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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225화 (225/229)

225화 종말의 신화전(8)

<전쟁의 신>이 무너졌다.

에어리스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전투가 끝나자 그녀는 미묘한 감정이 들어서 잠시 우두커니 서있었다.

세 쌍둥이 자매에게서 받은 최후의 힘.

아마도 회귀자 유성하와 예전에 함께 하던 여정이라면, 지금과 같은 힘을 얻지는 못했을 터였다.

“지키고 싶어.”

남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유진하와 이소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곳을 반드시 지키고 싶었다.

그때.

또 다른 초월좌도 무언가를 손에 들고 나타났다.

“이쪽도 끝냈다.”

백가면을 쓴 조커가 무언가를 들고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술과 여흥의 신> 디오니소스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이놈은 술꾼이었을 뿐이야.”

툭.

바닥에 던지자 디오니소스의 머리통이 나뒹굴었다.

죽은 녀석에게서 고약한 술냄새가 풍겼다.

“올림푸스 12신좌라고 해서 모두가 강한 건 아니지.”

조커는 피 묻은 단검을 팔꿈치에 끼워서 슥슥 닦아 냈다.

초월격.

<죽음의 경계를 비웃는 자>.

천부적인 전투 센스로 각성한 조커는 올림푸스의 신좌를 능멸할 정도로 막강했다.

에어리스와 조커.

이소민은 두 사람의 활약을 지켜보기만 해도 든든할 정도였다.

“둘 다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든 승산이 있을 거 같은데?”

붕괴된 도시가 남았다.

사람들이 모두 대피해서 다행이지, 까딱하면 많은 희생이 있을 터였다.

“이제 남은 신좌는 두 명이야.”

<성스러운 화살의 여신> 아르테미스.

<대지와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

두 명의 신좌가 남았다.

그렇게 승산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던 무렵.

성운전의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 연합 성운의 리더가 진격로를 확보했습니다.

“뭐라고? 벌써 그게 되었다고?”

깜짝 놀란 이소민이 주변을 돌아봤다.

저 멀리 아르테미스가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여신이 걸어가는 곳마다 자취가 남아, 마치 빛의 다리 같은 진격로가 만들어졌다.

“아직 다른 메시지는 없어.”

지구에서 라그나로크 신화가 벌써 2단계를 통과했는데, 올림푸스 쪽으로 간 유진하 일행의 소식은 없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거나.

혹은 다른 이유도 지체되는 게 분명했다.

“서둘러야겠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음 메시지가 발동했다.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 연합 성운의 리더가 ‘신화의 재단’을 완성했습니다.

2단계가 끝나자마자, 난데없이 곧바로 3단계가 통과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네?”

에어리스는 크게 놀라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어떻게 된 거죠?”

조커도 이소민도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

멀리서 광활한 광체 속에서 아르테미스와 데메테르 여신이 함께 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둥과 신화의 재단이 있었다.

“미리 준비해 온 거였어요.”

에어리스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그랬다.

성운전의 최상위 신좌들은 이미 라크나로크 신화의 달성 조건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신좌들은 신화의 재단을 처음부터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들이 만든 게임이었기에, 더 유리한 게 당연했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지금.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4단계다.”

아르테미스와 데메테르 여신은 라그나로크 최종 단계도 알고 있었다.

두 여신의 손에서 성스럽고 푸른 불빛이 치솟았다.

‘재단에 봉하는 불.’

저게 마지막 과제였다.

저 불이 재단에 올라가는 순간에 라그나로크는 실현된다.

“안 돼!”

에어리스가 소리쳤다.

서둘러 그쪽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이미 <대지와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 여신이 손을 써 놓은 뒤였다.

대지를 통제해서 거대한 방벽을 세워 놨다.

“하아아압!”

초월격의 힘으로 장벽 자체를 무너뜨리려고 에어리스와 조커가 돌격했으나, 끝없이 재생하는 방벽이 둘의 전진을 막았다.

“진하!”

에어리스는 소리쳤다.

유진하에게 부여받은 과업이 있었다.

