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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78화 (178/229)

178화 신멸의 구도자(7)

시오의 등 뒤에 나타난 존재.

그녀가 몸에 두른 초월격의 아우라와 참격을 뚫어 버린 자가 있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는데도 어쩐지 느껴지는 따스한 감정.

밝은 느낌이 들었다.

“빛인가?”

하얀 빛은 이전과 달랐다.

푸른 번개의 아우라까지 휘감아 군데군데 번개를 번뜩이며 더 강한 기세를 드러냈다.

“하나가 아니야, 둘인가.”

사방을 메우던 초월격의 아우라 속에서 그 빛은 점점 밝아지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얗고 푸르게 달아오르는 빛과 번개의 아우라를 보면서 시오의 낯빛이 차갑게 바뀌었다.

“너는……?”

빛 속에는 유진하가 있었다.

아까와 기세가 완전히 바뀐 그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극도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초월격의 아우라에 맞서 맹렬하게 부딪치고 있었다.

“…빛과 번개의 조합.”

영원의 영역에서 개화한 새로운 아우라.

유진하의 하얀빛.

<빛의 한계를 초월한 자>

에어리스의 푸른빛.

<뇌명의 참격>

두 개의 힘이 하나처럼 휘감기고 있었다.

“빛과 번개는 원래부터 하나의 힘. 두 아우라를 융합하면 새롭게 발휘되는 힘이 있어.”

영원의 영역.

빛과 번개의 아우라는 원래 하나의 줄기에서 형성된 힘이었다.

같은 속성의 아우라였기에 하나로 합쳐져 발화할 수 있었다

“초월격에 맞서는 법…….”

유진하는 낮게 중얼거렸다.

당면한 저 강대한 초월격에 맞서려면 아우라의 힘을 모으는 방법밖에 없었다.

“…아우라의 결합.”

시오의 눈동자에 유진하가 발휘하는 빛과 번개의 아우라가 오롯이 비쳤다.

하얀빛과 푸른 번개가 뒤섞인 아우라는 고고하게 발현되었고, 영롱한 촛불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두 개의 빛을 가진 자>

새롭게 발현된 유진하의 아우라를 보면서 시오는 짧은 미소를 지었다.

“…혼자가 아닌 둘이서 이룬 힘이구나.”

그녀는 귀혼검을 움켜쥐고 허공으로 서서히 떠올랐다.

공중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봤고, 각자 발휘하는 기운으로 격돌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부딪친 공간은 짓이기듯이 일그러져 갔다.

“두 사람이 합친 힘이라면, 그 아이는 어디에 있지?”

시오의 물음에 유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짧은 침묵이 흘러간 후.

푸른 빛의 잔광이 하늘을 뒤덮는 광경이 펼쳐졌다.

“저는 과거와 달라요…….”

하늘에는 에어리스가 머무르고 있었다.

그녀 역시 유진하처럼 <두 개의 빛을 가진 자>를 발현하여, 푸른 번개와 하얀빛이 뒤섞인 아우라를 머금고 있었다.

번개의 흐름은 그물망처럼 이어져 하늘을 뒤덮었고, 에어리스의 등 뒤에는 푸른 번개가 날개처럼 자리했다.

“이제 저는 에어리스예요.”

과거를 떨쳐 내려는 몸부림이었다.

결의에 찬 그녀가 전신에 가득한 빛과 번개의 힘을 움직였다.

일격.

유진하와 시오가 맞붙은 곳으로 일격을 날렸다.

하늘을 뒤덮은 세 사람의 아우라가 정면으로 격돌하며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듯이 이글거렸다.

“하아아압!”

기합 소리를 신호로 삼아, 유진하와 에어리스가 동시에 움직였다.

빛과 번개가 동시에 치는 듯한 쾌속이었다.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이 전후좌우에서 시오를 향해 돌격했다.

중간에 그녀를 두고 섬광처럼 사방에서 끝없이 연속으로 쳐 버렸다.

번개처럼.

빛처럼.

두 사람의 빛과 번개의 아우라가 미친 듯이 좌우에서 교차하며 공격했다.

