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220화 (220/229)
  • 220화 종말의 신화전(3)

    번개의 자락으로 구현된 묠니르가 하늘에 있었다.

    “너희들을 일격에 날려 버리겠다.”

    단독으로 쳐들어온 토르는 번개의 형상이 되어 라그나로크, 종말의 신화를 혼자서 결말지으려고 들었다.

    그래서 심판의 번개와 거대한 망치를 들어 모든 번개의 흐름을 모았다.

    “정말 무식하게 힘만 센 놈이네.”

    공중에 남아 있던 헬라는 검은 아우라를 머금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작렬하는 번개의 빛 때문에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였다.

    “진짜 귀찮은 동생이야. 그런데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헬라의 자조 섞인 말에 번개의 형상이 멈칫했다.

    “헬라 누님은 지옥의 이름을 가졌으니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겠지.”

    “후후, 그곳은 내가 아니라 원래 네 고향이었어.”

    헬라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아버지가 말씀 안 하셨지?”

    비웃는 기색이 보였다.

    “아버지는 원래 내가 아니라 널 지옥에 보내려고 했어.”

    토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럴 리가 없다.”

    “사실이야.”

    작은 침묵이 지나갔다.

    헬라는 서서히 끓어오르는 아우라를 모아 가며 반격의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널 보낼 생각이었어. 그러다 마지막에 생각을 바꾸신 거지.”

    사실 토르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아버지 오딘은 아스가르드의 최고신이고, 그 아들인 토르는 그의 명령이라면 어떤 명령이든 수행하는 존재였다.

    아스가르드를 지키기 위해.

    오딘의 뜻을 받들기 위해.

    토르는 자기 몸을 내던졌다.

    “네가 무식하게 힘만 앞세우는 녀석이기 때문이니까. 다루기 쉬워서 그래.”

    “누님은 말을 조심해야 할 거야. 나를 조롱한 녀석치고 살아남은 녀석은 없어.”

    “너는 그럴 머리가 없다고. 이 멍청아.”

    헬라가 토르를 꾸짖듯이 소리쳤다.

    “모든 신좌들을 통틀어도 너보다 멍청한 녀석은 없을 거다. 그러니까 똑똑한 나보다 멍청한 너를 곁에 둔 거야.”

    조롱이 계속됐다.

    “너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지 않을 테니까. 강아지처럼 주인을 아주 잘 따를 거고.”

    헬라가 자기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꼬리를 흔드는 시늉을 했다.

    번개의 형상이 된 토르는 격렬한 분노를 토해 냈다.

    “감히 날 놀리는 거냐!!”

    “너도 했던 거잖아.”

    토르와 헬라는 철천지원수처럼 대립했다.

    원정대를 겨냥했던 초대형 묠니르는 다시 헬라를 조준했다.

    “명심해라, 동생아.”

    자신에게 향해 있는 묠니르를 보고도 헬라는 차분하게 얘기했다.

    “이 성운전은 너희들이 만든 게임이야. 그런데 너희 신좌들도 그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지옥의 끝자락에서 살아가던 신좌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구렁텅이와 진흙탕이 있던 지옥.

    그곳에서 뜨거운 지옥 불과 고통 속에서 단련했다.

    “토르, 네가 했던 수련은 겨우 놀이 수준에 불과해. 우리 지옥도에서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매년 마경대전과 치열한 전투 속에서 살아가던 헬라였다.

    반대로 토르는 드높은 명성에 취했던 위선자였다.

    “어디 내 힘이 거짓인지 직접 누님에게 보여 주지.”

    번개의 형상이 된 토르의 기세가 이내 초대형 묠니르를 내려쳤다.

    하늘에서 거미줄처럼 퍼져 갔던 번개의 자락이 망치에 뒤얽혀 헬라에게 작렬했다.

    “으아아아아아!”

    번개의 망치가 내려치자 헬라는 혼자 힘으로 그 위력을 받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위력이 너무 강해 육체가 조금씩 터져 나갔다.

    “큭!”

    그녀의 입가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토르가 날리는 최대의 일격을 받아 내기는 헬라에게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신좌라도 죽을 수 있다는 것.’

    이 법칙은 헬라에게도 적용된다.

    “죽음이 반드시 끝을 의미하는 건 아니야.”

    고통스런 번개가 온몸에 흘렀지만 헬라는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죽은 자들이 모이는 곳, 지옥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녀석들이 널려 있다.”

    지옥은 죽은 자들의 세상이지만, 동시에 가장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겪어 봐야 해.”

    올림푸스든 아스가르드든.

    하늘에서 고고한 존재처럼 있어선 안 된다.

    자신을 지옥에 처박은 신좌들을 반드시 전부 지옥 밑바닥에 처박아야 했다.