지구는 우리가 돌아갈 곳이자 살아갈 터전이었다.

그런데 터전을 지키겠다는 일이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당신들은 노력했지만,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승부였습니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냉정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장벽에 막혀 고군분투하는 에어리스가 마지막까지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썼으나 허사였다.

“우리는 수백억 년 동안, 이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당신들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그때부터.”

아르테미스는 양손에 푸른빛의 성스러운 불꽃을 들었다.

그 성불을 조심스레 가지고 신화의 재단으로 향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여신의 발걸음은 서서히 인류를 멸망으로 보내고 있었다.

막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늦었습니다.”

‘재단에 봉하는 불’이 마침내 ‘신화의 재단’에 올라갔다.

재단에서 강대한 빛이 퍼졌다.

하늘을 뒤덮어 가는 강대한 빛줄기 속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고 있었다.

라그나로크.

인간들이 사는 지구 성운에 잠재된 종말의 신화가 개방되었다.

지구는 이제 종말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재단에서 나오는 불빛이 순식간에 지구를 뒤덮고 격렬한 충격을 주었다.

별들의 죽음.

지구는 별의 부스러기가 되어 사라졌다.

* * *

“종말의 신화가 열렸다.”

아폴론은 아르테미스에게서 전언으로 기쁜 소식을 받았다.

“끝난 게임이야.”

라그나로크 종말의 신화가 지구에서 먼저 열렸으니, 이곳에서는 열릴 수가 없었다.

“이제 신좌들은 다시 불멸이다.”

라그나로크 신화가 열렸을 때는 신좌들도 죽음을 각오해야 했지만, 이제 신화가 완성됐으니 상황은 바뀌었다.

성운전은 그대로 존재하며, 신좌들은 다시 불멸이 된다.

“너희들은 모두 여기서 죽는다.”

불멸의 존재가 된 신좌들은 이제 결말을 예감했다.

인간과 지옥도에서 온 원정대는 모조리 전멸할 것이었다.

“우리가 졌다고?”

인간 영웅들에게도 같은 비보가 전해졌다.

전세는 기울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 완전한 실패로 돌아가는 순간을 맞이했다.

“이겨도 돌아갈 곳이 없다니.”

비통한 결말.

이제 지구는 없어졌고, 인류는 종말을 맞이했다.

“아직이다.”

이곳에 모인 영웅들은 인류 최고의 위인들이었다.

“절대 우리는 패배하지 않는다.”

사자심왕 리처드 1세가 도끼를 높이 들었다.

이어서 알렉산더, 한니발, 나폴레옹, 칭기스칸, 한신, 넬슨, 이순신 같은 영웅들도 이에 호응했다.

처음부터 이들은 이 싸움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었기에.

결코 이 대전장에서 포기하려고 들지 않았다.

“끝까지 싸운다.”

용맹한 영웅들은 전력으로 재차 공격을 감행했다.

최후의 돌격이었다.

“불길에 뛰어드는 불나방에 가까워.”

아폴론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헬리오스, 아프로디테, 헤라, 헤르메스도 같은 생각이었다.

<신들의 전령사>는 거드름까지 피우며 대놓고 비웃었다.

“벌레들이 달려들어 봐야 아무것도 아니지. 이제 불멸의 존재인 내가 전부 없애 주마.”

신좌들은 영웅들의 돌격에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까처럼 빠르게 날개 신발로 피하지 않았다.

대놓고 알렉산더의 검을 가슴에 받았다.

퍼걱.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어?”

헤르메스는 자신의 가슴에 찔린 검을 바라봤다.

불멸이라 고통을 느낄 수도 있긴 한데, 지금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상했다.

아픔이 이전보다 극심했고, 정신이 흐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왜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헤르메스의 입에서 피가 뿜어졌다.

“왜 불멸이 아니지?”

분명 라그나로크 신화는 끝났다.

지구는 멸망하고 올림푸스는 온전하며 다시 신좌들은 불멸이 되었어야 했다.

“라그나로크가 끝난 게 아니었어?”

헤르메스가 검에 찔리고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절정의 미를 가진 여신> 아프로디테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하며 거리를 두었다.

