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종말의 신화전(6)
신좌와 초월좌의 권능에 비해서 인간은 무기력할 따름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신좌들의 권위.
수많은 신화적 이야기.
인간은 지배받는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세상에 지배받으려고 태어난 존재는 없다.
제갈공명은 생각했다.
‘인간이 가진 무기가 있습니다.’
이 말은 유진하가 해 준 소리였다.
신좌들에 비해 미약한 인간들이지만 그들에게 맞설 수가 있었다.
‘인간은 신좌들에 견줄 만한 지략을 가지고 있어요.’
무수한 신화에서 그 어떤 신좌들도 완전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절대적인 힘을 가지지 않았고, 권능도 껍데기에 불과했다.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의 신좌들은 치정과 막장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신좌들은 현명하지 않았다.
지적인 면에서 오히려 인간이 그들을 능가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는 다른 무기도 있었다.
‘인간은 자유를 추구한다.’
신분제.
왕과 귀족이 지배하는 체계가 있었지만, 인간은 결국 대혁명을 통해 계급을 뒤엎었다.
자유를 추구하고 억압을 철폐한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장점이었다.
처음부터 유진하가 지녔던 마음이기도 했다.
‘뛰어난 지략과 자유의 의지.’
그리고 마지막 장점도 있었다.
‘성장성.’
인간은 성장한다.
아기에서 어른으로, 그 이상의 존재가 될 가능성을 가졌다.
그 마음으로 많은 과제와 시험을 이겨 냈다.
- 유진하 최초 능력치.
지력: S
전투력: 불명
민첩: B
정신력: A
체력: C
처음에는 이랬던 유진하였다.
두뇌만으로 싸워 오다가 훌륭한 동료를 만나게 되었고, 이제는 신좌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어느덧 피 튀기는 혈전이 벌어지는 라그나로크 대전장에 있었다.
“팔진도와 천년 제국의 성벽으로 헤파이스토스를 봉쇄하겠습니다.”
제갈공명은 테오도시우스 2세와 함께 헤파이스토스를 봉쇄하는 일에 집중했다.
단 두 명의 인간 영웅들이 <불멸의 무구를 만드는 신>을 봉쇄하고 있었다.
“이쪽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계속 앞으로 가십시오.”
진격로를 만들려면, 리더는 계속 걸어가야 했다.
쌓아 가는 종말의 신화.
신좌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대혁명을 갈망했다.
“제법이군.”
헤파이스토스가 팔진도에 봉쇄당하자, 지켜보던 올림푸스 신좌들도 조금은 생각이 바뀌고 있었다.
“어차피 헤파이스토스 같은 멍청이한테 기대한 건 없어서, 상관은 없지만.”
<태양과 리라의 신>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올림푸스의 12신좌로 불리기에 너무 치욕적인 녀석이다.”
올림푸스의 체면과 위신을 더 생각하고 있었다.
여유가 있었다.
그때였다.
하늘에는 거대한 하얀 날개가 펼쳐졌다.
“아테나?”
<정의와 신념의 여신> 아테나가 올림푸스의 앞을 막으러 나타났다.
“아폴론, 당신을 막으러 왔습니다.”
진명을 불린 <태양과 리라의 신>은 미소를 띠었다.
사실 아폴론은 처음부터 아테나를 가장 의식하고 있었다.
“문제는 바로 당신이었지. 아버지를 배신한 패륜아…….”
“아폴론, 당신의 이야기 같군요.”
아테나와 아폴론.
아버지 제우스에게서 태어난 두 명의 신좌였으며, 서로 올림푸스의 권력을 두고 경쟁했다.
“제우스를 배신했다가 좌천된 적이 있던 아폴론. 당신이 더 열심히 충성하는 것도 그래서 그런 겁니다.”
아폴론은 제우스에게 추방당한 적이 있었다.
태양을 관장하는 신이자 올림푸스의 적통이라 불리었으나, 한순간에 바닥까지 추락한 적도 있었다.
“아테나, 당신 혼자서는 우리를 막을 수 없어.”
아폴론의 곁에는 <빛의 마차를 타는 신> 헬리오스가 있었고, <절정의 미를 가진 여신> 아프로디테가 있었으며, <질투와 정열의 여신> 헤라가 있었다.
<신들의 전령사> 헤르메스는 호시탐탐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상대는 무려 다섯 명의 신좌.
