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결전 준비(4)
시오의 검과 에어리스의 검이 맞붙었다.
부딪친 검날에서 격렬한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제법 실력이 늘었구나.”
하얀 도복의 외팔이 검사, 시오가 귀혼검을 휘두르며 속삭였다.
“어머니에게는 오랜만에 배우는 거라서 더 어렵네요.”
에어리스가 대답했다.
시오는 검을 밀어서 에어리스를 뒤로 밀쳐 냈다.
“겨루기라고 했지만, 단순한 시합은 아니라고, 말한 것 기억하고 있지?”
어머니, 시오는 실전 위주로 수련했다.
항상 집중력을 요구했고, 해이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꾸짖었다.
둘의 격렬한 대련을 지켜보던 동생 유나는 너무 진지한 분위기가 느껴지자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저쪽은 아주 심하네.”
언니, 레다도 동의했다.
“그러게. 여기서 수련하기를 잘 한 거 같아.”
어머니와 세 자매는 수련을 위해서 ‘간이 공간’으로 넘어왔다.
-간이 공간
작은 문 너머 임시 공간을 만든다.
빈 터전만 있는 백지상태의 시공간이었다.
제갈공명이 문명 발전에 열중하다가 얻은 물건이었는데, 만든 임시 공간에서는 주로 위험한 실험이나 수련을 하곤 했다.
“정말 여기서 수련하기를 잘했다.”
지구에서 강하게 맞부딪쳤다가는 다른 사람들의 위험에 휘말릴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임시 공간에서는 그런 걱정 없이 전력으로 연습할 수 있었다.
하늘의 번개처럼.
땅의 지진처럼.
<뇌명의 참격>과 <검혼일체>
푸른 번개의 아우라에 이어 초월격을 발휘한 에어리스.
<검기의 화신>과 <신멸의 구도자>
마찬가지로 전력을 다한 시오.
모녀의 대련은 실전을 방불케 했다.
“와아, 에어리스 언니 정말 대단하다.”
저토록 강한 어머니, 시오와 맞서다니.
초월격을 발휘한 에어리스를 보면서 유나는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는데, 갑자기 멀리서 벼락같은 고함이 들려왔다.
“레다, 유나. 너희들은 딴청만 부릴 거야? 연습 안 해?”
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초월격의 에어리스를 상대하면서도 시오는 옆을 돌아볼 여유가 있었다.
“아, 지금 할게요!”
허둥지둥.
레다와 유나도 대련에 들어갔다.
“집중이 안 되면 대련 상대를 보내 줄게.”
시오의 귀혼검에 요기가 일어났다.
-귀혼검.
이 검에 죽은 존재를 불러내어 명령을 내린다.
‘네크로맨서의 검.’
시오는 귀혼검으로 신좌급 상대를 소환하여 명령을 내렸다.
“너희를 죽이라고 명령했어. 이기고 살아남는 건 너희 몫이란다.”
과거 세 자매가 그녀에게서 수련받던 때처럼 지금도 그랬다.
수업의 강도는 상상이었다.
“초월격 진입이 고비야. 여기서 실패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
귀혼검에서 소환된 괴수는 신좌급 수준으로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때문에 레다와 유나는 전력으로 맞서야 했다.
<별자리에서 태어난 자> 레다.
<지하에 침식된 자> 유나.
하늘과 땅에서 아우라를 뿜어내며 두 자매도 본격적인 수련에 돌입했다.
치열한 분투와 거친 호흡이 뿜어져 나왔다.
“하아아압!”
어머니와 세 자매의 수련은 날이 새도록 계속 이어졌다.
* * *
“후아, 드디어 끝났다.”
비틀거리던 유나가 검을 힘겹게 들고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수련이 끝나자마자 다들 후유증으로 비틀거렸는데, 어깨가 뻐근해지고 온몸에 근육통이 극심했다.
“유나 언니, 에어리스 언니.”
두 사람도 기진맥진했다.
하루 내내 어머니와 훈련하느라 완전히 뻗어 버렸다.
다들 탈진 직전의 상태로 문에서 빠져나와 인간 성운으로 돌아왔다.
“정말 힘드네.”
도시는 밤이 되었다.
아침 해를 보고 공간에 들어갔는데 밤이 되어서야 겨우 나온 것이었다.
“너희들 체력이 많이 부족한 거란다.”
시오는 검집에 검을 넣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고된 수련이 끝나고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괜찮으세요?”
에어리스의 물음에 시오는 옷을 정돈하며 대답했다.
“이 정도로는 지치지 않는단다.”
역시나.
시오의 체력은 어마어마했다.
