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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84화 (184/229)
  • 184화 아비규환(3)

    -<회귀의 굴레에 들어선 자> 유성하가 이곳에 난입했습니다.

    “유성하가 나타났다고?”

    짙은 보랏빛 머리에 핏기 없는 새하얀 피부.

    검은 보석으로 된 왕좌에 앉아 다리를 꼰 그녀는 ‘지옥’ 그 자체라 불리는 여신 헬라였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과 추한 모습을 동시에 가진 지옥의 여왕.

    그녀는 아스가르드 성운 신들을 멸망시킨 ‘라그나로크’를 일으킨 자로, 신들의 멸망을 이끌어 낸다는 잠재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즉, 숱한 강적들 사이에서 <아비규환의 지옥도>의 한 축을 담당할 자격이 충분한 여신이었다.

    “드디어 왔구나? 회귀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회귀자를 만날 생각에 헬라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지루하던 차에 재밌어지겠어. 회귀자가 나타났으니까.”

    헬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두 팔을 쭉 뻗었다.

    어두컴컴한 지옥은 매일이 지루했다.

    그런 지루한 나날을 보내다가 흥미로운 일이 생기자, 직접 나설 생각이 든 것이었다.

    “벌써 왔나?”

    헬라의 눈이 먼 거리를 투영하고 바라봤다.

    헬하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코트를 입은 자가 보였다.

    코트 차림의 남자

    그는 아마 이곳에 난입했다는 회귀자일 것이다.

    “예전보다 더 나아졌으려나?”

    헬라는 양팔을 펼치며 전신에 아우라를 모았다.

    그러곤 치솟아 오르는 투기를 애써 억누르며 지옥의 끝자락까지 찾아온 귀환자 유성하를 향해 날아갔다.

    * * *

    끝없는 지옥의 봉우리가 솟아오른 이곳은 안개의 도시 ‘니플헤임’이었다.

    올림푸스로 치면 명계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니플헤임은 다른 성운의 지옥과 마찬가지로 죽은 자들을 지배하는 곳이었다.

    헬라는 헬헤임이라는 지역을 따로 부여받았는데, 신들의 멸망을 이끌어 낸 ‘라그나로크’를 잠재 신화로 두고 있었기에 사실상 니플헤임의 지배자가 되었다.

    “헬라인가…….”

    봉우리에 있던 남자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스가르드 지옥의 여왕.

    최고의 미녀이자 최악의 추녀인 여신.

    ‘헬라’는 <아비규환의 지옥도>에서도 예측 불허의 존재였다.

    그렇기에…….

    유성하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었다.

    “오랜만이다, 유성하.”

    코트를 입은 남자와 조금 떨어진 봉우리에 올라선 헬라가 반가운 듯이 손을 흔들었다.

    “이번이 몇 번째 회귀지? 1000번을 넘겼다고는 대충 들었는데 말이야.”

    “…….”

    반가워하는 헬라와 달리 유성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흐음, 내가 반갑지 않나?”

    헬라는 팔짱을 끼면서 토라진 듯이 고개를 돌렸다.

    “많이 컸네. 너 회귀할 적에 여기서 숱하게 죽어 나갔잖아.”

    “…그랬지.”

    유성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헬라의 입가에서 간드러지는 듯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마 너는 평생 여기에 막혀서 회귀만 했을 수도 있어.”

    “부정하지는 않아.”

    “이제야 말이 통하네.”

    유진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의 수식언을 불렀다.

    “<지옥의 이름을 가진 여신>.”

    자신의 이름이 지옥 그 자체가 되어 버린 헬라였다.

    봉우리에 우뚝 선 그녀는 전신에서 피어나는 검은 보랏빛 아우라를 머금으며 가시처럼 흩날리는 머릿결을 흔들었다.

    “그렇게 부르니까 굉장히 먼 사이처럼 보이네. 회귀할 때마다 날 찾아와 놓고는 말이야.”

    헬라의 몸이 순식간에 움직였다.

    유성하에게 번개같이 다가간 헬라는 그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 손을 뻗었고.

    헬라의 움직임을 예측한 유성하는 그녀의 손을 살며시 피하고 다른 봉우리로 이동했다.

