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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98화 (198/229)
  • 198화 마경대전(6)

    돌이 된 염라대왕과 바리데기.

    그들은 전리품으로 전락했고, 거대한 동굴 터전의 구석을 장식하고 있었다.

    “명부는 여기서 끝이구나.”

    돌로 굳은 바리데기를 앞에 두고 페르세우스가 비웃음을 날렸다.

    조소가 섞인 표정이 이어졌다.

    메두사의 눈을 가진 그는 뱀처럼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그럴 거 같아?”

    바람결에 들려오는 목소리.

    또 다른 자가 있었다.

    “괴물의 눈을 꼈으니, 영웅이라기보다는 저주받은 죄인이 아닐까?”

    목소리가 동굴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어디서 들리는 목소리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바보, 네 앞에 있잖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봐도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이 속삭이나?

    아니면 환상?

    혼란에 빠진 페르세우스가 사방을 경계하면서 당황하던 와중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어딜 보냐니까? 이 멍청아.”

    뚜두둑.

    돌로 굳은 석상이 상체를 움직이더니 페르세우스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우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페르세우스가 화들짝 놀라서 뒤로 벌러덩 누워 버렸다.

    “왜? 왜? 돌이 되었는데도 움직이지?”

    “그야 당연하지.”

    바리데기는 돌이 되었음에도 너무나 태연하게 움직였다.

    고개 돌리기도 정상.

    팔 뻗기도 정상.

    앉았다 일어나기도 정상.

    “왜 아직도 못 믿겠냐?”

    귀도 후비고 콧구멍도 후비고.

    꺼어억, 트림까지 길게 내뱉었다.

    “어떻게?”

    “하하하하, 효과가 없나?”

    석상처럼 굳어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바리데기의 모습을 보자 페르세우스는 경악했다.

    간담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승리를 확신했었는데… 처음으로 전략에 금이 갔다.

    “원래 명부의 신좌는 저주에 강한 편이다.”

    돌이 된 바리데기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메두사의 저주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통하겠지만, 명부의 존재에게는 무리야. 오히려 힘이 되지.”

    페르세우스는 전의를 잃고 주저앉았다.

    신좌들까지 돌로 만드는 메두사를 자신의 두 눈에다 박았는데, 명부의 신좌한테는 돌로 변하는 저주가 오히려 강화가 되다니…….

    “아직이다.”

    포기하지 않은 페르세우스가 뒤늦게 영웅의 면모를 드러내며 검을 뽑았다.

    두려움이 없는 자.

    영웅이란 존재는 끝까지 버티는 정신력을 가졌다.

    메두사의 눈깔을 박은 그도 역시 영웅다운 자세를 발휘했다.

    “그게 메두사의 머리를 자른 검이냐?”

    돌이 된 바리데기가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관심을 보였다.

    동시에 거대한 무언가가 위에서 내려왔다.

    “우왓!”

    위에서 내려온 거대한 두 개의 기둥이 냉큼 페르세우스의 검을 쑥 잡아 갔다.

    알고 보니, 그 기둥은 거대한 손가락이었다.

    바리데기는 웃으면서 그 손가락의 주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염라대왕.”

    돌처럼 굳어있던 염라대왕은 손가락으로 검을 뽑아 간 후에, 주먹으로 움켜쥐어 페르세우스마저 제압했다.

    “크아아악!”

    메두사를 죽인 영웅, 페르세우스는 염라대왕의 커다란 손에 잡혀 버둥거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역시 우리 아들도 움직일 수 있었구나.”

    “당연하죠, 어머니.”

    바리데기와 염라대왕.

    모자지간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 보며 웃고 있었다.

    “아들, 일부러 돌에 굳은 척 연기를 한 거니?”

    “어머니도 오랜만에 돌이 되어서 진흙 마사지라도 받아 보시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오호, 우리 아들이 효자였네.”

    명부의 신좌들이 하는 어이없는 농담을 듣던 페르세우스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 녀석, 벌써 끝났네.”

    “약골이었어.”

    저주가 되려 강화 효과로 작용하는 명부의 신좌가 아니었다면 꽤 위험한 능력이었다.

    “페르세우스…….”

    메두사의 머리를 잘랐던 영웅.

    날개 달린 페가수스를 타고 다녔고, 안드로메다와 로맨스까지 벌였던 위대한 자.

    지금은 날개가 잘리고 추락한 존재가 되어 타락하고 말았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 메두사의 눈을 이식했지만, 염라대왕과 바리데기 앞에서는 영웅에서 괴물이 된 자에 불과했다.

    “긍지를 가진 영웅마저 저렇게 될 정도라니. 대체 올림푸스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 거냐?”

    바리데기가 한탄하듯이 중얼거렸다.

    손아귀에 잡힌 페르세우스를 보던 염라대왕도 한숨을 내쉬었다.

    “물이 고이면 썩게 마련입니다. 어쩌면 성운전은 그 한계점에 도달했을 수도 있어 보입니다.”