에어리스의 체력은 U등급이었고, 시오의 체력은 UR등급으로 평가받았다.
한 단계 차이인데도 그 격차는 상당했다.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지구력과 방어력도 부족하다는 소리야. 에어리스, 너처럼 전사형 타입은 지치면 끝이라는 걸 명심하렴.”
<신멸의 구도자>다운 충고였다.
“알겠어요, 더 노력할게요.”
에어리스도 어머니의 말을 깊이 새겨들었다.
“하나 더. 기술적인 부분도 아쉬워. 초월격에 아직 능숙하지가 않아서 빈틈이 너무 많아. 신좌들을 상대하려면 전투 경험과 센스를 더 키워야 해.”
대련이 끝나자 수련을 복기했다.
잔소리는 아니었지만 끝나지 않은 훈련을 받는 기분이었다.
어머니로서 혹은 스승으로서.
시오는 열과 성을 다하고 있었다.
“오늘은 끝났으니 함께 쉬면서 회복하도록 해요. 맛있는 음식도 먹고요.”
유나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밝게 웃었다.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수련이 끝났다고 누가 그러니?”
허억!
세 자매는 모두가 놀랐다.
하루 내내 경합을 벌이고도 지치지 않는 저 체력.
역시 UR등급으로 평가받을 만큼 지치지 않는 체력의 소유자였다.
“저희도 더 하고 싶은데, 오늘은 지식적인 수련도 해야 해서요.”
보다 못한 레다가 맏언니로서 나섰다.
이대로면 또 끌려가서 수련 받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이었다.
“레다, 지식적인 수련이 뭐니?”
“여기는 우리가 살던 곳이 아니잖아요. 지구라는 곳에는 배울 것이 많아요.”
부웅.
마침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가 있었다.
“저런 자동차를 만들어서 타고 다니는 세계거든요. 기술적인 것은 배울 가치가 있어요.”
“저런 게 필요하니? 그냥 날아다니면 되는데.”
어머니의 반박에 레다가 움찔했다.
좋은 지적이었다.
사실 이들은 어디든 단숨에 날아갈 수 있어서 자동차가 필요 없었다.
레다가 막히자 이번에는 유나가 끼어들었다.
“으음, 여기는 전화기라는 것이 있어서 멀리 떨어져도 연락할 수 있어요.”
“우리도 카드가 있어.”
시오의 손에서 카드가 나왔다.
전언 카드였다.
이것만 있으면 전화처럼 원하는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내 대화할 수 있었다.
심지어 머릿속에 몰래 비밀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어서 완벽한 보안을 자랑했다.
“아아, 그럼 패션은 어떠세요?”
마지막으로 에어리스가 나섰다.
생소한 단어를 들은 시오의 얼굴이 갸웃거렸다.
“패션?”
“예쁘고 좋은 옷이 있거든요.”
“나는 이 옷 하나면 충분하단다.”
하얀 도복이 나풀거렸다.
어머니는 검소한 성품에 맞게 하나의 옷만 입었다.
“그걸로는 부족한 거 같아요.”
“왜 그러지?”
“하얀 옷만 있으면 밤에 잘 보일 수도 있거든요.”
좋은 반박이었다.
에어리스는 옷의 디자인이 아니라 실용성으로 어필했다.
“위장색이라는 거구나.”
“네.”
위장 효과는 중요했다.
전투에서 자신의 몸을 숨긴다는 건, 생명이 걸린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그런 옷들은 구하기 어렵지 않을까?”
“아니에요!”
세 자매가 동시에 소리쳤다.
“옷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요!”
모두 필사적으로 외쳤다.
여기서 시오를 설득하지 못하면 또 수련에 끌려간다.
날이 새도록 계속될지도 몰랐다.
“…그러니?”
“정말이에요. 백화점에 옷이 잔뜩 있어요.”
시오도 결국 동의했다.
“필요한 옷이 있다면 사야겠지. 백화점이란 곳에 가 보자.”
“네에!!”
신난 세 자매는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에어리스는 백화점이나 쇼핑 매장에 가 봤으나, 레다와 유나는 처음이었다.
“백화점에는 옷뿐만 아니라, 음식도 가득해요.”
에어리스한테 설명만 들었고, 영상으로만 봤을 뿐이었다.
즉, 두 자매에게 백화점은 그림의 떡이었는데, 처음으로 가 보게 되었으니 너무나 기뻤다.
“랄랄라.”
휘파람까지 불 정도로 유나는 신나 했다.
“유나, 조용히.”
레다가 눈치를 줘도 유나는 신남을 주체하지 못했다.
“드디어 백화점이다!!”
마침내 네 사람이 백화점으로 들어섰다.
