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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61화 (161/229)

161화 난입자(3)

‘자신의 과거를 알아 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사라진 기억을 갈망하면서도 에어리스의 머릿속에는 이런 의문이 계속 자리했다.

내가 누군지.

나를 아는 사람이 누군지.

기억의 본질은…….

내가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지금 눈앞에는 <검기의 화신>을 발산하는 옅은 노란빛 머리의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모든 것을 알려 줬다는 사람이었다.’

스승.

어쩌면 나는 제자.

에어리스는 조금씩 과거의 기억을 모아 가기 시작했다.

“기억이 나지 않아도 너는 내게 같은 사람이야.”

그녀가 말했다.

‘시오’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는 영원의 영역을 통해 <검기의 화신>을 터득했다.

“나와 예전처럼 겨루어 보면서 하나씩 깨닫게 될 거야.”

시오는 광활한 기운을 머금은 장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손짓은 수신호와 같았고, 그 손짓에 따라 배후에 발현된 <검기의 화신>이 반응했다.

에어리스는 시오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치다가는 자신이 갈라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본능적인 반응으로 움직였다.

주변에 흐르는 푸른 번개가 정전기처럼 전신에 흘렀다.

푸른 번개는 대검에 흘려서 파괴력을 올릴 수도 있으나, 전신에 흘려서 전격적인 속도를 발현할 수 있었다.

파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에어리스가 번쩍이며 옆으로 이동했다.

푸른 번개를 전신에 머금자 마치 순간이동하는 것처럼 옆으로 이동했고, 지나간 자리에는 푸른빛의 정전기가 남았다.

<전광석화>

급가속한 상태로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기술.

단점은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짧다는 건데, 빠르게 기술을 반복하면 연속 이동이 가능해서 번개의 잔상만 남기며 쾌속으로 장거리 이동도 가능했다.

찌릿찌릿한 감촉을 느끼던 에어리스는 번개의 속도로 거의 순간이동처럼 파바밧 움직였다.

“후우.”

번개의 아우라를 가다듬으며 호흡을 정리한 에어리스는 긴장된 마음을 다독이며 눈앞의 거대한 검기의 화신과 맞섰다.

“이 모습…….”

순간적으로 잊었던 기억의 조각이 하나 떠올랐다.

어린 소녀 시절의 에어리스.

옆에는 언니 레다가 있었다.

쌍둥이자리에서 태어난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했다.

“언니?”

어린 에어리스는 두려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가진 채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아우라를 가다듬는 그녀가 보였다.

‘시오’라고 불리던 사람.

에어리스와 레다, 쌍둥이 자매를 받아서 키워 주고 모든 것을 가르쳐 준 스승이었다.

광활한 검기를 가진 시오는 넘치는 힘의 운용을 위해 매일같이 수련했다.

호흡과 마음가짐.

아침마다 그 훈련을 빠짐없이 반복했다.

지금의 에어리스의 몸에 배었던 아침의 반복 훈련은 이때부터 시작된 버릇이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강해지는 법을 배울 거야.”

가만히 검집에 검을 넣은 시오는 가만히 서서 차분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이곳은 행성이 가까이 있는 공간이었다.

하늘에는 새하얗고 고혹한 행성이 눈앞에 있듯이 가깝게 보였다.

“최선을 다해 볼게요.”

소녀처럼 어린 에어리스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귀여운 포즈로 눈빛을 빛냈다.

강한 스승.

그 밑에 훌륭한 제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레다와 에어리스, 쌍둥이 자매는 스승에게서 검술뿐만 아니라 마음가짐까지 전부 배웠다.

그리고…….

쌍둥이 자매는 떠났다.

기억은 여기서 마무리되었다.

“왜……?”

에어리스는 자기 자신에게 질문했다.

스승인 그녀와는 생각이 달랐다.

지금 자신을 데리러 왔다는 그녀의 방식도 자신의 가치관과는 달랐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면 기억을 되찾아 가면서 틈을 다시 메워야 했다.

에어리스는 같은 사람이었기에.

마음은 하나이기에.

‘아델리카’로 살았던 과거와 ‘에어리스’로 살았던 현재는 모두 존재하기에.

‘나는 누구일까요?’

