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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87화 (187/229)

187화 명부(2)

염라대왕의 염부.

어두운 안개 너머 얕은 강을 넘으면 도달할 수 있는 세계.

이곳에는 수많은 영혼이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갇혀 있었다.

염라궁.

염라대왕의 궁전.

안개가 조금 걷히자 웅장한 성채처럼 거대한 궁궐이 위용을 드러냈다.

“정말 신화 속 세계 같네.”

눈가에 손을 댄 이소민은 거대한 궁궐을 목격했다.

성벽의 자태와 그 너머에 죽 늘어진 무수한 거처들이 멋진 경관을 이루었다.

“지옥의 세계라고 보기에는 정말 밝다.”

명부는 ‘지옥도의 불’이라고 불릴 만큼 거대한 불길이 있는 곳이었다.

궁전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신비한 불꽃이 아지랑이처럼 움직였는데, 이 불은 ‘명부를 밝히는 불’ 혹은 <명부의 등대>라고 불렸다.

덕분에 명부에는 용암처럼 뜨거운 기운과 태양에 버금가는 밝은 빛이 존재했다.

“오히려 안개가 가려 줘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눈도 멀어 버릴 거 같네.”

곳곳에 켜진 등불과 오싹한 한기가 공존하는 분위기가 독특한 자태를 자아냈다.

“으음, 저기에 막상 가려니까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드네.”

뒷머리를 긁적거리는 이소민은 왠지 몸이 으스스 떨렸다.

“죽은 자만 가는 건데. 어째 내가 여기 올 곳이 아닌 거 같고.”

에어리스는 이소민의 얼떨떨한 표정을 보면서 눈망울을 동그랗게 떴다.

“이소민 언니, 괜찮아요?”

“그냥 기분이 이상해서 그래.”

염라대왕의 궁전에 간다는 의미는 일반적인 상황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죽은 자의 세계.

지옥의 심판관 염라대왕이 있다.

죽은 자를 심판하는 곳이라는 소리는, 살아 있는 사람은 갈 수 없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죄인도 아닌데 심판받으러 가는 거 같아서. 뭐, 그건 아니긴 하지만…….”

가장 먼저 유진하가 앞장섰다.

“일단은 가 보도록 해요.”

유진하와 일행들은 거대한 궁궐의 대문으로 걸어갔다.

어두운 강에는 연꽃이 피어 있었다.

“꽃이 있네요.”

강가에 핀 연꽃들이 주르륵 이어져 있었다.

강에 핀 연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로 이어졌고, 에어리스의 눈동자에 아름답게 비쳤다.

하지만 레다는 조금은 다른 감정을 받았다.

“저 연꽃들은… 평범한 것이 아니야.”

검은 강물과 붉은 연꽃.

저 연꽃들은 죽은 자가 생전에 가졌던 생명의 불빛이었다.

“영혼들이 강가를 지나가면서 남기는 생명력이야. 그들의 마지막 생기가 남아 연꽃처럼 변한다고 들었어.”

연꽃은 영혼들이 마지막으로 가진 최후의 연료였다.

검푸른 강가를 지나가면서 마지막 생명력을 남기고 망자들의 세계로 넘어간다.

마치 속세에 미련을 두지 않듯이 남은 생기마저 버리는 것이었다.

“그럼 영혼들의 발자취가 남은 거였네요.”

영롱한 연꽃들은 망자들이 남긴 생명의 기운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그러셨어. 죽음에 이르면 가장 마지막 불꽃을 발휘하고 사라진다고.”

사라지는 자는 아름다운 불빛처럼 긴 자국으로 남는다.

강가에 끝없이 이어진 연꽃은, 망자들의 생명력이 여한처럼 남은 것은 아닐까.

철썩철썩.

강가에 발을 담그니 차디찬 온도가 느껴졌다.

한기가 온몸을 적시는 느낌이었다.

“으으, 춥다.”

이소민은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강가를 걸어갔다.

잔잔한 강물을 헤치며 유진하와 에어리스, 레다, 그리고 유나까지 나아갔다.

강은 깊지 않았기에 금방 넘어갈 수 있었다.

“이제 강을 넘었네요.”

일행은 강물에 젖은 옷을 털어 내며 차림을 정돈했다.

털어 버린 물방울이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저기 대문이 있어.”

물기가 남아서 생기는 한기 때문에 이소민은 몸을 으슬으슬 떨다가 먼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염라궁의 거대한 대문이 커다랗게 자리했고, 대문을 지키는 장군들이 거인처럼 커다랗고 당당하게 버티고 있었다.

“엄청 크다.”

<지하대장군>이었다.

거인족과 엇비슷한 크기의 장군 두 사람이 떡하니 기둥처럼 버티며 거대한 위용을 자랑했다.