“너는 내가 낳은 아이야.”

방어하던 시오가 소리쳤다.

“내가 품에 안아서 길렀어.”

피맺힌 외침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온 거야. 너희는 내 아이들이니까 어머니를 버리고 갈 수 없어.”

섬광처럼 좌우에서 치고 지나가는 아우라를 막아 내면서 시오는 점점 아우라를 모아 갔다.

더는 지켜볼 생각이 없어진 것이다.

그녀가 발산하는 초월격의 빛이 두 개의 빛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신멸의 구도자>

시오.

<두 개의 빛을 가진 자>

유진하, 에어리스.

셋의 격돌로 발생한 파장이 위아래로 퍼져 나가며 균열을 만들어 갔다.

“너에게 기대한 힘이 있다.”

달려드는 두 사람에 맞선 시오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매서운 눈빛이 유진하를 향했다.

“네가 우리 아이를 받아 준 인간이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이 유진하는 최선을 다해 시오를 몰아붙였다.

끝없이 좌우에서 빛과 번개의 아우라로 연속으로 치고 지나갔다.

맹렬한 공격에 철통같았던 시오의 초월격도 조금씩 균열이 생겨 났다.

그녀의 눈썹이 가늘게 떨리더니 슬프면서도 외로운 듯이 움직였다.

“…잘 대해 줘서 고맙구나.”

그녀가 작게 되뇌었다.

느티나무가 있는 평상에 혼자 앉아서, 등 뒤에 떠오른 행성을 구경하며 외로운 나날을 보냈던 어머니.

차를 마시며 자신을 떠난 레다와 에어리스 자매를 걱정하고 기다렸다.

외로운 순간을 홀로 보냈던 그녀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어머니…….”

에어리스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지금도 시오는 혼자였다.

귀혼검으로 에어리스의 대검을 막아 내고, 맨손으로는 유진하의 돌격을 받아 내고 있었다.

격렬한 진동과 공간이 부서지는 듯한 굉음으로 온몸이 떨려 왔다.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던 하늘에는 결국 압도적인 한 사람만 남아있었다.

초월격을 발휘하는 시오.

그녀가 오롯이 혼자만의 힘으로 두 개의 빛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빛과 번개의 아우라도 끝내 초월격에는 미치지 못하고, 서서히 빛을 잃어 갔다.

쿠구궁.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는 진다.’

허공에서 맴돌던 두 개의 빛은 초월좌 시오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새로운 빛이 서서히 피어나고 있었다.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힘이었다.

“언니?”

세 번째 아이, 유나는 옆에서 아우라를 가다듬는 레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복부와 팔에 부상을 입었어도 레다의 기세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이 싸움에 그녀도 참전할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별자리에서 태어난 자>

이어서 하나의 줄기처럼 이어진 또 다른 아우라를 발현했다.

<모든 별자리를 머금은 자>

레다의 두 번째 고유 특성이었다.

황도 12궁을 넘어 모든 별자리의 지배자가 되게 해 준 힘이었다.

“지금 소환하는 별자리는…….”

레다의 배후에 별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총 여섯 개의 별이 발현됐다.

<6성 뇌전 천둥 번개 별자리>

그 순간, 번개의 힘이 전신에 감돌았다.

지표면에 머물렀던 그녀는 생환검을 치켜들고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하늘에는 어머니 시오, 유진하, 에어리스가 보였다.

‘번개의 별자리를 발휘하여 참전하라.’

유진하가 보낸 메시지였다.

빛과 번개의 아우라를 더 모아서 초월격에 맞설 계획이었다.

지금 이 마지막 빛.

레다의 별자리가 최후의 승부수였다.

“저건……?!”

어머니 시오가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레다가 발현한 천둥 번개 별자리의 아우라가 땅에서 급속도로 치솟았다.

유진하의 하얀빛.

에어리스의 푸른 번개.

레다의 노란 전격.

마지막 조각처럼 레다의 별자리가 합류하자 <세 개의 빛> 특성이 발현됐다.

시오가 드러낸 초월격의 힘은 강대하나, 세 개의 아우라가 합쳐진 위력도 그에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했다.

