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214화 (214/229)

214화 결전 준비(7)

“회귀자 유성하.”

회색 코트를 입은 영원의 회귀자.

유성하가 나타났다.

“당신을 만나고 싶었어.”

검은 양복을 입은 시오가 귀혼검을 든 채로 무시무시한 요기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제야 회귀자를 처음 만나게 되었네.”

“…처음 만난 건 아니야. 당신과는 정말 지겨울 정도로 만났지.”

유성하는 무수한 회귀 과정에서 시오를 만나 왔다.

“나와 만나왔다면… 그만큼 내가 죽었다는 소리겠네?”

시오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회귀자 유성하의 여정에서 시오는 곁에 없었다.

“동료였던 때도 없었다. 오로지 우리는 적으로 만났다.”

원래였다면 3회전에서 이뤄졌을 그들의 만남이었다.

하지만 유진하가 발생시킨 변수로 이들의 첫 만남은 여기서 이뤄졌다.

“그렇군… 만나고 싶었어.”

시오는 무서운 눈빛으로 유성하를 바라봤다.

“내가 당신에게 매번 졌다는 거지?”

“…….”

유성하는 부정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신멸의 구도자>인 당신에게 무수하게 졌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였지.”

“지금은?”

“해 볼 만하다.”

유성하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시오의 입가에서 옅은 미소가 번졌다.

“나와 겨룰 정도로 실력이 늘어나야 회귀자라고 할 수 있겠지. 이제는 내가 너에게 진다는 거지?”

회귀자는 시간을 되돌린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고 가장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은 뒤, 무한히 시간을 되돌린다.

그래서 <신멸의 구도자>인 시오의 힘으로도 이길 수 없는 상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있군. 무수히 많았던 회귀 중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시오가 살아 있고.

“내가 살아 있는 거?”

세 명의 쌍둥이 자매가 모두 살아 있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야.”

유성하는 마치 장승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순간이라도 딴짓을 했다가는, 시오의 검이 단숨에 자신의 목을 베어 버릴 수도 있기에 누군가를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여기에 형을 불렀다.’

유진하는 사실 알고 있었다.

시오의 대련에 숨겨진 진의를 이미 깨닫고 있었다.

‘시오는 반드시 자기 목표를 이루려고 할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의 의지는 강했다.

회귀자 유성하가 끝내 시오를 살리지 못한 이유도 그녀의 고집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시오를 살리려면 수단이 필요하다.’

그녀를 막으려면 그에 걸맞은 상대가 필요했다.

유성하가 적임자였다.

“…형.”

“아델리카는 너에게 보냈다.”

유성하의 이번 회차는 과거와 달랐다.

쌍둥이 자매 중 레다만 곁에 두고, 아델리카는 유진하에게 보냈다.

‘동생을 지켜 줄 사람.’

유진하는 아델리카에게 새로운 이름, 에어리스를 지어 주었다.

유성하가 원하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 대신 너에게 이번 일을 맡겼다.”

원래 성운전은 자신이 수행하던 과업이었다.

그런데 유진하가 그 어려운 일을 이뤄 냈다.

“유진하, 너는 최선을 다했어. 내가 회귀하면서도 해내지 못한 것들을 이뤄냈다.”

회귀자 유성하일지라도 결코 해내지 못한 과업이 있었다.

시오를 살리지 못했고.

막내 유나를 구하지 못했고.

종말의 신화, 라그나로크를 열지 못했다.

“지금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어.”

처음으로 발생된 일이었다.

유진하가 만들어 낸 소중한 기회.

어쩌면 다음 회귀에서는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성운전의 최상위 신좌들은 나의 회귀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그렇기에 다음에는 이 방법이 막힐 수도 있어.”

신좌들은 회귀자를 지켜봤고 유진하를 등한시했다.

“녀석들은 나를 지켜보느라 유진하, 너의 움직임을 놓쳤다.”

회귀자 유성하는 신좌들의 눈길을 끄는 미끼 역할을 맡았고, 작전은 절묘하게 통했다.

