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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217화 (217/229)

217화 결전 준비(10)

세상은 맑고 평온했다.

따사로운 햇살에 눈이 살짝 감겼다.

“진하…….”

에어리스가 망설이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얼굴은 거의 울상이 되었다.

“어머니는… 레다 언니는…….”

밝은 햇살에 돌아오지 못한 자들의 이름이 계속 들려왔다.

옆에서 지켜보던 유나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언니들…….”

어머니와 레다를 잃었다.

소중한 이들의 죽음은 남은 사람들을 깊은 절망으로 빠뜨렸다.

“검이 남았어.”

시오의 귀혼검.

레다의 생환검.

두 사람의 검만이 주인을 잃고 여기에 남아 있었다.

“…….”

깊은 침묵.

모두가 조용할 즈음.

에어리스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는…….”

그들의 검은 유품이었다.

“끝내지 않겠어요.”

아까까지 울상이었던 표정이 아니었다.

에어리스는 남겨진 검을 바라보다가 손잡이를 잡았다.

“어머니의 검.”

귀혼검을 움켜쥐었다.

“나는 레다 언니의 검을 가질게.”

유나는 남은 생환검을 들었다.

죽은 자들의 유품이 전해지자 슬픈 감정이 더 깊게 각인되는 듯했다.

유진하는 자매들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유진하는 가만히 속으로 되뇌었다.

남은 두 자매가 슬픔을 받아들이며 서서히 기운을 차릴 시간이 필요했다.

‘원래라면 3회전에서 시오가 죽고, 에어리스가 이 검을 가졌었다.’

예전에는 이런 결과였다.

그 후에는 에어리스가 슬픔을 다스리며 새로운 초월격을 터득할 것이다.

초월격

<죽음의 그림자를 쓴 자>

어머니 시오의 죽음을 통해 생긴 에어리스의 복수심으로 얻게 되는 초월격이었다.

‘웃지 않는 아델리카.’

회귀자 유성하는 냉랭해진 에어리스를 항상 그렇게 부르곤 했다.

지금이라면 ‘복수심에 타오르는 에어리스’가 되었다.

이렇게 되기를 원한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 시오였다.

* * *

쿠궁.

시공간 곳곳에서 균열이 생기고 사방이 무너져 갔다.

“…우리만 남았구나.”

어머니 시오는 죽어 가는 레다와 함께 남아 있었다.

쿠구궁.

허공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연이어 터졌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시오는 알고 있었다.

공간이 무너져 가는 순간을 숱하게 보았기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곧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겠지.”

폭풍우가 지나가면 고요함만이 남을 뿐.

이 폭풍우도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다.

세상은 원래 그랬다.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으니까.”

체념하는 말은 아니었다.

물론 자조 섞인 한탄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쏟아 내고 남기는 회한에 가까웠다.

쿠궁.

공간의 파편이 계속 떨어져 나왔다.

회귀자 유성하는 자신의 잔재들과 사라졌고, 유진하와 에어리스, 유나까지 모두 무사히 빠져나갔다.

“끝은 언제나 그렇지.”

시오는 황혼을 바라보는 심정이 되었다.

“최후의 순간에 유진하는 최악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우리는 패배한다.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미래에서 종말의 신화를 이루려면 변화가 필요해.”

라그나로크.

종말의 신화는 결국 완패의 결과가 나왔다.

시오는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 미래를 보았기에, 어떻게든 미래를 바꾸어야 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어.”

마지막 수.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결단을 내렸다.

“최악의 선택을 내리는 그 상황 자체가… 오지 않으면 되는 거야.”

최후의 승부수였다.

시오는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었다.

종말의 미래를 엿보는 대가로 자신의 목숨은 사라진다.

남은 하루.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알뜰하게 써야 했다.

“에어리스가 알았으면 좋겠는데.”

그 아이는 강해져야 했다.

방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에어리스는 시오가 죽으면… 초월격을 개방한다.’

