지 위장시켰다.
단 한 번.
올림푸스 최상위 신좌들조차 속일 수 있을 만큼 철저히 준비했다.
“결정적인 승부처다.”
계획대로 아레스를 비롯해 신좌들은 가짜 지구에 도달했다.
이곳은 허상.
저들도 비장의 수를 꺼내었지만, 이곳은 가짜 공간에서는 라그나로크가 실현되지 않는다.
“유성하와 유진하의 연합 전략.”
처음 회귀를 시작할 때부터 오래도록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성운전을 끝내 버리는 순간만을 바라던 나날이었다.
“지금을 기다렸습니다.”
유진하는 눈앞에 있는 아폴론을 바라봤다.
당당했던 태양신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농락을 당했으니까.
“당신과 승부하겠어요.”
이미 올림푸스 신좌는 태반이 궤멸했다.
최고위 중 남아 있는 신좌는 아폴론과 헬리오스, 포세이돈, 그리고 제우스가 유일했다.
아스가르드의 오딘과 프레이야 같은 신좌들도 남아 있어서 만만치 않은 승부를 예감해야 했다.
“신좌들을 속이다니 대단하군.”
아폴론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겪은 최대의 위기일 텐데도 태양신이라 불리던 신좌답게 냉정함을 되찾았다.
“인정한다. 너희 인간들의 실력과 노력을 말이야.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아폴론의 배후에서 태양의 문양이 떠올랐다.
“태양은 빛과 영광을 상징한다.”
아폴론 신격
<태양과 리라의 신>
“절대 태양은 저물지 않는다.”
거대한 태양의 문양이 빙글거리면서 자전하며 강렬한 빛을 발휘했다.
“승부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미 헬라의 치료는 거의 다 된 터였다.
여신에게는 자연 치유력이 있으니 조금만 더 있으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아폴론과 승부가 중요했다.
당당히 자리에 선 유진하가 하늘에 떠오르는 아폴론과 태양의 문양을 똑바로 바라봤다.
“일반 사람이라면 제대로 보기도 힘든 빛이지만, 나는 달라요.”
유진하도 빛의 아우라를 가진 존재였다.
눈부심은 없었다.
천천히 몸에 담아둔 성화의 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초월격
<성화의 빛을 받은 자>
뜨거운 불길처럼 차오르는 성화의 기운이 전신에 차올랐다.
공중에 있던 아폴론은 자신과 전혀 다른 형태의 빛을 사용하는 유진하를 주목했다.
“성화의 빛. 영혼체들이 가진 생명의 빛이지. 태양과는 다르다.”
태양은 행성이었다.
행성에서 내뿜는 빛과 생명체에서 발산하는 성화의 빛은 근원적으로 다른 힘이었다.
“태양이 월등하다.”
유진하는 생각이 달랐다.
“아니요. 태양은 월등하지 않아요. 무한하지 않으니까요.”
아폴론은 태양의 신이다.
하지만 태양은 행성이기에 무한하지 않다.
그래서 아폴론은 시간이 지나 자신이 소유한 태양이 약해질 때마다, 다른 성운의 싱싱한 태양으로 교체하곤 했다.
“생명체의 빛도 무한하지 않아.”
“맞아요. 하지만 차이는 있습니다.”
생명의 빛은 살아 있는 존재의 빛이었다.
태양은 자아가 없는 물체였기에, 살아 있는 존재보다 약했다.
그래서 태양은 완전하지 않았다.
“정면 승부.”
유진하가 솟구쳤다.
목표는 태양의 흑점이었다.
콰앙.
성화의 빛이 태양의 흑점을 꿰뚫고 지나갔다.
“크억!”
아폴론은 가슴에 구멍이 뚫린 충격을 받았다.
성화의 빛.
유진하는 그대로 다음 목표를 향했다.
“<빛의 마차를 타는 신> 헬리오스.”
헬리오스는 고삐를 잡고 포격을 피하던 중이었다.
성화의 빛, 유진하가 다가오자 직격으로 격돌했다.
우수수.
빛의 마차는 부서졌다.
올림푸스를 상징하는 태양의 신, 아폴론과 헬리오스가 모두 별의 부스러기처럼 으스러졌다.
남은 자는 단 한 명.
이 공간에서 유일한 빛으로 남은 유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