    “위험한 짓이다.”

    헬라의 손에 닿으면 무엇이든 소멸한다.

    물론 그것은 헬라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장난이야. 내가 설마 널 죽이려고 그랬겠어?”

    헬라의 눈동자가 노랗게 빛났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뱀의 눈길처럼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정확히는 장난감을 다루는 듯한 호기심이라고 할까.

    “즐겁네, 심심했는데.”

    여신의 압도적인 아우라를 바라보던 유성하는 그것에 맞설 수 있는 아우라를 뿜어냈다.

    헬라의 살벌한 기세는 죽음의 공포를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후후, 오랜만에 싸울까?”

    “당신은 죽지 않는 영생이다. 누구도 이길 수 없지.”

    유성하의 말에 헬라는 깔깔거리며 고개를 크게 젖혔다.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 급의 거대 성운에 소속된 신들은 영원불멸이라는 불문율이 걸려 있다.

    죽지 않는다.

    소멸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신좌들은 우월했다.

    “이곳은 억압과 복종만 있는 곳이다.”

    “<아비규환의 지옥도>는 그러려고 만든 곳이야. 유성하, 네 힘으로도 결코 해방시킬 수 없어.”

    헬라가 눈빛을 빛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지. 너는 한 번도 해낸 적이 없고.”

    “…….”

    회귀자는 숱한 도전을 해 왔다.

    죽음에서 벗어난 운명이기에 끝까지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헬라에게 이길 수 없었다.

    노력을 반복해도 닿을 수 없는 경지가 존재하는 법이다.

    우월한 신좌로 태어난 존재.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난 자.

    그 차이는 코끼리와 개미의 차이보다 더 거대한 수준이었다.

    <아비규환의 지옥도>

    이곳은 유성하가 가장 오기 싫은 곳이었다.

    헬라의 찢어지는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봉우리에서 울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유성하, 너 혼자냐? 쌍둥이 자매들이 항상 호위 무사처럼 옆에 있었잖아.”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헬라의 눈빛이 변했다.

    쌍둥이 자매 레다와 에어리스는 단 한 번도 회귀자 유성하의 곁에서 떠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자매는 항상 곁에 있었잖아? 이제 질려서 버린 거야?”

    “그럴 리가 없지. 두 사람은 내 목숨과도 같아.”

    유성하는 차갑게 내뱉었다.

    헬라의 기세가 조금은 실망한 듯이 줄어들었다.

    “부럽네. 나한테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날 수백 번이나 죽인 너한테 그럴 리가 있나?”

    “189번이야. 수백 번이라고 과장하지 말아 줘.”

    “…그래.”

    유성하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어 갔다.

    “둘은…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헬라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네가 그들을 다른 녀석에게 맡겼다고?”

    유성하는 자기 목숨까지 걸어서 두 자매를 지키려고 했다.

    얼마나 죽어 나갔을까.

    헬라의 손에 죽은 189번 중 반절은, 자매를 지키기 위해서 유성하가 스스로 몸을 내던져 대신 죽은 것이었다.

    죽음과 절망 속에서 극한의 정신력으로 회귀를 반복했다.

    그 처절하면서도 치열했던 모습이 헬라에게 감명을 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소중한 두 사람을 타인에게 맡겼다고?

    “거짓말 같아. 네가 그럴 리가 없잖아.”

    “…….”

    하지만 유성하의 주변에는 그림자처럼 지켰던 자매들이 없었다.

    “진짜야?”

    “그래.”

    이번에는 헬라의 말문이 막혔다.

    유성하가 무슨 생각으로 혈혈단신으로 왔을까.

    그런 의문이 들던 차였다.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겼다.”

    헬라도 유성하의 회귀를 지켜봤던 신좌였다.

    그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회귀 과정에서 본 적이 없었다.

    ‘대체 누구를 말하는 걸까?’

    “헬라, 너도 알다시피 나는 실패했다. 너희 같은 불멸의 신좌들과 달리 죽는 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

    “너희들은 성운전에서 영원하다. 하지만 회귀자는 죽는다. 그래서 나는 너희를 이길 수 없었어.”

    시간을 거스르는 자는 결코 성운전의 끝에 도달할 수 없는 ‘법칙’이 걸려 있기에.

