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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86화 (186/229)

186화 명부(1)

“팔이 하나인데도 제법이구나.”

시오가 발휘하는 아우라를 보면서 헬라는 감탄했다.

<신멸의 구도자>라는 수식언이 어울릴 만큼 뛰어난 초월격을 발휘하는 모습이 절로 호승심을 자아냈다.

“싸우기를 원한다고 했지?”

치솟는 기운 속에서 자세를 꼿꼿하게 한, 시오는 차가운 눈매로 헬라를 바라봤다.

흔들리는 옷자락 속에서 그녀가 손에 쥔 귀혼검이 칼날을 번뜩였다.

“너희들이 성운전을 만든 이유는 단 하나야. 불멸의 존재가 되려는 거지.”

성운전은 세상의 법칙을 만들 수 있다.

그 시험 중에는 라그나로크, 신들의 황혼이라는 숨겨진 과제가 있다.

-성운전, 라그나로크.

-이 신화가 벌어져야만 신들을 소멸시킬 수 있다.

이걸 반대로 말하자면……

-만약 라그나로크가 벌어지지 않으면… 그들은 죽지 않고 불멸이 된다.

불멸이란, 아무리 칼로 찌르고, 온몸을 불태워도 절대 죽지 않는 존재를 일컫는다.

말 그대로 완전무결한 존재가 된다.

“영원하고 불멸의 존재가 되려는 것이 너희들의 목적이야. 그래서 법칙을 만들 수 있는 성운전을 시작한 거야.”

신좌들은 불멸의 존재가 되기 위한 법칙을 만들었다.

‘신들의 황혼’이란 라그나로크 신화가 시작되지 않는 한, 그저 몽상일 뿐 결코 현실이 될 수 없었다.

“맞아. 올림푸스나 아스가르드에 있는 녀석들은 그런 생각이겠지.”

헬라도 순순히 인정했다.

신화급 성운의 존재 중 이 프로젝트에 동의하지 않은 자는 없었으니까.

‘성운전은 법칙을 만들 수 있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시나리오의 조건을 만들어 불멸이 된다.’

그것이 신좌들의 목적이었다.

“정말 웃기는 자들이야.”

헛웃음을 지으면서 시오가 어깨를 들썩거렸다.

점점 커지는 초월격의 기운과 달리 고요한 분위기는 더 깊게 깔렸다.

“너희 신좌라는 존재는 성운전에서 불멸이 되었다. 다른 자들은 어떨까? 그 게임의 말이 되어 구경거리가 되어 죽었지.”

“…….”

헬라는 침묵했다.

신좌들의 저열한 행위는 자신도 잘 아는 일이었다.

“맞아. 그래서 나도 그 녀석들이 싫거든.”

엄청난 기세로 헬라의 신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지옥의 이름을 가진 여신>

헬라가 발휘하는 신격의 아우라가 하늘을 꿰뚫을 듯이 치솟았다.

“성운전은 애초에 끝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아. 어차피 라그나로크만 발동하지 않으면 신좌들은 영원불멸이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헬라가 강하게 앞으로 나와 시오와 격돌했다.

초월격 대 신격.

서로의 검이 한 번씩 부딪칠 때마다, 격렬한 파열음이 충격파로 변해 퍼져 나갔다.

“그런데 말이야.”

서로 검을 마주치며 겨루던 중.

헬라와 시오의 눈이 마주쳤다.

“나도 비겁한 그 녀석들을 많이 싫어해.”

카앙!

죽일 듯 겨루던 둘이 잠시 떨어졌다.

치열한 전투가 잠시 숨을 고르듯이 잠잠해졌다.

“라그나로크를 열고 싶은 건가?”

시오의 물음에 헬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물론이지. 다 죽일 거다.”

헬라의 신격이 분노의 감정을 담았는지 거세게 흔들렸다.

“녀석들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꿀이나 빨고 있는 동안, 나는 끈적끈적하고 어두컴컴한 이곳에 평생 갇혀 있었으니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건가?”

“지옥도는 거대한 감옥이다. 성운전에 반대한 자들의 처벌이라는 구실로 모아 놓고 있지.”

헬라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결국 쓰레기장처럼 되었어. 성운전의 쓰레기통이야. 우리는 관리인처럼 누구도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강요받았지만, 결국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갇혀 있지.”

지옥이라 불리는 세계.

<아비규환의 지옥도>에는 또 다른 별칭이 있었다.

‘영원영속’의 지옥도였다.

“라그나로크를 열어 이 지옥에서 해방되고 싶다.”

헬라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라그나로크, 신들의 황혼.

이 성운전에는 종말의 신화가 숨겨져 있고, <아비규환의 지옥도> 성운에서만 실행할 수 있었다.

헬라는 그 멸망의 이야기에서 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녀가 이곳에 얽매인 이유도 성운전의 법칙 때문이었다.