    난세와 혼란 속에서 영웅이 나타나는 법이었다.

    하지만 멸망해 가는 세계에서 모두가 삶의 의지를 잃는다면 영웅들마저 절망하고 타락한다.

    모든 것을 포기한 세계에서는 그렇다.

    “어쩌면 <정의와 신념의 여신>이 여기에 나타난 게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어.”

    아테나가 이곳 지옥도에 나타난 데는, 어쩌면 올림푸스의 이변을 상징하는 사건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정의와 신념이 땅에 떨어지고, 영웅마저 괴물이 되는 세계라면…….

    “올림푸스는… 변했다.”

    바리데기가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평소라면 느긋하게 바람이 불어오는 평원에서 풀피리를 불며 세상을 즐겼을 텐데.

    어느새, 폭풍 속에 나부끼는 나비가 되어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종말의 신화는 필연적인 걸까?”

    새 술은 새 부대에.

    기존의 관념과 법칙이 뒤흔들리고 있었다.

    “일단 몸이나 풀자.”

    바리데기가 허리를 붙잡고 돌리면서 몸을 우두둑 풀었다.

    돌로 굳었던 육체는 아무래도 쉽게 풀리지 않았다.

    원래 몸으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크흠.”

    염라대왕도 어깨를 움직이며 돌덩어리를 털어 냈다.

    타락한 페르세우스와의 전투는 극상성 덕분에 무사히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영웅들은 여전히 지하 굴을 돌아다니며 마경대전을 휘젓고 있었다.

    * * *

    “당신이 <미궁의 공략자>?”

    지하 굴을 탐색하던 영웅은 의문의 상대와 마주했다.

    그는 백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단검을 쥔 채로 정중하게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은……?”

    “조커라고 하지.”

    가면에는 춤추는 피에로 문양이 새겨져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살벌한 말투와 나지막한 목소리.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조커와 영웅은 자신의 아우라를 서서히 모으고 있었다.

    “그쪽은 <미궁의 공략자>, 올림푸스 신화의 테세우스가 맞지?”

    <미궁의 공략자>.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테세우스는 미궁에 강한 영웅이었다.

    아리아드네의 실이 있다면 미궁에서 절대 헤매지 않는다.

    “이제는 일그러지고 타락한 영웅이겠지만…….”

    조커의 도발이었다.

    테세우스는 눈빛을 번뜩였으나 이내 손에 쥔 검에만 집중했다.

    지금까지 지하 굴에서 적당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는데, 이제야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우스운 가면을 쓰고 혼자서 왔나?”

    “일대일을 선호하지.”

    “전투에 자신이 있나?”

    테세우스는 극한의 날렵함을 가진 영웅이었고, 누구와도 겨룰 수 있는 검술도 겸비했다.

    <전지전속>

    단숨에 베어 버리는 베기가 명품이었다.

    마치 서부 시대의 카우보이처럼 그 둘은 검을 쥐고 서로를 바라봤다.

    한 걸음.

    누가 움직이는 순간.

    돌격이 시작되었고 정면에서 서로 맞부딪쳤다.

    “…….”

    충돌 후 양측은 말수를 줄였다.

    마치 긴 파동이 흐르듯이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서로가 방출하는 초월격의 아우라가 격렬하게 흘러나왔고, 결착의 순간이 다가왔다.

    파앗!

    가다듬은 호흡이 서로 맞닿는 순간 폭발했다.

    서로를 향한 맹렬한 돌격과 단 한 번의 베기가 작렬했다.

    카앙!

    조커와 테세우스.

    둘은 서로를 지나쳤고, 잠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

    조커는 자신의 가슴을 벤 칼날의 감촉을 느꼈다.

    <전지전속>이라는 테세우스의 베기는 과연 명품이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검기였다.

    “쿨럭!”

    조커의 무릎이 꺾였다.

    테세우스는 다른 손으로 검날을 살짝 잡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일대일에서는 질 수가 없다.”

    단순한 자신감이 아니었다.

    테세우스의 초월격 <전지전속>은 직선 베기에서 무적 효과를 부여한다.

    일대일 정면 승부의 달인.

    테세우스를 일대일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이다…….”

    조커가 입에서 피를 쏟아 내면서도 끝까지 버텨 냈다.

    쓰러지지 않은 채.

    “어떻게 버틴 거지?”

    조커의 아우라는 이전과 달랐다.

    천부적인 전투 재능이 있는 덕분에 명부의 수련에서도 가장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뤄 냈다.

    초월격.

    신좌의 격에 해당하는 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이어져 새로운 초월격을 발현하고 있었다.

    “오직 전투적 재능으로 승부를 내겠다.”

    조커는 격렬한 전투를 선호했고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싸움을 원했다.

    명부의 수련에서도 단독으로 임했고, 염라대왕이 엄선한 죄인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며 끝없이 싸워 나갔다.

    명부에서 조커는 몇 번이나 죽었다가 다시 깨어났다.

