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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205화 (205/229)
  • 205화 마경대전(13)

    초월격이 서로 맞부딪치자 격렬한 충격이 온몸에 전해졌다.

    뼛속까지 흔들리는 느낌이 빠릿빠릿하게 전해지자 정신이 순간적으로 아득하게 흔들렸다.

    ‘물러서지 않는 승부.’

    유진하는 헤라클레스의 기세에 맞서며 한계에 도달하는 것과 넘어서는 것에 대해 깨닫고 있었다.

    그 차이는 종이 한 장에 불과했다.

    ‘한계를 넘는 것과 좌절하는 것.’

    마치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결정짓는 것과 같았다.

    ‘전투에 집중하는 삶.’

    그런 삶은 이미 알고 있었다.

    조커가 그런 인생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었기에.

    지금의 헤라클레스도 12과업을 완수하면서 그런 위기를 숱하게 넘겨 왔을 터였다.

    ‘하지만…….’

    유진하는 생각했다.

    ‘당신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만한 과업을 통과해 왔다…….’

    수많은 시공간의 던전.

    섬멸전, 공략전.

    성운전.

    무수한 과정을 넘기고, 절망을 극복하며 이곳에 왔다.

    ‘당신과 맞설 자격이 있다.’

    그렇게 믿었다.

    이 싸움은 초월좌의 단순한 대결이 아니라, 한계 너머에 도달할 자격이 있느냐를 판가름하는 대결이었다.

    ‘절대로 지지 않는다.’

    격렬한 격투.

    전신의 힘을 주고받는 격전 속에서, 그 둘은 하늘과 대지를 오가며 강렬하게 부딪쳤다.

    혜성과 행성의 충돌.

    그것에 비견되는 충격파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끝을 알 수 없는 대결.’

    영원한 승부는 아니었다.

    유진하는 알고 있었다.

    ‘초월격을 발휘했으나, 영원한 존재가 아니었기에…….’

    무한하지 않은 승부였다.

    결국에는 결판이 나게 된다.

    <성화의 빛을 받은 자>

    <한계를 넘어선 전투의 신>

    천지사방에서 번쩍이는 광경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동시에 하늘에서 벼락처럼 내려왔다.

    대지에서 엄청난 파열음이 퍼지는 순간, 유진하는 눈앞에 노란빛 아우라를 둘러쓴 헤라클레스를 바라봤다.

    어떤 적이든 때려잡은 투사.

    지금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강적이었다.

    하지만 전사로서… 집에서 그의 신화를 들으면서 존중하는 마음도 있었다.

    “당신의 신화에 대해서는 들어 봤어요.”

    “12과업 말인가?”

    “아니요.”

    유진하는 신화의 다른 이면이 듣고 싶었다.

    “당신이 헤라의 저주를 받아 아내와 자식을 죽인 일을 말입니다.”

    “……?!”

    헤라클레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저주를 받아 ‘가족을 죽인 영웅’이라는 오명이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가진 가장 큰 아픔이었다.

    “헤라는 평생 제우스의 바람기에 고생했죠. 당신은 제우스의 사생아이기에 헤라가 저주까지 내렸던 겁니다.”

    “그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헤라클레스는 거대한 폭발처럼 분노를 터트렸다.

    격노한 기세가 나왔다.

    저주에 빠진 영웅이라는 구설수.

    헤라클레스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 얘기를 꺼내다니.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있습니다.”

    유진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헤라 여신의 저주로 당신은 자기 손으로 가족을 죽였습니다. 비극적인 일이었죠.”

    “…….”

    “저는 왜 당신이 원수와도 같은 올림푸스의 명을 따르는지 그게 궁금했습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어서 긴 한숨이 나왔다.

    “올림푸스를 내 힘으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의 운명은 그랬다.

    저주받고 조롱받으면서도 올림푸스한테 이용당하는 삶을 살았다.

    자기 가족을 잃게 만든 신좌들을 위해서 싸우는 광대.

    그것이 헤라클레스의 운명이었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어.”

    헤라클레스의 표정은 분노가 누그러들고 슬픔이 가득했다.

    헤라의 저주로 인해 자기 가족을 죽인 영웅이라는 죄를 씻기 위해서, 12과업을 수행했다.

    마지막에는 <기간토마키아> 종말의 전장에 서서 올림푸스를 위해 싸웠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올림푸스는 당신을 이용한 거군요.”

    유진하는 이런 성운전의 싸움에서 이기기를 원했다.

    정해진 굴레.

    회귀자 형의 끝없는 싸움.

