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마경대전(11)
“빛의 아우라인가?”
헤라클레스는 빛의 신좌와 겨뤄 본 적이 있었다.
올림푸스에서도 태양을 관장하는 신좌가 있기 때문이었다.
“너의 아우라는 그 격에 미치지 못한다.”
유진하의 아우라는 근본적으로 ‘빛의 카드’를 육체에 내재해서 발현하는 수준이었다.
그 이상의 힘은 스스로 낼 수 없었다.
한계가 있는 힘이었다.
“헬라, 저런 자가 정말 날 막으리라고 생각하나?”
지옥의 여왕은 상관없다는 듯이 웃을 뿐이었다.
팔짱을 끼며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스스로 자청한 거야.”
“…….”
헬라에게도 나름의 생각은 있었다.
회귀자 유성하와의 대결을 좋아했던 헬라였기에, 그의 동생에게도 관심이 가고 있었다.
‘본 적이 없다.’
회귀자의 무수한 여정에서 ‘동생’이란 존재는 없었다.
이전에 없던 사람이었다.
‘유성하의 새로운 전략일까? 아니면…….’
아직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더 지켜보고 싶었다.
자청해서 헤라클레스와 맞서겠다는 유진하의 모습에서 묘하게 회귀자 유성하의 모습이 겹쳐졌다.
‘회귀자 유성하의 동생이라… 얼른 진짜 실력을 보고 싶어.’
헤라클레스와의 대결을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이유였다.
‘여차하면 동생이 위험해서 유성하가 직접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겸사겸사.
헬라에게는 이로운 장사였다.
음흉한 미소를 짓다가 이내 표정을 싹 바꾸고 딴청을 부렸다.
“자, 싸울 거냐? 말 거냐?”
아테나와 하데스 그리고 헬라마저 물리쳤다.
이제 마경대전의 우승까지는 단 한 발자국 남았다.
“가소롭군.”
헤라클레스는 딱 한마디를 내뱉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올림푸스에서 태양을 관장하는 신을 봤다. 그들에 비하면 너의 빛은 촛불에 불과하지.”
헤라클레스라는 대영웅의 위업에 유진하는 전혀 걸맞지 않은 상대라고 평가 절하 했다.
“명계의 마왕과 지옥의 여왕조차 날 제압하지 못했다. 그런데 네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대번에 무시하는 뉘앙스를 가득 담은 말투였다.
유진하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마도요.”
“뭐라고?”
헤라클레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수많은 강자들을 상대했으나 모조리 무릎을 꿇려 왔다.
지금 저 왜소한 체격의 소년이 가진 미약한 아우라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길래 저렇게 침착한 걸까.
“넌 나와 싸울 자격도 없어. 경솔하게 입을 놀렸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
“그게 가능할까요?”
유진하는 표정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속에서 차분한 눈동자로 응시할 뿐이었다.
“회귀자 유성하는 알겠죠?”
“뭐?”
“당신도 알 겁니다. 전투를 좋아하는 당신이니 반드시 겨뤄 보고 싶었겠죠.”
그 말은 사실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전투의 자부심으로 뭉친 영웅이었다.
“형이랑 싸워 봤겠죠? 이겼나요?”
헤라클레스의 입가가 미묘하게 떨렸다.
회귀자와 영웅의 대결.
헬라와 싸웠던 유성하는 헤라클레스와도 대결했을 터였다.
“형은 헬라와의 싸움에서 결국 백중세까지 성장했어요. 그럼 당신도 형을 이길 수 없겠죠.”
회심의 도발이 이어졌다.
“졌나요?”
헤라클레스는 강하지만 회귀자 유성하는 그보다 더 강하다.
헤라클레스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였다.
양미간이 떨리고 이빨을 으드득 깨물었다.
“이 자식!!”
분노한 헤라클레스의 전신에서 폭발적인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헬라와 막상막하로 싸웠던 야수 같은 영웅이 보기에 저 빛의 아우라는 반딧불 수준에 불과했다.
커다란 손으로 잡으면 훅 꺼지는 불빛처럼 보였다.
“제법이야. 날 도발하다니.”
하지만 도발에 순순히 넘어갈 정도로 미련하지는 않았다.
유진하의 전략이 시간을 끄는 거라고 봤기에, 마경대전의 우승을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다.
“단숨에 내려가야겠군.”
