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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74화 (174/229)

174화 신멸의 구도자(3)

잔잔한 바람이 불었다.

에어리스의 육체를 차지한 세 번째 아이, 유나는 전투에 앞서 조금은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이 대검, 너무 무겁네.”

커다란 대검이 거추장스러운지 한 손으로 휘휘 흔들며 살펴봤다.

“에어리스 언니, 이렇게 무거운 대검을 계속 들고 다녀야 해?”

“아, 그 검은… 나한테 소중한 것이거든.”

영혼체가 된 에어리스는 명랑한 소녀 같은 유나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아이, 유나는 자신의 육체를 가져갔지만 처음 만난 동생이기에 뭉클하면서도 아련한 마음이 들었다.

“그 검은 내가 처음 받은 선물이었어. 정말 중요한 거야.”

“에어리스 언니한테는 그런 거구나. 그럼 잘 가지고 있을게.”

유나는 이해했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자기 손에 맞지는 않아서 대검을 옆에 두고 다른 검을 꺼냈다.

“어머니가 주신 검이 있어.”

유나는 길고 날렵한 장검을 하나 꺼냈다.

레다가 가진 생환검과 똑같은 생김새지만 풍기는 오오라의 기운이 달랐다.

“레다 언니는 생환검, 에어리스 언니는 귀혼검, 나는 영류검을 받았어.”

하얀빛의 생환검.

검은빛의 귀혼검.

새롭게 꺼낸 유나의 영류검은 보랏빛으로 빛났다.

“세 명의 쌍둥이, 세 자루의 검. 이게 어머니가 우리에게 준 삶이자 운명이야.”

천진난만한 유나는 자기만의 검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유나에게 영류검이 나타나자 건너편에 있던 레다는 긴장한 낯빛이 되었다.

“그 몸은 네 것이 아니야.”

에어리스의 육체를 되찾아야 하는 싸움이기에 세 번째 아이이자 동생이라고 해도 물러설 수 없었다.

유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알고 있어. 하지만 어머니는 괜찮다고 했는걸.”

“그 몸의 주인은 어머니가 아니야. 결정권이 없어.”

레다가 강렬한 기운을 발휘했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쌍둥이 자매가 아니었다.

운명은 삶과 죽음을 뒤바꾸는 과정을 의미한다.

비록 혈연관계이지만 지금은 싸워야 하는 숙적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만 따를 거야. 언니들이 싫어도 그건 어쩔 수 없어.”

유나의 의지는 단호했다.

레다도 물러설 기세는 아니었다.

“그래, 어차피 어머니와 싸울 각오로 돌아온 거니까.”

서로 광활한 아우라를 발현했다.

<별자리에서 태어난 자>

<지하에 침식된 자>

하늘의 별자리에서 힘을 받는 레다.

지하의 지력에서 힘을 받는 유나.

그리고…….

두 사람을 지켜보는 에어리스의 영혼이 있었다.

세 쌍둥이 자매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떨어진 저편.

천년 제국의 성벽에는 원정대가 남아서 자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진하, 정말 지켜보고만 있을 거야?”

아슬아슬하게 흐늘거리는 에어리스의 영혼을 지켜보던 이소민은 불안했는지 슬쩍 유진하의 곁에 다가갔다.

“맡겨 두는 편이 나아요. 이미 저쪽도 그러고 있거든요.”

세쌍둥이의 어머니.

시오는 나무로 만든 평상에 앉아 자매들의 싸움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커다란 보름달 같은 행성이 떠오른 그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암묵적으로 명령하는 듯했다.

‘누구도 끼어들지 마라.’

자매의 싸움에 끼어들었다가는 시오가 나서서 막을 게 분명했다.

초월격을 가진 시오는 신좌를 사냥할 정도의 실력이 있었고, 그녀가 직접 나선다면 상황은 더 불리해질 터였다.

“지금은 맡겨 둬야 해요.”

레다와 유나.

그리고 에어리스.

세쌍둥이 자매에게 뒤얽힌 운명의 고리는 그들 스스로 풀도록 지켜보아야 했다.

“하아압!”

레다의 기합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우라의 기세를 발휘하자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별자리가 생성되었다.

<별자리에서 태어난 자>

황도 12궁에서 하나의 별자리를 발현한다.

이번에 소환한 별자리는 황소자리였다.

