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섬멸전(3)
-획득한 2점을 사용해서 두 명을 부활시켰습니다.
수많은 영웅 중 회심의 카드가 될 두 사람을 선택했다.
2명을 부활시켜 현재 1점만 남았으나 그것만으로도 유리한 상태였다.
다음 날 밤.
관문에서 빛이 다시 새어 나왔다.
전초전에서 거인 한 명을 보냈다가 패배한 그들이 결사의 각오로 다시 진입한 것이다.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듯 그들의 둔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거인들을 맞이하는 세상은 밝지 않았고 어둡고 고요한 침묵만이 가득했다.
“크르르르르.”
거인들은 이성적인 존재였다.
대화도 가능하고 지성체다운 두뇌도 겸비했으나 지금은 승리외에는 어떤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듯했다.
열 명의 거인들은 주변을 경계했는데, 이곳의 느낌은 그들이 살던 곳과 사뭇 달랐다.
“…….”
인간들은 보이지 않았고 어두운 벽만이 가득했다.
넘어온 거인들은 결사대였다.
영웅 타가르의 지휘 아래 열 명의 거인들이 최종 승부를 지으려고 넘어온 것이다.
“준비 태세를 바꿨어. 제법이구나.”
거인 타가르는 푸른 몸체의 거인으로 다른 거인들보다 훨씬 거대했다.
그는 사방이 막힌 벽면을 커다란 손으로 살짝 어루만졌는데, 뭉툭하면서도 거칠고 딱딱한 느낌을 받았다.
“장벽인가?!”
매끈한 감촉이 아닌 우둘투둘한 감촉.
인간들이 대비 체계를 새로 만든 거였다.
“관문 주변에 거대한 장벽을 둘러놨군.”
인간들은 관문 주위에 자신들이 가진 최대의 장벽을 설치했다.
통로를 넘어오는 거인들이 들어오자마자 자연스레 이곳에 막혀 버리게끔.
“…방어전을 준비했군.”
현재 스코어는 1 대 0이었기에 인간들은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도 1회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거인 타가르가 보기에도 현명한 판단이었다.
“우리를 가둬 둘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해 주지.”
10명의 거인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정예 병력이라, 성벽으로 가둬 버린다고 쉽게 물러날 정도가 아니었다.
“벽을 넘어간다.”
벽은 높았으나 거인들이 능력을 발휘하면 넘어서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타가르를 시작으로 다른 거인들이 일제히 장벽을 넘기 시작했다.
쿠웅.
벽을 넘어 건너편에 도착한 거인들은 커다란 두 발 먼저 지면에 도착했다.
그 순간 낯선 위화감을 느꼈다.
“어?”
10명의 거인들이 같이 뛰어넘었는데 벽면 너머에는 인간도 거인도 없었다.
타가르도 높다란 벽면을 넘은 후, 열 명의 거인들과 흩어져 홀로 남자 당황했다.
“평범한 장벽이 아니었나?”
인간들이 설치한 장벽은 일종의 포탈로 넘어설 경우 각기 다른 곳으로 워프시키는 기능이 있었다.
그 결과 거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홀로 당황한 채 서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성공했군.”
먼저 이 거대한 장벽을 설치한 장본인이 중얼거렸다.
그는 이번에 부활한 사람 중 하나였는데, 머리에 황금빛 월계관을 썼으며 보랏빛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옆에 사람 역시 부활한 사람이었는데 하얀 도포를 입고 백우선을 손에 들고 있었다.
“과연 인류 최대의 성벽답군요. 천년 제국을 지킨 성벽다운 훌륭한 위용입니다.”
백우선을 가볍게 흔들던 그는 저 멀리 펼쳐진 성벽의 자태를 감상하듯이 바라봤다.
철옹성의 성벽은 거대한 미로처럼 관문을 굽이굽이 둘러싸고 있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
동로마 제국의 성벽.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3중 성벽은 수많은 적으로부터 천년이나 제국을 지켜낸 버팀목이었다.
“제국의 성벽이 그렇게 오랫동안 버틸 줄은 몰랐지.”
황금빛 월계관을 쓴 남자는 황제였다.
테오도시우스 2세.
천년 제국의 성벽을 쌓은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황제였다.
“사후 세계에서 지켜봤습니다. 정면이 뚫리는 데 무려 천년이나 걸렸죠.”
성벽의 완공은 422년 무렵이었고, 오스만 투르크의 대포에 맞아 성벽이 부서지며 제국이 멸망할 때는 1453년이었다.
말 그대로 난공불락의 천년 성벽이었다.