    “난 거기에 걸었다.”

    헬라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

    <분노하는 지옥의 눈>은 상대를 봉쇄해서 족쇄로 가둔다.

    현재의 토르는 번개의 형상이라서 더는 족쇄가 걸리지 않으나, 다른 방법이 있었다.

    “…보인다.”

    족쇄를 더 채울 수는 없지만, 붉은 눈으로 아까 토르에게 채워둔 족쇄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거기 있었구나.”

    번개의 세상 속에서 버티는 것에 한계가 올 때쯤, 토르의 위치를 알아냈다.

    저곳에서 전력으로 승부를 건다.

    파아앗!

    헬라가 강하게 덤벼들었다.

    그림자 형체를 총동원해서 묠니르의 파괴력을 잠시 받아 내는 동안, 본체가 돌격했다.

    “크억!”

    헬라가 손을 뻗어 토르의 심장을 정확히 찔렀다.

    “으으윽!”

    쿨럭.

    토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피를 토해 냈다.

    “대단하군. 괜히 아버지가 지옥에 처박은 게 아니었어.”

    지옥의 구덩이에 처박고, 이름을 굳이 헬라라고 지어 준 이유가 있었다.

    <지옥의 이름을 가진 여신>이 되면 공포의 존재가 된다.

    이름은 낙인이 되었다.

    ‘철저히 고립되어 외롭게 살아간다.’

    오딘은 헬라를 견제했다.

    자기 자리를 노릴 수 있다고 보았기에 경계했다.

    “그렇게 두려워해도 결국 피할 수 없는 거야.”

    수십억 년이 넘는 세월.

    기나긴 이별 끝에 만난 남매는 서로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헬라는 토르를 잡더니 살포시 안아 주었다.

    “커억!”

    토르는 동생이자 영웅심이 넘쳤던 자였다.

    종말의 신화전에서도 혼자서 최선봉으로 나섰던 용감한 신좌였다.

    “누님이… 모르는 게 있어.”

    토르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나와 당신 중에 지옥도에 넣은 것은 맞아. 하지만 당신이 더 뛰어나거나 두려워해서 지옥도에 넣은 게 아니야.”

    “뭐?”

    귓가에 들리는 음성은 소름이 끼쳤다.

    “벌을 내린 거야. 본보기로 말이야.”

    토르는 오딘의 본심을 알려 줬다.

    “자신을 거역하는 자는 전부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다. 누님은 그걸 위한 본보기였고.”

    마치 광장에 걸어 놓은 죄인들처럼.

    헬라를 지옥에 처박은 것이었다.

    “종말의 신화, 라그나로크가 있어도 누님이 이길 가능성은 없어. 아버지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서서히 육신이 사그라드는 토르를 보면서 헬라는 잠시 멍하니 멈췄다.

    동시에 아까 내려치던 묠니르가 날아와 헬라의 등을 가격했다.

    “커억!”

    토르는 심장이 찔렸고, 헬라는 등에 치명상을 입었다.

    아스가르드 성운을 대표하는 두 신좌는 서로에게 가장 치명타를 주었다.

    그리고 둘 다 밑으로 추락했다.

    쿠웅.

    추락하는데 날개가 없듯이.

    그들은 땅바닥에 늘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허억, 허억.”

    영생.

    불멸이었던 삶이 있었으나, 지옥도에 갇혀 끝없이 싸워야 했다.

    그런 삶에서 행복은 없었다.

    헬라는 땅바닥에 누운 채로 하늘을 잠시 바라봤다.

    “뭔가 시원하기도 하고.”

    어쩐지 슬픈 느낌도 들었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원래라면 다시 부활할 텐데.”

    영생일 때에도 부상당하기도 하고, 고통도 느끼긴 했으나 이제는 달랐다.

    회복되는 느낌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죽는 거구나.”

    헬라는 처음으로 몸이 차갑게 식어 가고 있었다.

    “토르와 헬라는… 같이 죽어야 한다.”

    멀리서 토르가 중얼거렸다.

    바닥에 쓰러진 그도 서서히 죽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보내면서 하던 말이었다.”

    마치 지금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는 듯한 그 말투.

    헬라와 토르는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항상 비교됐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싸웠는데… 결국에는 누님과 같은 신세였을 뿐이었어…….”

    토르와 헬라, 둘 다 어쩌면 소모품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역시 노력해도 안 되는 거였군.”

    토르는 생각했다.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듯 행동했지만, 사실은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무수한 전장에 나가 적들과 싸우고 승리했다.

    묠니르에 핏물 자국이 남도록.

    “…됐다.”

