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마경대전(8)
아킬레우스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었기에 약점을 가졌다.
불멸이 아니었고, 무적도 아니었다.
어머니, 테티스 여신도 아들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테티스의 호흡, 불멸의 가호>
-어떤 공격도 데미지를 주지 못한다.
테티스 여신의 축복과도 같은 은혜가 아킬레우스에게 신화격 아우라로 주어졌다.
그는 ‘무적’이 되었다.
그리고 무투에서도 재능이 있었다.
초월격.
<전능적 창술의 길>
“무적의 육체이니까 그냥 창을 내밀면 된다.”
거침없이 파고드는 아킬레우스 특유의 창술은 신화격에서 부여된 자신감이었다.
‘누구도 날 죽일 수 없다.’
‘내 창은 적을 격살할 뿐.’
아킬레우스의 연전연승 신화는 빠르게 전파됐다.
트로이 전쟁은 말 그대로 올림푸스의 12신좌들까지 참전한 대규모 회전이었다.
“12신좌들이 끼어든 트로이의 대전쟁에서 주인공은 나였다.”
신좌들이 낀 전쟁터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무훈을 차지한 영웅이 아킬레우스였다.
아킬레우스의 창술과 무적 신화.
초월격과 신화격을 겸비한 자.
올림푸스 4영웅 중 가장 자만심이 넘치는 영웅이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영웅이 바로 나다.”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
“허억, 허억.”
그에 반해 에어리스는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녀는 무적의 신화도 없었고, 초월격의 뛰어난 창술도 없었다.
완전무결한 전사 앞에서 피를 흘리며 겨우 버티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래도 해보겠어요. 절대 물러서지 않겠어요.”
에어리스는 대검을 움켜쥐고 다시 움직였다.
아킬레우스가 손에 쥔 <물푸레나무 창>도 예사 물건은 아니었다.
어떤 방어구도 저 창의 공격에는 온전히 버티기 어려웠다.
“후우.”
에어리스의 호흡이 가다듬어졌다.
대검에서는 이전과 다른 기운이 조금씩 뿜어졌다.
<버스터 슬레이어Ⅲ>
명부의 불길에 달궈 검날의 강도가 상승한다.
“보통 검이 아닌가?”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창에 맞서는 에어리스의 대검을 다시 쳐다봤다.
낡았던 검이 어느새 깔끔하고 날카로운 검으로 변해 있었다.
“괜찮은 검을 가진 모양이지만 달라질 것은 없어.”
어차피 아킬레우스에게는 <테티스의 호흡. 불멸의 가호>가 있었다.
어떤 공격이든 아킬레우스의 무적 앞에는 무기력할 뿐이었다.
“하아압!”
에어리스가 과감하게 돌격했다.
뒤를 보지 않는 전진이었다.
“아직도 기운이 남아 있나?”
포기하지 않는 집념.
에어리스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오뚝이처럼 강인했다.
“후우욱.”
에어리스의 전투법은 대범하면서도 영리했다.
대검을 휘두르고 스텝을 밟으면서 아킬레우스의 자세를 살폈고, 틈이 보이면 바로 반격했다.
침착하면서도 차분한 대처가 일품이었다.
“제법…….”
아킬레우스조차 놀랄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무적의 신화격에 맞선 에어리스는 한계를 넘는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현란한 속도의 베기.
이에 어울리는 발놀림.
과감함과 침착함이 엿보이는 완전한 검술은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었다.
<시오류>였다.
‘기억을 되찾는다는 건, 잠시 잊고 있었던 검술도 떠올린다는 얘기.’
어머니의 검술은 신좌와 겨루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었다.
어머니에게서 무수히 수련을 받으며 깨우친 힘이기도 했다.
‘무력하게 당하지 않겠어.’
어머니 시오가 해 줬던 말이 있었다.
‘훌륭한 검이 된다면 만물과도 싸울 수 있다.’
원래라면 어머니는 성운전의 3회전에서 살아남지 못할 운명이었다.
레다와 에어리스를 위해서 대신 죽어 줬을 터였다.
어머니가 죽었다면…….
그랬다면…….
에어리스는 절망하고, 모든 것이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음울한 절망과 비탄이 정신력을 지배하고 좌절 속에서 침식됐겠지.
‘에어리스가 아닌 아델리카.’
이전 유성하의 회귀에서 함께할 때는 아델리카였고.
그때는 웃음기는커녕 핏기조차 없었다.
‘웃지 않는 아델리카.’
유성하는 그렇게 불렀다.
초월격
<죽음의 그림자를 쓴 자>
그것이 예전 회귀에서 반복되는 에어리스의 암울한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시기에.’
