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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97화 (197/229)

197화 마경대전(5)

“미궁 같은 곳인가?”

<미궁의 공략자>는 지하 굴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하다는 듯이 인식했다.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를 보니… 예전 생각도 나고.”

올림푸스의 갑주를 챙겨 입은 하얀 머리의 귀공자 같은 남자가 섬세한 손으로 벽을 쓰다듬었다.

살짝 쓸었는데도 손바닥에 검은 가루와 파편이 묻어났다.

“어떠신가? 과거에 있던 미노타우로스의 미궁과 비슷한가?”

귀공자 영웅의 옆에 나타난 푸른 머리의 남자가 가벼운 농담을 곁들이며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그는 끈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장님처럼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주변 흐름과 감각에 반응하고 있었다.

“내가 보이는 건가요? 잘 걸을 수 있습니까?”

하얀 갑주의 남자가 눈을 감은 푸른 머리의 영웅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눈을 감아도 만물을 볼 수 있으니까. 그게 마음의 눈이라는 거지.”

눈을 가린 영웅은 정말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걸어갔다.

정말 마음의 눈일까.

아니면 알 수 없는 능력일까.

호기심이 들었지만 일단 미로에 대한 대답부터 해 주기로 했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을 아시나 보군요. 저는 이걸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얀 갑주의 남자가 품에서 하얀 실뭉치를 꺼냈다.

길을 걸어가면서 실뭉치를 술술 풀면 미궁의 루트를 알 수 있었다.

가장 유명한 미노타우로스 미궁의 공략법이었다.

“실을 풀어 두는 거라면 굳이 그런 건 필요가 없어. 길은 그냥 외워 버리면 되는 거니까.”

눈을 가린 영웅은 영리한 본인의 두뇌를 툭툭 치더니 자신의 뛰어난 지력을 자부했다.

‘미로를 외우면 된다니.’

하얀 갑주의 미소년 영웅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괴물의 학살자>답네요. 수많은 괴물의 약점을 찾아 내어 제압하던 꾀주머니시라고.”

“후후, 과찬이야.”

두뇌에 자신이 있는 <괴물의 학살자>는 항상 골똘히 생각했다.

만물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진리를 깨우치려는 듯했다.

“조금 과장이 심하게 된 거지.”

능수능란하게 농담까지 곁들였다.

하얀 갑주의 남자는 눈을 가린 남자의 말에 어느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하얀 실을 거두어 도로 품에 넣었다.

“그럼 실은 도로 거두도록 하죠.”

눈이 보이지 않지만 두뇌가 뛰어난 영웅이 같이 있으니, 지하 굴의 미로처럼 골치 아픈 부분은 맡겨 놔도 될 거 같았다.

어차피 이 실도 보통 물건이 아니라서 단순한 길잡이 역할만이 아니라 전투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여기가 마경대전의 장소군요.”

두 영웅의 앞에는 어두침침한 동굴만이 있었다.

지옥도에서 종말의 신화가 개방된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반드시 종말의 신화를 막아서 올림푸스를 지키라는 임무가 우리에게 내려졌습니다.”

확고한 목적이 있었다.

올림푸스 최고의 영웅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이번 여정에 참가했다.

다만, 그들의 생각이 모두 같지는 않았다.

“저 앞서가는 두 영웅은 목적이 다를 수도 있겠어.”

뱀이 똬리를 튼 듯, 굽이굽이 이어진 지하 굴.

지하 굴에 대한 어떠한 정보가 없음에도, 두 영웅은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발휘하며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금발 머리를 머금은 건장한 체격의 미남 영웅.

그는 <트로이 전쟁의 승리자>라는 수식언으로 유명했다.

마지막 한 명은 사자 투구를 쓴 근육질에 거대한 체구를 가진 자였다.

과거에 펼쳐졌던 종말의 신화를 한차례 막아 낸 대영웅이었고, <기간토마키아의 종결자>라 불렸다.

두 사람은 전투에 정통한 패자답게 원대한 여정을 꿈꾸고 있었다.

<아비규환의 지옥도>

72악마, 명계, 명부, 헬하임.

‘이곳을 공략한다.’

전율을 부르는 모험담을 이전부터 원하고 있었다.

새로운 영웅담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강했고, 자연히 다른 영웅들은 경쟁자에 불과했다.

“그쪽이 트로이 전쟁을 종결한 영웅이야.”

사자 투구를 쓴 쾌남의 영웅이 먼저 시비조로 말을 걸었다.

자신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는 금발의 미남 영웅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었다.

“당신이 기간토마키아에서 승리한 영웅이니까?”

금발의 미남 영웅은 똑같이 삐딱한 말투로 대답했다.

<트로이 전쟁의 승리자>라 불리는 그도 만만치 않은 영웅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기간토마키아의 종결자>였다.

