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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82화 (182/229)
  • 182화 아비규환(2)

    “여러분과 다시 만났군요.”

    아테나는 하나 남은 날개를 조심스레 펼쳤다.

    그녀는 왼팔을 잃었음에도 태연한 기색이었다.

    “아테나 여신?”

    “당신이 유진하군요.”

    아테나의 시선이 유진하를 향했다.

    <정의와 신념의 여신>이라 불리는 신좌답게 그윽한 눈매로 바라봤다.

    고고한 자태는 여전했으나 이전과 달리 고압적이지 않았다.

    “유성하의 동생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테나의 말이 날아왔다.

    예상치 못한 첫마디에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내 차분하게 대답했다.

    “형과 저를 알고 있는 건가요?”

    “물론이죠.”

    아테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런 질문이 오리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형이 ‘회귀자’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회귀자 특성.

    자신이 원하는 특정 시점으로 되돌아간다.

    “어떻게 아셨죠?”

    유진하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그제야 아테나가 3회전의 심판관을 맡은 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상위 신좌는 시간의 흐름까지 모두 지켜봅니다. 되돌아가는 과정 역시 지켜볼 수 있죠.”

    “형이 회귀한 모습을 다 보았던 거군요.”

    “물론입니다. 비밀도 아니었죠.”

    묵묵한 느낌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신좌들이 형의 회귀를 지켜봤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신좌들이 지켜봤다는 건… 형의 회귀가 위협적이지 않아서인가요?”

    “…….”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회귀 능력이 있는 유성하는 1000번이 넘는 길을 반복했다.

    그것은 실패의 길이었고 종래에는 마지막 앞까지 도달했으나 다시 회귀해야 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회귀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들었습니다. 형은 마지막까지 갔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했어요.”

    “…그렇습니다.”

    “회귀자는 성운전의 마지막까지 갈 수 없는 건가요?”

    “…….”

    아테나는 말수를 줄였고, 지켜보던 모두가 숨을 죽였다.

    “형의 회귀는 무의미했던 건가요?”

    감정이 실렸을 수 있었다.

    회귀자 이전에 유성하는 자신의 소중한 형이었고, 함께 지내며 모든 걸 가르쳐 준 유일한 혈육이었다.

    ‘형의 회귀가 무의미하다면…….’

    참을 수 없는 소리였다.

    형의 발자취는 신좌들의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너무나 비참한 현실이기에 인정하기 어려웠다.

    “당신의 질문이 많은 걸 내포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 아테나가 대답했다.

    “하나씩 말씀드리죠. 일단 여기는 지옥의 세계관이 집결된 위험한 곳이지만, 역으로 그렇기에 안전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게 무슨……?”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은 <아비규환의 지옥도>라 불리는 성운. 거기서도 가장 아래층입니다.”

    아테나의 눈빛이 빛났다.

    “최하층. 어두운 심연은 신들의 눈길도 닿지 못하는 곳입니다.”

    “일부러 여기로 데려온 건가요?”

    “그렇습니다. 신좌들의 눈을 피해서 편하게 얘기를 나눌 곳이 많지 않아서 이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테나의 진심이었다.

    여신이 관문을 만든 이유는 복수나 다른 의도가 아니었다.

    “심연의 어두움은 비밀을 가려 주기 좋은 곳입니다.”

    “비밀이라면?”

    “지금부터 우리가 하는 얘기들입니다.”

    지금부터 나눌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들려줘서는 안 되는 이야기였다.

    <정의와 신념의 여신>은 이름에 걸맞게 현명한 방법을 마련했다.

    심연에서의 만남.

    아테나는 오늘을 기다렸다.

    “당신들과 대화를 나누기를 원했습니다.”

    “저희와요?”

    에어리스가 반문했다.

    아테나의 자애로운 눈동자가 에어리스를 지긋이 바라봤다.

    “물론이에요. 지금은 에어리스라고 불리는 당신과도 할 말이 있지요.”

    “아, 그런가요.”

    “지금부터 제가 아는 것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유성하의 회귀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건 알고 있었다.

    첫 번째는 ‘회귀의 잔재’였다.