그 물음 속에서 태어난 에어리스는 이제 새로운 질문에 도달했다.

‘나는 무엇을 하려는 걸까?’

푸른 번개의 아우라를 온몸에 휘감아 순간적인 가속을 발휘했다.

예전에 어린 자매와 함께 머물었던 넓은 마당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뛰놀던 추억이 떠올랐다.

시오라는 이름의 그녀는 그 거대한 느티나무 옆에 자리를 잡아 버티고 있었다.

“너는 돌아와야 해.”

강렬한 아우라를 뿜어내던 시오는 단호하게 말했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저는 대답했어요. 과거에도 현재에도 당신에게 돌아가지 않겠다고.”

에어리스는 결심을 굳혔다.

이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을 작정이었다.

전신에 감도는 찌릿한 번개으로 <검기의 화신>이 내려치는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 가며 나아갔다.

마침내…….

시오의 앞까지 다가갔다.

카앙!

에어리스는 대검을 휘둘러 시오에게 맞섰다.

서로의 검이 맞부딪치자 격렬한 파열음이 터졌다.

“나에게서 나간 이후로 네가 성장했다고 생각하니?”

“네……?”

시오는 냉소적인 말투로 중얼거렸다.

에어리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얼어 붙었다.

지금까지 발휘한 시오의 아우라는 겨우 한 걸음에 불과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기에…….

쿵.

시오는 검과 검이 마주친 상황을 반기듯 밀어붙이면서 나아갔다.

<뇌명의 참격>의 아우라로 에어리스가 홀로 맞서기에는, 시오의 아우라가 상상 이상으로 강대했다.

“으윽!”

에어리스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맞서고 있는 순간에도 서서히 밀리는 압박감을 받았다.

변화를 주어야 했다.

<전광석화>

번개의 흐름으로 옆에 이동한 후에 다시 대검을 휘둘렀다.

방향을 바꿔 크게 휘두른 일격이었으나 시오의 눈빛은 그 검의 궤적을 전부 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에어리스가 휘두른 대검을 가볍게 잡아 냈다.

“아!”

에어리스는 소름이 끼쳤다.

마치 맹수를 눈앞에 둔 듯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푸른 번개의 아우라. 그것은 벌써 4년 전에 네가 도달한 수준이었어.”

에어리스의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푸른 번개의 아우라마저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고, 대검의 끝자락은 그녀의 그림자조차 닿지 못했다.

오히려 시오의 기세가 점점 올라갔고, 사방에서 조여 오듯이 에어리스를 압박했다.

“으으윽!”

그 충격파로 인해 에어리스는 정신을 잃을 듯한 압력을 받았으나 이를 악물어 간신히 버텨 냈다.

이대로 기절해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아직이에요!”

극한의 의지를 발휘한 에어리스는 정신력으로 극복하기 시작했다.

힘이 부족할지라도.

정신마저 붕괴 당할지라도.

이대로 굴복할 수 없었다.

<뇌명의 참격>에서 발휘한 푸른 번개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 힘의 원천을 모아서 서서히 집중했다.

시오가 스승으로서 말했다.

‘과거의 기억은 잃어도… 몸에 흔적은 남는다.’

지금.

에어리스는 과거의 기억과 함께 서서히 능력을 되찾아 가는 중이었다.

기억을 찾는다는 건 힘을 되살리는 과정이기도 했다.

파아아!

무수하게 치솟은 푸른 번개가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빠른 움직임을 위해 전신에 번개를 휘감는 <전광석화> 기술을 활용했다면, 이번에는 강력한 힘이 필요해 수십 개의 번개를 하나로 집중시키는 <뇌명>을 시전했다.

하나의 번개로 합쳐진 <뇌명>은 강렬한 기세로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 번개는 하늘 끝의 천장에 맞닿더니 강하게 터져 나갔다.

하나의 대검에 하나의 번개.

발동한 기술명 그대로.

<뇌명의 참격>

강력한 번개의 힘이 내리쳤다.

그 위력에 시오도 처음으로 놀란 눈동자를 보였다.

아주 짧은 순간.

기다란 번개가 내리쳤고 강렬한 자국이 남았다.

“흐음.”

푸른 번개가 작렬하여 시오의 팔에 저릿하게 남았다.