이전과는 다른 지금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천진난만한 에어리스.’
‘웃음을 가득 머금은 에어리스.’
어둠의 아델리카가 아닌 빛의 에어리스가 되었고, 귀혼검이 아니라 대검 <버스터 슬레이어Ⅲ>를 움켜쥐었다.
“최선을… 다하겠어요.”
대검 <버스터 슬레이어Ⅲ>는 특별한 부가 능력이 없는 무기였지만, 사용자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검이었다.
‘성장하는 대검.’
‘성장하는 에어리스.’
둘의 호흡은 서서히 완성형의 검술로 발현되고 있었다.
‘검 자체가 돼라.’
어머니 시오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검술을 연습했다.
초월격
<검혼일체>
강렬한 폭풍우가 에어리스의 전신을 휘감았다.
마치 폭풍처럼 날카로운 검기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고, 그 압도적인 초월격의 아우라에 아킬레우스마저 주저할 정도였다.
‘내가 기세에서 밀린다고?’
한 걸음.
아킬레우스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상대는 신좌가 아닌 평범한 금발의 여성이었다.
‘아니었나?’
그래서 에어리스의 저 막강한 기세가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아킬레우스는 정신력이 부족한 영웅이 아니었다.
무적의 신화격을 가진 영웅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결판을 내자.”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창과 대검이 격렬하게 맞붙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과 힘으로 겨루는 에어리스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금발의 머릿결과 푸른 눈동자.
아름다운 외모 속에 감춰진 투지가 있었다.
‘강함과 아름다움.’
양면의 매력을 겸비한 여자였다.
“영웅의 자질이 있어.”
“…….”
“그 정도의 힘이 있다면 올림푸스에 자리가 있을 거다. 너의 자리를 만들어 주지.”
“제의는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둘이 맞붙은 반경에는 강렬한 충격파가 감돌았다.
힘 대 힘에서 아킬레우스는 처음으로 밀리는 기분을 받았다.
무적은 아킬레우스에게 방어적인 능력에서 무한한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킬레우스의 힘까지 무한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초월격 <전능적 창술의 길>도 기술적인 측면의 권능이라 절대적인 힘을 주지는 못했다.
‘아킬레우스는 무적이나 헤라클레스의 완력에 미치지 못한다.’
아킬레우스에게 내려진 세간의 평가가 그랬다.
“하아아압!”
에어리스가 강한 기합을 내질렀다.
초월격 <검혼일체>에 <뇌명의 참격>에서 발산하는 푸른 번개까지 보탰다.
‘힘에서 우위.’
에어리스는 아킬레우스를 정면 승부에서 압도하기 시작했다.
아킬레우스의 강점은 무적이었고, 약점도 무적이었다.
‘불멸의 힘. 무적은 압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초월격으로 각성한 에어리스의 기세가 아킬레우스를 밀쳐 냈다.
저 멀리 튕긴 아킬레우스가 지하 굴의 벽면에 강하게 부딪쳤다.
“이런…….”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영웅이라는 자존심이 있는데 완패하듯이 밀려나다니.
“이제부터 당신을 압도하겠어요.”
막강한 초월격을 휘감은 에어리스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 * *
유진하는 정확히 지적했다.
“무적은 방어에 특화된 능력이야. 만약 아킬레우스의 공격을 압도할 수 있다면 녀석이 이길 방법은 없어.”
유진하의 말 그대로 되었다.
에어리스의 초월격이 거칠게 몰아붙였고, 아킬레우스는 절대 무적으로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원하지 않았던 굴욕을 당했다.
“젠장.”
자존심이 무너지고 있었다.
상처를 입은 맹수처럼 아킬레우스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부상은 없으나 자존심에 금이 갔다.
“으아아아아!”
아킬레우스는 <물푸레나무 창>을 내밀며 돌격했다.
어차피 무적의 몸이니 물러설 필요가 없었다.
파앗!
바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에어리스의 움직임이 아킬레우스를 지나쳤다.
‘빠르다…….’
초월격 <검혼일체>에 푸른 번개의 아우라로 <전광석화>를 발현했다.
에어리스는 전속으로 이동했고 아킬레우스의 속도를 압도했다.
힘과 속도.
모든 면에서 아킬레우스는 압살당하고 있었다.
“크억!”
대검 <버스터 슬레이어Ⅲ>가 아킬레우스의 복부와 가슴, 머리까지 연속으로 내려쳤다.
일격을 맞은 아킬레우스는 다시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럴 수가.”