레다의 배후에 뜬 별자리가 거대한 황소의 소환체가 되어 나타났다.

쿠웅.

소환체 황소자리가 육중한 몸집으로 나타나 씩씩거리며 울부짖었다.

거대 황소의 굉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우와, 꽤 멋지잖아?”

지켜보던 유나는 꺄르르 웃으면서 거대 황소 별자리의 소환체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그럼 나도 비슷한 녀석으로 한번 꺼내 볼까?”

세 번째 아이, 유나는 <지하에 침식된 자>의 아우라를 발휘했다.

대지의 지면을 자신의 능력으로 바꾸는 힘이었다.

“내가 심심할 때마다 만든 것들이 많이 있거든.”

유나는 지하에 갇혀 있던 영혼일 적에 항상 심심했다.

영혼체라 전투처럼 격렬한 행동은 할 수 없었지만, 물건을 만지는 정도의 행동 정도는 가능했다.

“어릴 적에 심심할 때마다 정원사 아저씨가 보여 준 인형극을 생각했어. 그래서 나도 진흙으로 인형들을 많이 만들었지.”

유나의 손에 진흙으로 만든 장식품이 있었다.

그 장식품은 뿔이 달린 작은 황소 모양이었다.

“땅은 내 유일한 취미이자 친구가 돼 주었어.”

유나의 아우라가 치솟았다.

동시에 손아귀에 있던 작은 황소 장난감이 사방의 대지에서 바위와 파편을 불러 모아 서로 뒤얽혔다.

매개체가 된 작은 황소의 장식품은 거대한 바위와 파편으로 이뤄진 소환체가 되었다.

“내가 만든 황소 괴물이야.”

유나가 만든 황소가 나타났다.

레다의 황소 별자리 소환체와 크기가 엇비슷했다.

두 황소가 서로의 뿔을 내세우며 정면으로 충돌하자, 지표면이 뒤흔들리는 충격파와 굉음이 함께 퍼져 나갔다.

“으윽!”

지켜보던 에어리스의 영혼은 격렬한 충격파에 버티지 못하고 날아갈 듯이 휘청거렸다.

영혼체는 하염없이 미약했다.

마치 버드나무 가지처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신세였다.

“크으윽!”

레다의 얼굴은 침착했지만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다.

원래 그녀는 쌍둥이 중 맏언니였고, 에어리스와 유나에게 있어 가장 든든한 힘이 될 첫째였다.

“…세 번째 아이.”

그런 상황에서 태어나자마자 죽었던 동생, 유나를 만났다.

그 애는 막내였다.

“너에게 해 줄 말이 있어야 하는데…….”

에어리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같은 쌍둥이의 운명인데.

누구는 살아 있다는 이유로 지상에 있고, 누구는 죽어서 지하에 있어야 했나.

“헤헤, 언니들은 고민이 많구나.”

두 사람과 달리 유나는 특별한 고민이 있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하는 말대로 따르면 되잖아.”

세 번째 아이로서 막내였던 유나에게 어머니는 이곳에 남은 유일한 혈육이었다.

레다와 에어리스는 처음 보는 언니였으며, 지하에 갇혀 있던 유나가 보기에는 이상향과도 같았다.

같은 얼굴. 같은 외모.

하지만 처음부터 엇갈린 운명처럼 나뉘었다.

“나는 어머니 말대로 기다렸다가 다시 살아났어. 나는 어머니의 말만 믿어.”

유나의 단언에 레다가 반박하듯이 소리쳤다.

“그건 네 몸이 아니야.”

“알아, 에어리스 언니의 육체잖아.”

유나는 싱긋 웃었다.

그 미소에는 알 수 없는 악의가 숨어 있었다.

“우리는 쌍둥이잖아. 서로 같은 운명이라고.”

유나는 에어리스의 몸을 마치 제 것처럼 몸으로 여겼다.

에어리스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순간.

서로 부딪쳤던 황소 소환체는 점점 머리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백중세?!”

두 황소가 완전히 무너지고 가루가 되었다.

서서히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황소를 보면서 레다가 먼저 빠르게 나아갔다.

카앙.

생환검을 휘두르는 레다의 일격을 유나가 영류검으로 막아 냈다.

하얀 검의 궤적과 보랏빛 검의 궤적이 격렬하게 맞부딪쳤다.

“언니도 나도… 검술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았어.”