아테나가 전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이들 모두와 맞서기에는 불가능했다.
“혼자 모든 짐을 맡길 수는 없지.”
<명계의 마왕> 하데스가 검은 아우라를 두르고 참전했다.
아테나를 돕는 신좌가 나타났지만, 올림푸스에도 하데스를 상대할 자가 있었다.
“하데스, 당신도 나선다면 나도 나설 수밖에 없지.”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다.
대지를 뒤엎을 듯한 엄청난 바다가 포효하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상을 뒤엎을 위력이었다.
“포세이돈인가.”
물거품과 함께 그 위에는 육중한 삼지창을 든 신좌가 나타났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포세이돈은 하데스를 맞상대할 생각으로 나타났다.
하데스가 발현한 신격.
포세이돈이 발휘한 신격.
그들이 정면으로 격돌하자, 엄청난 파열음과 물보라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얼굴도 잊어버리겠어.”
하데스가 미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함께 <티타노마키아>에 참여했던 전우였다.
물론 형제이기도 했다.
“후후, 지금은 서로 죽일 듯이 싸워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포세이돈이 발휘한 신격은 하데스 정도가 아니면 받아 낼 수 없었다.
방금 전 파도가 그대로 몰아쳤다면 원정대 전원이 몰살당했을 것이었다.
신격 대 신격.
올림푸스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두 명의 최상위 신좌가 결전에 돌입했다.
콰왕.
지옥과 바다의 싸움.
하데스 대 포세이돈.
천지가 뒤틀리는 전투였다.
“아테나, 아무리 당신이 <전쟁의 여신>이라도 우리 다섯을 이길 수 없다.”
아폴론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원정대의 최상위 신좌라고는 아테나와 명부의 바리데기뿐이었다.
“바리데기가 당신들의 리더인 것도 알지.”
모든 것이 드러났다.
바리데기는 라그나로크 신화를 개방하는 성운전의 리더를 맡았다.
진격로를 만들어야 해서,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헬라도 없고, 초월좌도 거기에 있으니…….”
초월격을 가진 유진하는 헬라의 치료에 전념하고 있어서 시간이 필요했다.
이 기회를 두고 볼 올림푸스가 아니었다.
“그런 것 같습니까?”
아테나는 고고한 자세로 하늘에 하얀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다섯 명의 신좌와 혼자 맞서는 최악의 상황에 처한 모습이 아니었다.
궁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했다.
“당신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아테나는 차분히 얘기했다.
“저 높은 하늘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그렇게 생각하겠죠.”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는 법이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세상을 멀리 본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는 걸 모르죠.”
“그게 뭐지?”
아폴론이 물었다.
아테나는 배후에 커다란 날개를 더 크게 펄럭였다.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안 보인다는 겁니다.”
수많은 깃털 중 하나가 아폴론에게까지 날아왔다.
“하늘 높이 있을수록 밑바닥이 안 보이는 법이죠. 당신들은 멀리만 보느라 자기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겁니다.”
아테나가 모두에게 소리쳤다.
“저 밑바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놓치는 거죠.”
당당한 선언이었다.
지켜보던 올림푸스의 신좌들은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래?”
하얀 깃털을 손으로 잡았던 아폴론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깃털은 먼지처럼 으스러지더니 사라졌다.
“애초에 먼지 같은 존재들을 지켜볼 이유가 있을까?”
“그들은 먼지가 아닙니다.”
아테나의 눈빛은 당당했다.
“살아가는 존재고, 생명입니다. 이제는 당신들을 위협하는 영웅들로 성장했죠.”
아테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밑에서 무수한 아우라가 솟구쳤다.
저 아래에는 아폴론이 먼지라고 여겼던 인간들이 싸우고 있었다.
“신좌들을 물리치려는 영웅들이 있습니다.”
아테나가 그들을 소개했다.
<동서양을 이은 대왕>
<십자군의 사자왕>
<제국의 제독>
<불패의 명장>
<천하대장군>
<애꾸눈의 장군>
<푸른 늑대의 정복자>
<혁명의 황제>
많은 영웅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
“같이 싸울 겁니다.”
아테나와 함께한다.
신좌들과 싸우는 이 전장에서 인간 영웅들과 힘을 합칠 계획이었다.
인간 대 신좌.
최대의 싸움.