    토르는 그제야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죽지 않는 존재였기에 아버지 오딘한테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죽음에 임박해서야 벗어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하.”

    짧은 웃음.

    작은 미소가 번지며 토르의 눈동자는 멈추었다.

    항상 애지중지하던 묠니르가 침묵하듯 고요해졌다.

    “허억, 허억.”

    헬라 역시 같은 상황이었다.

    묠니르에 정통으로 맞고도 살아남는 신좌는 없었다.

    불멸의 존재를 제외하고는 전부 일격에 나가떨어진다.

    “어쩔 수 없는 거구나.”

    숨을 헐떡이면서 일생을 돌아봤다.

    복수심에 불타며 살아가던 나날이었다.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든 삶이었다.

    “나는… 돌아가고 싶었어.”

    지옥의 이름을 받아 어두운 지옥도에 갇혔던 시간들.

    그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주르륵 스쳐 지나갔다.

    토르와 헬라.

    그것이 오딘이 정한 운명이자 미래였다.

    “아직입니다.”

    그때였다.

    따사로운 빛이 헬라의 육체에 깃들었다.

    차갑고 추운 마음을 녹이듯이.

    식어가던 육체를 되살리듯이.

    갑자기 스며드는 빛이 서서히 따스한 감각을 되돌려주고 있었다.

    헬라는 고개를 들어 빛의 아우라 속에 보이는 존재를 보았다.

    “…유진하?!”

    유진하가 헬라의 곁에 다가와 빛의 아우라를 넣어 주고 있었다.

    “왜 왔어?”

    “작전을 변경했습니다.”

    “네가 움직이면 리더가 아니라는 걸 들키잖아.”

    “알고 있어요.”

    간결한 대답이지만 단순한 행동은 아니었다.

    “녀석들은 너를 리더로 의심했을 거야. 그런데 네가 움직였으니… 아니라는 걸 알았을 거야.”

    헬라는 유진하의 행동이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자신을 구하려다 팀을 패배로 몰아넣는 행위일 수 있었다.

    감정에 휩쓸렸던 헬라 본인처럼.

    유진하까지 그래서는 안 됐다.

    “토르가 죽었다. 녀석들은 끝까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어.”

    버려진 토르는 쓸쓸히 죽었다.

    하지만 유진하의 생각은 달랐다.

    “헬라, 당신이 죽어서는 안 됩니다.”

    지옥의 여왕.

    누구보다 외롭고 고독했던 여신.

    유진하는 그녀가 죽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날 살리려면 너도 무리해야 해. 그리고 날 살리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몰라.”

    “그래도 해야겠어요.”

    헬라의 생존.

    단 하나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당신이 죽으면 안 되니까요.”

    헬라를 구하는 건 모험이었다.

    유진하가 원정대에서 잠시 이탈한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결정했다.

    “헬라, 당신이 여기서 죽으면 오딘의 뜻대로 되는 겁니다. 녀석이 바라는 대로 이뤄지지 않아야 우리가 이길 수 있어요.”

    헬라의 죽음은 큰 손실이었다.

    유진하는 도박수를 던지듯이, 헬라의 치료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치유의 빛이 있어 신좌들도 치유할 수 있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1단계에서 우리는 토르를 쓰러뜨리는 걸로 시작할 겁니다.”

    다만, 오랫동안 헬라에게 치유의 빛을 쬐어 줘야 하기에 유진하의 공백이 길어진다.

    다행히 적들의 추가 병력은 도착하지 않았고, 약속된 하루가 지났다.

    -지옥도와 지구 성운의 리더가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종말의 신화 1단계가 실현됐다.

    모두가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할 즈음에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 연합 성운의 리더가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뭐라고?”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이게 무슨 메시지인지 영문을 몰라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종말의 신화는 우리가 이뤄 가는 거 아니었어?”

    이소민이 소리쳤다.

    제갈공명이 쓴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저들도 종말의 신화를 이뤄 가는 거군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쪽은 종말의 신화를 막고, 다른 쪽은 종말의 신화를 이룬다.

    이런 구도를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저쪽도 종말의 신화를 쌓아 가고 있다니.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에어리스가 되물었다.

    모두가 조용했지만,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꼈다.

    “대립하는 양측에서 똑같은 종말의 신화를 쌓아 간다? 그것은 최악의 미래를 의미하는 겁니다.”

    제갈공명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른 하늘 너머에서 불길한 기운이 드리운 듯했다.

    “종말의 신화는 우리가 아니라 저들의 손에서 이뤄지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짧은 정적이 지났다.

    이윽고 <천재지변의 책략가>는 암담한 가능성을 예측했다.

    “우리가 멸망하고 저들은 살아남게 될 겁니다. 지금처럼 영원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