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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57화 (157/229)

157화 천공의 성(6)

두 번째 진입자로 등장한 에어리스는 들어오자마자 깜짝 놀랐다.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지 공간이 완전히 무너져 난장판이 되어 있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위험을 느낀 에어리스는 대검을 꺼내어 움켜쥐었다.

괴도는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마드모아젤 에어리스, 저의 부름에 응답해서 와주셨군요.”

“아, 네…….”

숙녀라는 표현을 굳이 붙이면서 정중하게 인사하는 괴도를 보면서 에어리스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얀 가면을 쓴 괴도가 모자까지 벗어 인사하는 바람에 에어리스도 답례해야 했다.

아무래도 괴도는 특이한 도둑이 분명했다.

“이 성의 집사라고 하더군요. 저를 죽이려고 하기에 싸우는 중이었습니다.”

집사의 온몸에서 풍기는 오오라는 불길했다.

외눈 안경 속에 침착한 눈매는 사냥감을 노리듯 매서웠고, 거대한 낫은 차가우면서도 강렬한 적개심을 내뿜고 있었다.

“물러서지 않겠다면 맞서겠어요.”

투지를 불태운 에어리스는 물러서지 않고 오오라를 발현했다.

에어리스의 등장으로 잠시 멈췄던 대결은 서로 오오라를 발현하며 다시 시작되었다.

거대한 낫이 시공간을 가르듯이 나아가자, 공간을 찢어 버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아…….”

집사의 공격에 실린 위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에어리스는 대검으로 받아 내는 대신 뒤로 물러났다.

낫은 공간을 베어 버리면서 긴 궤적을 남겼다.

그리고 긴 궤적으로 잘린 공간에 닿으면 육체가 산산이 갈라질 거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후우.”

에어리스는 긴장감에 식은땀을 흘렸다.

“단순한 눈속임으로 시간을 끌 수는 있었으나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했습니다.”

“그런 거 같아요.”

괴도는 냉철하게 상대의 실력을 분석했다.

시공간을 가르는 낫도 번거로운 무기였으나 근본적으로 집사의 실력이 뛰어났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았죠.”

외눈 안경을 쓴 집사는 다시 전신에 강렬한 아우라를 발현했다.

영원의 영역.

<고독한 관리자>

집사의 운명은 관문의 문지기와 비슷했다.

수없이 문을 두드리는 낯선 침입자를 맞이해서 모두 제거하는 역할을 맡았다.

“저는 이곳의 집사입니다. 덤비십시오.”

보랏빛으로 타오르는 아우라를 발산하던 집사는 낫을 움켜쥐고 강렬하게 돌격했다.

에어리스와 괴도를 순식간에 베어 버리고 싸움을 끝내려는 것이다.

카앙.

그때였다.

온몸이 아우라로 뒤덮인 에어리스가 집사의 일격을 받아 냈다.

괴도는 모자챙을 부여잡으며 에어리스가 발휘하는 푸른빛 아우라를 바라봤다.

“이건?”

푸른빛의 아우라.

영원의 영역에 들어선 이후, 에어리스가 처음으로 발휘하는 고유 특성이었다.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어요.”

전투적 재능이 뛰어난 데다 꾸준한 노력파였기에, 에어리스는 자신의 가능성을 개화할 수 있었다.

쌍둥이 언니, 레다의 고유 특성.

<별자리에서 태어난 자>

조커의 고유 특성.

<삶과 죽음의 경계선>

에어리스의 발아래에는 뿌리부터 뻗어 나간 거대한 나무가 형상화되어 있었다.

영원의 영역에서 한계 너머의 상징과도 같은 생명의 나무였다.

무수한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처럼 나뭇가지가 수많은 갈래로 뻗어 나갔다.

그 무수한 길에서 에어리스는 마침내 자신만의 특성에 도달했다.

‘영원의 영역.’

온몸에서 치솟은 푸른빛의 아우라가 수십 개의 번개가 되어 내리치더니 강렬한 회오리가 되어 주변을 휘감았다.

<뇌명의 참격>

푸른 번개의 아우라를 머금은 에어리스는 가만히 있었다.

무수한 번개의 회오리 속에서 고개를 들어 차분한 눈동자로 지긋이 정면을 응시했다.

“과연 대단하군요.”

엄청난 기세의 아우라를 발휘하던 에어리스는 양손에 대검을 들어 단숨에 휘두를 자세를 취했다.