이 둘은 올림푸스 최고의 영웅 자리를 두고 서로 비견되는 강자였다.

‘누가 최강의 영웅이냐.’

올림푸스 12신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여, 종종 토론 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럼 내기나 해 볼까?”

별안간 사자 투구의 쾌남 영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육중한 몽둥이를 꺼내어 어깨에 툭 걸치더니 당당하게 올림푸스 최고의 영웅 자리를 두고 경쟁하자고 제안했다.

‘올림푸스 최강의 영웅은 나다.’

‘내가 질 것 같냐.’

그런 자만심을 드러내듯이 가슴팍에 힘을 팍팍 주었다.

“재밌는 승부겠어.”

물러설 생각이 없는 것은 금발 영웅도 마찬가지였다.

창을 꼬나쥐면서 맞받아쳤다.

“누가 더 많이 해치우는가로 겨뤄 볼까?”

“그러지. 나는 자신 있다.”

마침 지하 굴에서 양 갈래로 나뉘는 지역이 있었기에 둘은 양옆으로 흩어졌다.

“결국 자기 마음대로 가는 건가.”

애초에 네 명의 영웅이 단합하기는 어려웠다.

처음부터 그런 기대감은 없었으나 막상 현실이 되자, 눈을 가린 영웅도 어쩔 수 없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들 이번 원정에서 최고 수훈을 세우고 싶을 테니까.”

하얀 갑주를 입은 귀공자 영웅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들은 자존심과 경쟁심이 강한 신화급 영웅담을 가진 영웅들이었다.

이들이 하나로 뭉치기는 애초에 무리였다.

“다들 알아서 처신하고, 돌아갈 때만 다시 모이기로 약속하죠.”

이곳에 온 목적은 어디까지나 잠재된 종말의 신화가 개방되는 사태를 막는 것이었다.

물론 네 명의 영웅 중에서 공을 양보할 사람은 없었지만.

“최고의 공훈을 세워 보도록 하지.”

눈을 가린 영웅도 사실 혼자가 더 익숙했다.

그의 능력 자체도 단독 행동에 더 어울리는 편이기도 했고.

‘메두사를 죽인 자.’

<괴물의 학살자>라 불릴 만큼 명성이 알려진 영웅이기에 자신이 있었다.

“그럼 저는 이쪽으로 가겠습니다. 나중에 만나기로 하죠.”

하얀 갑주를 입은 영웅도 승리를 자신했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자.’

그의 명성도 다른 영웅에 걸맞은 수준이기에, 이번 여정에서 최고의 수훈 갑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종말의 신화를 막으려는 자.

올림푸스가 보낸 4영웅.

그들은 각자 흩어졌다.

마경대전 지하 굴의 움직임도 확연히 바뀌기 시작했다.

“크아악!”

4영웅은 자신들의 명성대로 압도적인 파괴력을 발휘했다.

그들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죽은 사체와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적수가 없었다.

“이게 지옥도의 수준이란 말이냐?”

사자 투구를 쓴 영웅은 육중한 체구로 쿵쿵거리면서 걸어갔다.

이미 그의 허리춤에는 72악마의 머리 세 개가 끼워져 있었다.

<기간토마키아의 종결자>

예전 종말의 신화였던 ‘기간토마키아’를 혼자서 무너뜨린 영웅.

압도적인 강자의 자리에서 포식자처럼 모든 생명체를 사냥했다.

쿠웅.

우렁찬 발자국 소리가 지옥의 울림처럼 깊게 자리했다.

죽음의 공포가 사정없이 깔리고 있었다.

‘마경대전의 난입자.’

올림푸스 4영웅이 전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 * *

성운전에서 심판관은 특별한 권한을 가진다.

‘집행권과 관리권.’

자신이 맡은 대회에서 진행의 ‘결정권’을 가진다.

난입자가 발생했을 때.

심판관은 자신이 직접 몰아 내거나 묵인할 수 있었다.

이번 마경대전의 심판관은 ‘염라대왕’이었다.

거인처럼 커다란 체구에 압도적인 힘을 가진 그는 심판관으로서 책임감을 가졌다.

‘난입자를 몰아 낸다.’

염라대왕은 직접 판결의 망치를 들고 상대하려고 나섰다.

지하 굴의 거대한 터전.

이곳에서 난입자들을 하나하나 몰아 낼 생각이었으나 염라대왕은 지금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돌무덤처럼.

온몸이 암벽처럼 굳어진 채로 염라대왕은 거대한 불상이 되어 있었다.

“…….”

돌멩이로 굳어 버린 염라대왕.

그는 이미 4영웅 중 한 명에게 꼼짝도 하지 못하고 당해 버렸다.

“하아암.”

돌무덤이 된 염라대왕의 커다란 손안에는 영웅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마치 침대에 눕듯이 편안한 자세로 누워 하품을 내뱉었다.

