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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215화 (215/229)
  • 215화 결전 준비(8)

    “유진하, 물러나라.”

    형은 결심을 굳혔다.

    그의 손에 쥔 ‘파마의 영검’에서 검붉은 검기가 치솟았다.

    “형…….”

    “미래를 보는 자는 많다. 나 역시 그렇고.”

    회귀자의 비애였다.

    미래를 알지만 그것은 항상 실패하는 길이었다.

    “그래서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유성하의 말은 동생에게만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건너편에서 귀혼검의 요기와 악마 신의 마기를 동시에 발산하는 시오에게도 전하는 말이었다.

    “미래는 바꿀 수 있어.”

    그렇게 믿어 오고 싸웠다.

    지금도 그랬다.

    “시오, 당신이 본 미래도 마찬가지야. 결정된 미래는 없어.”

    “…….”

    시오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종말의 신화가 일으키는 미래를 엿본 그녀는 유성하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싸움에서의 미래는 단 하나야.”

    시오가 귀혼검을 들어 유성하를 겨냥했다.

    치솟아 오르는 초월격.

    <신멸의 구도자>

    악의를 담은 악마 신의 혼령체가 발휘하는 절반의 신격.

    <근원적인 어둠의 존재>

    두 개의 힘을 발휘한 시오가 유성하에게 달려들었다.

    “정말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 지금 이 싸움을 바꿔 봐라.”

    유성하도 파마의 영검을 들고 정면에서 맞섰다.

    서로의 검이 강하게 마주쳤다.

    두 사람이 마주치자 엄청난 충격파가 퍼지면서 시공간이 일렁거렸다.

    “으윽!”

    그들과 가장 근처에 있던 유진하는 이 전투에서 발생하는 충격파에 휩쓸렸다.

    초월격 아우라인 성화를 발휘했는데도, 둘의 충돌로 발생한 충격파에 의해 비틀거렸다.

    ‘엄청난 파동.’

    유성하와 시오의 검술은 막상막하였다.

    어떤 때는 과감하게 검을 휘두르고, 어떤 때는 기회를 노리며 차분하게 수비했다.

    콰앙.

    검과 검이 부딪칠 적마다 벼락이 치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흐음.”

    시오는 유성하의 모습을 천천히 바라봤다.

    회색 코트를 입은 그의 자태는 완전무결에 걸맞을 만큼 훌륭했다.

    완벽한 자세와 완전한 태세.

    빈틈이 없었다.

    “후우.”

    시오는 숨을 골랐다.

    하얀 입김이 허공에 잠시 머물다가 이내 사라졌다.

    “능력으로는 어떨까?”

    검술로는 어차피 승부를 가릴 수 없을 터였다.

    결국 서로의 영기와 능력으로 결판을 지어야 했다.

    초월격과 신격에 이어, <검기의 화신>까지 소환했다.

    “제대로 겨뤄 보겠어.”

    <검기의 화신>은 이전보다 더 많은 검을 준비했다.

    “이 싸움은 이제부터…….”

    유성하도 상대 시오와 숱하게 싸워 봤기에 대략적인 힘을 알고 있었다.

    다만, 여태껏 보지 못했던 <근원적인 어둠의 존재>의 혼령체까지 힘을 절반이나 머금었기에 고전하고 있었다.

    “받아 봐라.”

    시오는 그동안 회귀자에게 당했다는 과거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거를 굴욕이자 치욕이라고 생각했다.

    유진하를 없애서 미래를 바꾸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동안 유성하한테 당했던 빚도 갚아 줄 생각이었다.

    “그럼 받아 줘야겠군.”

    유성하도 힘을 발휘했다.

    그동안 회귀의 과정에서 숱한 성운을 돌아다니며 쌓아왔던 명성과 초월격이 있었다.

    그 고된 나날에서 얻어 온 힘을 발산했다.

    초월격 <검강의 방어>

    발산한 검강을 온몸에 둘러 강한 방어벽을 만든다.

    회귀자 유성하가 가장 먼저 습득한 힘이었다.

    ‘검강의 수준에 따라서 방어력이 증가한다.’

    검강은 파괴적인 성질을 지녔지만, <검강의 방어>를 통해 방어벽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반복했던 회귀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생존력이었다.’