<질투와 정열의 여신> 헤라도 비슷하게 뒷걸음질을 쳤다.

당황한 아폴론마저 어쩔 줄을 몰라 식은땀을 흘렸다.

“뭔가 잘못됐다.”

혼란에 빠진 신좌들은 자꾸 뒤로 물러났다.

“우아아아!”

영웅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공격했다.

이순신, 넬슨이 이끄는 대함대가 과감하게 접근했고, 거리가 줄어들자 명중률이 상승했다.

거기다 함포 사격을 하는 영웅은 다름 아닌 나폴레옹이었다.

“아악!”

집중 포격에 맞은 아프로디테가 먼지가 되어 사라져 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던 미의 여신이 흔적조차 없이 부스러기가 되었다.

“이럴 수가!”

경악하던 헤라조차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칭기스칸의 화살이 날아와 정확히 목을 꿰뚫었다.

“아악!”

화살은 계속해서 몰아쳤다.

벌판을 달리면서 몽골 기병대로 세계를 정복하던 칭기스칸의 힘이었다.

이어서 쏟아지는 몽골의 화살 세례에 벌집이 된 헤라가 흐느적거리다가 이내 소멸했다.

“어머니까지……?”

아폴론은 길게 탄식했다.

헤라는 제우스의 부인이었고 올림푸스 12신을 아우르는 어머니와도 같았다.

그런 최고위 여신이 영원한 침묵 속으로 사라졌다.

“이 녀석들!”

분노가 휘몰아치자 태양신 아폴론의 아우라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격노하여 몸 자체가 태양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감히 섣불리 다가서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태양빛이었다.

“반드시 너희 전부를 멸하겠다.”

그 강렬한 빛에 모든 인간 영웅들조차 물러났지만, 단 한 사람만은 똑바로 보고 있었다.

“당신들의 계략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신좌들이 우왕좌왕하다가 당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한 사람이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간들의 지략은 신좌에 비해 부족하지 않고. 오히려 능가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치유의 빛을 발휘하며 <지옥의 이름을 가진 여신> 헬라를 살리는데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이번 원정대의 진정한 리더였고, 모든 대전략을 설계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휘몰아치는 빛의 아우라 속에서 마침내 일어섰다.

유진하였다.

“우리도 여기서 끝을 보겠습니다.”

<태양과 리라의 신> 아폴론과 <빛의 마차를 타는 신> 헬리오스가 이곳에 남아 있었다.

이 둘은 올림푸스의 빛과 영광을 상징하는 신좌들이었고, 태양을 상징하는 신좌였다.

어느새 사기가 떨어지고 기운을 잃어 가던 신좌들과 다르게, 유진하의 빛은 더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라그나로크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단호한 선언이었다.

아폴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지? 너희 인간들의 지구는 멸망했다.”

“아니요.”

유진하는 그 말을 부정했다.

확신에 가득 찬 어조였다.

“당신들이 먼저 종말의 신화를 이뤄 내서 무력화시키려는 것. 그 전략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놀란 아폴론이 반문했다.

대체 저 밑에서 빛의 아우라를 발휘하는 인간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신좌들의 전략을 꿰뚫어 봤다니.

“저만 알던 게 아닙니다.”

유진하는 빙그레 웃더니 또 한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팔진도를 발휘하던 제갈공명이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당신들이 장난감처럼 여기던 우리 형. 회귀자 유성하도 그걸 알았다는 겁니다.”

이 싸움의 처음과 끝.

무수한 회귀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그 사람.

회귀자 유성하는 성운전의 진정한 끝에는 가지 못했지만, 긴 시간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덕분에 신좌들의 역습을 미리 예견할 수 있었다.

“인간의 지략은 신좌와 겨룰 수 있다. 형은 긴 시간을 고민할 수 있었고, 그것이 당신들이 놓쳤던 부분입니다.”

회귀자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었다.

그들이 비웃었던 실패의 과정에서 하나의 결말만을 바랐기에.

유진하가 말했다.

“지구는 무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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