지옥도에서 수련한 끝에 초월격 <검혼일체>를 개방한 에어리스였다.

여기에 또 하나의 초월격 <죽음의 그림자를 쓴 자>까지 터득한다면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두 개의 초월격을 가진 에어리스가 있다면, 종말의 신화에서 큰 활약을 하리라고 믿었다.

“레다의 죽음은 유나에게 작용한다.”

유나는 같은 자매들의 죽음에 큰 영향을 받는다.

훨씬 여린 감성의 아이이기에 에어리스보다 극복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다행히 라그나로크 신화는 5달 이상이나 남았다.

“그 정도면 충분해.”

에어리스와 유나의 각성.

이 둘을 최대한 강하게 하는 것이, 시오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최후의 승부수였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까.”

모두가 행복한 결말은 어려웠다.

하지만, 순리대로 흘러가서 전멸하는 결말만은 피해야 했기에.

승부사처럼, 평생을 신좌들과 싸워 가며 살아왔기에 과감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유진하…….”

워낙에 머리가 비상한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회귀자 유성하를 부른 것은… 정확한 판단이었어.”

유진하가 에어리스의 옆에 있다면 안심할 수 있다.

“내가 없어도…….”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몇 번 안 남은 숨결이리라.

“레다…….”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레다가 자신의 품에 있었다.

‘내가 키운 아이.’

‘내가 찌른 아이.’

레다는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너에게도 부탁하는 일이야.”

어머니로서는 할 수 없지만, 세 아이 모두가 전멸하는 미래는 바꿔야 했다.

‘레다가 죽어야 유나가 각성한다. 그래서 네가 죽어야 한다.’

물론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결국 선택은 레다 본인의 몫이었고, 레다는 잠시 생각하다가 받아들였다.

오랫동안 고민하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그러겠어요.”

“미안하구나.”

어머니로서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들었다.

그동안 잘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엄격하게 아이들을 훈육하곤 했다.

오해가 풀린 이제야 아이들과 함께 슬픔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고, 이제는 모녀 사이를 넘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우이기도 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엄마와 딸은 지금 함께 있었다.

죽음의 저편에 도달해서야,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각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항상 늦게 깨닫는구나.”

이제 소멸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때였다.

하얀 깃털이 시오의 눈가에 아른거렸다.

“깃털?”

무수한 깃털 사이로 한 명의 존재가 나타났다.

“당신은?”

올림푸스의 신좌.

<정의와 신념의 여신> 아테나가 나타났다.

“유진하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아테나의 말을 듣자, 시오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유진하는… 알고 있었구나.”

“그렇습니다.”

아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신은 유진하의 부탁을 받아 이곳으로 찾아왔다.

“당신의 계획을 알고 있었답니다.”

“하하.”

시오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뭔가 허무한 듯한 소리였다.

“정말 고민했어요. 하지만 당신들은 이곳에서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유진하가 그렇게 말했나요?”

“물론입니다.”

아테나가 말을 보탰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아테나와 시오.

이들은 성운전의 3회전에서 만났고, 그때는 서로의 팔을 자르고 싸우기도 했다.

“유진하는 이렇게 될 거라고 알았습니다. 당신과 레다를 구하는 길을 알고 있었어요.”

“…….”

시오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어떤 감정을 받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 흐를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부탁해요.”

품에서 레다가 죽어 가고 있었다.

유진하와 아테나에게서 새로운 미래의 길을 찾아내고 싶었다.

“길을 열겠습니다.”

아테나는 차원 문을 개방했다.

새하얀 문에는 날개와 빛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가자.”

시오는 양팔에 레다를 안고, 조심스레 일어났다.

귀혼검과 생환검, 두 사람의 검은 남은 아이들에게 주었다.

에어리스와 유나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겠지만, 잠시 이별할 때였다.

이제는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가야 했다.

“종말의 신화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아테나와 시오가 서서히 차원 문으로 들어갔다.

