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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59화 (159/229)
  • 159화 난입자(1)

    “나를 불러낸 건 아주 좋은 판단이었다. 내 몫을 제대로 하도록 하지.”

    리처드 1세는 서양 역사상 최강의 무력을 가졌던 돌격형 왕이었다.

    사자심왕 리처드의 무운은 십자군 시절에 정평이 났고 전설적인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전장에서 직접 도끼를 휘두르며 맞서 싸웠다는 기록으로 유명한데, 도끼를 든 그의 무용은 상대에게 ‘사자의 심장을 가진 왕’이라고 불렸을 정도였다.

    콰앙!

    앞에는 100명이 넘는 괴물들이 있었으나 <십자군의 사자왕>에게는 두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가 도끼를 휘둘러 작렬시킬 때마다 거대한 몬스터 무리는 파도가 갈라지듯이 무너졌다.

    “야파 전투가 생각나는 전투네요.”

    리처드의 맹공을 지켜보던 유진하는 뒤에서 가볍게 중얼거렸다.

    십자군 원정 중 야파 요새가 무슬림 군대의 맹공으로 위기에 빠지자 리처드는 본인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참전했다.

    무슬림 병력은 무려 6만이 넘었고.

    급하게 간 리처드는 겨우 80명의 기사가 전부였다.

    “으아아아아!!”

    사자심왕 리처드가 선두에서 도끼를 휘두르며 길을 뚫었다.

    야파 요새의 전투에서 겨우 80명의 기사로 6만이 넘는 적의 포위를 뚫어 낸 것처럼, 거대한 몸집의 괴물과 팔이 여덟 개가 달린 괴수를 그대로 갈라 버리듯이 베었다.

    신기에 가까운 무용이었다.

    쿵.

    전투가 끝나 피 묻은 도끼를 땅에 내려놓은 리처드는 양손을 툭툭 털었다.

    “오랜만에 몸을 풀었더니 그런대로 적당했구나.”

    사자심왕 리처드는 목을 우두둑 꺾으면서 간만에 치른 전투의 소감을 밝혔다.

    “하하, 역시 대단하네요.”

    유진하는 겸연쩍은 얼굴로 어색하게 웃었다.

    역사 속에서 듣기만 했던 <십자군의 사자왕>이 펼치는 무용은 정말로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우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도끼 한 방에 그냥 다 나가떨어졌어요.”

    황금빛 풀 플레이트 갑옷을 챙겨 입은 리처드는 막강한 위용을 자랑했고, 이소민은 그 압도적인 실력에 감탄했다.

    도끼를 어깨에 걸친 리처드가 걸어가다가 문득 이소민을 바라봤다.

    “하하, 전장에서 그대의 활약도 기대하겠네.”

    “아, 저도요?”

    이소민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 다음, 살짝 당황했다.

    자신이 아무리 날뛰어도 사자심왕의 활약에 맞추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지나갔다.

    “전투는 모르겠고, 저는 아이템이나 회수해 볼게요.”

    말을 마친 이소민은 마치 길을 헤매는 나그네처럼 리처드를 지나쳐서 몬스터의 파편 속에서 금화나 아이템을 회수했다.

    조커는 팔짱을 낀 채로 왕의 전투력을 지켜봤다.

    “과연 낄 틈도 없었어. 오히려 방해가 되었을 지도…….”

    리처드 1세는 <십자군의 사자왕>이라 불리는 호칭 그대로의 무력답게 무시무시한 도끼 세례로 파괴력을 과시했다.

    ‘사자의 심장을 가진 왕.’

    사자심왕 리처드는 영웅 중에서도 최상급 무력을 자랑하는 실력자였다.

    “자, 그럼 계속 갈게요.”

    유진하는 일행들을 재촉했다.

    남문에서 최초 진입자로 들어온 괴도는 에어리스와 함께 성의 최상층을 향해 가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쪽도 속도를 맞춰 줘야 했다.

    더구나 이 성은 뱀파이어의 본거지였기에, 그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 최대한 힘을 합칠 필요가 있었다.

    지잉.

    안내 메시지가 도착했다.

    -난입자가 발생했습니다. 해당 인원은 두 명입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해지자 모두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난입자?”

    이소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난입자의 정체가 누구인지, 어디에 나타났다는 건지, 메시지만으로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당황할 틈도 없이 안내 메시지가 연이어 전해졌다.

    -긴급 변경 공지입니다. 참가자, 진행자 상관없이 난입자를 추방시키는 쪽에 특별한 보상을 지급하겠습니다.

