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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62화 (162/229)

162화 난입자(4)

전투가 끝나며 장내에 폭발했던 기운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후폭풍이 잠잠해지자, 그 중간에 홀로 남아 있던 시오가 기절한 에어리스를 두 팔로 안았다.

흩날리는 바람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품에 안겨 눈을 감은 에어리스를 내려다봤다.

“너희는… 원래 내 곁에 있었어.”

전투의 감흥이 남은 탓인지, 시오는 에어리스를 안은 채 가만히 있었다.

품에 안긴 에어리스는 정신을 잃었음에도 대검을 꼭 쥐고 있었다.

“예전… 어릴 적 내 모습 같구나.”

어린 시절의 에어리스는 나무로 만든 장난감을 손에 쥐고, 이렇게 품에 안겨 잠든 적이 있었다.

그때의 모습과 떠오르자 그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이제 돌아가자.”

전투는 끝났고 에어리스를 되찾았다.

시오는 성운전의 난입자였고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는 이곳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가자.”

“네.”

같이 왔던 시리안은 가볍게 목례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어리스를 품에 안은 채로 그들이 다시 차원문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틀 때였다.

“잠깐.”

작은 목소리와 함께 낯선 자가 달려들었다.

검은 망토와 하얀 가면으로 눈매를 가린 남자가 은밀하게 배후에 다가왔다.

에어리스와 함께 이 성에 들어왔던 괴도였다.

“당신 마음대로 에어리스 양을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괴도는 그림자처럼 몰래 다가와서 단숨에 달려들었다.

화살과도 같은 날렵함으로 에어리스를 향해 손을 뻗었으나, 동시에 그걸 막으려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찰나의 순간.

작은 충돌이 일어났다.

“누구냐?”

시리안이 막아섰다.

그 둘은 정면에서 충돌했고 괴도는 잠시 물러났다.

에어리스를 안은 시오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괴도를 노려봤으나, 특별한 기운을 발휘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품에 들어온 에어리스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깨어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헛된 행동이야.”

그녀는 오랜만의 재회를 방해받기 싫었던 탓에, 괴도를 향해 강한 적대감을 내비쳤다.

“에어리스 양을 쉽게 보낼 수는 없죠.”

괴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깜짝 놀란 시오가 자신의 품에 있는 에어리스를 바라봤다.

에어리스는 호흡이 멎었고 심장도 뛰지 않았다.

영혼을 잃어 껍데기처럼 육체만 남은 상태였다.

“어떻게……?”

물러난 괴도는 한 손에 작은 형체를 쥐고 있었다.

하얗고 투명한 존재가 새롭게 빛나고 있었는데 에어리스의 영혼이었다.

“저는 무엇이든 훔칠 수 있죠.”

영원의 영역.

<그림자 속의 괴도>

그림자에 숨어 은밀하게 다가와 무엇이든 빼앗는 고유 특성이었다.

괴도는 독특한 재능과 뛰어난 지력을 소유한 멤버였다.

지금 에어리스를 빼앗겨서는 안 될 거라고 판단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을 즉각 실천했다.

시오가 차원문으로 넘어가기 전, 방심을 틈타 에어리스의 영혼을 훔쳐 낸 것이었다.

“영혼만 데려간 건가?”

“전부 가져갈 수도 있지만, 내가 당신에게서 지킬 수 없을 테니까요.”

기절한 에어리스를 되찾는다 해도 상대는 괴물 같은 실력자들이었다.

저들을 상대로 승산이 없었기에 일부러 빼돌리기 쉬운 영혼만 취한 거였다.

그 짧은 순간에 내린 괴도의 판단력이었다.

“영혼이 없다면… 당신은 그녀를 데려가지 못하는 거죠.”

빼돌린 에어리스의 영혼은 어느새 괴도의 손에서 사라졌다.

육체가 없는 형체이기에 벽을 넘어 스르륵 다른 방으로 보내 버렸다.

에어리스의 영혼이 곧 정신을 차리면 이 성에 있는 유진하를 찾아갈 터였다.

거기서 기사회생의 방안을 찾아내면 된다.

“그쪽도 보통이 아니군.”

“과찬의 말씀입니다. 제가 정면에서 버티기에는 무리였죠.”

괴도는 상체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가슴에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손으로 막으려 해도 상체에 뚫린 구멍은 메울 수 없었다.

치명상이었다.

“목숨까지 걸어서 영혼을 빼 갈 줄이야.”

시리안이 괴도의 접근을 막아 냈지만 괴도는 일부러 방어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방어했다가는 에어리스에게 닿을 수가 없었기에.

그랬다가는 그녀를 완전히 빼앗길 수밖에 없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더라도 에어리스의 영혼을 구하겠다고 결단한 거였다.

“흐음…….”

