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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68화 (168/229)

168화 토벌령(2)

새로운 심판관 <정의와 신념의 여신>은 3회전의 선언을 마치고 사라졌다.

“30일 뒤에 성운전이 열립니다.”

3회전이 열린다.

그때까지 이 무너져 가는 공간 속에서 기다려야 했다.

밤이 되자 으슬으슬한 바람이 불었다.

“이 무너져 가는 공간에도 밤은 있구나.”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에도 낮과 밤은 있었다.

유진하는 바위에 걸터앉아 별로 가득 찬 하늘을 보며 잠시 쉬고 있었다.

“어쩌면 최후의 빛처럼 보여…….”

던전을 숱하게 돌아다니며 소멸해 가는 공간을 많이 봐 왔었다.

탄생과 멸망은 가장 극적이고 슬픈 순간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천천히 수명을 다하는 공간에 있으니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 마지막 별빛이 아름다운 법이야.”

레다가 다가왔다.

<별자리에서 태어난 자> 특성을 가진 그녀는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점성술이라고 아나?”

“별자리로 운명을 점치는 거라면 우리 세계에도 있었어요.”

“정확히는 계시를 보내는 장치야.”

레다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끝을 따라 하늘의 별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별똥별을 보면 죽는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그들에게 신호를 보내 줄 수 있지.”

가벼운 손짓 하나에 별 하나가 긴 꼬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곤 이내 혜성처럼 긴 궤적을 남기며 스르륵 사라져 갔다.

“별을 통해서 신호를 보낼 수 있군요.”

“그래.”

레다는 가볍게 중얼거렸다.

중얼거리는 레다의 옆에는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영혼체가 있었다.

“레다 언니…….”

에어리스의 영혼이었다.

그녀는 천공의 성에서 어머니에게 육체를 빼앗기고 가까스로 영혼만 구해진 상태였다.

“이제 마음이 좀 나아졌니?”

쌍둥이 동생의 영혼체를 보는 레다의 얼굴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지금은… 진정되었어요.”

에어리스의 영혼은 잠시 말을 머뭇거리더니 힘겹게 말을 이었다.

다행히 이곳은 영혼체가 보이는 공간이라 모두에게 에어리스의 영혼이 보였다.

성운마다 정해진 규칙이 달랐는데, 우리가 살던 성운은 영혼체가 눈에 보이지 않았고 영혼이 머무르는 공간도 사후 세계로 제한했다.

우리 공간의 주인, 마스터의 결정이었다.

“사람들에게 영혼이 있다는 걸 알게 하고 싶지 않아.”

마스터의 생각은 그러했다.

“인간이 영원하다는 걸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 차이는 정말 크니까.”

영혼이 존재하고 영원하다는 걸 안다면…….

인간이 환생하는 것을 안다면…….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터였다.

죽은 다음에 새로 태어나기를 반복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마스터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마스터는 살아 있는 수명 동안 최선을 다해 성장하기를 원한 거 같아.”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한다.

마스터가 바라던 삶의 방식이었다.

물론 영웅급 영혼은 마스터의 특별 명령으로 환생을 불허하고, 상석에 따로 자리를 놓아 두었지만…….

“별자리가 아름다워요.”

에어리스의 영혼이 아름다운 별의 바다를 보며 감탄했다.

레다는 쌍둥이 동생을 위해서, 손짓으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이 별의 위치를 연이어 그어 갔다.

“물병자리를 그렸어.”

황도 12궁의 별자리를 하나 만들어 냈다.

신에게 술을 따라 주는 물병.

지금은 모두에게 아름다운 풍경을 쏟아붓고 있었다.

“은하수처럼 아름다워.”

세 사람은 물병자리가 별빛을 쏟아부어 만들어 낸 아름다운 풍경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멸망해 가는 성운에서 볼 것이라 생각지 못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두 사람이 결정했으면 해요.”

별빛이 갑자기 흐려졌다.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던 레다가 손을 내리며 유진하를 바라봤다.

“<신멸의 구도자> 토벌전에 두 사람이 참여할지 선택을 맡기고 싶어요.”

쌍둥이 자매에게 어머니인 시오.

그녀를 토벌하라는 소리는 어머니와 자매간에 골육상잔의 비극을 예고하는 말이었으며, 따라서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소리였다.