    영원한 지옥.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저는 헤라클레스, 당신처럼 순응하지 않고 맞설 겁니다.”

    올림푸스에 맞서겠다고 선언했다.

    헤라클레스가 끝내 하지 못했던 그 말이었다.

    “…그런가.”

    격노할 줄 알았던 영웅은 처음으로 탄식이 섞인 말을 내뱉었다.

    온몸에 타오르던 초월격이 흐릿해질 정도로 힘이 줄어들고 있었다.

    “헤라클레스, 당신은 아직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건 무리다.”

    “저는 종말의 신화를 열어 버릴 겁니다. 그리고… 신좌들의 거짓말을 모조리 깨부술 거고요.”

    유진하가 선언했다.

    듣고 있던 헤라클레스는 조용히 듣더니 이마를 잡으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정말 대단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군.”

    호탕한 웃음이 지나가자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이 잠시나마 사라지는 듯했다.

    “배포가 정말 훌륭하다. 그건 확실해.”

    미친듯한 웃음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헤라클레스는 다시 주먹을 쥐며 재정비를 마쳤다는 듯이 걸어오기 시작했다.

    “너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실력도, 배포도 모든 게 훌륭하고 영웅의 자질이 있다고 본다.”

    헤라클레스의 전신에는 무투의 초월격이 다시 감돌았다.

    싸우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약속했다. 종말의 신화를 막아 버리겠다고. 나는 내가 한 말을 번복하지 않아.”

    역시 헤라클레스.

    자신의 말을 지킨다.

    거짓말을 하는 신좌들과 격이 다른 영웅이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그의 신화가 계속 마음에 와닿았다.

    무뚝뚝하면서도 근성 있는 자세로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지 않으면서, 인내하며 싸우던 헤라클레스이기에.

    그런 상대와의 승부.

    아마도 헤라클레스는 정신적인 면에는 약점이 있지만, 그의 의지만큼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거 같았다.

    “알겠습니다. 더는 권유하지 않겠습니다.”

    유진하도 승부를 받아들였다.

    팽팽했던 정면 승부는 다시 결착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

    바람이 불어왔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한 자락.

    그 속에서 두 명이 격렬하게 맞붙었다.

    빛과 힘.

    초월격의 승부.

    종말의 신화와 올림푸스의 안위.

    서로가 지켜야 할 약속과 신뢰까지…….

    모든 것이 걸려 있는 전투였다.

    “으아아아아아!!”

    헤라클레스가 고함을 내지르며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서로의 아우라가 뒤섞여 하늘로 치솟아 소용돌이처럼 일어났다.

    “…….”

    유진하는 차분했다.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달려드는 헤라클레스를 바라봤다.

    운명에 얽매여도.

    올림푸스에 이용당하더라도.

    영웅이라는 본분과 약속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싸우는 사람.

    그런 헤라클레스를 보면서 측은함과 동시에 존경심이 느껴졌다.

    “당신에게 걸린 족쇄를 풀어 주고, 해방시킬 방법은 하나…….”

    유진하의 전신에 초월격 빛의 아우라가 샘솟았다.

    성화의 빛.

    태양의 빛.

    두 개의 빛이 뒤섞이며 하나의 힘이 되었다.

    <두 개의 빛을 하나로 모은 자>

    고유 특성이 발현됐다.

    시공간을 꿰뚫는 전속.

    초월격 빛의 아우라가 헤라클레스의 기세를 뚫고 나아갔다.

    대지와 하늘을 가르는 하나의 빛줄기가 혜성처럼 길게 지나갔다.

    긴 자국이 허공에 남았다.

    “…끝났다.”

    빛의 기세는 한 명의 영웅을 추락시켰다.

    쿠우웅.

    낙하한 헤라클레스는 대자로 뻗어 버렸다.

    “허억, 허억.”

    굴레가 사라진 영웅은 땅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하늘을 바라보는데 시야가 조금 흐렸다.

    “내가 싸운 이유…….”

    세상에는 고고한 신좌들이 있었다.

    영웅이란 그들의 곁을 보좌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이제는… 아닌가?”

    헤라클레스는 처음으로 독립된 존재가 되었다.

    패배하자 신좌들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하.”

    어깨에 짊어졌던 모든 부담을 처음으로 내려놓으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나는 영웅이 아니다.’

    헤라클레스는 헐떡이는 숨을 가다듬으며 생각했다.

    ‘나는 올림푸스에서 벗어났다. 이제 그들의 명령을 받지 않는다.’

    최초로 느낀 해방감이 온몸에 전율처럼 느껴졌다.