“몸집만 크지 별것도 없구만.”

눈을 감은 영웅.

푸른 머리를 휘날리며 잠시 쉬고 있던 그는 심판관 염라대왕을 일격에 돌덩이로 바꿔 버렸다.

신좌급 존재마저 굳혀 버리는 저주.

‘메두사를 죽이고 머리통을 가져간 자.’

<괴물의 학살자>라 불리는 ‘페르세우스’가 가진 힘이었다.

“커다란 녀석들치고 실속이 있는 놈들은 하나도 없지.”

혀를 끌끌 차면서 누워있던 페르세우스가 몸을 일으켰다.

“명부의 판관이란 염라대왕도 대단한 게 아니었구나.”

염라대왕의 명성은 모든 성운에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다.

공명정대하고 명쾌한 판결.

책임감 넘치는 자세.

하지만 이제는 돌로 굳어져서 과거의 명성처럼 퇴색될 따름이었다.

“후후. 염라대왕을 잡았으니 이제 내가 최고 수훈 갑이 되겠구나.”

4영웅 중 가장 큰 몫을 차지했다.

심판관이 없으면 마경대전의 흐름은 얼마든지 뒤바꿀 수 있었다.

‘종말의 신화는 발동하지 않는다.’

첫 번째에 대어를 잡아 냈으니 이제는 피라미를 사냥하듯이 쉽게 날로 먹을 수 있었다.

“다음에는 누구를 잡을까나.”

눈을 감은 페르세우스는 한껏 여유를 부렸다.

귓가를 쫑긋거리면서 마음의 눈으로 만물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함정을 파고 기다린다.’

<괴물의 학살자>라 불릴 만큼 교묘한 수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던 페르세우스다운 전략이었다.

스윽.

어디선가 옷자락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굳어 버린 염라대왕을 보고 누군가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

슬픈 감정이 느껴지듯이, 떨리는 손이 염라대왕의 굳어 버린 몸을 어루만졌다.

딱딱하게 굳은 육체에서 차갑게 식은 한기가 느껴졌다.

하늘색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조용한 눈매를 거두고 격렬한 분노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내 아이를 건드린 자가 누구지?”

염라대왕의 어머니.

바리데기가 나타났다.

그녀는 신격의 아우라를 발휘하면서 고고하면서도 차가운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반면에 한결 여유를 가진 페르세우스는 오히려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상대가 분노할수록 더 유리하지.’

분노로 이성을 잃은 자는 크게 실수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혈족의 죽음은 극한의 분노를 일으키는 재료이기도 했다.

‘염라대왕에 이어 바리데기.’

염부를 대표하는 신좌가 차례대로 함정에 들어오고 있었다.

“내려와라.”

바리데기의 분노는 이전에 본 적이 없이 차갑게 퍼져 나갔다.

염라대왕 석상 속에서 차디찬 안개가 짙게 깔리고 있었다.

“오고 싶으면 오시던가.”

페르세우스는 일부러 바리데기의 화를 더 돋우려고 계속 염라대왕의 손 위에 앉아 있었다.

‘올 테면 네가 와라.’

대놓고 바리데기를 비웃었다.

도발이었다.

“감히!!”

분노를 참지 못한 바리데기가 단숨에 날아올랐다.

정면으로 치달아서 페르세우스를 공격할 기세를 뿜어내며 달려들었다.

그 순간.

페르세우스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안에 있던 눈동자는 평범한 동공이 아니라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

‘무수한 뱀이 뒤얽힌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

메두사의 낙인이 새겨진 눈동자였다.

“메두사의 눈?”

전설적인 괴물, 메두사는 자기 얼굴을 보는 상대를 돌로 바꾸는 능력이 있었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가지고, 상대에게 보여주며 돌로 만들곤 했다.

지금은 달랐다.

“아예 메두사의 눈을 이식했죠.”

“뭐라고?”

바리데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치 메두사의 얼굴을 보고 돌처럼 굳어 가듯이 공포에 빠지고 있었다.

“신좌들마저 두려워하는 눈.”

그랬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눈을 뽑아서 자기 눈에 넣었다.

평소에 눈을 감고 다닌 이유도 메두사의 눈동자를 숨기려는 의도였다.

<괴물의 학살자>

영웅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눈을 자신에게 넣고 괴물 그 자체가 되었다.

메두사의 눈이 가진 저주에 의해 바리데기의 몸은 서서히 돌로 굳어 가기 시작했다.

차갑고 딱딱해지는 몸을 느끼며 서서히 굳어 갔다.

페르세우스.

영웅에서 괴물이 된 자.

메두사의 눈을 가진 페르세우스는 온몸이 돌로 굳어 가는 바리데기를 바라보며 악마처럼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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