진정한 전쟁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 * *
올림푸스가 격전의 소용돌이로 휘말리는 중에, 지구도 상황은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디 어떻게 싸워 볼까?”
<전쟁의 신> 아레스는 만족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부서진 빌딩의 파편 속에서 에어리스는 전신의 아우라를 가다듬고 있었다.
“반드시… 막아 내겠어요.”
이곳 지구에서 종말의 신화가 펼쳐져서는 안 되었다.
에어리스는 푸른 번개의 아우라 <뇌명의 참격>과 초월격 <검혼일체>를 발현했음에도 밀려났다.
아레스의 기세는 그만큼 막강했다.
“힘의 차이는 명백하다. 너에게 승산은 없어.”
수많은 전장에서 싸워 온 자만이 할 수 있는 소리였다.
아레스는 첫 격돌에서 에어리스의 힘을 파악했다.
“전장에서 만난 풋내기들은 전부 온몸이 부서지고, 끔찍한 고통 속에 죽었지.”
당당한 자신감이었다.
전쟁과 전투에서 단 한 번도 무릎 꿇은 적이 없는 신좌.
전투력 면에서 올림푸스 최고라 불리는 신좌다웠다.
“허억, 허억.”
숨을 고르던 에어리스는 대검을 땅에 꽂고 힘겹게 일어섰다.
상대는 강했다.
단 한 번의 격돌만으로 온몸이 으스러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전신이 후들거렸다.
위잉.
그때, 옆구리에 찼던 귀혼검이 강하게 진동했다.
어머니의 유품으로 남은 검.
원래대로라면 어머니 시오가 죽은 후, 이 검을 물려받아 싸우게 된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검혼일체>를 깨달은 후에 이 검을 받게 되었다.
“귀혼검…….”
어머니의 유품이지만 그만큼 신좌들을 멸할 수 있는 검이기도 했다.
상대를 없애겠다는 의지.
격렬한 분노를 머금을수록 이 검의 진면모를 발휘할 수 있었다.
“알겠어요.”
다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검을 사용했다가는 자신의 이성마저 잃을 것 같았다.
에어리스가 아닌 원래의 ‘아델리카’가 될 수도 있었다.
‘복수심에 불타는 아델리카.’
그건 에어리스가 아니라 다른 존재였다.
어머니와 레다 언니까지 사라진 지금.
하나 남은 유일한 동생인 유나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했다.
“에어리스 언니?”
멀리서 유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레스한테 튕겨 나간 에어리스를 걱정해서 달려오는 중이었다.
“오지 마!”
에어리스가 소리쳤다.
갓 초월격을 익힌 유나는 아레스의 힘을 버텨 낼 수 없었다.
“어서 돌아가!”
그 순간.
하늘에 있던 아레스가 온몸에 강한 아우라를 모으고 있었다.
그 힘은 유나를 겨누었다.
“감히 내 싸움에 끼어들지 마라.”
아레스가 호통을 치면서 주먹을 내질렀다.
저 일격에 맞으면 유나의 몸은 산산조각이 날 터였다.
그것은 비참한 미래.
절망의 순간이었다.
“유나!”
일격.
단 한 번으로 일대가 완전히 붕괴됐다.
이어서 무수한 파편과 잔해가 휘몰아쳤다.
“아!”
에어리스가 달려들 때는 모든 것이 늦은 뒤였다.
맹렬한 파동이 터지는 순간에 유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유나?!”
그곳에는 아레스라는 전쟁광.
힘으로 굴복시키려는 괴물만이 있었다.
“아…….”
도시는 황량한 폐허가 되었다.
이곳은 파괴와 죽음만이 남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귀찮은 녀석들.”
아레스의 말에 에어리스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절망의 감정도 받았다.
어머니와 남은 자매들 모두를 잃고 말았기에.
“아아.”
지옥 같은 좌절감이 눈물로 흘러내렸고, 자신의 존재마저 잊어 가기 시작했다.
“나는…….”
흐느끼는 말.
한마디조차 고통스러웠다.
“나는…….”
슬픔이 온몸을 지배하자 곧 격렬한 분노가 치밀었다.
“어머니처럼…….”
신좌들을 모조리 죽이려던 그 기세처럼.
불길처럼 타오르는 아우라가 새롭게 발휘되었다.
초월격
<죽음의 그림자를 쓴 자>
에어리스가 검붉은 기운에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