“유진하, 그런데 망자의 영혼만 들어갈 수 있다며?”

“네, 맞아요.”

사실이었다.

명부는 그런 세계라고 신화 속에도 널리 알려졌다.

“우리는 살아 있으니까 입구에서 못 들어가는 거 아니야?”

“아마도 그렇겠죠?”

부정할 수 없었다.

아마 입장부터 막힐 거였다.

마경대전의 심판관.

염라대왕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담판을 지어야 하는데, 입구에는 거인 같은 지하대장군이 막고 있었다.

“저 수문장들한테 부탁해도 안 되겠지?”

“대화가 통할 거 같지는 않네요. 몰래 넘어갈 수도 없을 것 같죠?”

유진하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담장을 가리키자 이소민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담장에는 기운이 서려 있어, 외부의 접근을 막는 결계가 쳐져 있었다.

“딱 봐도 결계가 있네. 되겠냐?”

“농담이었어요.”

마침 줄지어 지나가는 망자의 영혼들이 보였다.

이미 죽은 자들은 대문에 아무 제지도 없이 들어가고 있었다.

“저기는 무사하네.”

모두가 조용히 시선을 교환했다.

작전이 결정됐다.

은근슬쩍, 저 영혼들 틈에 끼어들어 넘어가려고 시도했다.

“이게 되려나?”

“쉬잇!”

이소민과 에어리스는 서로 귓속말을 나누며 조심스레 영혼들 사이에 숨어들었다.

유진하와 레다도 비슷했다.

오히려 떳떳한 쪽은 유나였다.

“하하, 나는 영혼이라서 같이 숨을 필요가 없다네.”

옆에서 지켜보던 유진하가 슬쩍 눈치를 주었다.

“너 혼자 가면 안 돼. 저기는 널 심판하고 지옥의 벌칙을 먹이는 곳이거든.”

“뭐라고? 아차, 그랬지.”

유나가 화들짝 놀라서 온몸이 굳어 버렸다.

“걱정하지 마. 너만 보내지는 않을 거야.”

유진하의 말에 레다와 에어리스도 눈짓으로 끄덕였다.

자매들은 앞으로 헤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그리고 이 약속은 목숨처럼 지킬 생각이었다.

“후아, 끌려가면 안 되겠는데.”

저 지하대장군들의 부리부리한 안광은 개미 새끼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매섭게 감시하고 있었다.

영혼들이 들어오는 대문에서 이물질이 들어오는지 매의 눈으로 검사하는 것이었다.

“거기!”

호령 소리가 들렸다.

마치 벼락이 치는 듯한 고성이었다.

그리고 호령 소리가 들렸다는 건, 영혼들 사이에 몰래 숨은 존재들이 딱 걸리고 말았다는 것을 뜻한다.

“누구냐?”

두 명의 지하대장군은 창을 단숨에 내밀어 하나씩 겨누었다.

창끝에 걸린 사람은 에어리스와 레다였다.

“아, 저희가 걸렸네요.”

역시나 첫 번째 고비부터 딱 잡히고 말았다.

지하대장군은 염라궁을 지키는 신좌였고 침입자를 제거하라는 임무를 맡았다.

“죄송한데 저희는 염라대왕님하고 대화를 나누려고 왔어요.”

당황한 에어리스가 양손을 흔들며 상대의 경계심을 풀려고 최선을 다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했다.

“너희는 죽은 자가 아니다.”

“…그렇긴 한데요.”

“염라대왕은 명부의 심판관, 망자의 영혼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는다.”

“아, 역시 그런가요. 정말 안 되는 거였군요.”

열심히 항변했으나 침입자 취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마 말로는 쉽게 넘어갈 상대가 아닐 게 분명했다.

대문을 지키는 수문장은 가장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자들로 세우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돌아가라.”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하나 지금은 돌아갈 수 없었다.

다행히 유진하와 이소민은 지하대장군 수문장들의 시야에 잡히지 않았다.

‘다행인 걸까요?’

이소민은 강화된 투명 망토를 얻은 상태였는데, 다행히 신좌의 눈을 잠시 속일 수 있었다.

스멀스멀.

아무리 강화된 투명 망토라도 신좌들의 눈을 완전히 속일 정도는 아니었다.

움직일 때마다 투명한 실루엣이 살짝 보이는 효과가 남아 있어서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으아아.’

이소민은 특유의 거북이 걸음으로 조심스레 걷고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면 투명 실루엣이 있어도 잘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걸리면 끝장이지만.

“저기 죄송해요. 하지만 저희는 꼭 가고 싶어요.”

마침 에어리스와 레다가 지하대장군 수문장들의 시야를 모조리 끌고 있었다.