밤이 되자 더 밝아진 조명.
샹들리에 장식과 고급스런 대리석 바닥이 멋들어지게 펼쳐졌다.
“우와아!”
레다와 유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내부와 어울리게,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직원들이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여기 옷이 있어요.”
깔끔한 디자인, 화사한 무늬.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다양한 옷들이 가득했다.
“이런 곳이 있다니, 대단하구나.”
시오도 처음 보는 광경에 속으로 놀랐다.
체면이 있어서 흠흠 헛기침으로 마음을 다잡았으나 많은 옷과 생필품, 음식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을 보곤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으음.”
마네킹이 입고 있는 정장이 눈에 띄었다.
“하얀 가면을 쓴 자가 이런 옷을 입었었지.”
시오는 백가면의 조커를 떠올렸다.
차가우면서도 냉정한 눈매를 가진 조커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이 옷을 입으면 나도 비슷한 기분이 들까?”
“맘에 들면 직접 입어 보세요.”
에어리스가 바로 권유했다.
“먼저 입어 보고 마음에 들면 사는 거예요.”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어머니의 손목을 잡아끌어서 탈의실로 데려갔다.
“자, 여기서 갈아 입으세요.”
“조금만 기다리렴.”
탈의실에 들어간 시오는 한동안 주섬주섬 옷을 갈아 입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에어리스는 탈의실 문이 열리자 깜짝 놀랐다.
“와아, 정말 잘 어울려요.”
하얀 도복을 벗고 검은 정장을 입은 시오.
간결하면서도 멋스러운 자태를 자아냈다.
“정말 잘 어울려요.”
“그러니?”
에어리스의 말에 부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옷이 마음에 든 듯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신축성이 좋고 검은색이라 은신에도 도움이 될 것 같네.”
하지만 여전히 옷을 위장 용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신멸의 구도자>다운 생각이었다.
어쨌든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 다행이었다.
“다른 옷도 많아요.”
“그러니?”
붉은 원피스가 보였다.
“여기 예쁜 빨간 옷도 있네요.”
“이거는 불의 지옥에서 은신하기 좋겠구나.”
“아, 네.”
이상한 포인트에 주목하는 어머니와 함께 에어리스는 본격적인 쇼핑에 나섰다.
“레다 언니와 유나는 어디에 있지?”
이미 두 사람은 알아서 옷을 고르러 간 뒤였다.
정부로부터 한도 없는 신용 카드를 지원받은 덕분에 금액에 구애받지 않았다.
마스터의 특별한 배려였다.
“핵심 전력에게는 아낌없이 투자할 거야. 필요한 것이 있다면 뭐든지 말만 해.”
무제한 지원을 약속받았다.
덕분에 백화점 쇼핑이 천국처럼 즐거워졌다.
“우와, 너무 많다.”
유나는 한 아름 가득 쇼핑백을 품에 안았다.
레다의 상황도 비슷했다.
앞이 안 보일 만큼 많은 쇼핑백을 가득 품에 안고 있었다.
“한 번 돌아서 배도 출출한데 맛있는 거 먹고 다시 쇼핑하자.”
한 바퀴를 돌고 온 네 모녀는 바로 식품매장에 가서 우동, 떡볶이, 김밥까지 마음껏 포식했다.
“정말 여기서 계속 살고 싶다.”
네 모녀의 쇼핑은 백화점이 마감할 때까지 계속됐다.
백화점의 폐막을 알리는 종료 벨이 울리고 나서야, 넷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귀갓길에 올랐다.
“우리 돌아왔어요.”
집으로 돌아오자 에어리스가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에어리스?”
유진하가 마중을 나왔다가 네 모녀가 들고 있는 산더미 같은 쇼핑백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걸 다 산 거야?”
“백화점에 다녀왔거든요.”
거실에 쇼핑백을 내려놓자, 백화점 물품으로만 이루어진 작은 동산이 생겼다.
정신없이 물건을 챙기는 레다, 에어리스, 유나를 보면서 유진하는 식은땀을 흘렸다.
“하하, 그래도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다.”
필요한 옷을 몇 벌 챙기던 시오가 잠시 고개를 돌렸다.
거실에 멍하니 있던 유진하를 응시했다.
“그쪽은 잘 준비하고 있나?”
“아, 저 말인가요?”
약간 움찔한 틈에 시오의 말이 이어졌다.
“그쪽이 에어리스와 같이 다녔다고 들었어. 내일은 나하고 대련하는 게 어떻겠나?”
“네?”
시오의 눈빛이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초월격으로 진검승부를 해 보자는 거야. 자네랑 승부를 겨루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