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221화 (221/229)

221화 종말의 신화전(4)

제갈공명은 잠시 탄식했다.

“라그나로크, 종말의 신화는 우리만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다.

1단계 교두보 만들기를, 우리만이 아니라 저쪽에서도 하고 있다니.

“왜 그런 건가요?”

에어리스가 조용히 물었다.

불온한 기분이 점차 피부로 느껴지는지 온몸을 살짝 떨고 있었다.

“라그나로크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네?”

생각이 깊어질 때면 제갈공명은 백우선을 흔들곤 했다.

지금도 그랬다.

“세상에 퍼져 있는 종말의 신화들은 대부분 모두 붕괴로 끝납니다. 하지만 라그나로크 신화는 다릅니다.”

제갈공명은 잠시 뜸을 들인 후에 이어서 말했다.

“신들의 황혼, 이 신화는 종말 후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종말 이후의 세계가 있다.

라그나로크만의 특징이었다.

“종말 후 새로운 세상이 탄생한다는 사실이 이 신화가 가진 특이한 부분이죠.”

모두가 침묵했다.

라그나로크는 단순한 종말의 신화가 아니라, 탄생의 신화도 겸한다는 사실에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유나가 입을 열었다.

“라그나로크 신화가 발현되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는 거네요?”

“맞습니다.”

“그럼 나쁜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우리는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려고 하니까요.”

“문제는 그들도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는 겁니다.”

제갈공명이 지적했다.

저들의 진정한 목적은 하나였다.

“종말의 신화는 누구나 쌓을 수 있습니다. 저들은 우리의 세계를 멸망시켜 라그나로크를 이루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겁니다.”

큰 충격이 지나갔다.

모두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종말의 신화가 역으로 우리에게 발동한다.’

그것이 올림푸스가 이 신화를 쌓아 올리는 이유였다.

“저들은 우리의 세계에 종말의 신화를 쌓아 가고 있습니다.”

제갈공명의 말은 단호했다.

다른 가능성이란 없었다.

“지구는 지옥도에 비하면 한참 약한 세력이니, 그곳에다가 종말의 신화를 만들 겁니다.”

지구에 종말의 신화가 쌓이고 있다.

최악의 가능성을 깨닫자 유나는 표정이 새하얗게 질려 버리더니 경악했다.

“설마……?”

“종말의 신화 1단계인 교두보는 지구에 만들어졌습니다.”

머리를 강하게 맞은 듯한 충격이 전해졌다.

종말의 신화는 서서히 자신들을 옥죄고 있었다.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가… 과감한 전략을 준비했습니다.”

제갈공명의 말에 다들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자 다들 고민에 휩싸였다.

에어리스는 고개를 돌려 한 사람을 쳐다봤다.

“진하…….”

유진하는 소멸해 가는 헬라에게 치유의 빛을 주입하고 있었다.

여신의 생명을 구할 때까지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전략 구상은 가능했다.

“올림푸스의 작전을 알았어요.”

유진하가 말했다.

작전은 새롭게 짜야 했다.

“그럼 우리도 양면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어요.”

“진하, 양면이라면……?”

“지금부터는 양쪽 전선에서 전부 싸워야 해요. 공격조는 여기서 올림푸스 공략을 계속 맡고, 방어조는 지구로 돌아가서 막도록 해요.”

전장은 양분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싸움은 성운을 넘어선 대전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제갈공명의 생각도 같았고, 자세한 작전 구상을 시작했다.

“우리 본진을 지키고, 적의 본진을 점령해야 하는 싸움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지금 누가 어디를 맡을지를 결정하겠습니다.”

시간이 부족했다.

얼른 차원 문을 열어 지구 성운에 돌아가 싸울 인원을 결정해야 했다.

“내가 가지.”

조커가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아까부터 가만히 있기만 해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지구에서의 싸움이면 내가 가는 편이 낫겠어.”

“그럼 저도 가겠어요.”

에어리스도 나섰다.

어머니의 유품인 귀혼검을 가지고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기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저도 에어리스 언니랑 갈게요.”

유나도 자청했다.

“나도 간다.”

이소민도 손을 들었다.

“좋습니다. 그럼 네 분에게 지구 성운을 맡기겠습니다.”