귀찮은 파리를 상대한다는 듯이 유진하는 무시하기로 했다.
“으아아아!”
헤라클레스가 주먹을 쥔 다음에 강하게 지면을 내려쳤다.
지하 굴 전체를 붕괴시킬 만한 괴력으로 단번에 지면 전체를 무너뜨렸다.
마경대전의 최하층까지 돌아가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아예 밑바닥까지 뚫어 버린 거였다.
지하 굴의 암반은 보통 재질이 아닌, 명계에 죄인을 가두는 족쇄로 이루어져 있다.
지옥의 염화에 녹여서 제련해야 하는 수준이었는데, 헤라클레스의 괴력이 아니면 누구라도 맨손으로 분쇄하기는 불가능했다.
“더 오래 끌 이유는 없다.”
괴력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올림푸스 제우스 신의 혈육답게 최고의 영웅이었다.
격렬한 힘을 담은 주먹이 땅을 쪼개 버리듯이 내리꽂혔다.
“이렇게 가면 된다.”
헤라클레스는 제 손으로 부숴 버린 벼랑을 주목했다.
끝없이 내려가는 길목 아래에 지하 굴의 최하층이 있었다.
“됐다.”
헤라클레스가 훌쩍 뛰어내렸다.
한참을 허공에서 내려온 후에 바닥에 도착했다.
쿠궁, 두 다리를 쫙 벌려서 착지하자 먼지와 파편이 퍼져 나갔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조용한 침묵 속에서 헤라클레스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저거로군.”
우승을 상징하는 ‘신기의 창’이 땅에 박혀 있었다.
저것을 손에 넣으면 마경대전의 우승을 확정할 수 있다.
양손을 툭툭 치더니 온몸에 묻은 가루를 털어 냈다.
거침이 없는 걸음이었다.
“종말의 신화를 막는 거다.”
그때였다.
신기의 창을 향해 헤라클레스가 걸어가던 즈음.
하얀빛의 궤적이 별안간 헤라클레스의 뒤에 나타났다.
“정말로 나를 막겠다는 거냐?”
유진하가 지하 굴의 최하층까지 따라 내려오자, 헤라클레스는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군.”
넓은 지하 굴의 공간 중앙에 우승을 가리는 창이 하나 꽂혀 있었다.
두 사람이 최종으로 도착했고, 이제는 격돌할 상황에 마주했다.
“원한다면 덤벼라.”
헤라클레스가 주먹을 쥐었다 피면서 서서히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미 숱한 전투를 벌이며 육체는 한창 뜨겁게 달아올랐고, 더한 전투를 벌인다고 해도 싸울 힘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초월격 <12과업의 완수>
서서히 불길처럼 타오르는 기운이 헤라클레스의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폭발적인 힘이었다.
“네가 가진 힘이 얼마나 미약한지 직접 알게 해 주지.”
어두운 곳에서 두 개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
유진하는 조용히 앞을 응시했다.
전투에 들어가자 헤라클레스의 눈빛이 바뀌었다.
전투에서 방심은 금물.
절대 움직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빛의 궤적이 움직였다.
유진하가 헤라클레스에게 날리는 첫 일격이었다.
“웃기는군.”
하지만 빛의 아우라로 날린 주먹은 헤라클레스의 초월격을 뚫지 못했다.
빛의 아우라를 가볍게 받아 낸 헤라클레스는 코웃음을 쳤다.
“그 정도 빛은 반딧불이라고 하지 않았나.”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비웃음을 흘리던 그때.
하얀빛이 급격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뭐?!”
그 순간, 첫 일격이 헤라클레스의 손을 빠져나가 녀석의 얼굴에 작렬했다.
“크억!”
정통으로 주먹에 맞자 빛의 알갱이가 퍼져나갔다.
시야가 순간 흐려질 정도로 강렬한 충격이 뇌리에 느껴졌다.
‘왜지?’
유진하의 빛은 초월격이 아니었다.
각성의 초기 단계에 불과한 빛의 힘으로 초월격 <12과업의 완수>를 뚫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대체 뭐냐?”
헤라클레스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고작 카드의 빛에 불과한 힘으로는 초월격에 도달할 수 없다.
녀석의 아우라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님이 분명했다.
“빛은 하나가 아닙니다.”
유진하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두 번째 일격이 헤라클레스의 복부를 향앴다.