    옆에서 지켜보던 천하의 바리데기조차, 조커의 전투력과 이에 못지않은 집착에 질려 버릴 만큼 대단했다.

    “내가 터득한 새로운 초월격.”

    고독 속에 혼자 밤하늘을 바라보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원정대의 선봉을 맡았다.

    ‘살아남는 것. 죽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외줄을 타듯이 싸우던 조커는 이제 그 한계에서 벗어났다.

    죽어도 살아나고.

    살아나도 죽는다.

    새로운 초월격.

    <죽음의 경계를 비웃는 자>

    불길처럼 매서운 아우라를 새롭게 발산했다.

    백가면에 새겨진 춤추는 피에로가 낙인처럼 빛나고 있었다.

    삶과 죽음에 연연하지 않게 되자, 죽음의 경계를 마음대로 오가는 정신력과 배짱을 가질 수 있었다.

    “방금 그 일격으로 확실히 죽어야 했는데?”

    테세우스는 손에 전해졌던 감각을 기억했다.

    확실하게 몸을 베었던 느낌이 명확했음에도 조커는 좀비처럼 버티고 있었다.

    “살았다가 죽었고, 죽었다가 살아난다.”

    짧은 말이었다.

    조커는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다.

    <죽음의 경계를 비웃는 자>

    사용자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자유롭게 오간다.

    찰나의 순간, 단 1초 사이에 죽음의 영역에 갔다가 다시 삶의 영역으로 넘어온다.

    “이미 죽었기 때문에 죽을 수 없었지.”

    테세우스의 <전지전속> 베기를 맞기 직전.

    그 짧은 순간에 조커는 <죽음의 경계를 비웃는 자>를 발동시켜서 죽음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죽음의 영역에 넘어가서 먼저 죽었다.’

    제한 시간은 1초였다.

    그 안에 다시 삶의 영역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조커는 죽었다가 살아났다.

    ‘1초 무적.’

    심지어 삶의 영역으로 다시 넘어올 때는 육체와 영기가 완전히 회복된 상태로 복귀한다.

    조커는 부활자가 된다.

    그것도, 무한의 체력과 영기를 가진.

    “믿을 수 없어.”

    1초 동안의 무적.

    상대의 공격 타이밍을 맞춰서 사용하면 강력한 무기가 되지만, 실패할 때는 오히려 반격을 맞게 된다.

    천부적인 전투 재능을 가진 자.

    전투의 흐름을 읽는 자.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괴물 같은 조커를 보며 테세우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죽음의 영역을 넘어가면서 싸운다고?”

    테세우스가 검을 휘둘렀으나, 조커는 초월격의 힘과 천부적인 전투 센스로 맞섰다.

    무수한 검의 공격을 완벽한 타이밍에 피하는 조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외줄을 타던 조커는, 죽음의 영역과 삶의 영역을 오가는 싸움을 시작했다.

    “이런!”

    테세우스가 검으로 찔러도 조커는 죽음의 영역으로 먼저 넘어가서 테세우스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미궁의 공략자> 마저 압도하는 천재적인 전투 센스였다.

    테세우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게 올림푸스 영웅의 힘이냐?”

    여유를 되찾은 조커가 테세우스의 팔다리를 베었다.

    그 강력한 영웅조차도 상식에서 벗어난 조커의 전투술에 완벽하게 말려들고 말았다.

    “끝이다.”

    이어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발현되고, ‘키리나의 단검’까지 사용해서 분신을 네 명으로 늘렸다.

    <팔궤>

    본체와 분신 모두가 동시에 날리는 단검 베기가 테세우스를 전력으로 베어 버렸다.

    “크억!!”

    테세우스가 검을 떨어뜨렸다.

    절대 쓰러진 적이 없던 영웅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의 앞에는 단검을 움켜쥔 조커가 우두커니 있었다.

    “당신의 영웅담은 여기서 끝입니다.”

    그 순간.

    테세우스는 주마등처럼 하나의 기억을 떠올렸다.

    ‘미궁에서 날 도와줬던 그녀.’

    아리아드네.

    그녀는 적국의 공주였음에도 테세우스를 위해서 미궁의 공략법을 알려 주고 실을 주었다.

    생명의 은인이었다.

    “당신과는 여기까지입니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섬에 버려 두고 가 버렸다.

    적국의 공주를 본국에 데려갔다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까 두려웠다.

    ‘은인을 버리고 도망친 영웅.’

    테세우스는 오명을 얻어야 했다.

    ‘비겁했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다행히 아리아드네는 올림푸스의 신좌가 데려갔으나 자신의 비열함에 스스로 좌절해야 했다.

    ‘그래서 싸워야 했다.’

    비겁자라는 오명을 극복하고, 영웅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올림푸스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고 모든 명령을 수행했다.

    테세우스는 스스로 알고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타락한 영웅이었다.’

    결국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다.

    조커는 테세우스의 감상을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푹.

    무수한 단검의 세례.

    승부가 결판이 나며, 타락한 두 번째 영웅은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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