마치 문에 빨려 들어가듯 조용히 사라졌다.

이들의 복귀는 결국 종말의 신화가 열리는 때를 기약해야 했다.

* * *

“날씨가 좋다.”

이소민이 기지개를 켜면서 쭉 두 팔을 뻗었다.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반갑게 맞아 주는 듯했다.

“다들 준비는 됐죠?”

그녀의 뒤에는 장비를 잔뜩 챙긴 일원이 잔뜩 모여 있었다.

저마다 이번 원정을 위해서 실력을 갈고닦은 정예들이었다.

“이소민 누나, 인원을 다 파악했어요.”

원정대의 리더를 맡은 유진하가 서류를 살피면서 대답했다.

보고서에는 이번 원정에 참가하는 인원이 쭉 망라되어 있었다.

-종말의 원정대 멤버들.

<성화의 빛> 유진하

<정의와 신념의 여신> 아테나.

<죽음의 경계를 비웃는 자> 조커.

<근원적인 어둠의 존재> 영혼체 반절을 받은 이소민.

<검혼일체> 에어리스.

<지하에 침식된 자> 유나.

<천재지변의 책략가> 제갈량을 필두로 한 인간 영웅 집단.

<아비규환의 지옥도>와 연합하면서 참가한 참가자들도 있었다.

<십대왕의 성모> 바리데기.

<지옥의 이름을 가진 여신> 헬라.

<명계의 마왕> 하데스.

실력자들이 즐비했다.

정부 요원 M의 전력 분석표에 따르면 원정대의 전력은 다음과 같았다.

-원정대 전력 분석.

지력 : EX

(유진하, 제갈량, 아테나가 빠지면 SS로 하락.)

전투력 : UR

(전투의 초월격을 가진 멤버가 10명 이하라 EX 등급 불가.)

민첩 : UR

(전투력과 같은 이유다.)

정신력 : SSS

(EX 등급의 정신력은 이소민이 유일하다.)

체력 : U

(전체적으로 체력이 뛰어난 멤버의 숫자는 적다.)

팀워크 : S

(지구 성운과 지옥도의 성운의 첫 연합이라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독단적인 멤버들의 단독 행동이 변수가 된다.)

전체적으로 이 정도면 최상위 성운에 속했다.

하지만 상대는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 연합 성운.

이들은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방어 세력 전력 분석.

지력 : EX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빠졌지만, 지혜의 눈을 가진 오딘이 있다. 그 외에도 지적인 능력을 가진 신좌들이 즐비하다.)

전투력 : EX

(전투의 초월격을 가진 멤버가 10명 이상은 가뿐히 넘는다.)

민첩 : EX

(전투력과 같은 이유다.)

정신력 : S

(오랜만의 대전쟁이라 실전이 부족하고 정신력에서 미흡할 수 있다.)

체력 : UR

(최상위 신좌들의 체력은 뛰어나다.)

팀워크 : A

(올림푸스와 라그나로크 성운은 라이벌 관계라서 협력이 매끄럽지는 않을 것이다.)

전체적인 분석에서 확실히 우리가 열세였다.

‘신격과 초월격의 대결이 될 텐데, 전투 인원이 부족한 우리가 불리할 거야…….’

유진하도 인정하고 있었다.

전력에서는 확실히 열세였으니, 대전략을 잘 세워서 승부를 걸어야 했다.

라그나로크.

종말의 신화.

마침내 원정대는 집결했고, 하늘에는 서서히 거대한 관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번개가 치고 붉은 기운이 하늘을 뒤덮어 갔다.

지옥을 상징하는 절망.

끝을 향해 가는 종말.

다시 나타난 거대한 관문은 거대한 블랙홀처럼 나타났다.

마치 괴물의 아가리처럼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공포심을 주었다.

“드디어 시작됐어.”

마침내 약속의 날이 되었다.

-참가자는 관문에 입장하십시오.

-종말의 신화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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