    회귀하면서 버려진 자신의 분신체가 본체를 쫓아와서 끝없이 추격당하는 운명에 놓였다.

    두 번째는 성운전의 법칙이었다.

    “회귀자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자입니다. 성운전은 시간을 조작하는 자가 절대로 끝에 도착할 수 없다는 법칙이 걸려 있습니다.”

    “법칙인가요?”

    “네, 끝까지 간다고 해도 그 너머에 있는 진실로는 결코 갈 수 없습니다. 그건 유성하 본인도 알고 있죠.”

    형은 알고 있었다.

    끝의 직전까지 가 봤기 때문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던 회귀자가 끝에 가서야 겨우 알게 되는 진실.

    허무하고도 잔혹한 결말이었다.

    “형은… 그걸 알면서도 회귀를 하는 거군요. 그래서 신좌들은 형을 지켜보고만 있던 거고요.”

    “맞아요.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테나는 차분한 눈매로 지켜봤다.

    유성하가 지나온 나날이 여신의 눈앞에 신기루처럼 스쳐 지나갔다.

    “처음 회귀했을 때, 유성하는 1회전에서 죽었죠.”

    그날의 사투는 치열했으나 끝내 패배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자신의 성운이 전멸하던 그때.

    회귀의 능력이 발현됐다.

    ‘다시 한번 기회를 받는 힘.’

    빛나는 육체와 함께 시간이 되감기는 흐름을 느꼈다.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회귀자였습니다.”

    성운전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불굴의 의지로 1000번이 넘는 회귀를 반복하며 결국 성운전의 끝에 도달했다.

    “성운전의 끝에 도달했지만 굳게 닫힌 문이 기다리고 있었죠. 시간을 거스른 자에게는 절대 열리지 않는 문이었습니다.”

    유성하가 그곳에서 알았던 진실은 잔혹했다.

    회귀자에게 열리지 않는 최종 문.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결말이었다.

    지금까지 해 온 모든 회귀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을 맞이했다.

    죽음보다 잔혹한 진실이었다.

    입술을 깨물며 최종 문 앞에서 돌아서야만 했던, 회귀자의 운명이란 비참했다.

    유진하는 회귀자가 겪었던 운명을 비로소 깨달았다.

    회귀자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신세였다.

    회귀는 축복이 아니었고, 시간의 감옥에 갇힌 죄수에 불과했다.

    그때였다.

    유성하는 절망의 순간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선택을 감행했다.

    “돌아간다.”

    다시 회귀하는 길을 걸었다.

    끝에 넘어갈 수 없어도, 자신의 회귀가 무의미해도 포기하지 않았다.

    “형은 왜 포기하지 않았을까요?”

    중요한 질문이었다.

    저주와도 같은 무한의 회귀에 빠졌음에도 왜 그 운명을 반복했을까.

    “…글쎄요.”

    아테나조차 가만히 턱에 손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흔들리던 여신의 날개가 이내 잠잠해졌다.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고 있어서 아닐까요?”

    “희망이요?”

    아테나의 시선이 단 한 사람을 바라봤다.

    “유진하, 당신은 회귀자의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에어리스와 이소민은 모두 놀란 눈빛으로 유진하를 바라봤다.

    정작 당사자는 의외로 덤덤했다.

    “알고 있었나 보네요.”

    “…어느 정도는요.”

    유성하와 최초로 재회한 날.

    유진하는 우연히 유성하의 회귀에 비치던 광경을 보았다.

    “형의 회귀에 제가 없었죠.”

    회귀의 일부 장면이 실루엣처럼 우연히 보였는데, 유성하의 좌우에는 에어리스와 레다만이 함께하고 있었다.

    자매의 어머니, 시오는 없었다.

    세 번째 아이, 유나도 없었다.

    그리고 유진하도 없었다.

    지금은 운명이 달라졌다.

    시오와 유나가 살아 있다.

    유진하가 있었다.

    “과연 그렇군요.”

    아테나는 처음으로 되물었다.

    “저도 묻고 싶습니다. 유진하,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왔다.

    아테나는 유성하의 회귀에서 유진하가 없는 사람이라고 확인해 줬다.