전투에서 무릎을 꿇기는 오랜만이었다.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상황에 정신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적이라 육체적인 부상은 없으나 영웅의 자부심은 완전히 부서졌다.
“당신의 약점은 많아요.”
우두커니 선 에어리스가 나긋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을 붙잡아도 되고. 영원히 가둘 수도 있어요.”
영원한 감옥.
불멸의 존재가 가장 두려워하는 소리였다.
죽지도 못하고 사라지지도 않은 채로 어둠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다.
“대체 너는……?”
“우리가 준비한 거는 달랐어요.”
우리?
아킬레우스의 귓가에 저 말이 맴돌았다.
낯선 불안감이 들 즈음.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레다, 유나.”
에어리스의 쌍둥이 자매들이었다.
두 사람은 항아리를 하나씩 챙겨 왔는데, 아킬레우스에 대적하려는 비기가 거기에 담겨 있었다.
<정의와 신념의 여신> 아테나가 비책을 준비하게 도와줬는데, 여신의 또 다른 수식언은 <전쟁과 지혜의 여신>이었다.
‘여신의 지혜.’
테티스 여신이 무적을 만드는 방법을 안다면, 아테나 여신은 무적을 지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세쌍둥이 자매는 중요한 역할을 하나씩 맡았다.
‘에어리스는 시간을 번다.’
초월격의 아우라를 개방한다면 아킬레우스와 맞설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실제로는 압도하고도 남았지만.
‘레다는 스틱스강 물을 가져온다.’
스틱스강은 명계에 있었다.
<명계의 마왕> 하데스의 허락을 받아야 강물을 담아 올 수 있는데, 아테나 여신의 도움을 받아서 쉽게 허가를 받아 냈다.
‘유나는 <타르타로스의 숨결>과 <지옥의 호흡>을 받아 온다.’
타르타로스는 지옥도 성운의 가장 밑바닥, ‘심연’을 가리킨다.
일행이 최초로 도착한 곳이 심연이었기에, <타르타로스의 숨결>을 처음부터 준비해 두었다.
<지옥의 호흡>은 헬라와 바리데기의 호흡을 받는 것으로 해결했다.
“으아, 정말 어려웠어.”
유나는 거의 죽을 고생을 했다.
바리데기는 순순히 허락해 줬지만, 헬라가 쉽게 호흡을 주지 않아서 어려웠던 것이다.
“싫어.”
이유를 물어보니 기분이 나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깐깐한 헬라.”
어머니 시오가 헬라와 협력하는 중이라 겨우 설득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터였다.
“이제 준비는 됐어.”
레다가 항아리를 손에 든 채로 살짝 흔들었다.
찰랑찰랑.
항아리 속에 담긴 스틱스강 물이 흔들렸다.
<테티스의 호흡>
<스틱스강 물>
두 개의 조합이 아킬레우스의 무적을 만들었다면, 반대로 스틱스강 물에 <타르타로스의 숨결> <지옥의 호흡>을 담으면 무적을 풀 수 있었다.
‘아킬레우스의 무적을 해제한다.’
레다와 유나는 동시에 항아리를 열어서 이미 지친 아킬레우스의 전신에 뿌렸다.
“큭!”
평소였다면 넉넉히 피할 수 있었을 테지만, 에어리스와 격전을 벌이는 바람에 아킬레우스의 체력이 크게 소모됐다.
‘무적은 무한 체력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약점이었다.
스틱스강 물을 흠씬 맞고, 지옥의 호흡과 숨결까지 받았다.
그 순간.
무적의 신화는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네놈들!”
아킬레우스의 불운은 이 전장이 지옥도였다는 사실이었다.
스틱스강 물이 있는 명계는 피하라고 어머니 테티스 여신이 신신당부했지만, 오만한 영웅은 그 말을 예전에 잊어 버린 뒤였다.
후회해도 늦었다.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
분노한 아킬레우스가 일어섰지만 이제 그는 무적이 아니었다.
창술에 일가견이 있었으나 에어리스의 검술은 이미 압도하고도 남았다.
촤악!
달려드는 아킬레우스.
돌격하는 에어리스.
서로가 검과 창을 격돌하며 지나쳤다.
새롭게 떠오르는 금빛의 머릿결을 휘날리는 에어리스.
자존감이 넘치는 금발의 영웅.
무적의 신화격.
창술의 초월격.
과거의 유물처럼 고대의 신화도 서서히 녹슬고 망가지기 마련이었다.
“크억!”
아킬레우스는 모든 것을 잃고 무너졌다.
대결이 마무리되었다.
-난입자 <트로이 전쟁의 승리자>가 소멸되었습니다.
승자는 에어리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