    “하하하하.”

    하늘에는 한 자락의 빛이 있었다.

    영롱한 빛의 존재.

    마치 구원자처럼 나타난 유진하는 빛의 아우라로 만들어진 여섯 개의 날개를 등 뒤에 펴고 떠 있었다.

    “네가 이겼다. 그리고…….”

    유진하라는 이름.

    처음으로 헤라클레스를 이긴 그 이름을 깊게 기억하기로 했다.

    “수고했다.”

    치열하게 싸웠던 자기 자신에게 해 주는 말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해방감을 준 새로운 영웅에게도.

    마경대전의 최종 결전.

    싸움이 끝났다.

    -난입자가 전부 사라졌습니다.

    -유진하의 명성이 전체 성운에 알려지게 됩니다.

    * * *

    “…굉장한 승부였어.”

    지옥의 여왕, 헬라는 그 치열한 승부를 보고 감탄했다.

    “헤라클레스라는 거목을 쓰러뜨리다니. 대단한 신화가 태어난 건가.”

    <12과업의 완수>

    <기간토마키아의 종결자>

    기존 신화를 넘어서면 새로운 신화가 탄생하는 법이다.

    “유진하라고 했지?”

    헬라의 말투는 이전보다 부드러워졌다.

    회귀자 유성하보다 훨씬 큰 관심이 생긴 듯했다.

    <명계의 마왕> 하데스도 감탄을 금치 못하며 긴 수염을 쓸었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부상을 회복하던 <정의와 신념의 여신> 아테나도 하늘에 떠오른 빛의 유진하를 올려다봤다.

    “유진하…….”

    경외에 찬 눈빛이 되었다.

    아테나 근처에 또 다른 신좌가 나타났다.

    돌이 되는 저주 때문에 몸이 무거워지고 뻣뻣했던 바리데기가 어느새 정상 상태가 되어 다가왔다.

    “다 끝나고 온 건가?”

    하늘거리는 비단옷을 입은 그녀가 아쉽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바리데기는 가벼운 몸짓으로 허공을 톡톡 징검다리 건너듯이 움직였다.

    “저 괴력의 영웅을 쓰러뜨리다니.”

    성운전 최고의 힘.

    헤라클레스를 정면 승부에서 거꾸러뜨린 유일한 존재가 하늘에 있었다.

    감탄과 동시에 탄성이 쏟아졌다.

    “대단한 거물이 되었어.”

    <헤라클레스를 쓰러뜨린 자>

    새로운 신화가 위명처럼 널리 퍼졌고, 세상은 새로운 여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유진하는 모든 존재들이 인정하는 자가 되었다.

    “진하…….”

    지하 굴에서 에어리스, 레다, 유나가 나왔다.

    조커도 나타나서 하늘에 뜬 유진하를 바라봤다.

    “유진하가… 이긴 건가?”

    지옥도에 도착한 원정대는 모두가 동고동락하면서 고생길을 함께 겪었다.

    불가능에 가깝던 지옥도 신좌들과의 경쟁에서 치열하게 맞섰다.

    그리고… 모두가 살아남았다.

    “마경대전도 끝으로 가겠구나.”

    바리데기가 살짝 웃었다.

    4영웅이 사라진 지옥도는 다시 평온한 세상이 되었다.

    “이제 마경대전의 마무리를 지을 때가 왔어요.”

    영롱한 빛의 여섯 날개를 펼친 유진하가 차분히 내려와 땅에 발을 내디뎠다.

    “마경대전에서 종말의 신화를 열어 보겠습니다.”

    잠재된 라그나로크.

    올림푸스, 아스가르드와 싸우려면 종말의 신화에서 승부를 걸어야 했다.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다.’

    지하 굴의 최하층.

    신기의 창이 꽂힌 그곳에는, 마경대전의 결말과 동시에 잠재된 종말의 신화를 열어 버릴 기회가 있었다.

    ‘<아비규환의 지옥도>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

    그것이 종말의 신화를 열어 버리는 열쇠가 된다.

    “방법은 단 하나.”

    유진하는 생각했다.

    이곳에서 결코 이뤄지지 않은 일이라면 딱 하나라고 생각했다.

    회귀자 유성하가 해내지 못한 과업이었다.

    “그것은… 지옥도의 최상위 신좌들이 모두 힘을 합치는 겁니다.”

    명계와 명부.

    헬헤임과 악마.

    수없이 반목하고 싸웠던 지옥의 신좌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

    그것이 지옥도에서 ‘종말의 신화’를 개방시킬 유일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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