<천년을 지킨 성벽>
-거대한 장벽을 범위 내에 설치할 수 있다.
테오도시우스 2세가 가진 고유 특성이었다.
“방어전을 계획했다면 확실히 이 특성을 가진 영웅이 필요했겠습니다.”
하얀 새의 깃털로 만든 부채, 백우선을 손에 든 책사는 차분한 눈빛으로 거대한 성벽을 지켜봤다.
“저런 우수한 성벽이 있다면 어떤 책략가라도 반드시 수성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법이죠.”
책사는 백우선을 가볍게 흔들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재지변의 책략가>
책사는 희대의 전략가이자 풍향을 바꾸는 천재 지략가로 유명한 제갈량이었다.
“이렇게 같이 할 줄은 몰랐지. 천재적인 전략가로 유명한 승상과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철옹성 성벽과 천재 지략가를 부활시켰습니다.
유진하는 두 사람을 부활시키기로 결정했다.
‘철통같은 방어전.’
완벽한 방어 태세를 준비할 수 있는 영웅이 있다면, 유리하게 승부를 이끌어 갈 거라고 생각했다.
“천년 제국의 성벽과 천재적인 진법을 만든 사람이 필요해요.”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지키는 수호의 성벽을 관문 주변에 설치해야 했다.
그래서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만든 황제가 필요했다.
“다음에는 미로예요.”
삼국지 촉나라의 지략가 제갈공명은 희대의 천재였다.
진법과 병법은 물론 보급과 행정에도 뛰어나서 촉나라의 기반을 만들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의 뛰어난 두뇌와 진법이었다.
‘팔진도.’
제갈공명이 자신의 병법으로 만든 팔진도를 사용했다.
천년 제국의 장벽에 이 진법을 이용한 미로를 만들어 낸다면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 된다.
‘테오도시우스 성벽과 팔진도의 융합.’
천년 성벽과 팔진도.
유진하가 수많은 영웅 중에서 두 사람을 선택한 이유였다.
“팔진도의 진법.”
제갈공명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계책을 펼쳤다.
백우선을 흔들어 성벽의 곳곳을 가리키자 그 손짓에 따라 천년 제국의 성벽이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이 계획을 만든 사람이 유진하라고 들었습니다.”
제갈공명은 하나의 이름을 떠올렸다.
전체적인 전략을 구성한 지략자이자 공간의 주인인 마스터의 곁에서 두뇌를 담당하는 천재.
이번 1회전의 모든 전술을 짜낸 전략가의 이름이었다.
“기대에 부응해야겠군요.”
제갈공명은 침착하게 사방을 둘러봤다.
전략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유진하를 비롯해 정예 병력은 미로 안에 있었는데, 들어가기 전 제갈공명과 미리 이야기를 나눴다.
“제가 펼치는 팔진도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겁니까?”
“네, 공명 선생님.”
“흐음, 선생님이라…….”
제갈공명은 선생이란 말에 약간 당혹스러워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승상님이라고 부르기도 그렇겠군요. 촉나라는 이미 사라진 지 천년도 훨씬 넘었으니까요.”
제갈공명은 후대의 천재 지략가 유진하를 만나고 나서 만족스러운지 백우선으로 입가를 살짝 가리며 웃었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적절하겠군요. 마음에 듭니다. 훌륭한 제자를 둔다면 감사할 따름이지요.”
“네, 저도 꼭 뵙고 싶었어요.”
앞으로의 성운전에서 인간은 영웅들을 집결시켜 싸워 나가야 했다.
용맹한 무장은 전투에 나서고, 천재적인 지략가들은 대전략을 그려야 한다.
‘하나의 선택이 전체적인 전략의 향방을 가른다.’
유진하는 그렇게 인류를 대표하는 영웅들을 모아 갈 생각이었다.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있었는데요.”
제갈공명을 만나면서 꼭 물어보고 싶었던 말이 하나 있었다.
“무엇이든 물어보셔도 됩니다.”
제갈공명은 흔쾌히 질문을 받아들였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유진하가 마침내 삼국지를 즐겨본 사람들이 항상 궁금해하던 그 질문을 던졌다.
“1차 북별에서요. 가정 전투에 왜 마속을 보낸 건가요?”
“…….”
허를 찔렸는지 제갈공명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청산유수처럼 뛰어난 말수와 지략을 가진 그였으나 저 질문은 항상 괴로운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제갈량은 이내 다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하하, 사후 세계에서도 참 많이 들어 본 질문이군요.”