    “난입자를 내보낸다?”

    유진하는 잠시 턱에 손을 괴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정체불명 난입자의 등장으로 변수가 발생했다.

    “그냥 때려잡으면 된다는 거잖아.”

    이소민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반응했다.

    옆에 있던 커다란 덩치의 <십자군의 사자왕>도 도끼를 집어 어깨에 걸치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대와 생각이 일치했어. 어떤 녀석인지 모르나 전투에서 이기면 끝나는 거지.”

    생각이 일치한 이소민과 리처드는 당당하게 앞으로 먼저 걸어갔다.

    둘 다 최정상급의 정신력을 가져서 그런지 이상할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다.

    “신경 쓰이는 부분이군.”

    조커는 팔짱을 낀 채로 다가와서 유진하의 옆에서 중얼거렸다.

    천재적인 전투 감각을 가진 터라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듯했다.

    “그런 거 같아요. 일단 성운전이 진행되는 곳에 난입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니까요.”

    “…어떻게 들어왔을까.”

    “그들이 왜 들어왔는지도 중요한 문제겠죠.”

    정체와 목적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난입했다.

    변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발성 때문에, 형이 집필한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었다.

    몬스터의 잔해로 가득한 이 성의 복도는 어느새 정적으로 가득 찼다.

    잠시 후.

    충격적인 안내 메시지가 전해졌다.

    -뱀파이어가 사망했습니다.

    그 문구는 연이어 반복됐다.

    -뱀파이어가 사망했습니다.

    -뱀파이어가 사망했습니다.

    -뱀파이어가 사망했습니다.

    ……

    마지막 문구가 나오자 모두가 침묵했다.

    -난입자가 성에 있는 뱀파이어를 전멸시켰습니다.

    * * *

    성의 최상층은 붉은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곳곳에 있는 뱀파이어의 사체와 전투의 흔적은 이곳에서 격전이 일어났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뱀파이어는 피로 태어나고 피로 죽는다. 그 말대로 되었어.”

    가느다란 장검에서는 영롱한 오오라가 발산되고 있었다.

    오오라가 발산되고 있는 검을 든 여자는 옅은 노란빛의 머리와 야리야리한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 보이는 것과 달리 불꽃같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뱀파이어는 당신에게 어렵지 않은 상대였습니다.”

    그녀의 뒤에는 검은 머리의 남자가 있었다.

    건장한 체구에 짙은 눈매.

    강인한 얼굴에서 단호한 기질을 드러내는 그 사람은 과거 푸른 갑옷을 입었던 남자였다.

    과거 빙룡의 주인이자 에어리스와 두 번이나 격전을 벌였던 푸른 갑옷의 시리안이 긴 외투를 입고 정체불명의 여자와 함께 나타났다.

    “당신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여자는 차갑게 말을 내뱉으며 장검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냉정하면서도 단호한 말투였다.

    “스승이라고 해. 그러지 않으면 너도 여기서 끝이다.”

    “…….”

    난입자로 들어온 두 사람은 바로 최상층에 진입하여, 그곳에 있던 뱀파이어를 모조리 쓸어버렸다.

    옅은 노란빛 머리의 여자는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채 혈족을 혼자서 쓸어버렸고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곳에 그가 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시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흘렀다.

    “그 아이를 찾으러 가야지.”

    피비린내가 가득한 최상층에서 옥좌만이 빛나고 있었다.

    여자는 피 묻은 장검을 손에 든 채로 천천히 최상층에 향했다.

    비어 버린 옥좌에 그녀가 가볍게 앉더니 차가운 눈매로 앞을 바라봤다.

    -난입자가 최상층의 왕좌를 차지하여 성의 제어권을 차지하였습니다.

    -난입자는 2회전의 참가자가 아니기에 게임의 승패와 상관없습니다.

    옥좌에 앉았던 여자는 잠시 감상에 잠기듯 있다가 가만히 손을 들었다.

    마치 잔혹한 피의 군주처럼 왕좌에 앉은 그녀는 위엄이 넘치면서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성의 제어권을 차지하자 여자의 눈앞에 성의 전체 지역을 표시한 지도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참가자들의 현재 위치가 표시됐다.

    “여기 있었어.”

    난입자로 들어와 뱀파이어를 전멸시킨 그녀는 목적이 하나 있었다.

    한 사람을 찾는 것.

    “나의 제자였다가 떠난 자.”

    여자의 눈꺼풀은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예전 기억을 떠올린 듯이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고개를 들어 중얼거렸다.

    “…반드시 되찾겠어.”