낫을 든 집사는 에어리스가 발산하는 번개의 기세를 보면서 처음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땀방울은 외눈 안경으로 흘러내리더니 밑으로 떨어졌다.

“훌륭한 기세입니다.”

집사도 남은 힘을 끌어모아서 승부를 준비했다.

두 사람은 결전에 나선 투사처럼 정면으로 맞섰다.

“하아아아압!”

맹렬하게 달려드는 집사를 상대로 에어리스는 제자리에서 버티는 것을 선택했다.

집사의 아우라로 두 다리는 땅에 파묻혔고, 해소하지 못한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그러나 에어리스는 흔들림 없이 뒤에 두었던 대검을 휘둘러 세차게 베었다.

푸른 번개의 아우라가 맴돌고 있는 대검은 압도적인 기세를 내뿜으며 집사에게 나아갔다.

콰아앙!

지축이 뒤흔들리고 매서운 파편이 쏟아졌다.

충격파가 퍼지자 시공간은 물결처럼 일렁이다가 이내 붕괴되기 시작했다.

괴도가 만들었던 기하학 큐브의 공간은 형체조차 남기지 못한 채,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크억!”

집사는 온몸을 저미는 듯한 강렬한 충격에 무릎을 꿇었다.

“이번 참가자는… 다르군요. 훌륭한 실력입니다.”

비틀거리던 집사는 입가에 흘러나오는 피를 토해 냈다.

그의 앞에는 푸른 번개의 회오리를 전신에 감고 있는 에어리스가 있었다.

“번개의 신이 있다면 그대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대단한 기세임을 인정하죠.”

집사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들어 에어리스의 아우라를 바라봤다.

흩날리는 금발 속 차분한 눈망울을 가진 그녀는 아름다웠고, 순수하면서도 강인한 내면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자태를 자아냈다.

“후후.”

고개를 떨구어 피를 토한 집사는 아무 말 없이 웃었다.

그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집사인 나의 사명은 이 성을 지키는 것…….”

에어리스는 알고 있었다.

관문의 문지기처럼 이 사람에게도 성을 지키는 임무가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쓰러뜨리지 않고는 절대 그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고독한 관리자>

그 특성대로 집사는 온몸에 새로운 기력을 발휘했다.

“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 여기서 당신들과 지옥까지 갈지라도…….”

집사의 육체는 변형하기 시작했다.

울퉁불퉁 근육이 생기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더니 점점 송곳니와 거대한 뿔 형태로 변했다.

마치 악마처럼 날개까지 펄럭이며 완전한 괴물이 되었다.

“아…….”

육체 변형까지 하며 자신의 생명을 불태운 집사를 보면서 에어리스는 당황했다.

“크아아아!”

엄청난 괴성이 터져 나왔다.

괴물은 막강한 완력을 발산하며 돌진했다.

에어리스가 번개의 아우라를 가다듬기 전에 괴물의 어깨 돌파가 먼저 들이쳤다.

“아악!”

괴물의 몸체에 부딪친 에어리스는 강하게 튕겨 나가서 벽면과 충돌했다.

무너지는 벽돌과 부서지는 파편 속에서 에어리스는 바닥에 나뒹굴며 괴로워했다.

“허억, 허억.”

괴물은 양손을 들며 강하게 포효했다.

두 개의 뿔을 가진 강력한 괴물의 위압감에 에어리스는 간신히 몸을 추스를 따름이었다.

“보통 의지가 아니었군요. 자신의 육체까지 포기하면서 지키려고 할 줄은 몰랐습니다.”

괴도는 쓰러진 에어리스에게 다가가서 부축했다.

“이대로는 끝이에요.”

에어리스가 숨을 헐떡이면서 중얼거렸다.

아까의 충격으로 부상을 입었으나, 포기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좋습니다. 제가 시간을 벌어 줄 테니 그때까지 최대한 기운을 모으십시오.”

“네?”

“반드시 일격을 날릴 기회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괴도는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의를 굳힌 듯이 단호하게 정면을 응시하더니 모자챙을 잡으며 싱긋 웃었다.

“걱정은 끼치지 않을 겁니다.”

괴도는 고개를 돌려 미소를 거두고 다시 냉철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그는 과거에 달밤 아래에서 활동하며 예고장을 보내고, 어떤 귀중품이라도 반드시 훔쳐 내던 도둑이었다.