-라그나로크와 연관된 존재는 절대로 <아비규환의 지옥도> 성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라그나로크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사실상 영원히 지옥의 감옥에 갇힌다는 소리였다.

“여기에 라그나로크를 발동시킬 방법이 있어. 나는 그것을 원해.”

이곳에서 벗어나려면 라그나로크를 일으키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종말에 얽매인 신좌야. 그래서 수백억 년도 넘게 여기 갇혀 있는 거고.”

헬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 싸움을 즐거운 게임처럼 지켜보고 있을 저 위의 신좌들을 향한 외침이었다.

성운전의 잠재 신화.

멸망의 이야기.

“시공간마저 소멸시킨다는 신화가 라그나로크다. 모든 것을 멸한다지.”

알려진 신화는 그러했다.

모든 것이 종말하는 신화로 알려진 ‘신들의 황혼’이 이곳에 숨겨진 이유는 그만한 파괴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오의 생각은 달랐다.

“종말의 시나리오는 모든 것을 파괴할 수도 있어. 내가 원하는 건 신좌들만 죽이는 거다.”

<신멸의 구도자>는 신좌들만 죽이기를 원했다.

헬라의 보랏빛 입술이 실룩거렸다.

잠시 이죽거리던 그 입에서 가시처럼 정곡을 찌르는 말이 날아왔다.

“맞아. 하지만 그거 말고 신좌들을 죽여 버릴 방법이 있을까?”

“…….”

시오는 변해 가는 표정을 애써 참으며 침묵했다.

헬라가 이어서 얘기했다.

“회귀자처럼 영원히 이 짓을 반복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

“라그나로크를 열어라. 신들에게 진정한 멸망을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니까.”

초월격을 발휘하는 시오.

신격을 발휘하는 헬라.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조금씩 의견 차이를 조율해 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신좌들의 죽음과 세계의 멸망은 한 끗 차이가 아닐까.’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승부수를 걸어야 했다.

“신좌들을 죽인다는 것만 협력할 수 있어.”

시오가 결정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헬라의 삐죽거리는 머리카락이 더 강한 번개를 머금었다.

“<신멸의 구도자>라던가? 너는 항상 여기 오기 전에 죽었지. 나랑 직접 만난 것도 이번이 처음이야.”

“…그렇다고는 들었다.”

자신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박동.

시오는 이곳에 올 수 없던 존재였다.

하지만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어쩔 수 없었을 거야. 회귀자는 내가 아닌 쌍둥이 자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회귀자는 항상 레다와 에어리스를 구하고 시오를 죽이는 길을 선택했으리라.

씁쓸하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었다.

자신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비슷한 선택을 했을 테니까.

“어쩌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것부터… 미래가 바뀌고 있는지도 모르지.”

헬라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느라 한 번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잠시 고개를 들어 본 하늘에는 별자리가 가득했다.

“레다?”

쌍둥이 중 첫째.

레다가 발휘하는 힘이 보였다.

‘어디선가 싸우고 있구나.’

아마 그녀의 아이들도 스스로 일을 해결하고 있을 터였다.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이기도 하기에 믿고 있었다.

“자, 확실하게 결정해라.”

헬라가 손을 내밀었다.

“나와 손을 잡고 신들을 멸망시키거나, 아니면 여기서 나와 계속 싸우거나.”

확실한 결정의 순간이었다.

이 한 번의 선택이 차후에 벌어질 모든 사건의 시작점이 된다.

시오의 눈빛은 차분했다.

“<광명의 저편>, 내가 만든 조직의 이름이야.”

역으로 헬라에게 제안을 던졌다.

“모든 신좌들을 종말시키려고 만드는 거지. 너도 함께하면 돼.”

“마음에 쏙 드는구나.”

헬라는 크게 웃으면서 소리쳤다.

양손을 펼치는 동시에 사방으로 엄청난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나는 앞으로 <광명의 저편>에 참가하겠어. 지금부터 우리의 목표는 신좌들의 궤멸과 라그나로크 발동이다.”

팔이 하나뿐인 시오는 헬라와 겨룰 만한 실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더불어 신좌들을 죽이기 위한 동료로 헬라를 영입했다.

세력 확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라그나로크는 성운전의 숨겨진 신화라고 그랬다. 발동시키는 조건이 뭐지?”

시오의 물음에 헬라는 처음으로 머뭇거렸다.

“그게 문제인데… 사실 아무도 몰라.”

“뭐라고?”

둘 사이에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종말의 잠재 신화를 여는 조건은 감춰져 있어. 그리고 그 조건은 영원한 비밀로 숨겨졌다.”

* * *

<아비규환의 지옥도>

이곳에서는 매년 우승자를 가르는 ‘마경대전’이 열리는데 그들에게는 축제의 장과 같았다.

“후아, 진짜 엄청 많네.”

이소민은 이마의 땀을 닦아 내며 잠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대전인지 뭔지하는 게 정말 큰 대회인가 봐.”