그래서 선택을 맡겼다.

“심판관은 우리를 이용해서 신좌들을 위협하는 세력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들을 싫어하니까.”

레다가 짧게 중얼거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금발 머리카락 속에서 그녀의 눈빛이 내려앉았다.

성운전을 지키려는 자.

성운전을 없애려는 자.

서로가 숙적이기에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저는…….”

에어리스의 영혼이 말을 아꼈다.

주저하듯이 두 손을 가슴 높이에 들었다 놓았다 하며 레다를 바라봤다.

“저희는…….”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에어리스와 눈이 마주친 레다는 무거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겠어요.”

3회전에 합류하겠다고 결정했다.

흐릿한 에어리스의 영혼은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 그 얽매인 매듭은 계속 제 발을 묶고 있었어요.”

에어리스의 영혼은 팔을 살짝 들어 올렸다.

지켜보던 레다도 똑같이 팔을 들어 따라했다.

쌍둥이 자매가 올린 두 팔은, 언약의 고리처럼 가느다란 실이 서로 연결된 듯이 보였다.

“공간과 차원을 넘어 헤어져 있어도… 우리는 이어져 있던 거예요.”

에어리스와 레다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하나의 실로 연결된 느낌을 받았는데, 이는 어머니에게 부여받았던 탯줄과도 비슷했다.

“최선을 다하겠어요.”

굳게 결심한 에어리스가 눈빛을 빛냈다.

기합과 동시에 온몸에 은은하게 서리던 빛이 더 강해졌으며 영혼의 형체도 차츰 또렷해지고 선명해졌다.

“알겠어. 둘의 결정을 존중할게.”

쌍둥이 자매의 재회.

어머니와의 약속된 만남.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에.

그렇게 이어진 그들의 운명은 수레바퀴처럼 굴러가기 시작했다.

하늘의 별들도 자매의 결정을 응원하듯 둥글게 회전하듯 돌고 있었다.

에어리스와 레다는 아름다운 곡선으로 흐르는 별의 궤적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점성술의 계시.’

<별자리에서 태어난 자> 레다는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점치고 있었을까.

그런 궁금증이 남았다.

“유진하, 궁금한 점은 없나요?”

레다가 문득 말을 걸었다.

유진하는 그 질문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제 형과 당신이 함께 했다고 들었어요. 모든 것이 궁금하지만 저도 이제 대답을 찾았어요.”

품에서 한 권의 책을 꺼냈다.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 2권이었다.

“그 사람의 책이군요.”

레다는 한눈에 그 책을 파악했다.

“1권이 유성하의 조언을 담았다면 2권은 그의 일대기를 기록한 자서전이에요.”

유성하는 회귀자였다.

<회귀의 굴레에 들어선 자> 특성을 이용해서 성운전에서 숱하게 싸웠고 가장 높은 곳에 도달했다.

하지만 되돌린 시간의 잔재가 남은 탓에 자신의 분신 같은 흔적과 싸워야 했다.

‘끝없이 따라다니는 회귀의 잔재와의 싸움.’

회귀의 굴레에 빠진 저주였다.

그 기록이 담긴 책이 천공의 성 도서관에 있었고, 이소민이 구매해서 가져왔다.

“그 책에는 그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레다는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는 누구도 책을 읽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2권에는 제한이 걸려 있었다.

봉인의 힘이 걸려 있어 책을 열 수가 없었다.

형이 도서관에 숨겨 놨던 이유도 다른 사람의 손에 이 책이 들어가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누구에게도 주지 않은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터였다.

“…알겠습니다.”

어두운 밤.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빛 아래 세 사람이 있었다.

가운데에는 유진하가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고, 왼쪽에는 에어리스의 영혼이 살짝 떠오른 채로 있었으며, 오른쪽에는 레다가 밤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영화 같은 풍경이군요.”

천공의 성에서 함께 따라온 이소민은 다른 두 영혼과 함께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항우의 영혼과 괴도의 영혼이었다.

그들도 에어리스의 영혼을 따라서 이곳에 함께 넘어왔다.

“우리가 있는 곳. 의외로 아름답군요.”

괴도의 영혼은 쏟아지는 별의 세례를 보며 감탄했다.

“패왕별희의 밤이 생각나는군.”