    처음부터 유성하는 끝까지 갈 자격조차 없던 것이었다.

    헬라는 모든 것을 지켜봤고, 그 과정을 전부 알고 있었다.

    “너희 신좌들은 내가 실패하는 과정을 그저 재밌게 지켜봤을 뿐이다.”

    “…그러겠지?”

    “내가 끝에 도달할 자격도 없다는 걸 알면 어떻게 될까? 너희는 그런 생각으로 즐거워했겠지.”

    간절한 목표가 사실은 무의미하다.

    절대 도달할 수 없었다는 걸 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극한의 절망감과 좌절감이 지배하고 끝내는 스스로 죽고 싶겠지. 하지만 회귀자는 죽지도 못하는데 말이야.”

    회귀자의 저주.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

    자신이 놀잇감처럼 이용만 당했고 성운전의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도… 다시 회귀를 반복했다.

    유성하는 뜻밖의 선택을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정말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맞아, 정말 바보 같다니까.”

    헬라도 피식거리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회귀자 특성은 절대 고유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회귀 능력은 유성하 너의 고유 능력이 아니야. 그건 신좌들이 심심해서 부여한 거거든.”

    “저주를 선택받은 건가?”

    “맞아. 신좌들의 놀잇감이 되고 결국에는 절망한 끝에 미쳐 버리는 걸 즐기는 거지.”

    헬라의 얼굴에 썩은 듯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그러다 회귀자가 미쳐 버려서 더는 싸울 수 없거나 영원히 절망하고 회귀를 거부하면? 그럼 다른 녀석을 구해와서 회귀 능력을 주는 거야.”

    성운전에서 회귀자의 존재란 재밌는 놀이용 말에 불과했다.

    마치 보드게임의 말을 움직이듯이 신좌들을 주사위를 굴려서 이런저런 게임을 시키고 회귀자를 끝없이 죽이고 다시 살려 내는 것이었다.

    회귀자는 신좌들의 장난감에 불과했다.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세상이지 않냐. 내 이름에 더 알맞은 녀석들은 솔직히 저 녀석들 아니겠어?”

    헬라의 손끝이 하늘을 가리켰다.

    아마 지금도 신좌들은 재밌다는 듯이 킬킬거리면서 이곳을 지켜볼 수도 있었다.

    금빛이 가득한 궁전.

    신좌들은 편안한 황금 소파에 앉아 달콤한 술과 과일을 곁들이며 내려다볼 터였다.

    위에서는 파티.

    아래에서는 지옥.

    그것이 현실이었다.

    “정말 대단한 세상이다. 그치?”

    헬라가 웃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웃음이었다.

    <아비규환의 지옥도>에 소속된 신좌들도 어쩌면 차별받는 존재이기도 했기에.

    저 하늘 높이.

    어떤 신좌는 즐기고 마시는데 지옥도에서는 죽은 자들이나 관리해야 했다.

    “쟤들만 재밌는 거야. 그러니 여기서 라그나로크, 신들의 황혼이 시작되는 거지.”

    저주의 말.

    어쩌면 헬라만이 할 수 있는 그 분노가 순식간에 아우라가 되어 퍼져 갔다.

    “…헬라.”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성하는 가만히 생각했다.

    자신을 189번이나 죽인 헬라에게 도움을 받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 분위기가 그때와 흡사했다.

    지옥의 여신 헬라가 내포한 불쾌감과 경멸심이 느껴졌다.

    “<신들의 황혼을 일으키는 자>. 하지만 당신은 단 한 번도 그걸 시작하지 못했지.”

    유성하는 어떤 회귀를 하더라도 결국 라그나로크를 일으키지 못했다.

    성운전에서 신좌들은 불멸.

    결코 죽을 수 없는 법칙이 걸려 있었기에.

    저들이 마음 편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유성하는 자신했다.

    “저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고 라그나로크, 신들의 황혼이 일어날 것이야.”

    헬라가 반문했다.

    “유성하, 신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너는 할 수 없어.”

    “내가 아니다.”

    유성하가 다른 사람을 지칭했다.

    “그 녀석이 한다. 쌍둥이 자매와 있는 단 한 명의 ‘종결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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