어딜 가도 사방에는 악마와 괴물들의 잔해가 가득했다.

서로 치열하게 싸운 흔적이 가득해서 어딜 가나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약간 겁을 먹은 듯한 유나가 이소민의 근처에 맴돌았다.

“지독한 곳이네. 내가 살던 지하가 더 좋겠어.”

쌍둥이 세 자매 중 영혼체였던 유나는 자유롭지만 사실 가장 약한 존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소민이 보모처럼 유나를 잘 돌봐 주고 있었다.

“너는 꼭 내 옆에 있어야 해.”

“알았어요. 대체 몇 번이나 말하는 거야?”

틱틱 거리는 유나는 사춘기 소녀처럼 휙 돌아섰다.

이소민이 재밌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유나를 쿡 찔렀다.

“네가 자꾸 멋대로 돌아다녀서 계속 잃어버리니까 그렇잖아.”

“그래도 계속 잔소리는 너무 하잖아. 우리 엄마도 이렇게는 안 했어.”

“네 엄마는 보통이 아니고.”

티격태격하면서도 이소민과 유나는 서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원정대의 다른 멤버들이 악마나 괴물들을 상대하느라 바쁜 탓에, 최약체인 두 사람은 은근히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촤악!

에어리스의 대검이 괴물을 일격으로 갈라 버렸다.

“후우, 이겼네요.”

에어리스가 대검을 가볍게 좌우로 흔든 후에 어깨에 턱 걸쳤다.

쏟아지는 괴물들과 끝없이 달려드는 악마들은 이곳이 왜 아비규환 그 자체인지 알려 주고 있었다.

스르륵, 에어리스의 뒤에 있던 세 명의 악마들이 땅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기습이었다.

“방심하지 마.”

별자리의 아우라를 발휘한 레다가 생환검으로 악마들의 목을 순식간에 전부 베어 버렸다.

“녀석들은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툭 떨어지는 악마의 머리가 나뒹구는 와중에, 레다는 혹시나 쌍둥이 동생이 다치지는 않을지 에어리스의 주변을 계속 머물렀다.

“적들이 많은 곳이야. 하나의 성운이 아니라 여러 개가 합쳐진 곳이니까.”

“조심할게요.”

“무리하지만 않으면 괜찮아.”

“네, 그럴게요. 레다 언니도 조심하세요.”

자매는 서로 검을 맞추면서 협공할 시의 전술을 상의하고 있었다.

같은 핏줄에서 같은 검을 배운 사이답게 전투에서 합을 맞추기에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앞은 무사할 거야.”

저벅저벅, 구두 소리가 들리며 백가면을 쓴 남자가 걸어왔다.

조커였다.

양복에 피를 잔뜩 묻힌 조커의 허리춤에는 악마들의 머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한 번 갔다 올 때마다 주렁주렁 많이도 가져오네.”

레다는 피 칠갑을 한 조커의 모습을 보며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꼈다.

후두둑.

조커는 머리를 떨어뜨릴 때마다 계속 강해지는 듯했다.

“악마의 머리를 수집하는 사람 같군요.”

조커의 단검술과 무력은 압도적이었다.

그의 능력을 인정하던 레다는 간결하면서도 절도까지 있는 조커의 자세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천재성.

전투에서 계속 성장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라는 고유 특성은 누구나 쉽게 발동할 수 없는 아우라의 경지였다.

특이한 만큼 특별했다.

“다른 일은 없는 거 같군.”

조커가 낮게 중얼거리더니 이내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에어리스는 유진하가 해 줬던 말이 떠올랐다.

‘조커는 단독으로 움직일 때가 가장 강하다.’

피에 물든 그의 뒷모습에서 온몸을 불태우는 듯한 기세가 엿보였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강한 적들과 싸울 적에 살아 있다는 감정을 느끼는 듯하다고 할까요?”

감탄과 동시에 두려움도 들었다.

조커가 만족하는 싸움은 영원히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새 또 다른 적을 찾으러 그는 사라졌고, 원정대 멤버들은 리더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하늘에서 빛줄기가 내려왔다.

환한 빛 속에서 무지개처럼 반사되는 아우라가 뿜어졌다.

<빛의 한계를 초월한 자>

유진하가 나타났다.

“진하!”

에어리스가 가장 먼저 반갑게 맞이했다.

환한 빛이 잠잠해지자 유진하도 앞으로 나와, 에어리스를 비롯한 모두와 인사했다.

“방금 살피고 돌아왔는데 이제 목적지까지 다 왔어.”

원정대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먼저 한 명의 신좌를 만날 계획이었다.

그자는 곧 열리게 될 ‘마경대전’의 심판관을 맡았다.

수식언은 <지옥의 판관>

모든 죽은 자의 영혼을 심판할 권리가 있는 자.

<아비규환의 지옥도> 성운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

“염라대왕이 저기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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