동생 유진하가 종말의 신화까지 열어 버리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나중에 레다도 너에게 보냈다.”

유성하가 레다를 보낸 것도 작전의 하나였다.

“레다는 나와 연락할 수 있지. 그래서 너한테 꼭 보내야만 했다.”

초레어 전언 카드가 있었다.

서로 같은 전언 카드를 가진 사람끼리는 어디에 있든 연락이 가능하다.

“레다와 연락을 주고받은 덕분에, 나는 자세한 상황을 알고 있었다.”

레다는 정보원처럼 행동했다.

유성하에게 모든 정보를 알려 줬고, 연락도 담당했다.

다음 날.

시오와 대결할 장소에 와 달라고 부탁했다.

‘회귀자 유성하 대 초월좌 시오.’

이 둘이 만나자마자 싸움은 다른 양상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신멸의 구도자>, 당신과는 항상 이렇게 싸우면서 만났다.”

유성하도 잘 알고 있었다.

숱하게 만났던 시오와의 재회는 결코 반갑지 않은 상황이라고.

시오의 눈빛은 차분했다.

“당신은 나를 이길 때까지 싸운 거지?”

“그렇다.”

회귀자 유성하는 회귀를 무수히 반복하며 시오와 싸웠다.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성운전의 정해진 끝까지 도달했다.

진정한 결말에는 도달할 수 없지만, 숱한 전투에서 얻은 기억과 전투 능력은 큰 자산이 되었다.

“나는 종말의 신화가 만드는 미래를 봤어.”

시오가 작게 중얼거렸다.

“…….”

유성하는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으로 있었다.

시오가 이어서 얘기했다.

“내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었지.”

‘종말의 미래를 엿본 자.’

시오는 현재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원했다.

“유진하가 네가 생각하는 미래에 방해가 된다는 건가?”

“맞아.”

유성하는 시오의 생각을 알았다.

그래서 지금의 전투가 벌어지는 것일 테니까.

“무슨 말인지는 알지만, 동생은 살아야 한다.”

유성하의 생각은 달랐다.

“유진하가 살아 있어야 한다.”

종말의 신화가 아니더라도.

어떤 결말이 나오더라도.

“내 동생이 죽어서는 안 된다.”

유성하는 손에서 검을 꺼냈다.

신좌들을 벨 수 있는 검붉은 검이 나타났다.

“그 검은?”

겉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칼날을 가진 검이었다.

검붉은 기운은 귀혼검이 뿜어내는 요기와 비슷했다.

“최상위 신좌들까지 벨 수 있는 검이다. 그래서 난 회귀하면 항상 이 검부터 먼저 손에 넣었어.”

회귀자 유성하는 무기를 선택했다.

“어쩌면 우리는… 결국 언젠가 만나서 결판을 짓는 운명일 수도 있다.”

종말의 신화.

서로가 원하는 결말이 달랐다.

시오는 자신의 목숨보다 신좌들의 멸망을 원했다.

유성하는 어떤 결말이 있든 간에 동생 유진하의 생존을 원했다.

“신좌들도 당신이 본 미래를 봤을 것이다.”

“…….”

시오는 멈칫했다.

올림푸스와 아스가드르에도 미래를 보는 신좌들이 있었다.

미래를 보는 자는 자신, 하나가 아니다.

만약 그들도 종말의 신화에서 벌어지는 미래를 엿봤다면?’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맞아. 그럴 수도 있지.”

시오도 그 가능성을 몰랐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유진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라그나로크를 포기한다.”

세상의 종말은 일어나지 않는다.

“신좌들의 종말도 결국 발생하지 않아.”

라그나로크는 실패한다.

종말의 신화도 사라질 것이다.

“…그런가.”

유성하도 그런 가능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확신하지는 않았다.

“미래를 바꿀 방법은 있을 거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시오, 당신은 3회전에서 살아남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 살아 있지.”

“…….”

“세쌍둥이 자매의 막내였던 유나도 살아 있어.”

지켜보던 유나가 움찔했다.