눈매를 가린 하얀 가면을 쓴 괴도는 벽에 기대어 마지막 숨을 힘겹게 토해 냈다.

길고 평평한 원통형의 모자는 바닥에 떨어졌고, 검은 망토는 피로 물들었다.

“마지막에는… 같은 괴도단이 되어 주었던… 그녀에게… 고마움이 있었습니다…….”

괴도는 작게 중얼거렸다.

떨리던 입술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숨결을 잃어 갔다.

“그야말로 가장 훌륭한 그녀…를 위했기에…….”

눈꺼풀이 서서히 감겨 오자 괴도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에어리스의 영혼을 구해 냈음에 만족하고 서서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게 괴도의 시간이 멈추었다.

“…….”

죽음은 정적과도 같았다.

조용하면서도 격렬했던 그의 마지막 결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남문에서 입장한 참가자가 사망했습니다.

짧은 메시지가 흐르고 정적만이 남았다.

시오는 영혼을 잃어 껍데기만 남은 에어리스를 안은 채로 격렬하게 분노했다.

목숨을 건 괴도의 마지막 술책이 그녀의 모든 계획을 허물어 버렸다.

“이대로 놔두면 이 아이의 육체가 망가질 거야. 어서 영혼을 찾아야 해.”

“제가 가도 되겠습니까?”

시리안이 되묻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은 아직 성에 남았어. 반드시 찾아서 최상층으로 돌아오도록 해.”

명령을 내린 시오는 최상층으로 향했다.

다시는 이 성에 오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녀는 자신의 품에 잠들 듯이 안겨 있는 에어리스의 육체에만 관심을 쏟았고, 그녀의 영혼을 되찾아서 본거지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럼 가겠습니다.”

홀로 남은 시리안은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자 곧바로 탐색을 시작했다.

그녀의 계획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계획이었다.

‘신적인 존재들을 섬멸하고, 모든 공간과 성운을 하나로 통합시킨다.’

성운전은 거대 성운끼리 벌이는 암투였고 끝없는 전쟁이었다.

성운전을 종결시키려는 결사 조직.

시공간의 끝없는 전쟁을 종식하기를 원하는 세력이 존재했다.

<광명의 저편>

이곳의 수장이 된 시오를 위해서 시리안은 맹세했다.

신을 자칭하는 수많은 자들과 성운전에서 벌어지는 시험의 모든 것을 증오하기로.

“모든 걸 끝내는 길. 나는 찾아갈 테다.”

그는 긴 외투를 끌어안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시리안, 그가 어둡고 칙칙한 천공의 성 어딘가에 있는 에어리스의 영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 * *

천공의 성은 고요했다.

뱀파이어가 전멸하고 난입자가 등장하는 바람에 2회전의 틀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난입자가 남았고, 결국 그를 쓰러뜨리느냐 마느냐가 이번 전투의 본질이 되었다.

“웃기게 되었네.”

2회전의 심판관은 날개 달린 신발을 가진 신좌였다.

올림푸스 성운의 헤르메스.

신들의 안내자이자 메시지의 전달자이고 흥미로운 일만을 원했다.

“난입자가 끼어들어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재밌네.”

킥킥거리며 익살스러운 웃음소리를 내뱉더니 이내 벼랑에 앉아 먼 곳에 있는 천공의 성을 바라봤다.

신적인 존재는 천리안에 육박하는 눈이 있기에 편안히 성안의 광경을 관람할 수 있었다.

“성운전의 묘미가 이런 거야. 정해진 룰이 아닌 이런 변화도 감당할 수 있어서 재밌다는 거지.”

헤르메스는 즐기는 자의 마음이 되어 공중 부양한 뒤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전투를 감상했다.

마치 거실에 누워 티비를 보는 사람처럼 여유로운 자세였다.

“내 게임에 난입한 자. 그들도 아주 귀엽게 봐줘야겠는걸.”

난입자들은 신적인 존재를 죽이겠다는 자들이었다.

“성운전을 끝내고 신적인 존재들을 말살하겠다니. 크크, 제정신이 아니야.”

헤르메스는 그런 자들의 준동을 이미 숱하게 봐 왔고 어떻게 진압되는지 지켜봤다.

그들은 왜 실패하는가.

간단한 이유가 있었다.

“결국 성운에 속한 자니까 우리가 정한 규칙에서 싸워야 하거든.”

성운에 속한 자는 성운에 포함되기에 성운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당연한 소리였다.

“조금은 더 놔두고 지켜볼까. 어차피 불나방은 스스로 불길에 뛰어들 테니까.”

아직 미성숙한 열매를 성급히 떼어먹기보다는, 맛있게 익은 후에 삼키는 것이 더 달콤하리라.

언젠가 찾아올 그 날에 가지고 놀다가 죽이면 된다.

그때였다.

푸욱!