“죄송해요. 정말 궁금해서 여쭤본 거거든요.”
질문을 하고 아차, 했지만 다행히 제갈공명이 유쾌하게 받아들여 주었다.
“괜찮습니다. 저도 이해합니다.”
삼국지 1차 북벌.
촉나라는 위나라를 정벌하기 위해서 군사를 일으킨다.
출사표를 쓰고 결연한 의지로 나선 제갈량은 천재적인 지략으로 병력을 통솔했다.
“1차 북벌이라… 제 작전은 위장이었습니다.”
“위장이라면…….”
“위나라에서 가장 경계하는 장수는 조자룡 장군이었죠.”
조자룡.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명장이었다.
“그럴 만해요. 조조의 백만 대군에 들어가서 후대 황제인 아두를 구해 내었으니까요.”
일기당천.
한 명의 기병이 천 명을 당해 낸다.
그날의 활약은 조운이란 명장을 위나라에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1차 북벌에서 조운 장군은 오호대장군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위나라의 가장 심한 경계를 받았죠.”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
1차 북벌 시기에는 오호대장군에서 조운만이 유일하게 남은 무장이었다.
제갈공명은 위장 전략을 위해서 과감하게 이 핵심 장수를 ‘미끼’로 사용했다.
“조운 장군이 소수의 병력으로 전면에 나서게 했습니다. 위나라는 당연히 조운 장군이 본대인 줄 알고 그쪽에 신경을 썼죠.”
조운이 미끼가 되어 적을 유인할 동안 제갈공명은 본대를 이끌고 우회했다.
조운을 미끼로 쓸 줄 몰랐던 위나라로서는 완벽하게 허를 찔렸고, 제갈공명은 순식간에 진군했다.
“그런데 뒤늦게 사마의가 왔습니다.”
사마의.
제갈공명의 평생 라이벌이 되었던 위나라의 지략가였다.
그는 지휘를 맡자마자 제갈공명의 본대에 집중했고, 본대가 상당히 멀리 진군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급선이 길어졌고 사마의는 우리의 허리를 끊으려고 계획을 짰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보급을 유지하는 지역을 제일 먼저 공격했죠.”
1차 북벌의 성공은 여기에 달려 있었다.
제갈공명은 가정이란 지역을 지켜서 길어진 보급선을 유지해야 했다.
그 중요한 가정 전투의 지휘관으로 선택할 장수가 중요했다.
“제가 선택한 사람은 다들 아시겠지만… 마속이었습니다.”
제갈공명은 씁쓸한 낯빛을 감추려고 백우선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얀 도포를 입은 그는 마치 신선처럼 우아한 자세를 드러냈다.
그에게 있어 마속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마속은 가정 전투에서 제가 원한 곳이 아니라 산에 진영을 설치했습니다.”
“그래서 사마의는 산 아래에서 물길을 끊었고요.”
“물이 부족해지자 촉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전멸했습니다.”
안타까운 결말이었다.
주요 전력인 조운 장군을 미끼로 활용한 1차 북벌은 이 전투의 패배로 실패한다.
후대의 사람들은 많이 궁금해했다.
왜 하필 엉뚱한 산 위에 진지를 차렸던 마속을 보냈냐고.
“선대 황제께서 하신 분부를 제가 잊었기 때문입니다.”
제갈공명은 유비의 신하였다.
유비는 마속에 대해서 중용하지 말라고 당부했으나, 나라에 인재가 부족한 탓에 그 당부를 지키지 못했다.
“결국 저의 불찰로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제자 분도 명심하셨으면 합니다. 하늘의 뜻을 알려고 노력하다가 정작 자신의 발밑을 못 보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말라는 것을요.”
제갈공명은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먼 미래와 하늘만을 보다가는 정작 자신의 발밑이 낭떠러지로 가고 있음을 놓칠 수 있다.
희대의 천재 전략가는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있었음에도 사람의 속까지는 완벽하게 알 수 없다고 조언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선생님.”
유진하는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미래를 향한 수에만 집착하다가 눈앞의 것을 놓쳐서 전부를 잃을 수 있다.
그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겼다.
테오도시우스 2세와 제갈공명은 높다란 절벽에 서서 수없이 펼쳐진 성벽의 미로 진영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천년 제국의 성벽과 팔진도를 융합한 인류 최고의 방어 체계를 선보였다.
“이제 저들의 차례입니다.”
팔진도 미로의 안에는 유진하 일행이 있었다.
거인들은 뿔뿔이 흩어졌기에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최후의 승부를 앞두고 치열한 전투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