    실패를 돌이켜 보면 허무하게 죽은 때가 많았다.

    동료한테 배신을 당하거나 불운으로 죽은 경우가 상당했다.

    ‘운이 나쁘게 파편에 맞아 죽은 적도 있었지.’

    허무한 죽음만큼 맥빠지는 일이 없었다.

    고생해서 쌓은 과정을 다시 처음으로 되돌려야 했으니까.

    “죽음이 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게 죽어서는 안 된다.”

    물론 회귀한 후에는 자신을 배신한 사람을 찾아 어떻게든 복수했다.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적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자신의 경험을 적은 이야기였다.

    책의 교훈을 오롯이 이해한 사람은 한 명이었다.

    ‘유진하, 내 동생만이 유일하게 이해했다.’

    일부러 달달 외우게 했다.

    억지로 시켰지만, 보람은 있었다.

    ‘내 동생은 지금껏 나도 해내지 못한 과업을 모조리 이루어 냈으니까.’

    <검강의 방어>를 발휘한 유성하는 철벽같았다.

    시오가 발현한 <검기의 화신>이 내리치는 무수한 검기의 공격에도 당당히 버텨 냈다.

    “내 힘을 버텨 내다니…….”

    예상치 못한 유성하의 능력에 시오는 당황한 감정을 숨겼다.

    ‘믿을 수 없다.’

    초월격 <신멸의 구도자>

    신격 <근원적인 어둠의 존재>

    여기에 <검기의 화신>까지 힘을 합쳤는데도 회귀자 유성하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이 정도면 절대 방어에 가까운 힘이었다.

    “대단한 검격이다.”

    유성하도 시오의 능력을 보고 감탄했다.

    정면에서 받아 내고는 있지만 무시무시한 검격으로 인해 반격의 기회가 보이지 않았다.

    방어는 생존에 필수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이기는 힘은 아니었다.

    ‘결국, 승부를 결정하는 건 공격이다.’

    유성하가 파마의 영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쏟아지는 시오의 검격 속에서 이제는 반격의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조금씩 몰아치는 검격에서 규칙성을 알아 갔다.

    단 한 번.

    그 틈을 이용해서 일격으로 승부를 낼 생각이었다.

    바늘 하나의 틈.

    작고 미세한 부분이 이번 승부의 결말을 가를 터였다.

    “지금이다.”

    유성하의 눈에 빈틈이 보였다.

    그래서 곧바로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콰앙.

    강렬한 굉음과 충격파가 퍼졌다.

    “형?!”

    둘의 대결을 지켜보던 유진하는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강자 대 강자.

    초월격 대 초월격.

    최강자의 대결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상대의 수를 읽고 싸웠다.

    저 화려한 검무는 예술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머니?!”

    지켜보던 레다, 에어리스, 유나도 긴장된 마음으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순간이 발생했다.

    “이건?!”

    완벽한 타이밍에 들어간 유성하는 시오를 베지 못했다.

    오히려 역으로 자신의 복부에 가해지는 충격을 느꼈다.

    “피?!”

    배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초월격 <검강의 방어>가 뚫렸다는 소리이기에 유성하는 당황한 낯빛이 되었다.

    “녹아내렸다고?!”

    <검강의 방어>가 마치 용암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절대적인 방어라고 여겼던 검강의 방벽이 뚫려 버렸고, 그 사이로 귀혼검을 내지르는 시오의 번뜩이는 눈빛이 보였다.

    “내가 방금 전 공격에서 모든 힘을 사용한 줄 알았나?”

    치열한 공방 중에서도 모든 힘을 사용하지 않았던 시오가 전력을 다하자, 아우라의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야 최대치로 사용했어.”

    아까까지는 <근원적인 어둠의 존재>의 힘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시늉만 낸 거고, 실제로는 아껴 두고 있었다.

    “회귀자, 당신이 빈틈을 노려 나에게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었지.”

    유성하와 시오는 같은 전략이었다.

    방금 검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실력을 어느 정도 짐작했다.

    ‘속력과 실력은 엇비슷하다.’

    서로 비슷한 실력과 기량이라면 원거리에서 결판을 내기 어려웠다.

    결국 근거리에서 한 번에 결착을 지어야 했다.

