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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71화 (171/229)

171화 토벌령(5)

철옹성 성채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정원사 벨다가 양손에 들고 있던 가위를 휘두르자, 조커는 쌍단검으로 맞섰다.

그들은 성채의 담벼락에서 이리저리 오가면서 격돌했다.

“진하, 이렇게 놔둬도 될까요?”

에어리스의 영혼이 걱정스런 얼굴로 물어봤다.

정원사의 철옹성에 맞서 천년 제국의 성벽을 설치했으나 더 이상의 접근은 무리였다.

“포격이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제갈공명은 사태를 파악했다.

“포격 공방전으로는 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무턱대고 달려들다가는 대포에 저격당하겠군요.”

백우선으로 상대의 성채를 가리키며 전장의 흐름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보통 공성전은 물량으로 밀어붙이지만, 지금은 소수 정예로 침입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전투에서 불필요한 희생을 원하지 않았다.

유진하도 제갈공명과 같은 생각이었고, 최선의 적임자를 선봉으로 선택했다.

“조커에게 선봉을 맡기겠습니다.”

저돌적이고 근성이 있으며 전투에서 원초적인 강함을 추구하는 자.

분신을 사용하기에 근접전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선봉을 맡겼으니 믿고 기다릴 생각이었다.

유진하의 결정은 확고했다.

‘저 성채 너머에 에어리스의 어머니가 있으니까.’

모든 전력을 투입하기보다는 선봉에게 맡겨 성채를 뚫기로 했다.

조커는 자신의 임무에 맞게 성채에 돌격해서 정원사 벨다와 자웅을 겨루게 되었다.

카앙!

단검과 가위가 부딪쳐 불꽃이 튀겨 나왔다.

매서운 단검술로 예측불허의 움직임을 가진 조커는 격투의 달인이었다.

정원사 벨다도 그의 실력을 인정했다.

“제법 뛰어나군요.”

“그쪽이야말로…….”

조커는 성벽을 이리저리 박차고 이동하면서 맞섰다.

정원사는 마치 곡예사 같았다.

높은 곳과 벽면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며 허공에서 외줄을 타듯이 스릴감을 즐겼다.

‘직선적인 조커와 유연한 정원사.’

서로 싸우는 스타일이 달랐다.

조커가 강렬한 기세로 다가가면 정원사는 여유롭게 공격을 흘리는 식이었다.

일진일퇴의 공방이 펼쳐졌다.

“……?”

이상 징조가 나올 즈음은 그때였다.

‘맞지 않았는데 상처가 생겼다?’

조커의 어깨에 무언가 스친 상처가 생겼다.

가위에 베인 적이 없는 부위였는데 어느샌가 상처가 생겼다.

그제야 얇은 실이 보였다.

“가위가 가는 곳에는 실이 가는 법입니다.”

정원사는 가위 끝에 연결된 투명한 실을 들었다.

성벽에 이어 두 번째 방어 전략이었다.

“실 감옥.”

최상층에 미리 설치해 둔 투명한 실이 거미줄처럼 설치됐다.

그 실은 길게 이어져서 사방을 가득 채웠고, 그 안에는 어느새 조커가 갇혀 있었다.

“저는 인형 놀이도 제법 잘하죠.”

정원사가 가볍게 중얼거렸다.

투명한 실은 조커의 몸에 무수히 연결되어, 그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과거에는 인형사였습니다. 나름 괜찮은 실력이 있다고 자부하죠.”

팔다리가 실에 묶인 조커는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정원사의 손가락에는 실이 가득 끼워져 있었고, 마치 피아노를 치듯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조커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인형 놀이는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합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관객들은 쌍둥이 자매였죠.”

정원사가 시선을 돌려서 성채 저편에 있는 레다와 에어리스를 바라봤다.

바람에 흩날리는 와중에 레다는 금발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차분한 눈빛으로 정원사를 바라봤다.

“어릴 적에… 자주 해 줬지.”

에어리스는 옆에서 레다의 말을 귀 기울였다.

어렴풋이 느껴졌던 과거의 기억.

정원사가 쌍둥이 자매들을 바닥에 앉히고 정성스레 만든 작은 무대와 마리오네트 인형으로 공연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과자로 만든 집, 그곳에는 자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림을 그려서 만든 무대에는 자매의 마리오네트 인형이 각자 움직였다.

덜그럭, 덜그럭.

자매 인형은 과자로 그려진 집에 들어갔다.

“어느 날, 늑대가 찾아왔습니다.”

이어서 늑대 인형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자매를 노리는 의도를 가졌는지 정원사의 손놀림은 더 음침하게 늑대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와, 늑대다.”

쌍둥이 어린 자매는 무서운 늑대의 등장에 잔뜩 호기심을 받았다.

똘망똘망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가득 찼다.

동화책 이야기.

늑대는 자매를 노리고 과자의 집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응답이 없자 재차 두드렸다.

똑똑똑똑.

어린 자매는 기지를 발휘해 어른이 있는 척 서로 대화를 나누며 늑대를 경계했다.

정원사의 인형 놀이는 계속됐다.

“자매는 영리하게 늑대를 피했고, 다시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싸울 준비를 했습니다.”