    여자는 왕좌에서 일어났고, 시리안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피로 물든 최상층과 이 성의 지배권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되찾고 싶은 건 한 사람이었기에.

    “아델리카…….”

    그녀의 본명.

    지금은 유진하가 붙여 준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에어리스…….”

    * * *

    대검이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복도를 막은 괴물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쿠우웅.

    거대한 덩치의 괴물들은 에어리스의 일격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하고 전부 나뒹굴었다.

    “후우.”

    검은 망토와 눈매만 가린 하얀 가면을 쓴 에어리스는 화려하게 움직였다.

    이마에 샘솟는 땀방울을 추스르며 몬스터의 압박을 모조리 받아 내고 역으로 대검을 휘둘러 쓰러뜨렸다.

    “대단한 솜씨입니다.”

    코어의 동력원에서 에너지를 받은 괴도도 함께 괴물을 제압했다.

    검은 망토를 두른 두 사람은 오래된 괴도단처럼 호흡이 잘 맞았다.

    “역시 제가 제대로 봤네요. 에어리스 양은 실력도 뛰어나지만 팀워크도 좋습니다.”

    “아, 그런가요?”

    괴도 복장을 한 에어리스는 무언가 달라진 느낌을 받았다.

    괴도가 말한 대로 이렇게 입으니 어쩐지 더 편안해졌다고나 할까.

    이전에 전투할 적에는 투사적인 직선 움직임이 강하다면, 괴도 복장을 한 후에는 좀 더 섬세한 움직임을 지향했다.

    “이 옷을 입으니까 정말 느낌이 달라요.”

    “그런 거죠. 원래 복장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과 반응이 달라지는 겁니다.”

    괴도풍의 복장은 근대 귀족의 예법과 비슷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부여했다.

    에어리스도 거기에 영향을 받은 듯이 좀 더 예의에 치중하고 세밀한 검술로 대응하고 있었다.

    원체 호기심이 왕성한 터라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도 가득했는데, 괴도풍의 복장은 그런 그녀에게 충분한 흥미를 주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하죠.”

    괴도는 가볍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접실의 복도에는 더 이상 괴물이 출현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 안내 메시지는 어떤 걸까요?”

    망토를 휘날리며 달려가던 에어리스는 난입자를 알리는 소식에 관심을 기울였다.

    괴도 역시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저도 모르겠지만 일단 불편한 상황이라고 느껴지는군요.”

    “정말 뱀파이어가 전부 소멸한 걸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난입자들이 최상층을 차지했다는 안내도 보통 일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괴도는 모자챙을 부여잡고 망토를 펄럭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 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유진하 일행과 합류하는 편이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일단 이곳으로 들어가죠.”

    막다른 곳에 문이 있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문고리를 돌리며 안으로 진입했다.

    “물건을 훔치러 몰래 들어온 기분이군요.”

    괴도는 가벼운 농담을 던지면서 빠르게 안으로 진입했다.

    거대한 넓이의 방에는 책장이 무수히 세워져 있었고, 많은 책들이 빼곡이 책장에 꽂혀 있었다.

    “도서관이군요.”

    특별한 위협이 없자 괴도는 경계심을 풀고 천천히 안을 거닐었다.

    낡은 장서와 고대의 책.

    이곳은 거대한 기록의 장이었다.

    “특별한 곳은 아닌 거 같습니다. 다른 방으로 넘어가죠.”

    괴도와 함께 걸어가던 에어리스는 순간적으로 낯선 감각을 받았다.

    기이잉.

    마치 칼이 우는 듯한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살벌하게 몰아치는 기세.

    동시에 온몸을 얼려 버릴 듯이 강렬한 압력이 전해졌다.

    “당신은?”

    그곳에는 가느다란 장검을 든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낯익은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긴 외투를 둘렀으나 한때는 푸른 갑옷을 입은 남자였다.

    “시리안?”

    에어리스의 목소리를 듣고도 시리안은 잠자코 있었다.

    지금은 그가 나설 차례가 아니었기에.

    “…드디어 만났구나.”

    여자는 영롱한 오오라를 머금은 장검을 든 채로 사뿐히 앞으로 나섰다.

    가벼운 몸놀림과 들고 있는 장검이 조화를 이루어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델리카, 아니, 지금은 에어리스라고 불러야 하나?”

    그녀의 말은 에어리스에게 진한 충격을 주었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멩이처럼 퍼져 가는 파장이 가슴에 닿았다.

    ‘당신은……?’

    에어리스는 이 만남의 결말이 결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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