“크억!!”
퍼걱,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헤라클레스가 상체를 숙였다.
단 두 번의 일격에 고통스러운 신음이 토해 졌다.
“네가 초월격이라고?”
자세히 보니 하얀빛에는 영롱한 빛의 알갱이가 서려 있었다.
‘다른 빛이다?’
빛에는 근원이 되는 물질이 있다.
촛불이나 반딧불에서도 빛이 나오고, 태양에서도 빛이 나온다.
같은 빛도 어떤 물질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질적인 차이가 있다.
‘카드에서 나오는 빛.’
카드는 근원적으로 발산하는 빛의 힘이 부족해서 태양을 흡수해서 위력을 끌어올리곤 했다.
태양의 빛을 빌렸다.
“세상에는 태양만이 우주를 밝히는 등대가 아니니까요.”
세 번째 일격은 헤라클레스가 손으로 잡았으나 이내 버티지 못하고 재차 얼굴에 맞아 버렸다.
차원이 다른 빛이라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힘이냐?”
올림푸스에는 헬리오스와 아폴론이라는 태양을 관장하는 두 명의 신이 있었다.
그들이 가진 권능의 빛은 헤라클레스도 익숙했다.
그 정도의 빛이라면 사실 싸울만 했다.
‘언젠가 그들에 맞서려면 태양을 넘어서야 하니까.’
헤라클레스는 야망을 가졌다.
헬리오스와 아폴론의 태양 빛이라면 이렇게 무력하게 연타를 허용하지 않았을 터였다.
유진하의 빛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빛이었다.
“대체 너는 누구냐? 그 빛은 뭐지?”
“당신도 가진 빛입니다.”
“뭐?”
“<아비규환의 지옥도>의 세계. 이 어둠만이 가득할 것 같은 성운에서도 빛은 존재하거든요.”
지옥도에 태양과 비견되는 빛이 있다니.
그것은 모든 존재가 가진 빛의 힘이었다.
‘생명체가 발산하는 온기.’
살아 있는 존재는 빛을 발한다.
자신도 모르게 몸에서 온기와 따스함을 가진다.
그것이 빛이었다.
‘살아 있는 빛, 생명체의 빛.’
“크으윽!”
지옥도의 명부에는 죽은 존재들의 혼령들이 모여든다.
수많은 세상에서 죽은 자들을 이 지옥도 성운을 쓰레기통으로 삼아서 보내 버렸다.
죽은 영혼들을 따로 모아 둔 것이었다.
“당신들이 쓰레기처럼 버리려던 죽은 자의 혼령. 사실 그들은 아주 미약하나 생명을 가진 빛이 있어요.”
수백억 년이 넘는 시간을 걸쳐 죽은 혼령들이 이곳에 집결했다.
명부에는 그들이 발휘한 빛을 하나의 횃불에 모았다.
<명부의 등대>
정체는 생명체가 발산하는 빛이었다.
생명의 빛.
혹은 이렇게도 불렀다.
<성화>
명부의 신좌이자 염라대왕을 비롯해 십대왕의 어머니 바리데기는 성화의 힘을 처음으로 모으기 시작한 선구자였다.
“성화라는 거냐?”
성스러운 불길은 올림푸스 태양에 비견되는 힘이었다.
이제야 알았다.
지옥의 여왕, 헬라가 자신에게 이 싸움을 붙인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웃기지 마라!”
헤라클레스는 양팔을 펼치며 초월격의 아우라를 거세게 발산했다.
지하 굴 최하층은 좁은 장소였다.
아무리 성화의 빛이 강해도, 자신의 아우라로 휘감아 버리면 압도할 기회는 있었다.
“아니?!”
미친 듯이 휘감은 헤라클레스의 기세 속에서 오롯하게 빛나는 힘이 보였다.
생명 근원에서 가져온 아우라.
<성화의 빛>
빛을 추구하는 자라면 절대로 이런 어둠의 지옥도까지 찾아올 리가 없으니, 어느 누구도 얻은 적이 없는 힘이었다.
‘지옥의 힘을 받은 자는 헬라만이 아니었나?’
<지옥의 이름을 가진 여신>
그녀만이 지옥도에서 무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초월격.
<성화의 빛을 받은 자>
유진하는 성화의 아우라를 발산하며 서서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