자매 인형은 각자 집안에서 몽둥이 같은 무기를 챙기고 함정을 팠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왔습니다.”

다시 늑대가 왔다.

정원사의 손놀림은 늑대가 사람의 냄새를 맡으며 다가가듯이 음흉한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지켜보던 쌍둥이 관객은 오들오들 떨면서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늑대는 창문을 넘어 집안으로 몰래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자매는 이미 준비를 해 놓았죠.”

창문을 넘자 벨 소리가 들렸다.

침입자를 알리는 경보를 만들어 둔 거였다.

심지어 바닥에는 덫도 있었다.

“크악!”

발이 물린 늑대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정원사의 인형 연기는 물이 올랐을 만큼 뛰어났다.

다리가 덫에 물려 고통스러워하는 늑대를 격정적으로 묘사했다.

인형 놀이는 클라이맥스로 향했다.

“자매는 최선을 다해 늑대를 공격했습니다.”

자매 인형은 지팡이와 몽둥이를 들고 늑대를 후려쳤다.

투닥닥. 툭닥.

경쾌한 효과음을 입으로 내며 정원사는 웃음을 지었다.

“마침내 늑대는 잡혔고. 자매는 무사히 집을 지켜 냈습니다.”

지켜보던 쌍둥이 자매는 그제야 불안한 눈매를 거두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오늘의 인형극을 감상하신 기분은 어떠신가요?”

정원사는 멋진 인형극을 마무리한 후에 자매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어린 레다가 말했다.

“정말 재밌었어요.”

어린 에어리스도 활짝 웃었다.

“다음에도 또 해 주세요.”

정원사는 고개를 숙여 두 소녀의 환대에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들. 이번 인형극에서 얻은 교훈은 뭘까요?”

“늑대는 때려잡아야 해요!”

곧바로 레다가 소리쳤다.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라서 약간 당황한 정원사는 빙그레 웃으며 화답했다.

“정답이긴 하지만, 다른 것도 있죠.”

정원사의 대답은, 그 후로 오랫동안 에어리스의 귓가에 남은 한마디가 되었다.

그렇게 친했던 사이였으나, 지금은 철옹성 성벽에서 조커와 맞서고 있었다.

긴 세월처럼.

어쩌면 짧은 꿈처럼.

정원사 역시 쌍둥이 레다와 에어리스를 보면서 감상에 젖어 들고 있었다.

“아가씨들도 중요하지만 저는 주인님을 지키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슬프게 들리는 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해 준 인형극.

함께했던 정원 가꾸는 일.

정답게 지내 왔던 나날은 이제 과거의 망령이 된 것일까.

자매는 떠났고 정원사는 남았기에.

재회의 순간.

이들은 과거의 인연이 아니라 현재의 적으로 만났다.

“하지만 아가씨들을 위한 새로운 인형극은 항상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정원사는 과거의 레다와 에어리스와 함께하던 인형 놀이를 떠올렸다.

스륵.

실이 감기는 소리가 들렸다.

실에 묶인 조커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팔다리가 움직였다.

“이번 인형극으로 화려한 무대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정원사 벨다의 고유 특성.

<마리오네트의 곡예사>

실에 연결된 존재를 마음대로 제어한다.

“당신들도 같은 무대에 올려 드리겠습니다.”

투명한 실이 날아왔으나 이쪽도 천년 제국의 성벽이 버티고 있었다.

튼튼한 철벽이 다가오는 실 무리를 전부 튕겨 냈다.

“인형을 보내 볼까요?”

실의 공격이 막히자, 정원사는 마리오네트 조커를 내세웠다.

제어력을 잃은 조커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고, 움켜쥔 단검으로 동료들을 겨누었다.

“훌륭한 기술이야.”

조커가 솔직하게 인정했다.

“실로 연결된 제어술. 정원사와 인형사를 오가는 그 실력은 확실히 뛰어나다.”

실은 팔다리에는 닿아 있었지만, 입가에는 닿아 있지 않았다.

정원사 벨다는 조커가 중얼거리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신의 육체를 지배했습니다. 입술도 제가 차지하도록 하죠.”

조커의 입에도 실을 연결해서 완전히 다물게 하려고 했다.

그때, 조커의 눈빛이 바뀌었다.

“늦었어.”

조커는 백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 백가면 덕분에 실이 얼굴에 닿지 않아서 입을 제어할 수 없었고, 그 부분이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가 되었다.

파앗!

조커의 입에는 날카로운 무기 하나가 싸우기 전부터 물려 있었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는 작은 가시였다.

혹시나 묶였을 때 밧줄을 풀 용도라든가, 만약을 대비해서 날카로운 가시 하나를 숨겨 놨는데, 정원사의 미심쩍은 움직임을 보면서 몰래 입속에 숨겨 놨다.

툭.

숨겨 놨던 날카로운 가시를 뱉었다.

조커의 아우라를 담아서 가시를 쏘았기에 날카롭게 나아갔다.

회전하면서 날아가던 가시는 조커의 몸을 묶었던 실들을 잘라 버렸다.

“인형 놀이는 끝내야지.”