제갈공명은 지원자를 받아들였다.

헬라의 치료에 전념하던 유진하도 동의했다.

“지구로 돌아가는 사람들 빼고 나머지는 여기서 계속 신화를 완성해야 합니다.”

남은 인원 중에도 주력은 있었다.

<명계의 마왕> 하데스.

<십대왕의 성모> 바리데기.

<정의와 신념의 여신> 아테나.

여기에 유진하도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 헬라도 부상을 털고 일어날 것이었다.

“올림푸스는 강한 세력입니다. 고전할 수밖에 없으니 최대한 서둘러야겠습니다.”

종말의 신화전 2단계가 곧 시작될 즈음이었다.

차원 문을 열어서 에어리스, 유나, 조커 일행은 지구로 돌아갈 채비를 갖췄다.

“이번이 처음이네요.”

지구로 돌아가려던 에어리스가 살짝 걸음을 멈췄다.

“진하, 당신과 떨어지면서 전투를 벌이는 것은…….”

가기 전의 마지막 순간.

에어리스는 처연한 눈빛으로 유진하를 바라봤다.

그 순간.

고개를 돌린 유진하와 눈이 마주쳤다.

“…에어리스.”

언제부터인가.

전장에 나설 때마다 함께했다.

항상 믿었고 신뢰했으며 긴 시간 동안 의지했다.

“잘 부탁할게.”

이제는 에어리스가 스스로 싸울 때였다.

유진하의 도움이 없이, 자신만의 길로 서서히 걸어갈 순간이었다.

“…다녀올게요.”

에어리스는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끝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어머니의 유품, 귀혼검을 든 그녀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기다릴게.”

유진하는 그 말을 보냈다.

저 차원 문 너머로 돌아가는 에어리스를 보면서 지금까지 함께 지내 왔던 나날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싸움에서 언제나 목숨을 걸고 싸워 왔다.

믿음은 하나가 아니었다.

서로가 믿어 주는 게 중요했다.

떠나가는 자.

믿어 주는 자.

유진하도 그걸 알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겠어.”

에어리스가 항상 입버릇처럼 되새김하던 그 말이 떠올랐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

그것이 지금 두 사람에게 남은 유일한 감정이었다.

“2차전부터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다.”

에어리스, 유나, 이소민, 조커가 지구 성운에 복귀했다.

잠시 후, 메시지가 도착했다.

-종말의 신화전 2단계.

-1단계에서 교두보를 만든 여러분은 자신들의 거점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이제 여러분이 반드시 지켜야 할 터전이 되었습니다.

-패배 조건이 추가되었습니다.

자신의 교두보 거점이 상대 성운의 참가자에게 24시간 동안 점령당하면 패배합니다.

메시지는 계속됐다.

-2단계는 진격로.

-여러분은 이제 상대의 거점으로 향하는 진격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리더는 나아갈 것이고, 리더가 걸어간 길은 전부 진격로로 인정됩니다.

진격로는 상대의 거점으로 향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리더가 움직이지 않으면 진격로는 생성되지 않습니다.

-진격로는 반드시 자신의 거점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길이 이어져야 합니다. 하늘도 갈 수 있으나 반드시 땅에서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진격로는 최소 10킬로미터를 만들어야 하며, 실패하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없습니다.

-종말의 신화전 2단계가 시작되었습니다.

* * *

지구 성운의 상황은 비관적이었다.

차원 문에서 나온 올림푸스의 신좌들은 도시의 중앙에 자리 잡았다.

기습이었다.

“이곳이 우리의 교두보가 되었다.”

<전쟁의 신>이 우람한 상체를 드러내며 대지에 강하게 섰다.

선전포고 같은 선언이었다.

“너무 서두르지 말자고. 좀 쉬면서 즐겨도 되잖아.”

<술과 여흥의 신>이 포도주를 잔에 마시면서 공중에 드러누웠다.

피 흘리는 전투보다는 술과 놀이를 더 좋아하는 신좌답게 항상 기분파였다.

“술주정뱅이 같은 녀석. 내 땅에 저 녀석의 자취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대지와 풍요의 여신>이 코를 막으면서, <술과 여흥의 신>한테 거리를 두었다.