    “<검강의 방어>를 제압하는 힘.”

    <근원적인 어둠의 존재>는 상대의 아우라를 녹여 버릴 수 있었다.

    아무리 유성하의 방어가 강하다고 해도 아예 녹여 버린다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큭!”

    시오의 검날이 복부를 베고 지나갔다.

    가까스로 치명상을 피한 게 다행이었다.

    “회귀자를 죽이면 다시 시작하지. 그것만은 나도 피할 생각이야.”

    시오는 유성하를 죽이지 않고 제압할 생각이었다.

    “당신을 심연의 바다에 밀어 넣을까? 그것도 괜찮겠지.”

    지옥도에는 심연의 바다가 있었다.

    그곳에 회귀자를 봉인해 둔다면 영원히 벗어 날 수 없었다.

    “과연, 제대로 성장하면 가장 강한 <신멸의 구도자>가 된다는 거군.”

    일격을 당한 유성하는 배를 움켜잡고 물러났다.

    부상을 당했으나 치명상은 피한 덕분에 아직 싸울 수 있었다.

    “회귀자 특성 덕분인가.”

    유성하는 숨을 골랐다.

    평정심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확실히 신좌들을 모조리 섬멸하겠다는 자다워.”

    초월격, 시오.

    그녀는 회귀의 과정 중 번번이 자신을 막은 벽이었다.

    에어리스와 레다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녀를 넘어서야 했기에, 시오의 검에 무수히 죽고 또 죽었다.

    회귀가 아니었다면 감히 도전할 엄두조차 못 냈을 것이었다.

    “한계를 넘어 강해졌다고 여겼는데도… 한참을 절망해야 했다.”

    3회전에서 그녀에게 계속 죽었다.

    <신멸의 구도자> 시오는 그만큼 강했다.

    쉽게 이길 상대가 아니었다.

    “후우.”

    유성하는 다시 숨을 골랐다.

    잠재력을 터트린 시오의 힘은 이제 끝을 모를 만큼 강력했다.

    저 거대한 아우라.

    그 앞에 유성하는 작아진 느낌을 받았다.

    “다시 도전한다면…….”

    피할 수 없는 승부를 맞이할 때마다 유성하는 항상 결심했다.

    죽어도 죽지 않으니, 더 강해져서 또 도전하면 된다.

    그런 마음으로 회귀했지만, 이번에는 절대 죽어서는 안 됐다.

    ‘라그나로크, 잠재 신화는 이번이 아니면 개방되지 않는다.’

    올림푸스의 신좌들이 알게 된 이상, 다음 기회는 없을 터였다.

    “이번 회차가 마지막 기회야.”

    유성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시오도 막강한 아우라를 모으며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하지만 회귀자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결말로 가겠어.”

    마지막 결판의 순간에 다다랐다.

    시오의 초월격과 신격이 뒤섞인 기운이 시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유성하는 부상을 당했고, 부상당한 상태로는 저 강대한 기운에 대적하기 무리였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그때였다.

    무수한 차원 문이 허공에서 열리고 있었다.

    “나를 따라다니는 모든 회귀의 잔재들이 이제 왔다.”

    회귀자를 노리는 잔재.

    그들이 차원 문을 열고 일제히 나타나고 있었다.

    “이들은 나의 그림자. 내 몸을 뺏으려는 잔재이기도 하지만…….”

    ‘회귀자를 노리는 잔재.’

    하지만 이들에게도 특성은 있었다.

    ‘본체가 사라지면 잔재들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어쨌든 기본적으로 유성하였다.

    ‘본체를 원하는 잔재들이지만, 막강한 적이 나타나서 본체가 위험해졌다고 여기면… 잔재들은 본능적으로 본체를 지키려고 한다.’

    “지금이다.”

    회귀의 잔재들은 유성하가 그동안 살아온 기억이기도 했다.

    강대한 시오의 위협을 느끼자 모두가 일제히 정렬했다.

    저 앞의 강대한 적.

    시오.

    본체를 노리던 회귀자의 잔재들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본체에게 위협을 주는 대상부터 제거하려고 들었다.

    그들 전원이 일제히 돌격하기 시작했다.

    회귀자 유성하와 잔재들이 역습을 개시했다.

    최후의 승부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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