그 틈에 이소민은 대충 저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필사적으로 뛰어서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후아, 후아, 성공이다.”

대문을 들어오자마자, 벽에 기대어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간신히 세이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안도할 즈음에, 스르륵 유나가 옆에 나타났다.

“오, 그래도 무사히 들어왔네?”

“내가 걸리기를 바랬냐.”

“아니, 그건 아닌데…….”

유나는 슬쩍 담장 밖을 바라봤다.

레다와 에어리스 쌍둥이 자매는 대문 앞에서 지하대장군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었기에 잔뜩 걱정되었다.

“언니들은 괜찮겠지?”

“…….”

이소민은 알 수 없었다.

지하대장군은 신좌라고 들었고, 염라궁의 대문을 지키는 거인답게 실력이 뛰어날 터였다.

콰앙!

벌써 대문 바깥에서 격렬한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뇌명의 참격>

푸른 번개를 머금은 에어리스가 대검을 쥐고 아우라를 가다듬고 있었다.

<별자리에서 태어난 자>

배후에 별자리를 드러낸 레다도 별빛의 아우라를 머금으며 공격 태세를 가다듬었다.

“우리를 상대하겠다는 거냐?”

자매가 발휘하는 기세를 본 수문장들도 거대한 창을 내밀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지하대장군의 수문장>

두 맹장은 같은 아우라를 공유하면서 2인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태산처럼 타오르는 기세 속에서 전투가 시작됐다.

일격에 땅이 갈라지는 파괴력이 에어리스와 레다에게 향했다.

에어리스와 레다는 그 힘을 피하고 공격하며 맞섰다.

“하아압!”

에어리스는 전신에 푸른 번개를 머금어 <전광석화> 능력을 발현했다.

빛에 못지않은 속력으로 좌우를 번갈아 이동하는 기술이었다.

에어리스는 막강한 기세를 가진 지하대장군의 육체를 이리저리 넘나들며 과감하게 전진했다.

“큿!”

이어서 <6성 뇌전 천둥 번개 별자리>를 발현한 레다도 쾌속으로 거인 대장군들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푸른 번개의 <전광석화>.

천둥 번개 <6성 뇌전 천둥 번개 별자리>.

두 자매는 벼락처럼 지하대장군의 전신을 휘감고 지나가며 속력으로 압도하고 있었다.

“빠르다.”

신좌에 속하는 존재들이라도 전력으로 움직이는 두 사람을 당장은 잡기 어려웠다.

번개와 번개의 조합.

<두 개의 빛>

자매가 힘을 합치자 특성이 발현되었고, 폭발적인 속력과 파괴력이 증강되었다.

초월격 <신멸의 구도자>라 불리는 어머니 시오에게 맞섰던 힘으로 염라궁의 수문장인 지하대장군에 도전했다.

“하아아압!”

에어리스와 레다는 번개처럼 움직여 지하대장군의 몸을 타고 올라가더니 하늘로 솟구쳤다.

천둥 번개 별자리를 배후에 둔 레다.

푸른 번개의 아우라를 휘감은 에어리스.

두 사람은 하늘에서 동시에 내려꽂혔다.

그러곤 각자 맡은 지하대장군에게 일격을 작렬시켰다.

강렬한 충격파가 지면을 무너뜨리듯이 퍼져 나갔고 찌릿한 번개가 긴 꼬리처럼 남았다.

“후우우.”

호흡을 가다듬은 두 사람은 바닥에 널브러진 지하대장군을 바라봤다.

기절한 신좌들은 잠시 후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설 것이었다.

“우와, 저렇게 하면 되는 거구나.”

이소민은 입을 떡 벌리며 감탄했다.

자신처럼 힘들게 투명 망토에 숨어서 겨우 잠입하기보다는, 호쾌하게 정면으로 돌파하는 저들의 모습이 훨씬 후련해 보였다.

“역시 언니들이야.”

유나도 어깨를 들썩이며 언니들을 자랑스럽게 쳐다봤다.

이소민은 사이좋은 자매들을 보곤 왠지 부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유진하, 이 녀석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아까부터 주변을 살펴보는데, 유진하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때, 저기 염라궁 궁궐의 계단에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한 사람이 보였다.

여유 있는 뒷모습과 차분한 걸음걸이가 매우 낯이 익었다.

“유진하잖아, 언제 갔냐?”

유진하는 벌써 저 앞에 혼자 가서 여유롭게 걸어가고 있었다.

나머지 일행들은 서둘러 뒤를 따르기로 했다.

“유진하, 같이 가자!”

“아, 이제 왔어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유진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너 언제 들어왔냐?”

“방금이요.”