옅은 미소와 함께 항우의 영혼도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초패왕 시절에 마지막 결전의 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맞이하던 밤이 떠오르자, 마음이 먹먹해졌다.

“흐음, 너무 감상적이긴 한데 그것도 나름 좋단 말이야.”

이소민은 허리에 손을 두고 오히려 밝게 웃었다.

미지의 임시 공간.

3회전을 치르기 전에 제공받은 이곳은 멸망 직전의 세계였기에 마지막 불꽃처럼 아름다웠다.

* * *

<천재지변의 책략가>는 하얀 도복을 입고 갈대밭 사이에 있었다.

제갈공명은 백우선을 바람의 흐름에 맞춰 부치고 있었다.

“인간에게 초월좌라…….”

과거에 와룡 선생이라 불리던 그의 곁에는 훌륭한 주군과 용맹한 장수가 있었다.

“단 한 명이 전장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그런 신기의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백만 대군 사이에서 주군의 아이를 구해 온 조운.

장판파에서 백만 대군의 진군을 막아 낸 장비.

그들은 일기당천이었고, 혼자서 천 명을 당해 내는 맹장들이었다.

“그 한계를 넘어서는 신좌와 초월좌가 있다…….”

인간의 전쟁을 넘어선 성운의 전쟁이었다.

성운들의 전쟁, 성운전의 본질이란 초월한 자들의 대결을 일컬었다.

“진정한 싸움이라는 거군요.”

백우선을 든 <천재지변의 책략가> 제갈공명은 3회전을 앞두고 고심에 빠졌다.

“30일이라는 기간이 우리에게 부여된 전부라…….”

이미 다른 영웅들은 각자 수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일대일 대련을 벌이거나 반복 훈련을 하면서 단련하고 있었으나, 제갈공명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여겼다.

“선생님.”

갈대숲의 저편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유진하가 그곳에 있었다.

“유진하군요, 이곳엔 무슨 일인가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실 일이 있다고 하시면서 이쪽으로 가셨다고 들었거든요.”

제갈공명은 갈대밭까지 자신을 찾아온 제자를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 책은 읽었습니까?”

“아직입니다.”

형의 모든 기록.

천 번이 넘는 회귀를 반복하면서 최정상 성운의 끝까지 넘어간 유성하의 책은 봉인된 상태였다.

“그 책을 열면 많은 것을 알게 되겠죠. 어쩌면 미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책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형은 항상 무언가를 적었고 그것을 책 사이에 숨기곤 했으니까요.”

“그래서 도서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군요.”

“정말 있을 줄은 몰랐지만요.”

잠시 분위기가 풀어졌다.

제갈공명과 유진하는 서로를 바라보며 담소를 이어가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책을 꼭 읽어야 할까요?”

유진하의 손에는 갈색 양장본이 들려 있었다.

제갈공명은 가만히 그 책의 겉표지를 바라봤다.

저 안에는 성운전의 모든 것이 담겨 있을 터였다.

제갈공명은 책을 바라보며 무언가 고심한 후, 조심스레 생각을 밝혔다.

“회귀자의 기록은 미래에 대한 예언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판단력이었다.

이 책은 세상에 존재하기에 위험한 물건이었다.

잘못 전해지면 악용될 소지가 많았다.

그래서 유성하도 책을 봉인해서 천공의 성 도서관에 숨겨 놓았던 거였다.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짧은 바람이 지나가자 제갈공명은 백우선을 흔들며 거부 의사를 내비쳤다.

“선생님?”

“그 책을 봉인한 이유. 그것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열어서는 안 될 겁니다.”

만물을 통찰하는 지략가, 제갈공명은 그 책에서 풍기는 기운을 불길하게 여겼다.

통찰력을 가진 책사다운 천재성이었다.

“죽음의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제갈공명이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생각을 이어갔다.

“그것도 소멸에 가깝습니다. 영원한 죽음의 기세가 담긴 책으로 보입니다.”

유진하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문제는 이 봉인을 걸어 둔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유진하, 당신의 형이 아닙니다.”

제갈공명은 냉철한 판단으로 책에서 풍기는 오오라의 정체를 알아챘다.

“<정의와 신념의 여신>…….”

올림푸스의 지혜이자 심판관.

용맹한 전쟁의 신.

거대하게 빛나는 하얀 날개를 가진 여신 아테나가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을 봉인한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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