    “유진하, 당신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 회귀에 없던 사람입니다.”

    여신 아테나의 말은 근엄했다.

    호기심과 경계심이 뒤섞인 듯한 눈동자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정의와 신념의 여신>가 가장 원했던 건 유진하에 대해 알아내는 거라는 것을…….

    “…….”

    <존재하지 않는 자>

    그 수식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진하…….”

    에어리스가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봤다.

    동굴에는 침묵이 흘렀으나 한 사람은 오히려 개운한 듯이 기지개를 켰다.

    “괜찮을 거야. 어차피 중요한 거는 내가 살아 있다는 거니까.”

    나는 살아 있다.

    고로 생각한다.

    누구도 유진하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아테나와의 대화로 은연중에 깨달은 사실이었다.

    유진하의 존재.

    앞으로 중요한 화두가 될 난제라는 것은 확실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알게 되겠죠.”

    아테나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당장 대답 듣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은 현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여기는 신의 눈길이 닿지 않는 심연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편히 하셔도 됩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유진하가 바로 손을 들었다.

    질문은 많았으나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묻기로 했다.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알고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유성하가 적은 책이네요.”

    “그 책의 2권을 아테나 여신이 직접 봉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려 주실 수 있나요?”

    “…….”

    아테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게 궁금하셨군요.”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유성하의 부탁이었습니다.”

    “형이 그랬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아테나의 답을 듣자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형이 왜 그런 건가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내용도 모르시는 건가요?”

    “…네.”

    아테나조차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나만 더요. 형과는 어떤 사이입니까?”

    회심의 질문이 나왔다.

    지켜보던 에어리스, 이소민, 유나의 영혼, 조커가 모두 아테나를 바라봤다.

    여신의 대답을 모두가 기다렸다.

    “저는… 지켜보는 자였습니다.”

    처음으로 아테나의 말투가 흔들렸다.

    “회귀를 끝없이 반복하면서 싸워 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죠.”

    “…전부 보셨다고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두 보았습니다.”

    형의 모든 순간을 보았다는 말.

    아테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여신이 아니라 한 명의 여자처럼 조금은 의미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저는 유성하의 회귀를 눈여겨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무리한 여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회귀자 특성이 있는 사람들 모두 결국에는 고된 여정 끝에 포기하고 말았거든요.”

    다른 회귀자가 있었다?

    유진하가 의문스런 표정을 짓자, 아테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자라 자부하던 자들은 모두 무너졌습니다. 회귀를 포기하거나 영원한 잠에 빠지곤 했죠. 하지만 유성하는 그들과 달랐습니다.”

    “형은 끝까지 싸웠다고 들었어요.”

    “맞습니다. 끝에서 절망을 보았어도 포기하지 않았죠.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그를 지지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테나는 지혜의 여신이었다.

    그런 여신이 진심으로 지켜보게 만든 형의 여정은, 영원한 회귀의 싸움에서 얻은 귀중한 가치였다.

    형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형을 믿는 거군요.”

    “저 역시 성운전에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죠. 마치 일회용처럼 소멸되는 무수한 생명들과 공간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정의와 신념의 여신>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올림푸스의 신좌와는 달랐다.

    “아테나, 당신은 형의 동료가 되었나요?”

    “아직은 아닙니다.”

    아테나는 여전히 올림푸스 소속이었고, 형의 뜻에는 동감했으나 다른 신들의 견제를 의식해야 했다.

    회귀자와 여신.

    아직 이뤄지지 않은 그들의 연합은 훗날에 벌어질 수 있을까.

    “심연에 오래 있을 수는 없습니다. 너무 오래 있다가는 육체까지 잠식되어 사라지기 때문이죠.”

    심연은 불안한 기색으로 흐르고 있었다.

    살아 있는 존재는 불편하다는 듯이 검은 흐름이 일렁거렸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얘기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하나의 날개만 남은 아테나.

    왼팔을 잃은 여신.

    오랜 시간을 허락받지는 못했지만, 흔들리는 심연 속에서 여신 아테나가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이곳 <아비규환의 지옥도>에는 유성하의 동료가 되는 신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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