“흐아아아압!”

에어리스가 기합을 내질렀다.

유진하도, 레다도 최선을 다해 소리쳤다.

절대 부술 수 없는 장벽으로 돌진하는 빛처럼.

세 개의 빛줄기가 하나의 힘처럼 뒤섞여 나아갔다.

엄청난 파열음과 충격파가 공중에서 터져 나왔다.

먼지처럼 흩어지는 광경이 잠시 자리 잡았다.

그곳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텅 빈 허공.

이제는 무의미해진 듯한 공허함이 가득했다.

“제법… 괜찮은 기세였구나.”

뚝뚝.

어깨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막은 시오는 대지로 내려와 우두커니 버티고 있었다.

<신멸의 구도자>라 불리는 초월좌인 그녀가 어깨에 상처를 입었다.

“어머니?”

땅에 내려온 에어리스는 한마디를 건넸다.

어머니인 사람.

자신을 낳아 주고 길러 준 과거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은혜였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이임에도 두 사람은 지금 검을 맞대어 싸우고 있었다.

“내 딸들이 여기서 나간 후에 잘 지내고 있을까. 매일 걱정이 되었단다.”

시오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 옅은 표정에는 그리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어머니?!”

“아델리카가 아니라 에어리스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것도 같구나.”

그 말에 에어리스의 눈가는 일그러지더니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다행히 잘 성장했어. 힘을 합치라는 말은 너희에게 항상 해 줬던 이야기였거든.”

“저는…….”

“혼자서 어렵다면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하면 되는 거란다.”

세쌍둥이의 존재.

어머니는 그 아이들이 서로 힘을 합치기를 원했다.

“너희를 노리는 신좌들이 있기에, 너희들 스스로 몸을 지키기를 원했단다.”

어깨에서 나오는 피와 고통 때문에 시오는 잠깐 멈칫했다가 이내 자세를 바로잡았다.

“나처럼 신에게 이용당하다 버려지지 않기를 바랐어.”

신을 경멸하는 <신멸의 구도자>.

시오의 운명은 세쌍둥이와 함께 시작되었다.

“괜찮아. 너희처럼 같은 운명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는 건 서로에게 힘이 되는 거니까. 그래서 너희들이 하나의 힘이 되기를 원했단다.”

시오는 고개를 돌려 유진하를 바라봤다.

빛과 번개를 모아서 초월격에 맞선 사람.

에어리스의 이름을 지어 준 자가 처음과는 다르게 보였다.

“내 아이들의 이름을 또 지어 준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어.”

“…실례했습니다.”

“아니야. 그 덕분에 저 아이가 성장한 걸 테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오해와 반목으로 꼬여 버린 이들의 사이가 너무 깊었기에, 지금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언니들, 그리고 어머니.”

세 번째 아이, 유나의 영혼이 공중을 유영하며 다가왔다.

같이 내려온 레다의 상태도 다행히 양호했다.

세 자매와 어머니가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들 잘 들으렴.”

부상을 입었으나 시오는 자세를 하나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신멸의 구도자>라 불리며 신좌들을 베어 버리던 패기가 남아 있었다.

“3회전에 참가했으니 알 거야. 성운전에서는 어떻게든 승리 조건을 이뤄야 한다는 것을.”

패배는 탈락과 죽음을 의미했다.

성운전의 룰은 법칙처럼 작용하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너희도 알다시피 여기서 승리 조건은 나를 제압하는 거야.”

시오의 어투는 덤덤했다.

자신의 목이 걸린 게임임에도 마치 대가를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다는 듯이 침착했다.

“나를 죽여야 해.”

차가운 바람처럼 메마른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를 훑고 지나갔다.

3회전의 규칙은 시오를 제압해야 끝나는 게임이었기에.

결국 그녀의 목숨이 승패를 결정짓는 것이었다.

이 말은 자식이 부모를 죽이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때였다.

시오가 자신의 목에 귀혼검을 겨냥했다.

“괜찮을 거야.”

그녀의 입가에서 작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눈매로 세 자매를 바라봤다.

“어머니?”

에어리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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