왼팔에 묶인 실을 자른 조커는 빠르게 나머지 모든 실을 잘라 냈다.

마리오네트 제어술에서 풀려난 조커는 드디어 자유가 되었다.

“풀려 났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자 정원사 벨다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조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고유 특성을 사용해서 분신을 발현시켰고, 여기서 두 명이 된 본체와 분신이 각자 키리나의 단검을 사용해서 분신을 하나씩 더 늘렸다.

본체와 분신까지 네 명의 조커가 사방에서 정원사를 몰아쳤다.

여덟 개의 단검은 무수한 궤적으로 쉴 새 없이 몰아쳤다.

<팔궤>

조커는 결정적인 순간, 폭발적인 힘으로 휘몰아치려 일부러 분신을 사용하지 않고 아껴 놓고 있었다.

정원사의 두 개의 가위로는 전방위에서 몰아치는 여덟 개의 단검을 막아 낼 수 없었다.

“후후.”

일격을 맞은 정원사가 손에 든 가위를 툭 떨어뜨렸다.

입가에는 피가 흘러내렸다.

“훌륭한… 공격이었습니다.”

지켜보던 조커는 비틀거리는 정원사를 바라봤다.

철옹성 성벽의 최정상.

이곳을 지키던 책임자이자 정원사였던 그는 자신의 책임을 마지막까지 수행해 냈다.

“아저씨!”

에어리스의 영혼이 소리쳤다.

조각처럼 잊혔던 기억의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

인형사이자 정원사였던 그의 모습은 완전한 기억으로 형상화되었다.

정원사가 쓰러지자 철옹성의 포대도 전부 침묵했다.

“아저씨…….”

레다와 에어리스 영혼은 성벽 위로 올라와 쓰러진 정원사에게 다가갔다.

피를 흘리며 누운 정원사의 좌우에 앉아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정원사는 희미한 눈동자를 머금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과연… 정말로 돌아오셨군요.”

“저희가 왔어요.”

레다가 대답했다.

차분하면서도 기개가 넘치던 모습이 아니라, 안쓰러운 자세로 고개를 숙이며 죽어 가는 정원사를 내려다봤다.

슬픈 눈빛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돌아오실 지도 알았고요.”

“아저씨…….”

“좋은 인형극을 많이 준비했는데… 보여 드릴 기회는 없을 것 같군요.”

정원사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그가 원하는 삶은 주인을 지키는 일이었기에 회한이나 절망은 없었다.

“가십시오.”

그의 손에 열쇠가 들려 있었다.

철옹성 최상층의 대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그곳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정원사의 입가는 살짝 달싹거렸다.

호흡이 줄어 갔고 눈빛도 잦아들었다.

“조금만 쉬세요. 반드시 치료해 드릴 거예요.”

뒤이어 도착한 유진하와 제갈공명은 정원사의 상태를 살폈다.

단검에 깊숙하게 베었으나 급소는 전부 피했고 덕분에 치명상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없었다.”

백가면을 쓴 조커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치열한 전투의 끝에 항상 죽음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조커는 천부적인 전투 실력뿐만 아니라 불완전했던 이성마저 성장했다.

예전처럼 전투에서 의미를 찾아가던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

갑자기 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아까 물러났던 참가자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들었다.

전투를 지켜보다가 정원사가 내미는 열쇠를 빼앗을 생각이었다.

3회전의 목표는 토벌전.

<신멸의 구도자>를 죽이는 일.

그녀의 수하 역시 살려 둬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철옹성 포격이 멈추자마자 그들은 기습했고, 정원사는 물론 레다와 에어리스의 영혼까지 제거하려고 덤벼 들었다.

파아아!

빛이 몰아쳤다.

유진하가 빛의 힘으로 쳐 내고 있었으나 참가자들의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고 숫자도 워낙 많았다.

몰려드는 그들의 진형도 완벽했다.

모두 막아 낼 수 없었다.

에어리스의 영혼은 무방비 상태였다.

저 칼에 찔리면 영혼체가 사라지고 소멸한다.

퍼억!

“아…….”

비명이 짧게 흘러나왔다.

그것은 에어리스의 목소리였지만, 피를 흘리는 사람은 달랐다.

“아가씨…….”

정원사는 에어리스의 앞을 대신 막고, 상대의 칼에 복부를 깊숙이 찔렸다.

“아저씨?!”

정원사 벨다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제야 에어리스는 어렸을 적에 정원사 벨다에게 받았던 물건의 정체를 깨달았다.

‘인형극에서 썼던 자매의 인형.’

바로 그것이었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정원사는 온몸이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에어리스의 영혼도 주저앉았다.

레다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조커는 모든 침입자를 단숨에 베어 버렸다.

양팔을 좌우로 뻗어 단검을 휘두른 후에 한동안 그 자세로 가만히 멈췄다.

“이곳에는 오지 마라.”

단호한 말투였다.

분위기는 비통함과 절망감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었다.

조커를 비롯해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고, 이제는 그의 의지를 받기로 했다.

성채의 최정상에 선 유진하는 참가자 모두를 바라보며 선언했다.

“이곳은 당신들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지킬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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