“에어리스하고 레다가 싸우고 있었잖아.”

“네, 당연히 이길 거라고 알았어요. 원래 이렇게 정면으로 들어가는 게 대문을 통과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거든요.”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왠지 약이 오르는 느낌을 받은 이소민이 부들거리며 슬쩍 유진하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럼 지켜만 본 거야?”

“불리했으면 저도 합류할 생각이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어차피 우리는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요.”

리더로서의 결정이었다.

처음부터 에어리스와 레다에게 내린 작전이 분명했다.

“이미 조커도 안에 들어왔을 거예요.”

“조커도?”

“네, 조커한테는 행동의 자유를 주는 것이 목적 달성에 더 효과적이거든요.”

어딘가에 조커도 이미 들어왔을 터였다.

염라궁은 이미 비상이었다.

수문장 지하대장군이 쓰러진 것은, 보통 일이 아니어서 무수한 명부의 방어 병력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네요.”

몰려드는 장수들 전원이 지하대장군에 버금가는 실력자들이었다.

“명부의 장군들은 전원 염라궁을 방어하라.”

하나같이 기세등등한 풍채를 자랑하며 각자 창과 검 같은 무기를 들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염라대왕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요.”

“침입자를 척살하라는 규율이 있다. 심지어 그대는 살아 있는 자다.”

“그렇긴 한데, 저희가 급한 일이 있어서요. 이번만 살짝 예외로 넘어가 주시면 안 될까요?”

“…….”

역시나 통하지 않았다.

염라궁의 장군들은 규율을 신성시하기에 반드시 지키겠다는 사명감을 가졌다.

방패를 내세운 그들은 방어 태세를 갖췄다.

<신격 방진>

물 샐 틈이 없는 방비 태세였다.

수십 명의 신좌가 연합해서 정면의 모든 공간에 방어벽을 쳤으니 힘으로는 절대 뚫을 수 없었다.

“이쪽은 맡겨야겠네요.”

시간이 없는지 유진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뒤에서 따라가는 이소민과 유나마저 질색할 정도로 거침없는 전진이었다.

“늦지 않은 거 같군.”

백가면을 쓴 조커가 염라궁의 지붕에서 나타났다.

미리 일찍 잠입하여 유진하와 약속된 순간을 기다린 듯했다.

조커의 잠입 능력은 최상급이기에 혼자라면 단독 잠입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시간만 넉넉하다면 조커가 들어갈 수 없는 장소란 존재하지 않았다.

“길만 열어 주면 돼요.”

“간단하군.”

처음부터 목적은 하나였다.

심판관 염라대왕을 만나 중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방어하는 병력들과 사생결단을 내지 않고 길을 열어 주는 정도라면 조커도 충분히 해 볼 여지가 있었다.

단 한 번.

조커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 아우라를 발현했다.

그러곤 염라궁을 가로막은 병력의 뒤로 내려와 쌍단검을 휘둘렀다.

기습적인 일격이었다.

파도처럼 나아가는 베기가 방어 병력에게 작렬했다.

견고하게 버티던 방어 병력들은 배후에서 치고 들어오는 위력에 일순간 빈틈을 드러냈다.

“지금…….”

무수히 모인 장군들과 병장기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 생겼다.

실낱같이 작게 보이는 공간.

그곳이 유일한 통로였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방어 태세는 다시 견고하게 만들어질 터였다.

그랬다가는 모든 것이 끝난다.

“전력으로…….”

빛의 아우라를 모은 유진하는 그 복잡하게 무너져 가는 방어 병력의 틈새를 노렸다.

그때였다.

쿠웅!

무너진 장군들과 뒤섞이는 병장기 속에서 생긴 작은 틈에서 거의 빠져나왔다고 여길 즈음.

강렬한 위력의 충격파가 유진하에게 작렬했다.

“아!”

한 자루의 검이 유진하의 앞을 가로막았다.

빛의 아우라를 머금은 유진하는 마지막 그 검에 부딪히며 궤적이 꺾여 추락하고 말았다.

“염라궁을 우습게 보는 건가?”

염라궁의 정예 병력 중에서 최강이라 불리는 존재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장군들이 듬직한 체구에 꼿꼿한 눈매로 압도적인 무력을 가졌다면, 이번에는 달랐다.

연약한 체구의 작고 곱상한 외모를 가진 여성이 소녀처럼 막아섰다.

“내가 막아 볼게.”

하늘색 비단옷을 입고 하얀 머리를 휘날리는 소녀였다.

그녀는 단숨에 유진하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크억!”

마치 온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영혼마저 뒤흔들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손바닥 하나로 유진하를 짓누른 소녀가 자신의 진명부터 밝혔다.

“내 이름은 ‘바리데기’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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