에어리스와 레다는 조용히 유성하와 시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는 함께 있을 수 없는 세 자매가 모두 살아남았고, 함께 이 싸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하.”

에어리스는 유진하를 바라봤다.

저 어두운 두 개의 기운 속에 유일한 빛은 단 한 사람이었기에.

“내 뒤에만 있어라.”

유성하가 말했다.

그것은 에어리스와 레다에게도 자주 해 줬던 말이었다.

유진하는 형의 뒷모습을 보면서 예전 일을 떠올렸다.

‘처음 형과 같이 공략전을 갔던 때와 비슷해.’

형과 같이 던전으로 간 첫날.

그 후로 형과는 오랫동안 이별해야 했다.

‘지금도 비슷한 느낌이야.’

지금의 시오는 예전과 달랐다.

지옥도를 지나오며 <아비규환의 지옥도>에서 전투 경험을 쌓았고, 심지어 72악마의 신을 육체에 받아 냈다.

유성하와 맞서도 승산이 있을 터였다.

“확실히 이전과 전혀 다른 기세다.”

유성하도 알고 있었다.

시오의 저 힘은 과거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그렇지만 나도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야.”

유성하는 다른 곳에서 충분히 강해지고 돌아왔다.

수많은 회귀를 통해 수련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었다.

“굳이 유진하를 노리겠다면 나도 어쩔 수 없다.”

검붉은 검이 아우라를 휘감으며 거대한 대검으로 변했다.

-파마의 영검

신좌와 초월좌의 격을 뚫고 베어 버릴 수 있다.

이 검이 존재한다면 어떤 상대라도 겨룰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동안의 회귀에서 신좌들의 행태를 알고 있다.”

유성하의 눈빛이 또렷해졌다.

저 강대한 시오의 기세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었다.

“첫 번째, 신좌들은 거짓말을 잘한다는 것이고.”

그들은 거짓으로 상대를 기만한다.

남을 업신여겼다.

“두 번째는 자신의 격을 믿고 방심한다는 거였다.”

회귀자 유성하는 매번 이 파마의 영검을 애용했다.

신좌들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놔두었다.

‘매번 그 검을 얻고도, 실패하는 운명을 받아들여라.’

그렇게 생각했을 터였다.

그게 패착이었다.

“그들도 라그나로크 신화가 개방되고. 이 파마의 영검이 나에게 있는 상태를 예상하진 못했을 거다.”

유성하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신좌들을 베어 버릴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기회로 여겼다.

“승부수를 걸겠다. 여기서 당신에게 내 동생을 잃을 수 없어. 그랬다가는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다.”

진정한 끝을 향해서.

어떤 결말이 나오든.

이번에 반드시 성운전의 끝에서 동생 유진하와 함께 하고 싶었다.

“내가 가는 길을 봐라.”

유성하는 동생에게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남겼다.

책이나 미래를 아는 정도로 신좌들을 이긴다?

‘상대가 바보가 아니라면 그게 가능할까?’

그들이 진정으로 신좌라면 애초에 질 게임을 만들 리가 없다.

신좌들은 오만하고 무례하지만, 그들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회귀자, 그리고 미래를 보는 자.’

성운전에서 시간을 건드린 자들은 결코 정상에 올라갈 수 없다.

그것이 법칙이었다.

금기를 거스른 회귀자는 결코 진정한 끝으로 갈 수 없었다.

‘…마지막인 줄 알았던 곳까지 겨우 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굳게 닫힌 최후의 관문 앞에서 절망하는 유성하.

신좌들은 발버둥치고 괴로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즐기면서 바라봤다.

음료와 음식을 먹으면서 서커스를 쳐다보듯 기뻐했다.

‘신좌들은 자기가 이길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의 기회가 생겼다.’

유성하는 다가오는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제는 라그나로크.

신들의 황혼이 펼쳐질 최후의 대전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싸우겠다.”

회귀자 대 신멸의 구도자.

유성하와 시오의 대결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

끝으로 가기 위해서.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각자의 의지를 걸고, 치열한 사투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