공중에 두 발을 뻗고 쉬던 헤르메스는 뒤에서 찌른 검에 가슴을 꿰뚫렸다.

검붉은 검이 날카롭게 빛났다.

“으아아아아!!”

헤르메스는 크게 비명을 질렀다.

배후에 나타난 자는 암살자처럼 후드를 쓰고 고개를 숙인 채 다가와서 검을 내질렀다.

“누구냐?”

“너희를 증오하는 자이다.”

대답은 짤막했다.

헤르메스는 입가에서 피를 쿨럭거리며 고통을 토해 내고 있었다.

“이 자식…….”

헤르메스는 이를 악물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에 꽂힌 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검붉은 검의 능력은 신적인 자들마저 능력을 봉쇄하는 성유물인 탓이었다.

“…기억해라.”

후드를 쓴 남자가 중얼거렸다.

“너희들을 죽이려는 자는 한둘이 아니니까.”

헤르메스는 자신의 뒤를 잡은 자의 정체를 그제야 짐작했다.

저 낮은 목소리 속에서도 특유의 어투를 기억해 낸 거였다.

“너는… 회귀자 녀석이냐?”

후드를 쓴 남자가 침묵했다.

바람이 불어 남자의 후드를 뒤로 쓸어 넘겼다.

정체를 드러낸 그의 눈빛은 단호했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신적인 존재들을 아우르며 성운전의 끝에 도달하려는 또 다른 사람이었다.

“유성하!!”

유진하의 형, 유성하가 나타났다.

영원의 영역.

<회귀의 굴레에 들어선 자>

고유 특성 중에서 최상급의 능력을 가진 유성하는 성운전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1000번이 넘는 회귀를 거치며 성장한 상태였고, 그 과정에서 신적인 존재 헤르메스의 뒤를 몰래 접근할 만한 실력을 보유했다.

“신은 영원하다고 한다. 너도 그런지 시험해 볼까?”

“이 자식!”

2회전의 심판관을 맡은 헤르메스는 방심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바람의 날개를 가진 신발이 있어 눈치만 채면 공간 너머로 도망갈 수 있었으나, 유성하는 그걸 알고 헤르메스의 뒤를 몰래 잡아 봉인했다.

“…꺼져라.”

유성하는 차원문을 열어서 헤르메스를 그곳으로 던져 버렸다.

-전령의 신이 퇴장했습니다.

안내 메시지와 함께 헤르메스는 강제로 차원 통로 속에 사라졌다.

유성하는 검에 묻은 피를 소매로 스윽 닦았다.

헤르메스를 완전히 소멸시켜 없애기에는, 아직 그가 속한 올림푸스 성운이 부담스러웠다.

신의 소멸은 특정 조건을 이루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훗날 신좌들을 모조리 잡는 날이 있겠지.”

심판관 헤르메스가 이탈하자 2회전은 신좌들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게임으로 바뀌었다.

입장 제한이나 승리 조건도 상황에 따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시오가 난입했나. 에어리스를 데려갔고…….”

난입자의 출현까지는 이전 회차에서도 있었던 일이지만 에어리스가 빼앗긴 것은 처음이었다.

에어리스는 여기서 잃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고, 동생 유진하의 곁에 계속 두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유성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그의 뒤에는 무수한 차원문이 생성되고 있었다.

회귀의 대가.

시간을 되돌린 대가로 버려진 회귀의 흔적들이 유성하가 어디를 가든 반드시 따라온다.

그들은 추격자였고 분신처럼 본체를 쫓아다녔다.

이곳에 있다가는 회귀의 잔재들과 다시 맞붙어야 한다.

“에어리스를 되찾지 못하면… 결국 전멸한다.”

동생 유진하도 이미 알고 움직일 거라고 믿었다.

회귀의 잔재들이 쫓아오기 전에, 유성하는 다른 차원문을 개방하여 들어갔다.

이제는 동생을 믿어야 했다.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

그 책은 유진하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으니까.

* * *

천공의 성.

뱀파이어가 전멸한 피범벅의 최상층에 괴도의 시체가 보였다.

에어리스의 영혼은 이 성의 어둡고 음침한 곳에서 숨어 온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라고.’

자신이 이기지 못한 탓에 괴도가 대신 죽었다는 죄책감에 빠져 있었다.

작은 형체가 된 에어리스의 영혼체는 고개를 숙이며 절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오의 명령을 받은 시리안은 이미 성을 수색하고 있었다.

에어리스의 영혼을 되찾으려 성의 내부를 샅샅이 돌아다녔다.

응접실과 도서관을 넘어 시계탑에 도착할 즈음이었다.

“너는……?”

시계탑 방에 무수한 톱니바퀴가 아귀를 맞춰 돌아가고 있었고, 그곳에는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정대의 ‘사자심왕’과 ‘조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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