그랬던 그가 어느덧 원정대의 진정한 멤버가 되어 이 자리에 섰다.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의 귀중품은 어차피 다른 사람의 차지였다.

그에게는 병들어 죽어 가는 어머니에게 받은 반지 하나가 어린 시절의 전부였다.

‘나에게는 유일한 보물이었어.’

어머니의 유품.

그것은 괴도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으나 어머니의 병원비를 위해서 반지를 팔아야 했다.

그리고 다시는 그 반지를 볼 수 없었다.

‘세상은 귀중한 보물과 평범한 물건만이 있다.’

‘나에게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갔으니 나는 모두에게 소중한 물건을 가져가겠다.’

그것은 어느새 자신의 좌우명이 되었다.

“최선을 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괴도는 에어리스가 기운을 모을 수 있도록 빠르게 움직여서 괴물의 시선을 끌었다.

30개가 넘는 코어를 전부 꺼내어 무한한 에너지를 끌어모았다.

“나는 빈털터리.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자…….”

오오라는 차츰 선명한 형태의 기세로 바뀌어 갔다.

“빈손으로 모든 것을 원했기에 훔쳐야 했던 사람…….”

괴도는 차분한 눈빛으로 온몸에 감도는 아우라를 느꼈다.

그 역시 코어의 힘과 자신의 천부적 재능으로 성장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의 조커.

<뇌명의 참격>의 에어리스.

<빛을 초월한 자>의 유진하.

이들이 도달한 영원의 영역을 괴도 역시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으로 끝내 다다랐다.

<그림자 속의 괴도>

달빛만이 비치는 밤의 어두운 자락 속에서 괴도는 그림자처럼 파고들어 무엇이든 가져갔다.

예고장을 보내고 훔쳐낸 귀중품은 세상에 공개한 후에 모두에게 공개한다는 조건으로 돌려보냈다.

그는 원래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었고 항상 빈손이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원했던 물건은 단 하나였습니다.”

진짜 괴도의 보물은…….

어머니가 죽으면서 남긴 유품이었다.

작은 금반지.

그것이 괴도에게 유일한 보물이었고 다른 것은 흥미에 불과했다.

그 금반지가 아니면 다른 것은 가치가 없었다.

“…목숨을 건 훔치기가 되겠군요.”

전투보다는 지략전을 중시하던 괴도였다.

하지만 도둑의 숙적인 탐정 유진하와의 만남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제까지 내가 훔치지 못한 것은 없습니다.”

저 앞의 괴물을 앞에 두고 괴도는 투지를 불태웠다.

<그림자 속의 괴도>

무엇이든 훔칠 수 있는 자.

괴도는 아우라를 발휘하며 단숨에 달려들었다.

괴물의 심장 부근으로 쏜살같이 달려들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 잡히는 것은 흐릿하면서도 형체가 온전하지 않은 거였다.

“지금입니다.”

괴물에게서 괴도는 하나를 훔쳐 냈다.

그의 변해 버린 육체가 아니라 정신 자체를 가져갔다.

집사의 영혼이었다.

그 충격에 괴물의 기세가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다.

“하아아아압!”

<뇌명의 참격>

에어리스는 양손에 쥔 대검을 뒤에 두고, 푸른 번개의 회오리를 무수히 발현시키며 전신의 기운을 모았다.

한 번의 베기.

번개가 감도는 무수한 파괴력의 일격이 괴물에게 나아갔다.

거대한 형체의 괴물은 그 번개의 파동에 맞아 육체 곳곳이 터져 나갔다.

결국 강력한 푸른 번개가 거대한 괴물의 모든 육체를 완전히 터트렸다.

“카아아아악!”

무수한 번개의 위력 속에서 괴물은 검게 변해 생존 반응이 사라졌다.

잠시 후, 괴물의 형체가 뒤로 넘어가 뻗어 버렸다.

쿠웅.

묵직한 소리 속에서 긴박했던 승부의 끝을 알게 되었다.

“하아, 하아.”

모든 힘을 쏟아부은 에어리스가 힘겹게 숨을 토해 냈다.

긴장되는 승부를 마친 괴도도 안도의 한숨을 토해 냈다.

“수고했습니다. 과연 대단한 힘이었네요.”

성의 집사가 변모했던 괴물을 쓰러뜨렸으나 새로운 고민거리가 남아있었다.

지금 괴도의 손아귀에 잡힌 형체.

집사의 영혼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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