어머니에게 같이 배운 검술이기에, 그들은 같은 힘과 기술을 겸비했다.

차이가 없는 검술이 서로에게 몰아쳤다.

“언니들 실력이 뛰어나네. 어머니에게서 배운 거라 그런가?”

“너와 나는 동시에 태어났어.”

“언니가 조금 더 빨리 태어났잖아. 몇 초 사이겠지만…….”

유나는 대화를 이어 가며 여유롭게 레다의 공격을 받아 냈다.

“한 번쯤 언니들과 겨뤄 보고 싶었는데 정말 재밌어.”

서로의 검을 교차하면서 유나는 더 세게 보랏빛의 영류검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러셨어.”

유나의 눈빛이 빛나는 동시에 검기가 빠르게 휘어 들어갔다.

촤악!

레다의 팔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검의 궤적 속에 피가 서렸다.

“으윽!”

툭 떨어지는 핏물.

레다가 다친 팔을 움켜쥐고 살짝 뒤로 밀려났다.

유나의 자세는 어머니 시오의 검세를 그대로 재현한 듯이 여유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어머니가 그러셨어. 언니들은 마지막 검세까지 배우지 않았다고.”

“마지막 검세라고?”

“언니들이 나가 버리는 바람에 마지막 승계자는 내가 되었다고… 분명히 그러셨어.”

어머니의 검술.

시오류의 계승자는 막내였던 유나의 몫이 되었다.

“언니들과 달리 나는 어머니 말씀을 무조건 따랐거든. 그 편이 결국 잘되었으니까.”

유나는 영류검을 들고 천천히 아우라를 가다듬었다.

그러곤 새로운 진흙 인형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거는 언니들도 기억할까? 정원사가 나한테 준 소중한 선물이었어.”

유나를 닮은 인형이었다.

“어때?”

유나가 아우라를 발휘하자 진흙 인형에 기운이 서리더니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고오오.

주변이 녹아 버리듯이 침묵했다.

“아…….”

지켜보던 에어리스는 몸서리쳐질 만큼 영혼이 후들거렸다.

정원사 벨다와의 기억과 세 번째 아이 유나.

두 사람은 자신에게 마치 앓던 이처럼 남았다.

쓰라리고 아픈 기억이었다.

자신이 몰랐던 이면이었다.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어머니와 정원사뿐이었어. 한 명을 잃었으니 어머니만은 반드시 지켜 내겠어.”

유나는 강한 의지를 불태우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자 끝없이 바라는 욕망과도 같은 의지가 아우라처럼 치솟았다.

원래는 유나의 인형이었던 그것은 가위와 진흙이 보태어져 마치 정원사 인형처럼 변해 갔다.

그것은 방금 전 작은 황소 인형처럼 대지의 바위와 파편을 모아서 거대한 몸체로 나타났다.

“자, 어때? 더 싸울 수 있겠어?”

전신의 아우라를 감싼 유나는 영류검을 들고 입가에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은 마치 놀이를 즐기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레다는 작게 중얼거렸다.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차분하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정원사에 대한 추억은 나도 가지고 있어. 인형은 우리도 선물 받았으니까.”

정원사가 멋진 인형극을 보여 준 후에 선물로 줬던 인형.

지금 유나의 손에도 있는 그것과 같은 물건이었다.

“정원사는 우리 모두에게 같은 인형을 주었어.”

세 사람은 모두 같은 장난감을 받았다.

그들은 쌍둥이였기에.

마치 어린아이들이 모여서 장난감을 가지고 사이좋게 놀기를 바랐다는 듯이.

정원사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레다, 에어리스, 유나에게 인형을 선물한 것이었다.

“…그랬지. 하지만 그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어.”

레다가 씁쓸하게 웃었다.

손에 쥔 생환검에서는 하얀빛의 아우라가 점점 강해졌고, 어두워진 배후에는 새로운 별자리가 다시 나타났다.

<별자리에서 태어난 자>

“황도 12궁 별자리. 사실은 숨겨진 별자리가 하나 더 있어.”

마지막 숨겨진 별자리.

뱀주인 자리였다.

“지금부터 보여 주겠어.”

레다가 단호한 어투로 선언했다.

엇갈린 운명의 흐름을 바로 잡으려고 시도한 것이다.

“나도 알고 있었거든. 세 번째 아이가 지하에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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