원래 올림푸스 신화가 그렇듯이 신좌들의 사이는 썩 좋지 않았다.

“…주의해라.”

<성스러운 화살의 여신>은 냉철한 눈빛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올림푸스가 보낸 신좌들이었고, 지구 성운에 종말의 신화를 발동시키려는 원정대였다.

“우리 넷이면 되는 건가?”

<성스러운 화살의 여신>은 오랜만에 전장에 나선 탓인지 조심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그에 반해 <전쟁의 신>은 개의치 않고 호쾌했다.

“이런 하급 성운에서 누가 우리를 맞설 수 있단 말이냐?”

“태생은 그럴지 몰라도 이제는 신화급 성운으로 성장한 곳이다. 얕볼 수 없어.”

여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신>은 동의하지 않았다.

“출신이 하급이다. 벌레가 성장해 봐야 벌레일 뿐이지.”

다분히 얕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인간들은 한낱 미약하고 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우리를 경외하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 일어날 테니까.”

교두보는 완성한 상황이었다.

이곳에서 종말의 신화는 이미 1단계를 돌파했다.

“하하하하, 아테나 녀석이 이곳에 있었다면 조금은 더 재밌는 승부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전쟁의 신>과 <전쟁의 여신>이 맞붙겠다는 거냐?”

항아리처럼 풍만한 몸매를 지닌 <대지와 풍요의 여신>이 흔들거리면서 관심을 보였다.

“그거라면 나도 재밌겠어. 누가 진정한 전쟁의 신인지 판가름하는 거잖아.”

“하하, 당연히 내가 이기지.”

<전쟁의 신>은 두려움이 없었다.

아테나의 위세조차 언젠가는 꺾어 버려야 하는 수준으로 여길 정도였다.

“아테나는 위선자다. 올림푸스를 배반한 반역자이지. 나는 아버지에게 녀석을 제물로 바칠 거야.”

우렁찬 포효가 터져 나왔다.

포효는 전쟁터의 병사들이 내지르는 함성처럼 막강한 기세를 발휘했다.

“그만해라. 옆에 있는 나도 시끄럽잖아.”

공중에서 포도주를 마시던 <술과 여흥의 신>이 다혈질 <전쟁의 신>을 제지했다.

“술꾼 녀석. 너는 계속 그 술이나 퍼마셔라.”

“멍청한 멧돼지야. 너는 평생 전쟁터의 핏물이나 마실 거다.”

자기들끼리 험악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으르렁거렸다.

콧대가 하늘같이 높았던 신좌들끼리 수많은 신화에서 대립했던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내가 강하다.

저 녀석보다 뛰어나다.

서로의 자만심이 불화의 원인이 되었다.

교두보를 완성한 지금.

메시지가 도착했다.

-종말의 신화전 2단계가 시작되었습니다.

“드디어 다음 단계인가?”

어차피 이곳에도 공간의 주인은 있을 것이다.

인간들이 많아서 찾기는 어렵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다 죽일 거야.”

<전쟁의 신>은 그렇게 소리쳤다.

어차피 누가 진짜 주인이든 상관없었다.

모조리 궤멸시키면 그걸로 끝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 지구라는 곳에서 종말의 신화가 먼저 발동될 거다.”

이것은 아버지 제우스의 계획이었다.

“그럼, 종말의 신화는 여기서 실현될 것이고, 올림푸스는 무사하게 된다.”

기막힌 묘안이었다.

종말의 신화를 막느라 치열한 희생을 치르느니, 저들의 성운에다 우리가 먼저 실현해 버리면 된다.

그 작전을 위한 원정대가 자신들이었다.

“하하하하.”

도시 일대는 혼란에 빠졌다.

한 무리의 신좌들로 인해 세상은 천지개벽과도 같은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때였다.

“차원 문이라고?”

하늘에서 열리는 차원 문.

거기서 네 명의 사람이 귀환하고 있었다.

올림푸스에서 보낸 원정대를 막기 위해 도착한 구원자들이기도 했다.

“당신들을 막아 내겠어요.”

차원 문에서 에어리스가 가장 먼저 나타났다.

그녀는 대검을 움켜쥐며 올림푸스 신좌들을 베어 버리리라 결심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