시오는 처음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최선을 다한 일격을 날린 에어리스도 가만히 멈췄다.

허억, 허억.

작은 호흡을 내쉬면서 지친 기색을 감추었다.

“거기서 호흡을 숨겨.”

시오가 얘기했다.

작은 목소리로 하나하나 가르치듯이 지시했다.

“지친 기색을 적에게 드러내지 않도록. 절대 들켜서는 안 돼.”

“…네.”

에어리스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상대로 맞서는 그녀는 여전히 스승의 자세를 견지하며 당당했다.

시오는 자신의 팔에 휘감기던 에어리스의 푸른 번개 자락을 그저 손아귀를 꾸욱 쥐는 것만으로 없애 버렸다.

“예전에 비해서 전투법이 달라졌구나. 그때는 결정적일 때마다 검이 무뎌지곤 했는데 지금은 결사적인 마음이 생겼어.”

“…….”

“독립하고서 바뀐 점은 마음에 드는구나.”

시오는 차분한 눈빛으로 제자를 바라보듯이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 순간, 에어리스는 지금과 비슷한 과거의 광경을 떠올렸다.

하나의 기억이 또다시 생생하게 나타났다.

마지막이 되었던 조언이었다.

“너희들은 하나의 검이 되었어.”

스승 시오는 자매를 위한 말을 남겼다.

하나의 검이 된다.

하지만 운명은 바뀌었다.

으슥한 밤이 되자 자매는 길을 떠났다.

그것이 마지막이었고 스승과의 기억은 여기서 끝났다.

“너희들은 떠났지만 나는 남았단다. 옆에 보이는 거대한 행성을 그림자처럼 여기며 기다리고 있었어.”

시오는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눈가에는 쓸쓸함과 반가움이 뒤섞여 있었다.

이 싸움의 목적은 에어리스를 설득해서 데려가는 것이었다.

“너희에게 해줄 말은 여전히 남았어. 변한 것은 없으니까.”

고고한 자세로 바라보던 시오는 서서히 손을 뻗었다.

저 손은 그때처럼…….

에어리스를 향한 제안이었다.

“저는 가지 않겠어요.”

스승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시오의 목적은, 모든 성운을 멸망시키고 자신만이 유일한 성운의 주인으로 남겠다는 것이기에.

“그래, 더는 말하지 않을게.”

시오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아우라의 흐름이 미묘하게 흔들리더니 위협적인 기세로 변모했다.

<검기의 화신>이 격렬한 불길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몸체에는 동그란 원형의 물체가 생겨났는데 발현하는 빛이 광활한 기세로 뻗어 나갔다.

“이제는 사정을 봐주지 않아. 받아 낼 수 없을 거야.”

단호한 말투가 전해졌다.

스승으로서 더는 봐주지 않겠다는 말을 듣자 에어리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뇌명의 참격>

<검기의 화신>

두 사람의 완전한 기운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승부의 끝이 다가왔다.

“하아아아아!!”

에어리스는 힘차게 기합을 내지르며 대검으로 일격을 날렸다.

<뇌명의 참격>이 <검기의 화신>에 닿아 푸른 번개가 흘러 넘어가는 순간, 엄청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화신의 심장과 얼굴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아!”

번개는 중간이 끊어지며 사라졌다.

미처 당황할 틈도 없이 시오의 검이 에어리스를 향해 다가왔다.

잠시 후, 장검의 충격파가 에어리스를 휘감았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승부의 향방이 결정되었다.

장내를 휘감는 폭발이 치솟았고 그 충격파에 휩싸인 에어리스는 스스로 결말을 짐작했다.

‘…이길 수 없다.’

에어리스의 의식은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그래서… 도망갔구나…….’

몸이 허공에 떠오르며 의식을 잃기 직전.

장검을 휘두른 시오가 보였다.

슬픈 눈동자가 담긴 시오의 표정을 보면서 가장 중요한 기억의 파편을 그제야 떠올렸다.

시오는 스승이었고, 동시에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당신은…….”

에어리스는 짧은 말을 토해 냈다.

거센 후폭풍에 휘말렸고 기억의 저편으로 휩쓸려 가듯이 온몸이 흔들리다가 결국 정신을 잃어버렸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

“어… 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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